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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를 디자인하는 자신감

미술감독 겸 더블클릭코리아 대표 김상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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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상택 미술감독 겸 더블클릭코리아 대표
▲김상택 미술감독 겸 더블클릭코리아 대표

메가 이벤트(Mega Event)란 올림픽, 월드컵 등 전 세계의 이목이 집중되는 행사를 말한다. 자국에서 메가 이벤트를 개최한다면 모든 분야에서 최정예 인재를 모으기 마련이다. 2018년 평창 올림픽을 포함해 국내외 메가 이벤트 무대 디자인에 참여한 김상택 대표를 만났다. 그는 30년 동안 공간을 창조했고 그에 대한 자부심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었다.

 

Q. 미술감독이라는 직업이 생소할 독자들을 위해, 미술감독이 어떤 일을 하는지 직업에 대한 소개 부탁한다.

A. 다양한 분야의 미술감독이 존재해, 명확하게 정의하기 어렵다. 간단히 말해 영화·드라마·연극과 엔터테인먼트 프로젝트의 대규모 국가행사·광고 등 다양한 예술 분야에서 미술적인 영역을 책임지는 전문가라고 보면 된다. 현재 내가 주력하고 있는 분야는 메가 이벤트 개폐회식 행사다. 오케스트라의 지휘자이자 섬세하게 악기를 조율하는 조율사라고 하면 이해하기 쉬울 것이다.

 

Q. 학부 시절부터 지금까지 디자인 업계에 몸담아왔다. 30대가 되기 전 사업을 시작한 이력이 특이한데, 상대적으로 어린 나이에 사업을 시작한 이유와 그로 인한 어려움은 없었는지 궁금하다.

A. 사회 초년생 시절 열정적으로 일을 했고, 운이 좋아 어린 나이에 미국에서 진행하는 1996 애틀랜타 올림픽 삼성 홍보관 프로젝트’를 진행하게 됐다. 그 당시 행사 현장에서 미술감독이 연필 한 자루를 들고 지휘하는 모습을 봤는데, 마치 전지전능(全知全能)한 신처럼 보였다. 그 장면에 충격을 받았다. 이후, 나의 목표는 미술감독이 됐다. 나의 꿈과 목표는 미술감독이라고 주변에 널리 알렸다. 응원하는 사람도 있었지만, 대부분 무시하는 분위기였다. 당시 나는 20대에 불과했지만 업계의 몇 안 되는 미술감독들의 연령대는 높았고 이력 또한 매우 뛰어났기 때문이다. 빠르게 미술감독으로서 일을 시작하고 싶은데, 현실적으로 어려웠고 결국 가장 빠른 방법은 창업이라는 결론에 도달했다. 내가 회사를 설립하고 스스로 미술감독 명함을 팔고 다니면 된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열정과 젊은 혈기는 미약한 실력 앞에서 무의미했다. 2000년대 초반의 나는 여러모로 미완성이었다.

 

Q. 2018년 평창 동계 올림픽 개폐회식의 미술감독으로 참여하는 등 최근 국내 메가 이벤트 무대 디자인에 힘쓰고 있다. 기억에 남는 일화가 있다면 소개 부탁드린다.

A. 아무래도 평창 올림픽 당시 생각이 많이 난다. 올림픽 이전 어느 날, 직원들에게 크게 소리쳤다. “나 평창동계올림픽 미술감독 할 거다!” 직원들은 “그러지 마세요.”를 외쳤다. 대표가 어느 날 갑자기 아직 3년이나 남은 올림픽을 붙들고 있겠다고 나서니 어찌 안 말릴 수가 있었을까. 그러나 결심을 밀고 나가기로 했다. 나는 한 번 목표가 생기면 계획을 세운다. 단기계획과 중장기계획으로 나눠 지속적으로 최종목표를 향한 계획을 수정하고 달성한다. 그때는 이미 다수의 메가 이벤트 개폐회식을 경험해 봤기 때문에 자신감에 차 있었다. 물론 우여곡절도 많았고 좌절도 했었지만 성공적으로 평창 동계올림픽 개폐회식 미술감독을 맡아 행사를 진행했다.

▲작업실의 책상. 컴퓨터는 그의 작업물로 가득 차 있다.
▲작업실의 책상. 컴퓨터는 그의 작업물로 가득 차 있다.

Q. 공간연출 및 무대 디자인을 할 때 가장 먼저 고려하는 것은 무엇인가?

A. 모호한 기획으로는 좋은 결과물이 나올 수 없다. 따라서 좋은 ‘기획’이 바탕이 되어야 한다. 그래서 상황이 허락한다면 기획 단계부터 깊숙이 참여하려고 노력한다. 기획이 어느 정도 확정되면 각 스태프의 영역에서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하는 지에 대한 디자인 시안을 짠다. 그리고 사전에 제작된 계획도면을 통해 이견을 좁혀가고 공감하는 과정이 필요하다. 아무리 직급이 낮은 스텝이라도 동등한 책임감을 느끼고 참여할 때 좋은 결과물이 나온다고 생각한다.

