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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눈이 온다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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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눈, 그 두 글자만으로 얼마나 많은 이들의 가슴을 설레게 만드는가? 여러 언론사는 앞다투어 첫눈 소식을 전하고, 사람들은 첫눈이 내리기를 기다린다. 지난 17일(금), 첫눈이 내렸다. 기자실에 들어오며 첫눈이 내렸다고 얘기하는 동료 기자들을 보며 아깝게 타이밍을 놓쳤다고 생각한 기자는 망연자실해 있었다. 한 시간쯤 흘렀을까, 편의점을 가기 위해 밖으로 나간 기자는 ‘이미 다 그쳤겠지?’라고 생각하며 무심코 하늘을 올려다봤다. 아주 적지만, 바람에 흩날리고 있는 눈송이들에 저도 모르게 웃음이 났다. 그렇게 기자는 올해의 첫눈을 맞았다.

 

“슬퍼하지 마세요

하얀 첫눈이 온다구요

그때 옛말은 아득하게

지워지고 없겠지요

(중략)

아스라이 사라진 기억들

너무도 그리워 너무도 그리워

옛날 옛날 포근한 추억이

고드름 녹이듯 눈시울 적시네”

 

이정석의 <첫눈이 온다구요>의 한 소절이다. 눈이 오면 흥얼거리게 되는 이 노래의 경쾌한 멜로디는 감성적인 가사와 대비돼, 오히려 기자의 마음을 울적하게 만든다. 노래의 가사처럼 한 해를 보내며 떠오르는 추억들이 많다. 따뜻한 추억들도 있지만, 괜히 싱숭생숭해지는 마음에 후회스러운 일들, 힘들었던 기억들이 머릿속을 가득 메운다. ‘그때 기회를 놓치지 말걸.’, ‘그때 그렇게 말하지 말걸.’ 혹은 ‘그냥 이야기할걸.’ 하는 생각들이 대부분이다. 그렇지만 이제 와 후회해봤자 늦은 일이라는 것을 안다. 그럼 기자는 쌓여가는 하얀 눈에 이런 마음들을 잠시 묻어둔다. 봄이 오면 눈과 함께 녹아버린 기억들이 새로운 싹을 돋을 수 있도록.

눈이 오면 기자에게 떠오르는 한 편의 영화가 있다. 바로 미셸 공드리(Michel Gondry) 감독의 <이터널 선샤인(Eternal Sunshine Of The Spotless Mind)>(2004)이다. 영화의 모든 배경이 겨울은 아니지만, 영화의 상징적인 장면 중 눈과 겨울을 배경으로 한 장면들이 많아 기자의 뇌리에 <이터널 선샤인>은 겨울 영화라고 자리 잡은 듯하다. 헤어진 연인 ‘클레멘타인’의 기억을 지우던 ‘조엘’은 사라져가는 기억 속에서 클레멘타인을 향한 증오보다 더 큰 사랑을 발견한다. 그녀와의 추억을 지우지 않으려 노력하지만 모든 노력이 물거품이 되고, “몬탁에서 만나.”라는 그녀의 마지막 작별 인사를 끝으로 조엘은 그녀에 대한 모든 기억을 잃는다. 눈 덮인 몬탁의 해변에서 조엘이 그녀에 대한 기억이 지워지지 않도록 도망치던 장면은 영화가 끝나고 나서도 한동안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았다. 흩날리는 눈처럼 조엘의 기억은 사라져 가는데 이를 알지 못하는 기억 속의 클레멘타인은 그저 행복해한다.

기자에게 첫눈은 진정한 겨울의 시작을 의미한다. 그리고 길었던 한 해가 저물고 있으며 기자가 사랑하던 것들과 이별해야 할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것을 알려준다. 그렇기에 이별의 아픔을 담은 <이터널 선샤인>은 이맘때쯤 기자의 마음 속에 떠올라 아련하게 만든다. 작별은 언제나 쉽지 않은 일이다. 이 오피니언이 올라가고 나면 오직 한 번의 마감을 끝으로 길었던 신문사와의 인연도 끝이 난다. 이 글을 쓰는 지금은 1년 6개월이라는 시간 동안 기자 생활을 하면서 일어났던 크고 작은 일들이 모두 찰나에 일어난 일인 것만 같다. 첫눈이 주는 즐거움이 짧지만 강렬한 것처럼, 신문사에서의 기억은 기자의 인생의 강렬한 기억으로 자리 잡을 것이다.

내년 첫눈이 내리는 날이면 올해의 첫눈이, 그리고 이 글이 떠오를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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