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잃어버린 세대, 잃어버린 소통

소년은 신화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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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세기 에반게리온(NEON GENESIS EVANGELION)>(1995~1996)부터 <엔드 오브 에반게리온(The End of Evangelion)>(1997)까지 이어지는 에반게리온 시리즈는 방영된 지 3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리며 매일 새롭게 재창조되고 있다. 난해한 줄거리와 복잡한 설정, 이에 따른 다양한 해석은 여전히 마니아들에게 끊임없는 이야깃거리를 제공하고 있다. 이러한 인기에 힘입어 감독 안노 히데아키(庵野秀明, 1960~)는 최근 신 에반게리온 극장판의 마지막 편을 공개하며 에반게리온 관련 작품 활동을 이어 나가기도 했다. 하지만 이번 기사에서는 이미 존재하는 수많은 해석과 담론에 주목하기보다는, 작품을 둘러싼 사회적 배경에 집중해 보고자 한다. 

 

[일본의 로스제네]

▲TV 시리즈 '신세기 에반게리온'(1995~1996) 포스터
▲TV 시리즈 '신세기 에반게리온'(1995~1996) 포스터

한때 세계 2위의 경제 대국으로 성장했던 일본은, 1980년대 경제 호황기의 거품이 가라앉으며 유례없는 경제적 위기에 봉착했다. ‘헤이세이 불경기’ 혹은 ‘잃어버린 10년’이라고 불리는 시기가 시작된 것이었으며, 호화로웠던 ‘버블경제’의 비극적 종말이었다. 이러한 일본의 경제적 몰락은 일본 사회와 문화 전반에 영향을 미쳤다. 무너진 경제는 실업 등 온갖 사회 문제로 이어졌고, 가족의 생계를 책임지던 전통적인 일본 가장의 권위는 실추됐다. 실제로 1995년 일본의 천 명당 이혼 건수는 약 2.08건을 기록했으나, 2002년에는 3.08건까지 상승하며 상당한 증가세를 보였다. 또한, 자녀 유기, 양육 방임 등 이른바 ‘세기말적 가족 현상’이 일어났다. 불안정한 가족은 곧 자식 세대의 성격장애를 야기했다. 따라서 이 시기 청년들은 가족들에게 감정적 유대감을 얻지 못함과 동시에 유례없는 취업난을 겪으며 ‘로스제네(lost generation)’라는 오명까지 쓰게 된다. 로스제네 중 일부는 오랜 기간 집에 틀어박혀 외출하지 않고 사회와의 접촉을 피하는, 우리나라에서는 ‘은둔형 외톨이’라고 부르는 ‘히키코모리(引ひき籠もり)’가 되기도 했다. 현재도 일본에서 히키코모리 문제는 심각하게 다뤄지는 사안이며 2023년 일본 정부는 히키코모리가 약 146만 명으로 추산된다고 발표했다.

이러한 배경을 뒤로 하고 탄생한 작품이 바로 <신세기 에반게리온>이다. 여느 *메카물과 다를 바 없이 거대한 괴수와 로봇이 싸우는 이야기로 시작하는 <신세기 에반게리온>이지만, 작품이 종반부로 향할수록 시청자들은 이 작품이 평범한 메카물이 아니라는 것을 깨닫게 된다. 소년의 성장, 내면의 성숙, 행복한 결말로 이어지는 일반적인 소년만화 이야기가 아닌, 주인공과 주변 인물의 내적 갈등과 정신 붕괴, 전투의 비극성과 참혹한 파괴 등 파격적인 전개를 보여줬기 때문이다. 희망이라곤 찾아볼 수 없는 이 애니메이션에 그 당시 청년들은 열광할 수밖에 없었다. 

