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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명을 조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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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근하는 직장인, 시험을 앞두고 밤샘 공부를 하는 학생, 밤새워 영업하는 가게를 지키는 직원들까지. 각자의 사연을 가진 불빛들이 그려낸 도시의 밤은 참으로 아름답다. 도시의 밤을 밝히는 네온사인과 불이 켜진 높고 낮은 건물들, 길을 비추는 가로등은 언제부터 이토록 반짝이기 시작했을까? 이번 오색찬란에서는 어두운 밤을 환하게 밝혀 주는 조명을 조명해 보고자 한다. 

 

[한국의 밤을 밝히다]

▲도시의 밤을 수놓는 불빛들/출처: pixabay
▲도시의 밤을 수놓는 불빛들/출처: pixabay

과거 선비들은 칠흑같이 어두운 밤, 희미한 달빛에 의존하여 책을 읽곤 했다. 반면, 오늘날 우리의 모습은 어떠한가? 새벽에 이 글을 쓰고 있는 기자는, 방 천장에 달린 조명 덕에 이 시간에도 열심히 자판을 두들길 수 있다. 이처럼 밤에도 낮처럼 활발하게 생활할 수 있게 해준 조명은 어떻게 발전해 왔을까?

한국에서 조명은 크게 등잔, 호롱불, 남포등, 백열전구, 그리고 형광등과 LED(발광다이오드) 순으로 발전해 왔다. ‘등잔 밑이 어둡다.’라는 속담에도 나오는 ‘등잔’은 동물이나 식물 기름을 이용해 불을 밝히던 우리나라 조명의 시초였다. 그리고 조선 후기에 석유가 들어오면서, 호롱불과 남포등이 등장했다. 새로운 연료를 사용하게 되면서 불을 밝히는 시간은 길어졌으나, 휘발성이 강한 석유가 날아가지 않도록 뚜껑을 닫아 놓아야 한다는 단점이 있었다. 이후 에디슨이 1879년에 발명한 백열전구가 1887년에 우리나라에 들어와 경복궁을 밝혔다. 그러나 이 당시의 백열전구는 불완전했기에 켜지는 날보다 꺼지는 날이 더 많았고, 이를 두고 사람들은 ‘게으름뱅이 등’이라는 뜻에서 백열전구를 ‘건달등’이라고 부르기도 했다. 그리고 이후에는 수명이 길고, 에너지 효율도 더 좋아진 형광등과 LED(발광다이오드)가 순차적으로 등장하면서 현재의 모습까지 이르렀다. 

▲'미스터선샤인'(tvN) 속 장면. 점등식을 보기 위해 사람들이 모여 있다.
▲'미스터선샤인'(tvN) 속 장면. 점등식을 보기 위해 사람들이 모여 있다.

 

[조명의 다양한 역할] 

공간의 분위기를 결정하는 요소는 무엇일까? 사람들은 대부분 인테리어를 할 때, 벽지나 바닥재, 가구를 중심으로 공간을 구상한다. 하지만 공간의 분위기를 가장 크게 좌우하는 것은 다름 아닌 조명이다. 조명은 평범한 카페를 순식간에 멋진 감성 카페로 변신시킬 수도, 삭막했던 방을 안락한 공간으로 탈바꿈시킬 수도 있다. 인테리어의 마침표라 불리는 조명의 활용에 대해 알아보자.

『조명 인테리어 셀프 교과서』에서는 인테리어에 사용되는 조명을 크게 직접 조명과 간접 조명으로 나누어 설명하고 있다. 직접 조명은 문자 그대로 직접 빛을 비추는 조명으로, 대표적인 예로는 샹들리에(Chandelier)와 펜던트(Pendant) 조명이 있다. 이는 적은 전력으로도 높은 조도를 얻을 수 있지만, 빛에 의한 그림자가 강하게 나타난다는 단점이 있다. 샹들리에는 천장에 매달아 드리우는 등으로, 여러 갈래로 가지가 뻗어 나간 형태의 조명이다. 가지 끝마다 불이 켜져 밋밋한 공간을 화려하게 밝혀주며, 주로 침실이나 거실에 사용된다. 펜던트 조명 또한 천장에 달아 늘어뜨린 조명이지만, 깔끔한 원형 갓 모양 또는 원통형과 같이 보통 샹들리에보다는 형태가 단순하다. 소품이나 공간에 포인트를 주기 위해 사용되며, 최근에는 주방에 사용하는 것이 유행하고 있다.

