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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 그리고 우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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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가 내리는 날 혹은 장마철이면 음원 차트에 유독 자주 등장하는 곡들이 있다. 에픽하이(Epik High)와 윤하의 <우산>, 헤이즈(Heize)의 <비도 오고 그래서> 등이 대표적인 예시이다. 그리고 단연 ‘비’하면 생각나는 노래로는 영화 <라디오스타>(2006) 속 럼블 피쉬(Rumble Fish)의 <비와 당신>도 있을 것이다. 전설적인 밴드 부활의 <비와 당신의 이야기>도 비와 관련된 명곡으로 꼽힌다. 장마철 폭우로 경기가 취소된 야구장에서는 “비가 내리고~ 음악이 흐르면~”이라는 김현식의 <비처럼 음악처럼>이 흘러나오기도 한다. 이번 오색찬란에서는 수많은 명곡을 탄생시킨 ‘비’에 대해 파헤쳐 보려 한다. 

 

[비는 왜 내릴까?] 

▲비 내리는 서울/출처: YTN
▲비 내리는 서울/출처: YTN

비란 하늘에서 수증기가 응결되어 액체 상태의 물방울로 떨어지는 것을 말한다. 다시 말해 비는 대기 중의 수증기가 지름 0.2mm 이상의 물방울이 되어 지상으로 떨어지는 현상이다. 일반적으로 빗방울의 지름은 구름방울의 100배 이상이고, 1개의 빗방울은 10만 개의 구름방울로 이루어진다. 약 10만 개의 구름방울이 뭉쳐야 1개의 빗방울이 될 수 있다. 이렇게 많은 구름방울이 모이는 원인에 대해서는 빙정설과 병합설로 설명되곤 한다. 우리나라 같은 온대 지방에서 내리는 비는 주로 빙정설로 설명된다. 빙정설은 섭씨 0도 이하의 구름 속에서 물방울과 얼음 알갱이가 함께 있을 때, 얼음 알갱이가 물방울을 빨아들이면서 비나 눈이 되어 내린다는 이론이다. 반면, 병합설은 열대 지방에서 비가 내리는 원리를 설명한다. 구름 속에서 여러 크기의 물방울들이 만들어지고 큰 물방울이 작은 물방울보다 빨리 떨어지면서 둘이 합쳐져 비가 되는 것이다. 

뉴스 막바지 날씨 예보를 보면, 기상캐스터는 단순히 “비가 내린다.”고 말하지 않는다. 장마 ․호우․뇌우 등 비의 종류로 설명하곤 한다. 이러한 비의 종류는 △형태 △계절 △지역에 따라 나눌 수 있다. 우선, 장마는 우리나라에서 여름철 오랜 기간 지속적으로 많은 비가 내리는 강수 현상을 말한다. 장마철인 6월 말부터 7월 말까지 약 한 달간, 연 강수량의 30%를 차지하는 350~400mm의 많은 비가 내린다. 호우란 일반적으로 큰비를 의미하고, 특히 짧은 시간 동안 많은 양의 비가 내리는 경우를 말한다. 즉, 평균 강수량보다 많은 양의 비가 내릴 때 이를 호우라고 설명한다. 소나기란 갑작스럽게 1~2시간 동안 내리는 굵은 비를 말한다. 마지막으로 뇌우란 천둥과 번개, 돌풍 등을 동반한 비로, 강한 바람을 동반하고 뇌우가 내리는 몇 분 동안 기온이 10도 이상 낮아지기도 한다.

이외에도 비의 종류는 △대류성 강우 △전선성 강우 △지형성 강우로도 설명할 수 있다. 대류성 강우란 단시간에 내리는 열대 지방의 스콜(Squall)과 우리나라의 소나기 등을 말하고, 전선성 강우에는 오호츠크해의 한대 기단과 북태평양의 열대 기단이 만나 발생하는 우리나라의 장마가 해당한다. 지형성 강우는 습기를 머금은 기류가 산맥의 경사면을 따라 상승할 때 단열팽창 해 냉각되며 내리는 지역 집중호우를 말한다. 