▲영화 '엔드 오브 에반게리온'(1997) 포스터
▲영화 '엔드 오브 에반게리온'(1997) 포스터

 

[공감이라는 힘] 

에반게리온 시리즈가 반향을 일으킬 수 있었던 가장 큰 요인은 시청자가 작중인물에 자신을 투영할 수 있게 의도적으로 줄거리와 인물을 설정했기 때문이다. 주인공과 동료들은 모두 당시의 로스제네를 떠올리게 하는 10대 소년과 소녀이며, 모두 성격적 또는 환경적 결함을 가진 자들로 묘사된다. 주인공 ‘아카리 신지’의 경우 어렸을 적 어머니를 잃었고 아버지와는 갈등 관계에 놓인 인물로 설정됐다. 그의 아버지 ‘겐도’는 감정을 드러내지 않으며 자식에 대한 관심과 책임감이 부족해, 신지는 부모와의 소통을 경험해 보지 못한다. 또한 심한 자기 부정에 휩싸이기도 하고, 잦은 갈등과 불안을 겪어 심리적 복잡성을 가진 사람이란 걸 보여준다. 성장기 자아 형성 과정에서 겪는 고뇌와 외부 세계와의 갈등이 신지의 머릿속에서 끊임없이 일어나는 것이다. 이는 전통적 가족관의 해체를 경험하고 잃어버린 10년이라는 외부 세계와 갈등하는 로스제네들의 상징과도 같이 여겨지기도 한다. ‘아스카’의 경우, 매우 강한 의지와 자신감을 보여주면서도 내면적으론 큰 상처를 가진 인물로 등장한다. 겉은 강인하지만, 속은 상처로 가득한 사람이다. 또한, 인정 욕구가 강해 항상 주변 인물들로부터 사랑과 인정을 갈망한다. 또 다른 주인공 '레이' 또한 정체성의 혼란, 타인과의 소통에 어려움을 겪는 등 당시 시청자들이 충분히 공감할 만한 요소를 설정 곳곳에서 찾아볼 수 있다. 이처럼 세 캐릭터 모두 불안정한 정신상태를 가지고 있다는 점이 잔인하게도 당대 일본 청년들의 상황과 맞아떨어져 더욱 인기를 얻을 수 있었다. 추가로, 10대 캐릭터들이 기성세대가 이끄는 조직 ‘네르프(NERV)’의 명령을 받아 에반게리온의 파일럿이 되어 괴수와 싸우는 모습은 희생을 강요받는 어린 세대를 대변했다고 볼 수 있겠다.

▲영화 '신 에반게리온 극장판'(2021) 포스터
▲영화 '신 에반게리온 극장판'(2021) 포스터

하지만 우리가 현재 에반게리온 시리즈에 집중해야 하는 이유는 따로 있다. 이 애니메이션의 질긴 생명력 때문이다. 지난 2021년 안노 감독은 <신 에반게리온 극장판:||(Evangelion: 3.0+1.0)>(2021)을 공개하며 오랜 시간 함께해 온 시리즈에 영원한 마침표를 찍었다. 작품의 흥행 역시 역대 일본 TVA 극장판 성적 3위를 기록해 30년 가까이 된 시리즈라는 생각이 들지 않을 정도로 높은 성적을 기록했다. 이러한 성적을 기록할 수 있었던 이유로 작품 자체가 가진 명성을 무시할 수 없지만, 에반게리온 시리즈가 다뤘던 당대의 문제와 사회적 이슈가 현재에도 여전히 유효하다는 점을 놓쳐서는 안 된다. 

 

최근 대한민국 사회에서도 ‘은둔형 외톨이’가 사회적 문제로 대두되고 있다. 수년 전부터 방송사에서는 관련 다큐를 제작하고 있고, 정부는 올해 처음으로 은둔형 외톨이 실태조사 결과를 공개했다. ‘2022년 청년 삶 실태조사’에 따르면 현재 세상과 거리 둔 은둔형 외톨이 청년은 약 24만 4,000명 규모로 추정된다. 이는 전체 청년 인구의 약 2.4%에 해당하는 수치로 일본의 2.05%보다 높은 상황이다. 당대의 일본과 지금의 일본, 더 나아가 현재 대한민국까지. <에반게리온> 시리즈가 꼬집었던 1990년대의 문제들은 2020년대인 지금까지도 이어지고 있다. 

 

 *메카물: 슈퍼히어로 장르의 하위 장르로서 거대로봇이 등장하는 작품의 총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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