브래킷(Bracket) 조명과 레일(Rail) 조명이 대표적인 간접 조명은 벽이나 천장에 투사하여 나온 빛을 활용한다. 빛이 부드러워 온화한 분위기를 연출하며, 공간을 고르게 비추고 물체가 빛을 가려도 그림자가 짙게 생기지 않는다. 그러나 직접 조명에 비해 효율이 낮고, 설치 비용이 많이 든다는 단점이 있다. 간접 조명은 벽에 부착하는 형태인 브래킷 조명을 주로 사용한다. 이는 벽에 빛이 반사되어 인테리어 소품이 돋보이도록 도와주며, 공간이 넓고 쾌적해 보이도록 하는 효과가 있어 복도나 거실에 활용되고 있다. 레일 조명은 보통 상업용 조명으로 분류되지만, 빛의 방향을 쉽게 조정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어 주거 환경에서도 많이 사용되고 있다. 

▲샹들리에의 활용/출처: pixabay
▲샹들리에의 활용/출처: pixabay

 

[조명이 빛나는 작품들] 

한편, 조명은 영화나 드라마 속에서도 빛을 발한다. 『디지털 영상 조명』에서는 조명이 배우가 연기하는 허구의 인물에게 생동감을 부여하는 중요한 연출 장치라고 설명한다. 다시 말해, 조명은 영화의 전체적인 분위기, 캐릭터의 상황, 심리 묘사뿐 아니라 작품의 주제까지도 관객에게 전달해 줄 수 있다. 본 글에서는 그중에서도 데이비드 비긴스(David Biggins)의 ‘10 Films That Can Teach You Everything You Need To Know About Cinematography’에서 선정한 열 편의 영화 중, 조명이 빛나는 두 작품에 대해 소개하고자 한다.

▲'칼리가리 박사의 밀실(Das Cabinet des Dr. Caligari)'(1920)의 한 장면. 
▲'칼리가리 박사의 밀실(Das Cabinet des Dr. Caligari)'(1920)의 한 장면. 

첫 번째로 소개할 작품은 영화 <칼리가리 박사의 밀실(Das Cabinet des Dr. Caligari)>(1920)이다. 주인공 ‘프란시스’의 시점에서 진행되는 초반부의 대략적인 줄거리는 이러하다. ‘칼리가리 박사’는 몽유병을 가진 ‘세자르’라는 남자에게 최면술을 걸어 사람들에게 죽음을 예언하게 하고, 칼리가리 박사는 그의 예언을 적중시키기 위해 세자르가 살인을 저지르도록 사주한다. 프란시스는 사람들에게 칼리가리 박사가 살인을 저지르는 정신병자라고 주장한다. 그리고 마침내, 칼리가리 박사를 잡아 독방에 감금하는 데 성공한다. 그러나 영화 후반부에서 드러난 진실은 충격적이다. 앞선 내용은 모두 정신병 환자인 프란시스의 망상이었으며, 칼리가리 박사는 프란시스의 담당 의사였던 것이다. 후반부에 반전을 숨겨둔 이 영화는 무려 100년도 더 된 공포 영화의 고전이다. 영화의 거친 조명과 길게 늘어진 그림자는 당시 전후 독일의 암울한 시대상과 표현주의 사조를 잘 구현했을 뿐만 아니라, 적은 예산으로 공포 영화의 분위기 표현을 극대화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칼리가리 박사의 밀실>은 촬영 당시 예산 부족으로 값싼 조명을 사용했는데, 이 거칠고 밝은 조명이 연기자가 표현하고자 하는 광기를 효과적으로 드러내고 있다. 또한, 이리저리 뒤틀린 조명은 프란시스가 악몽에서 헤어 나오지 못하는 장면의 몰입도를 높이는 요소이기도 하다.

다음으로 소개할 작품은 영화 <배리 린든(Barry Lyndon)>(1975)이다. 이 영화의 감독인 스텐리 큐브릭(Stanley Kubrick)은 촬영 당시 인공조명을 거의 사용하지 않고, 주로 자연광에 의존하여 촬영했다. 실제로 어두운 밤에 이뤄진 실내 촬영에서도 조명은 오로지 촛불만을 사용했다고 한다. 그러나 이토록 자연광을 고집하던 스탠리 큐브릭 감독도 필요에 따라서는 극히 제한적으로 인공조명을 사용했다. 그 대신 인공조명을 활용한 장면은 인공조명이 최대한 자연광처럼 보이도록 필터를 입혔다. 이와 같은 촬영 방식은 마치 18세기의 유화 그림을 보는 듯한 착각을 일으키는 영상미를 창조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이처럼 조명은 우리 역사에도, 다양한 예술 작품 속에도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중요한 존재다. 그러나 조명은 언제나 묵묵히 다른 이들을 비출 뿐, 정작 자신은 항상 어둠에 가려져 있다. 이제는 주인공으로 우뚝 선 조명에게도 스포트라이트(Spotlight)를 비춰주는 것은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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