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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8회 홍대 학ㆍ예술상(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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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 부문

최우수상 이현수(예술1)

「산북집」

우수상 박다은(예술3)

「우리는 대답하지 않았다」 

우수상 이예은(국어국문2)

「바른 자세를 위한 제자리 운동」 

 

 

최우수

「산북집」

 

산과 산 사이 

골목과 골목 사이 

향토 짙었던 푸근함

 

가득했던 인심도

이제는 안타까움을 머금고 

입에 머금은 음식들은 

내가 곧 만들게 될 음식들

 

잡담이 조화로웠던 때가 있었는데 

어느 순간 알아차린 곡소리는 

언제부터 시리게 울렸는가

 

냉장고의 기계음

시계 초침 소리

치매 노인의 건망증과

낡은 구멍에서 나오는 비명

 

그들은 소리도 없이 나를 감싼다 

나를 감싼 그들은 소리를 잃어간다

 

악보를 잃어버렸을 때

극을 이을 수 없는 이유를 찾았다면

 

단지 그 자리에 머물러

귀 기울일 수밖에 없단 걸

 알아차리게 된 것일 뿐이야

 

최우수 당선소감

이현수(예술1)

이번 학예술상 시 부문에 당선된 것을 기쁘게 생각합니다. 방금까지 중간고사 범위인 아리스토텔레스의 <시학>을 공부하고 있던 중이었는데, 이렇게 수상 소식을 듣게 되니 왜인지 모를 기묘한 기분이 드는군요. 감사하게도 마침 카페에서 흘러나오는 음악도 듀크 조던의 <Everything Happens To Me>이네요. 

시인을 시인이도록 만드는 것. 아리스토텔레스는 그것을 이야기라고 말합니다. 그리고 저는 이야기에 굉장한 힘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어느 순간 우리가 알 수 없는 감정에 사로잡힐 때, 그것을 명확하게 파악하기란 쉽지 않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시를 통해 깊숙이 숨겨있던 마음들을 살펴볼 수 있고, 결국 시는 마음이 전하는 이야기가 될 수 있다고 굳게 믿고 있습니다. 이번 기회를 통해 마음속에 담아왔던 소중한 이야기를 여러분들께 들려드릴 수 있게 되어 무척 감사한 마음입니다.

감사드릴 분들이 많습니다. 탁월한 미학 수업으로 영혼을 전환시켜주시는 예술학과 하선규 교수님, 숨겨진 감각을 찾고 전체를 볼 수 있도록 지도해 주시는 동양화과 김명규 교수님, 지난 학기 흥미로운 고찰의 문을 열어주신 국문과 김종규 선생님, 큰 격려와 응원을 보내주신 국문과 전소영 교수님, 늘 영감을 주는 든든한 동료 현석이 형, 법 원리의 재인 선생님, 당선 소식에 크게 기뻐해 줘서 고마운 Y, 멋진 예술학과 학우들, 사랑하는 부모님, 그리고 지금은 산북집에 자리를 비우고 계신 외조부께 정중한 감사 인사를 드리고 싶습니다. 앞으로도 꾸준히 쓰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우수

「우리는 대답하지 않았다」 

 

그는 물이 흐르는 곳에 있었다

바위와 나뭇가지가 감추는 비스듬한 강변에

 

먼지 쌓인 녹색 다리 아래로 

거품 이는 혼탁한 물이 흐르고 

선원 없는 오래된 배가

둑에 매여 있는 저녁

 

그는 방문에 그림을 붙여두었다

 

똑같이 생긴 문 여섯 개가 늘어선 좁고 지저분한 복도 

날 보라고 붙인 건 아닐 테지

하지만 누가 또 그렇게 들여다봤을까

엉성하고 화려한

저녁의 강 옆에서 흥얼대던 그림을

 

철교의 더러운 내장을 올려다보며

거미줄처럼 늘어선 콘크리트 교각이 내리누르는 

비행체, 발광

어둠에 다리가 잠긴 가로등 흉흉한 눈이

거리를 걷는 이의 목덜미로 끈덕지게 따라붙었다

 

