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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지 좋아하는 마음 하나로 움직인 사람들

너, 내 팬이 돼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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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나 한 번쯤은 어떠한 대상에 꽂혀 마음을 쏟게 된다. 그 대상이 아이돌이건, 배우이건, 영화이건, 책이건, 혹은 주말이면 지갑을 탈탈 털어서라도 가야만 하는 고급 레스토랑이든. 무언가를 사랑하고 아끼는 사람의 눈은 항상 빛난다. 이번에 소개할 세 영화는 모두 ‘팬’의 이야기를 담은 다큐멘터리다. 좋아했던 마음을 후회하는 이도, 좋아하는 마음으로 무모하게 도전하던 이도, 이 모두가 무언가를 사랑하고, 사랑했고 또 앞으로도 사랑하면서 살아갈 사람들이다. 좋아하는 마음은 누구나 갖고 있는 마음이지만 그 형태와 빛깔은 제각기 다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시 팬이 되려 한다]

 

“어느 날 오빠가 범죄자가 되었다. 나는 성공한 덕후였다는 이유로 실패한 덕후가 되었다. 다시는 누군가의 팬이 되지 않을 것이다.”

 

영화 <성덕>(2022)의 감독인 ‘세연’에게는 10대 시절을 다 바쳐 사랑하던 ‘오빠’가 있다.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있었다.’ 오랜 시간 세연의 우상이었던 그는 지난 2019년, 사회면에 오르내린 가수 ‘정준영’이다. 단지 좋아하던 마음으로 인해 큰 상처를 입은 세연은 자신과 비슷한 처지의, 좋아하던 스타가 범죄자가 되면서 고통받은 팬들을 찾아 나선다. 영화 <성덕>은 세연과 그 친구들의 이야기가 담긴 다큐멘터리 영화다. 세연의 건너편에 앉아 그에게 자신의 과거를 설명하는 이는 세연의 친구이기도, 어머니이기도, 한 정치인의 팬이기도, 그리고 그들이 좋아하던 스타의 기사를 보도한 기자이기도 하다. 연령대도, 성격도 제각기 다른 이들은 대부분 누군가를 사랑했고, 또 사랑한다는 공통점을 갖고 있다.

일반적으로 ‘성공한 덕후’라 함은 자신이 좋아하는 스타와 함께 사진을 찍을 때, 혹은 그가 자신을 기억하고 아는 체할 때 얻을 수 있는 칭호다. 성공한 덕후였던 세연은 과거 자랑스럽게 여겼던 자신의 칭호를 아무도 모르게 숨길 수밖에 없는 처지가 됐다. 영화는 오로지 좋아한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더 큰 상처를 받은 이들을 비춘다. 그러고는 말한다. 어떤 결과는 그 과정과 전혀 상관이 없을 수도 있다고. 그러나 누군가를 좋아하는 것이 더 이상 부끄럽지 않은 세상이 됐으면 좋겠다고. 사람으로부터 받은 상처는 또 다른 사람으로 지워야 한다. 다시는 누군가의 팬이 되지 않겠다고 다짐한 세연은 새로운 ‘덕질’을 시작하고, 앨범 한 장에 치킨 한 마리 값이라고 비판하던 친구는 치킨 열 마리를 먹을 수 있는 돈으로 좋아하는 배우가 나오는 뮤지컬을 보러 간다. 세연은 성공한 덕후라는 단어를 ‘자신이 좋아하는 이를 아무 걱정 없이 오래오래 좋아할 수 있는 덕후’라고 다시 정의한다. 과거 상처받은 적이 있더라도 온 마음 다해 사랑했던 마음이 부끄러워지지 않도록, 다시 누군가를 또 사랑할 수 있도록. 그 모든 마음을 응원한다. 

 

[좋아하세요? 좋아하세요.]

 

가영: 조인성이 내 영화 나오면 재밌을 것 같지 않아?

친구: 너 근데 시나리오는 있어?

가영: 아니, 써야지.

 

영화감독 ‘가영’은 새 작품을 구상 중이지만 아직 이렇다 할 시나리오는 나오지 않은 상태다. 다만 배우 ‘조인성’을 캐스팅하고 싶을 뿐이다. 진짜 배우 조인성이 있어야 완성되는 영화이기에 그가 아닌 다른 배우가 발탁될 경우 영화를 엎어야 하는 상황이다. 가영은 자신의 탁자 앞에 앉아 친한 친구부터 동료, 아는 오빠까지 닥치는 대로 사람들에게 연락을 돌린다. 제대로 된 시나리오조차 없지만 일단 조인성을 캐스팅해야 한다는 말에 되돌아오는 반응들은 당혹감으로 물든 질문이나 헛웃음뿐이다.