▲전선성 강우인 장마가 내리는 원리
▲전선성 강우인 장마가 내리는 원리

 

[비가 내리면 우리는] 

“산성비 맞으면 머리카락 빠진다~”, “무릎이 쑤시는 걸 보니까 비가 오려나 보다.”, “비 오는 날에는 파전에 막걸리지~”라는 말들은 비가 오는 날 다들 한 번쯤 들어봤을 거다. 무심코 지나쳤던 이 말들을 과학적인 근거와 함께 살펴보자.

먼저, 산성비를 맞으면 정말 머리카락이 빠질까? 반은 맞고 반은 틀리다. 산성비란 수소이온 농도(이하 pH)가 5.6 이하인 비이다. 국립환경과학원에 따르면, 일반적인 비는 pH 5.6에서 6.4인 약산성이고, 대도시 지역에서 내리는 비는 pH 4.4에서 4.8 정도이다. 즉, 도시에 내리는 비는 거의 모두 산성비라고 볼 수 있다. 『KBS뉴스』에 따르면, 우리가 일반적으로 사용하는 샴푸의 pH 농도는 3점대로 산성비보다 높은 산성도를 보인다. pH 1의 차이가 산도로는 10배 차이가 난다는 것을 고려해 보면, 샴푸는 빗물보다 산도가 무려 10배나 높다. 산성비가 탈모를 유발한다면, 산도가 10배나 높은 샴푸로 매일 머리를 감는 우리는 모두 대머리가 될 것이다. 다시 말해 산성비와 탈모는 큰 연관이 있다고 볼 수 없다. 하지만 ‘초반’에 내리는 비는 조심할 필요가 있다. 이에 대해 『머니투데이』와 인터뷰한 서울대병원 피부과 권오상 교수는 공기 질이 나쁠 때 내리는 비의 첫 5분을 맞는다면 “모낭에 미세먼지가 들어가 염증 반응을 일으켜 탈모를 유발할 수 있다.”라고 설명했다.

어느 날, 유독 무릎이 쑤신다면 비가 오는 신호라고 볼 수 있을까? 정답은 ‘그렇다’이다. 비가 오는 날 무릎이 쑤실 수 있다. 그 원인으로는 △압력 차 △온도 변화 △심리적인 이유를 들 수 있다. 그 중 압력 차에 대해 설명하자면 이러하다. 비가 오는 날은 맑은 날에 비해 기압이 낮다. 이렇게 대기압이 낮아지면 신체를 압박하는 공기의 압력도 낮아져 관절 안쪽 공간의 압력이 상대적으로 높아지게 된다. 이때 관절 조직이 팽창하며 통증이 발생할 수 있다. 실제로 2015년 영국 무스그레이브파크병원(Musgrave Park Hospital) 연구팀이 류마티즘성(Rheumatism) 관절염 환자 133명을 분석한 결과, 비가 내려 습도가 높을 때 통증과 염증 반응이 더 크게 나타나는 것을 발견했다.

한편, 비가 오는 날 유독 파전이 생각나지 않던가? 실제로 GS마트의 매출을 비교해 본 결과, 비 오는 날 부침가루와 막걸리의 매출은 각각 36.5%, 17.9% 증가했다고 한다. 이는 소리에 의한 연상 작용으로 볼 수 있다. 빗소리를 듣고 파전을 부칠 때 나는 기름 소리가 연상되어 파블로프식 조건형성이 이루어지는 것이다. 그리고 심리적인 요인도 있다. 비가 오는 날은 평소보다 일조량이 줄어들어 우울감을 느끼기 쉽다. 이때 파전의 재료인 파와 밀가루, 해산물 등은 우울감을 일시적으로 해소하는 데에 도움을 준다. 밀가루 내 단백질 성분인 아미노산과 비타민B가 체내 탄수화물 대사를 높여 일시적으로 기분이 좋아지게 만들고, 오징어와 같은 해산물은 피로회복과 기분 완화 효과가 있는 비타민B1이 풍부하다. 파에 들어있는 황 아릴이란 물질은 비타민B1의 흡수를 돕는 역할을 한다. 따라서 비가 오는 날 먹는 파전은 기분 전환에 도움이 될 수 있다. 