닭장처럼 빼곡하게 들어찬 방에서 잠을 자는 

부유하지도 가난하지도 않은 아이들 

목화솜을 따는 일보다

투박한 장화에 흙을 묻히는 일보다

재 묻은 손을 바람에 씻는 일보다 

소꿉장난이라는 거짓말에 더 익숙했던

 

그는 강변에 숨죽여 앉아 나를 돌아보았다 

놀라게 했다면 미안

우리는 서로의 이름을 몰랐다

 

여름이 흘러갔고

한 번 흐른 물은 거스르지 않았다

내 공상을 도려내서

그곳에 두고 왔을지도

하나 잃어버리면 품이 한참 가벼워질 줄 알았는데

 

강가에서 다시 만나자 

누가 말했지

우리는 대답하지 않았다

 

우수 당선소감

박다은(예술3)

해마다 갖은 공모전에 도전하고 탈락했습니다. 그대들은 얼마나 잘났기에 선택받았나 보자, 하는 심정으로 입선자의 수상 소감을 읽다 보면 질투할 겨를도 없이 신기한 마음이 들더군요. 하나같이 막힘없고 능숙해서요. 아무래도 공모전에 당선이 되기만 하면 감사할 사람들의 목록이나 멋들어진 창작관 같은 것들이 절로 줄줄이 떠오르나 보다, 생각했습니다. 이제 제 차례가 왔는데, 왜인지 제 뇌서랍 속 수상 소감 칸은 여전히 텅 비어 있네요. 아무튼 저는 계속 글을 씁니다. 그러다 보면 한 30년쯤 뒤에는 노벨 문학상이나 그 언저리의 어떤 상을 타게 될지도 모르니 다음 소감은 미리 준비해두려고요. “아무것도 아니었던 나를 처음으로 격려해준 건 홍익대학교 신문사였다.” 그렇게 말해야겠습니다. 잠깐이나마 눈길을 주신 모든 분께, 아주 사소해도 좋으니 갈팡질팡 헤매며 느릿느릿 나아가는 제 시가 무언가 선물해드렸길 바라며.

 

우수

「바른 자세를 위한 제자리 운동」 

 

투명한 비닐봉지에 멸치 주먹밥을 싸고 집에서 나온다

집 앞 공원에서 진달래 꽃잎을 만지다 손끝이 베인다

지문이 흐려지길 바라도 태아 때부터 새겨진 지문은 사라지지 않고 

손끝에서는 쓰고 지독한 흙냄새가 흐른다

 

빳빳한 나뭇잎을 뜯어 진물이 흐르기까지 돌로 빻는다 

운동기구 위에서 어린아이가 허리를 흔들며 진자 운동하고

 

낮은 복도식 아파트는 낡은 몸통을 비명으로 견디고 있다 

옥상에는 엉성한 소나무가 머리를 풀어 헤치고

아래를 향해 고꾸라져 있다

 

재밌는 이야기 좀 해주세요

 

아이는 그런 표정이다 그래서 나는 꿈에서 자주 나를 잊어

내 가족을 잊고 내 부인을 잊고 내 자식을 잊어 아무것도 없어져 

재밌을 것 같니?

 

아저씨도 좀 어울려요 그러는 법도 배워야죠 

아이는 대답하지 않는 표정이다

 

뿌연 안개 뒤 노을이 부모를 원망하는 아이처럼 끓어오른다 

빻은 나뭇잎을 쓰린 손끝에 올린다

바람이 불어 나뭇잎이던 물체가 떨어진다

 

저녁 먹을 시간이 되었는데도 아이는 여전히 그 자리에 있다

자기 몸집보다 커다란 운동기구와 발가벗은 은빛 시멘트 조각상과 함께 

어두워질수록 우스워진다

 

정수리 위로 떨어지는 봄의 우수

누구도 구원하지 못하도록 설계된 저녁의 공원에서 

가지에 남겨진 진달래는 고개를 들다 목이 떨어지고

 

내려앉은 붉은 구름은 발아래 나라의 저녁이 된다 

빙빙 돌아버린 행성 위에 빠르게 발을 굴릴수록 

제자리 걸음만 하다 야위어진다

 

지구라는 러닝 머신 위에 함께 탄 멸치 주먹밥과 아이와 진달래와 낡은 아파트와 시멘트 조각상 

그 속에 멀미하는 소나무와 떫은 봄비와 나뭇잎 사체

 

