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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느림의 미학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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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지금 혼란하고 어지러운 시대를 살아가고 있다. 과학과 기술의 발전은 전 인류를 빠른 속도로 초연결사회로 만들었고, 세계는 하나의 거대한 공동체가 되었다. 이렇게까지 기술이 고도로 발전하기 전에는 개개인은 자신이 속한 공동체 안에서 자신에 맞게 속도를 조절하면서 원하는 것을 성취하였다. 스스로 나아갈 속도와 방향을 정할 수 있었기 때문에 공동체 안에서는 낙오자나 이탈자가 상대적으로 적었다. 하지만 지금은 어떠한가? 속도와 크기로 무장한 신(新)공동체는 어느 정도의 속도로 우릴 어디로 데려가는지 전혀 알려주지 않은 채 우리를 태우고 항해를 이어간다. 이 거대 공동체는 빠른 속도를 따라가지 못하고 뒤처지는 이들에게 낙오자, 이탈자, 사회 부적응자로 낙인을 찍는다. 한번 낙인이 찍히면 개인은 그 낙인을 지우기까지 오랜 시간과 노력을 들여야 하고, 누군가는 영영 일어서지 못하기도 한다.

과학과 기술의 발전이 많은 이들에게 도움을 준 것은 사실이다. 고된 육체적 노동에서 벗어나 여가를 즐길 수 있게 해주었고, 지식과 정보로 빠르게 접할 수 있는 콘텐츠들을 만들어 주었다. 그것들의 전파는 빛의 속도와 같아서, 우리는 무엇이 옳은지 곱씹을 여유도 제공받지 못한 채 미디어가 보여주는 ‘속도’를 따라잡기에 급급하다. 물론 누구보다 빠르게 새로운 정보를 발견하는 것은 성공의 지름길이 되기도 하며, 얼마나 빠르게 자리를 선점하느냐에 따라 부동산 재벌이 될 수도 있다. 그러니 모두가 빠름을 자신만의 철학으로 삼고 살아갈 수밖에 없다. 하지만 정말 빠르게 살아가는 것만이 최고이며, 최선일까?

자동차를 탈 때를 생각해 보자. 50km/h로 갈 때와 100km/h로 갈 때를 비교해 보자. 분명 빠르게 목적지에 도착할 수 있는 것은 후자이다. 하지만 세상에는 수많은 변수가 존재하고, 모든 도로는 곧게 뻗어있지 않다. 빠르게 달린다면 그만큼 주변의 상황을 돌아보고 판단할 시간이 짧아지고, 아무리 제때 브레이크를 밟는다 해도 사고가 날 확률이 전자보다 높다. 그러니 구불구불하고 험한 길과 사람의 통행이 많은 길에는 낮은 속도로 규제하는 것이고, 때때로 상황에 따라 가볍게 브레이크를 밟아 속도를 조절하는 것이다. 사람 또한 그렇다. 무작정 빠르게 나아가기만 하다 보면 자신에게 소중한 것들을 잃기 십상이다. 성공을 위해 매일 야근을 하느라 정작 본인의 몸이 병들고 있는 것을 모른다든지, 가족들을 외면하고 성공 가도를 달리다가 돌아갈 곳이 사라진다든지 하는 이야기는 이미 우리에게 익숙하게 와닿아 있다.

가장 중대한 실수는 빨라야 한다는 조급함 때문에 일어난다. 그러니 실수를 줄이기 위해서는 자신에게 알맞은 속도를 찾아내어 올바른 방향으로 가고 있는지 자신을 돌아볼 수 있어야 한다. 과거를 통해 현재를 제어하고 현재를 통해 미래를 내다볼 힘을 기르는 성찰과 사색을 하는 데는 시간이 필요하다. 세상의 속도에 꼭 맞출 필요 없이, 너무 빠르게도 느리게도 갈 필요 없이, 느리게 가야 할 때와 빠르게 가야 할 때를 알고 스스로를 제어할 수 있는 능력이 있어야 한다. 인간은 생김새도 생각도 삶의 양식도 각각 다르기에, 필요한 삶의 목표나 가치와 속도 역시 서로 다르다. 인간은 자신에게 맞는 속도로 인생이란 항해를 조율할 수 있는 자율적인 존재라야 한다.

초연결사회는 빠름을 좋은 것이라고만 포장하고 인간에게 ‘빨리빨리’ 해낼 것을 강요한다. 하지만 인생이라는 긴 여정에서 지쳐 쓰러지지 않으려면 자신만의 인생 속도와 목표를 정해야 한다. 그렇다면 그 속도를 어떻게 조절해야 할까? 몇 가지를 제안해 보겠다. 바쁘더라도 가끔은 편안한 장소에서, 패스트푸드나 배달 음식이 아닌 스스로 만든 좋은 음식을 음미하는 데도 시간을 들여보라. 그 시간은 바쁘게 달려온 당신에게 휴식이 되고, 섭취한 음식은 좋은 영양분이 되어 신체를 강건하게 만들 것이다. 모든 것이 클릭과 검색으로 해결되는 인터넷 서핑을 잠시 내려놓고 종이로 된 책을 읽어보라. 옛 지혜가 남아있는 고전은 한 구절을 읽고 그 의미를 파악하는 데 긴 시간이 걸리기도 한다. 비록 남들이 정리해 놓은 인터넷 자료에 비해 습득하는 것이 느릴지언정, 나에게 삶의 지혜와 교훈을 안겨준다. 이렇게 내 삶의 양식으로 바뀌는 데에는 조급함을 견디는 인내가 필요하다. 이러한 의미에서 “인내는 모든 상처를 위한 반창고다(Geduld ist ein Pflaster für alle Wunden).” 라는 독일 속담을 한번 곱씹을 만하다. 무작정 빠르게 움직이기보다는 천천히 시간을 음미하며 살아가는 것이 오늘날 이 바쁜 현대사회를 견디어내는 하나의 답이 될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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