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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물관을 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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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경환, '土生金 9606', 1996, 점토 및 철판, 14x34x34cm
▲원경환, '土生金 9606', 1996, 점토 및 철판, 14x34x34cm

원경환(元慶煥, 1954~)은 1980년 홍익대학교 도예과를 졸업하고, 동 대학원과 교토 시립예술대학원을 수료하였다. 그는 1982년부터 서울, 일본, 미국에서 다수의 개인전과 단체전에 참여했고, 《한국현대도예 유럽 순회전》(1991), 《아시아 공예전》(1993), 《한·미·일 도예교류전》(2002) 등의 국제전에 출품하였다. 국립현대미술관, 홍익대학교 박물관, 일본 시가(滋賀) 현립도예공원 도예관, 미국 노라 에클스 헤리슨 미술관, 영국 빅토리아 앨버트 박물관 등에 작품이 소장되어 있으며, 1988년부터 32년간 홍익대학교 미술대학 도예과 교수로 재직했다.

원경환은 흙의 물성에 주목하여 작업 전반에 걸쳐 흙의 본질을 탐구한 작가로 알려져 있다. 작가는 기하학적인 형태, 표면에 대한 관심, 오브제(object)의 발견 등에 관심을 두고 있다. 이러한 그의 관심은 전통 도예의 용기(用器)성을 부정하고 순수 조형성을 추구한 ‘도조(陶彫)’ 혹은 ‘오브제 도예’와 맥락을 같이 한다. 원경환의 작업은 ‘소성(燒成)’의 생략으로 인한 작품의 규모와 형태면에서 ‘설치작업(installaion)’과 ‘오브제 작업’으로 나눌 수 있다. 도예에서 기본 과정인 성형-건조-소성에서 소성 과정은 작품의 내구성을 키워 완성에 이르게 하지만, 가마의 용적률(容積率)로 인해 작품의 크기와 표현이 제한되기도 한다.

원경환의 ‘설치작업’은 이런 소성 과정을 과감히 생략해 주어진 공간을 자유롭게 흙으로 표현하여 작품의 규모를 확대하고, 흙의 에너지를 증폭시킨다. 도예의 개념을 확장시켰던 ‘설치 작업’과 달리, ‘오브제 작업’은 흙의 물성을 강조하는 것에 초점을 두었다. 성형-건조-소성이라는 도자의 제작과정의 이전, 흙 즉 점토(clay)의 질감 자체에 관심이 많았던 원경환은 물성을 그대로 표현하기 위해 여러 실험적인 도전을 거쳤다. 그 예로는 금속과 나무를 결합하는 작업이나 유약 처리를 하지 않고 소성하여 물질 표면의 특성을 부각시키는 작업 등을 들 수 있다.

이러한 오브제 작업 중 《土生金》 연작을 주목해야 할 이유는 도예의 근간이라 생각했던 개념들을 탈피하여 흙의 본질을 표현했기 때문이다. 식기(食器)의 용도로 시작된 도자는 청결에 대한 개념이 배경의 근간을 이루었고, 건축물의 골재 정도로 인식한 철(鐵)과의 결합은 전통 도예의 개념과 다른 조합이었다. 기존의 전통적인 틀에 얽매이지 않고, 1993년 원경환은 《土生金》 연작의 시초인 <무제>(1993)에서 금속을 작품에 등장시켰다. <무제>는 흑색의 각진 도자 사이 칼과 같이 생긴 철 조각이 관통한다. 이처럼 도자와 금속의 결합이 이루어지게 된 배경에는 미국과 일본 전위도예가들의 흙 실험과 1970년대 등장한 환경운동과 대지미술이 있다. 1980년대 일본에서 유학을 했던 원경환은 이러한 시대상의 영향을 받아 흙의 물성을 조명하기 위해 기존 도예의 틀을 깨고 한계에 도전하였다.

<土生金 9606>(1996)에서는 사각의 기본 조형물로 형태를 단순화하고 도자와 금속을 병치시켜 긴장감을 조성해 흙의 물성에 집중시켰다. 매끄럽고 차가운 성질을 가진 금속은 대비되는 흙의 질감을 부각시키고, 따뜻한 성질을 가진 흙 고유의 물성을 더욱 강조시킨다. 이처럼 흙의 물성을 표현하는데 초점을 두었던 원경환은 흑도소성(黑陶塑性) 기법을 활용하였다. 이 기법은 원경환의 대표 기법이자 한국의 전통적인 소성 기술로, 연료인 장작에서 생기는 매연을 태토(胎土)에 흡착시켜 검은빛을 띠게 한다. 흑도소성 기법은 유약으로 흙을 덮어 그 위에 색으로 치장하는 것이 아니라 흙의 표정을 불의 흔적과 함께 그대로 전달한다. 이 기법은 소성 방법의 발달로 맥이 끊겼던 전통 기법이나 오히려 원경환은 이를 적극적으로 활용함으로써 흙의 물성을 부각하고자 하였다. 이처럼 원경환은 흙에 천착한 전통 도예가의 면모와 동시에 물성을 탐구하는 전위적인 현대 도예가의 면모를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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