 

아는 오빠: 그냥 너 조인성 보고 싶은 거 아니야? 가영: 왜? 나 조인성 보고 싶으면 안 돼?

 

단편영화 <조인성을 좋아하세요>(2017)는 가영과 실제 조인성의 전화 통화로 끝이 난다. 조인성의 연락처를 여기저기 수소문하던 와중 그로부터 먼저 전화가 걸려 온다. 조인성은 가영의 영화를 인상 깊게 봤다며, 함께 작품을 만들고 싶다고 말한다. 사심인 듯 아닌 듯, 드라마인 듯 다큐멘터리인 듯. 조인성과 영화를 찍고 싶어 하던 가영은 그 무모함과 뚝심 하나로 진짜 조인성을 만나는 데 성공한다. 꿈을 가진 팬에게 못 할 일도, 불가능할 것도 없다. “조인성을 좋아하세요? 조인성을 좋아하세요.” 제목이 물음표에서 마침표로 바뀌는 순간, 그 끝에는 한 명의 ‘팬’만이 남아있을 뿐이다. 

 

[‘듣보’인 내 스타를 돋보이게끔 만들고 싶다]

‘아현’과 그의 대학 선배 ‘하정’은 어느 날 우연히 작은 음악회에서 한 가수를 보게 된다. 영화학도인 두 사람은 종종 지하 공연장에서 공연하던 가수의 팬이 되고, 함께 작업해 보고 싶다고 생각한다. 다른 이라면 짤막한 제안서와 함께 메일로 협업을 제안했었겠지만, 아현과 하정은 조금 다른 방법으로 그에게 다가간다. 그 가수가 이전에 발매했던 <무명성 지구인>이라는 곡의 뮤직비디오를 직접 제작한 뒤 영상이 담긴 USB와 편지를 직접 전달한다. 편지의 수신인은 지난 2020년, <싱어게인>(JTBC)을 통해 일약 스타덤에 오른 가수 ‘이승윤’이다.

 

‘내내 울다가 이렇게 메일 드립니다. 어떤 삶을 사셨는지, 어떤 꿈을 포기하셨는지는 제가 알 수 없지만 하정 님 길에 제가, 제 노래가 도움 된다면 무조건 함께하고 싶습니다. 권하정 감독님의 팬 이승윤 올림.’

 

영화 <듣보인간의 생존 신고>(2023)는 하정을 필두로 모인 이들이 이승윤의 뮤직비디오를 제작하는 과정을 담은 다큐멘터리 영화다. USB에 담긴 영상을 본 이승윤은 하정에게 답신을 보낸다. 이미 죽어버린 노래라고 생각했기에 하정과 아현의 마음은 그에게 더욱 크게 다가왔고, 올해가 마지막이라 생각하고 준비 중인 앨범의 뮤직비디오 작업을 함께하자고 답한다. 그렇게 그들은 <영웅 수집가>라는 곡의 뮤직비디오를 찍는다. 난생처음 해보는 작업에 난항을 겪던 하정과 아현은 변수로 가득한 도전을 꿋꿋이 완수해 나간다. 마침내 뮤직비디오를 완성한 하정은 “시작은 이승윤 때문이었지만, 하면 할수록 이승윤은 안중에도 없고 점점 하고 싶은 걸 하게 됐다.”라고 말한다. 

 

짤막한 다큐멘터리가 끝나고 크레딧이 올라갈 때, 우리는 ‘듣도 보도 못한 무명’이라는 뜻의 ‘듣보’인간이라는 호칭이 이승윤이 아닌 하정과 그의 동료들에게 붙었음을 알게 된다. ‘듣보인간1’ 하정은 “왜 이렇게까지 하느냐?”라는 누군가의 물음에 “이승윤이 내 인생을 바꿨다거나 하는 거창한 이유가 아닌, 그저 타이밍이 맞아 시작하게 됐다.”라고 답한다. 하정과 친구들이 그저 좋아하는 마음 하나로 이 모든 일을 시작했듯이 끌리는 일이 생기면 마음 가는 대로 해보기를 바란다. ‘진심은 통한다.’라는 오래된 신념에 힘을 불어넣을 수 있도록, 언젠가 수많은 ‘듣보인간’들이 돋보이는 날이 오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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