반대편 나라에 누군가 우산을 쓰기 시작한다

우산 모양의 그림자가 우리를 차분히 씹어 삼킨다

 

얼굴에 빗물이 떨어져 간지럽다

비가 그치면 집으로 돌아가기로 하고 

아이는 격하게 진자 운동을 진행한다

 

젖은 주먹밥을 입에 넣고 씹는다 

속이 쓰리다

 

우수 당선소감

이예은(국어국문2)

빈틈이 많은 시를 좋아합니다. 빈틈에 들어가 물을 채웁니다. 점점 물이 빈틈을 메우고 나면 그 위에 둥둥 떠다닙니다. 저만의 호흡이 생깁니다. 그러다 건너편 단단한 땅 위에 도착하기도 하고 물웅덩이에 잠식해 있기도 합니다. 사랑을 더 잘하기위해 시를 쓰기 시작했는데, 쓰면 쓸수록 사랑은 자기가 사랑인 줄 압니다. 사랑은 이미 사랑으로 존재하고 시는 그를 닮아 분주히 발칙해집니다. 

‘바른 자세를 위한 제자리 운동’은 통상적으로 정상적인 자세가 되기 위해 제자리에서 움직일 수밖에 없는 무기력한 아이러니를 담고자 썼습니다. 슬픈 순간이 지독하게 아름다운 시가 된다면 그 자체로 위로가 됩니다. 저의 슬픈 마음이 지독하게 아름다운 시가 되도록 기도합니다. 슬픈 것을 더 잘 느끼는 일은 축복이라 생각합니다. 그리고 축복은 축복이길 모를 때 더 슬프고 아름다울 수 있기에 시는 영원히 아름다울 수 있습니다. 

체리 맛 사탕을 먹으며 혀에 베인 상처, 그것으로 맛보는 피의 맛이 진정한 저의 것입니다. 달달한 삶을 입안에 가득 굴려보면 쓰린 상처가 가득해지고 그로부터 나오는 씁쓸한 맛이 저의 시가 되어 제 것으로 머뭅니다. 그런 순간이 짜릿해 시를 계속해서 쓸 것 같습니다. 순환하고 허무한 말 조심할수록 위험해지는 말 비명치는 경박한 리듬 더운 마음과 더러운 발바닥 조악한 청순 무식하고 무해한 영구적목소리 단계없는 코스요리 철저히 오해되는, 시를 닮은 모든 여린 것들이 완전히 망가지지 않기를 기도합니다.  

 

심사평

이승복 (국어교육과)

올해 학예술상 시부문에 응모한 시작품들은 정말이지 많은 가능성을 기대하게 하였습니다. 그러면서도 선명한 특징을 고르게 담고 있었습니다. 하나는 글을 이어가는 힘이 대단히 세다는 것입니다. 쉰 줄을 훌쩍 넘기는 작품들이 아주 많았습니다. 생각의 힘이 그만큼 큰 덕분입니다. 재능입니다. 반면에 다른 하나는 무척 어둡고 무거운 설정에서 말머리를 시작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짐작되는 이유가 있기는 합니다. 코로나로 사회적 소통이 적었던 탓이겠구나 싶습니다. 하지만 그런 핑계가 있다고 해서 이렇게까지 무겁게 견뎌내야만 하는 것은 아닙니다. 이제는 어둠에 대해 멀리서 바라볼 수 있는 힘이 꼭 길러져야 합니다.

시는 독백의 형식을 지닌 소통방식입니다. 제가 한 말을 제가 듣는다는 뜻이지요. 하지만 시에 사용된 글의 방식이 그렇다는 것이지 실제로 자기 세계에 함몰된 채로 혼자만의 세상을 그려내는 것이 곧 시라 말할 수는 없습니다. 갇혀 지낸 시절의 힘겨움이 있다면 이제는 그 시절을 밖에서 바라보는 데 힘쓸 일입니다. 더불어 시 쓰기에서도 조금은 더 일상적인 언사를 가지고 냉담한 시선으로 차분한 목소리를 내 볼 일입니다. 세 편의 우수작을 선정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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