 

Q. 30년간 공간연출과 무대 디자인을 해왔다. 항상 새로운 디자인을 해야 한다는 강박에 시달리지는 않는가?

A. 자다가도 벌떡 깨어날 때가 있다. 머릿속에 안개처럼 남아 있는 형상을 찾아내기 위해 연필을 찾는다. 그리고 어디에든 적용해 보려 몇 번이고 애를 쓴다. 하지만 결과물은 과거의 것과 그리 다르지 않다는 게 현실적인 문제이다. 무대 제작사 사람들은 이렇게 말하곤 한다. “김상택 감독이 디자인했군요? 이거 만들기 힘들겠는데…. 아마 아무도 안 하려 할걸요….” 억만금을 줘도 안 하겠다는 건 상업적으론 실패한 디자인이다. 다만 이상하게 그럴 때마다 새로운 디자인을 해냈다는 자부심으로 심장이 부풀어 오른다. 난 나만의 스타일(Style)과 크리에이티브(Creative)가 있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답이 정해져 있어도 굳이 10개씩 디자인을 해서 보여준다. 새로운 디자인에 대한 강박이 아니고 새로운 걸 시도할 수 없는 현실이 문제라며 자위해 본다.

▲2023 순천정원박람회 당시 작업물
▲2023 순천정원박람회 당시 작업물

Q. 스스로 정해 놓은 목표까지 나아갈 수 있었던 원동력은 무엇인가?

A. 친한 지인들이 가끔 묻는다. “너의 그 밑도 끝도 없는 잘난 척과 자신감은 어디서 나오는 거니?” 상황에 따라 다르지만, 난 마음속으로 할 수 있다는 확신이 들었다면 호기롭게 던져놓고 보는 경향이 있다. 그 호기로움이 어쩔 땐 부담으로 다가오기도 하고, 더욱 열심히 하는 원동력이 되기도 한다. 그러나 자신감만으로는 모든 목표를 달성할 수 없다. 자신만의 강점도 키워야 한다. 나의 경우 미팅 자리에서 클라이언트(Client)의 생각을 3분 만에 정확하게 스케치로 표현하는 능력이 강점이라고 할 수 있다. 내 능력을 그 즉시 보여줘 일을 따내는 것이다. 이 무기를 장착하는 데 30년간의 노력이 필요했고 지금도 진화 중이다.

 

Q. 생성형 AI의 등장으로 미술·디자인계에서 변화의 바람이 불고 있다. 현업에 종사하는 관계자로서 이러한 변화를 일선에서 느끼고 있는지 궁금하다. 또한 이를 어떻게 활용하고, 대처하려고 노력하는지 궁금하다.

A. 디자인 업계에선 이벤트 관련 종사자들은 어느 분야 실무에 갖다 놓아도 살아남는다는 말이 있다. 이런 말이 나오는 이유는 이들이 얕지만 다양한 경험을 하면서 새로운 것에 대한 거부감이 적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당장 행사 분야만 본다면 현재까지는 생성형 AI의 영향을 별로 못 느끼고 있다. 하지만 매우 짧은 시간 안에 인공지능에게 의지하는 날이 반드시 올 거라고 확신한다. 현재 우리 회사에서는 디자인 분야보다는 기획 부분에서 활발하게 활용하고 있어 생성형 AI에게 기획서를 작성하도록 하는 등 활용도를 높이고 있다. 그리고 최근 생성형 AI을 이용한 그림으로 입찰을 시도해 보았다. 0.3점이라는 매우 근소한 차이로 2등을 했으니 생성형 AI가 이 격차를 줄이는 건 시간문제일 뿐이라 생각한다.

 

Q. ‘계획’을 자주 강조하신다. 앞으로의 목표와 계획이 있다면 무엇인가?

A. 미술감독으로서 크고 화려한 행사에는 더 이상 욕심이 없다. 다른 곳으로 눈을 돌려보고 싶다는 생각이 드는 요즘이다. 우선 오랜 시간 작업해 놓은 작업물이 꽤 많이 있고, 이 작업물을 모아 책을 펴낼 계획을 세우고 있다. 저작권 문제만 해결된다면 온라인 무료 공개도 생각 중이다. 또 하나의 목표는 기획 전시와 흥행 전시를 1년에 하나씩 개최해 활동 영역을 확장해 나가는 것이다. 이 목표는 5년 전부터 꾸준히, 천천히 실행 중이다. 남이 아닌 나를 위한, 나만의 것을 평생 갈구할 것 같다.

▲2018 평창 동계올림픽 당시 작업물
▲2018 평창 동계올림픽 당시 작업물

Q. 미술감독 관련 진로를 꿈꾸는 학우들에게 조언 부탁드린다.

A. ‘미술감독’. 미술인이라면 한번은 도전해 볼 만한 분야라고 생각한다. 현업에서의 경험을 토대로, 아이디어와 소통 능력은 연륜이 쌓일수록 더욱 빛을 발하는 직종으로 앞으로 장대하게 펼쳐질 인공지능 시대의 대체 불가의 영역이라고 자신 있게 말한다. 젊은 디자이너들을 만나서 미술감독의 길을 권하고 얘기해 보면 자신감이 결여돼있는 사람을 만날 때가 많다. 미술 감독은 창의적이고 상당히 독립적인 직업이며, 업계의 몇 안 되는 사람들이 평생을 치열하게 경쟁하는 직종이다. 발전을 멈춘다면 도태될 수도 있다. 그러나 열정과 꾸준한 노력을 기울이면 충분히 성공할 수 있는 분야이기도 하다. 학업과 경험을 통해 자신을 계속 발전시키고, 미술 감독이라는 꿈에 도전해 보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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