▲영화 '비 오는 날의 부침개'(1998) 속 장면/출처: 다음 영화
▲영화 '비 오는 날의 부침개'(1998) 속 장면/출처: 다음 영화

 

[문학 작품 속 비(///)] 

앞서 언급했듯 ‘비’는 수많은 명곡을 탄생시킨 소재 중 하나인데, 이는 문학 작품에도 해당된다. 국어 교과서에도 실린 황순원의 《소나기》는 제목만 봐도 비와 연관된 작품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단편소설 《소나기》는 시골 마을을 배경으로 시골 토박이 소년과 서울에서 내려온 소녀의 사랑 이야기를 담고 있다. 소극적인 성격의 소년은 소녀가 개울가 징검다리에 서 있자 비켜달라고 말도 못 하고 그저 기다린다. 그 모습을 본 소녀는 “이 바보.”라며 조약돌을 던지고, 이를 계기로 둘은 천천히 가까워지게 된다. 어느 날, 둘은 산으로 놀러 가는데 갑자기 소나기가 내려 둘은 좁은 원두막으로 가 비를 피한다. 소년은 추워하는 소녀를 보고 자기 옷을 벗어주며 둘은 더 가까워진다. 그날 이후 소년은 소녀를 통 볼 수 없었다. 그러다 우연히 오랜만에 마주친 소녀는 핼쑥한 얼굴이었고, 얼마 후 소년은 소녀가 죽었다는 소식을 듣는다. 이 작품에서 소나기는 작품의 핵심 소재이자 소년과 소녀 둘 관계의 전환점 역할을 하고 있다.

그리고 손창섭의 《비 오는 날》이 있다. 《비 오는 날》은 6.25 전쟁 직후 비 내리는 부산을 배경으로 ‘동욱’ 남매의 불행을 다루고 있다. 어느 날 ‘원구’는 거리에서 친하게 지냈던 친구 동욱을 우연히 만난다. 그 후 장마가 계속되던 어느 날 원구는 동욱이 걱정되어 찾아간다. 하지만 동욱은 집에 없고 동욱의 아픈 동생 ‘동옥’만이 그를 차갑게 맞는다. 그날 이후 원구는 비가 오는 날이면 동욱 남매네 집에 찾아가고, 동옥은 점차 원구에게 부드럽게 대하기 시작한다. 동욱은 원구에게 자신의 여동생 동옥과 결혼하기를 권유하기도 한다. 그렇게 지내던 어느 날, 동욱은 군대에 끌려간 듯 통 소식이 없고 동옥 또한 원구에게 편지 한 편을 남긴 채 사라진다. 원구는 그 편지마저 실수로 잃어버리게 되고, 비가 오는 날이면 동욱 남매를 생각하며 우울해하곤 한다. 《비 오는 날》 속 비는 작중의 음산하고 우울한 분위기를 형성한다. 원구에게 비가 오는 날은 동욱 남매네 집에 놀러 가는 설레는 날이기도 했고, 더 이상 그들을 보지 못해 우울함에 빠지는 날이기도 했다. 

▲황순원의 《소나기》/출처: 예스24
▲황순원의 《소나기》/출처: 예스24

 

‘여우비’는 맑은 날 잠깐 오다 그치는 비를 말한다. 흔히 ‘여우 시집가는 날’이나 ‘호랑이 장가가는 날’로도 불린다. 여우를 몰래 짝사랑해 온 구름이 여우와 호랑이가 결혼하는 모습을 보고 눈물을 흘려 하늘에서 마구 내린 비가 바로 여우비이다. 한참을 울던 구름은 여우의 행복을 빌어주기로 결심하고, 눈물을 그치며 날은 다시 화창해진다. 이렇게 여우비에는 애틋한 짝사랑을 포기하고, 자신이 사랑했던 상대의 행복을 바라던 구름의 안타까운 사연이 담겨 있다. 이외에도 비는 다른 여러 설화의 소재로도, 작품의 소재로도 쓰이며 우리 삶 곳곳에 스며들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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