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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존, 함께 살아간다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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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서로 다른 이들과 함께 살아간다. 때로는 다름을 이해하지 못해 다투기도, 결국은 돌아서기도 한다. 개인주의가 만연한 지금, 함께 살아가기 위해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무엇일까? 종을 초월한 공존을 그린 영화 <엘리멘탈(Elemental)>(2023), <라이프 오브 파이(Life of Pi)>(2013), <바람계곡의 나우시카(風の谷のナウシカ)>(2000)를 통해 알아보자. 

 

[물불을 가리지 않았더니?] 

안개 덮인 바다, 한 불 원소 부부는 ‘엘리멘트 시티’ 행 배에 몸을 싣는다. 물, 흙, 공기 3개의 원소가 조화를 이루고 있는 이 아름다운 도시에서 불 원소 부부는 타 원소와의 상성이 좋지 않아 환영받지 못한다. 이런 고된 환경에서 ‘파이어 플레이스’라는 가게를 운영하며 딸 ‘엠버'를 키워낸 부부는 힘들게 일궈낸 삶의 터전에 큰 자부심을 가지고 있었다. 그리고 어린 시절부터 그런 부모님을 도와 가게 일을 하던 엠버는 이 가게를 물려받는 것이 자신의 꿈이라고 생각하며 자란다. 그러던 어느 날, 아버지의 제안으로 가게의 가장 큰 행사를 맡아 운영하던 엠버는 우연히 가게에 흘러 들어온 물 원소 ‘웨이드’라는 남자를 만난다. 속성도, 성격도 상극인 둘이었으나 둘은 서로의 ‘다름’에 큰 매력을 느끼게 된다. 그렇게 만남을 이어가던 중, 웨이드는 엠버가 유리 공예에 소질이 있다는 사실을 발견하고 그런 엠버의 재능을 적극적으로 지지한다. 그러나 아버지의 기대를 저버릴 수 없었던 엠버는 자신의 꿈을 외면하고, 마음에도 없는 온갖 모진 말로 웨이드를 밀어낸다. 웨이드는 이에 큰 상처를 받고 돌아서지만, 불 원소 마을에 물이 들이닥쳐 엠버가 위기에 처하자 그녀를 구하기 위해 망설임 없이 자신을 희생한다. 그의 진심에 감동한 엠버는 이내 마음을 바꿔 부모에게 자신의 진심을 털어놓고, 진정한 꿈을 찾아 여정을 떠난다.

 

“우리가 안 되는 이유는 수백만 가지 이상으로 차고도 넘쳐. 너무나 많지. 하지만 되는 이유가 딱 한 가지 있어. 우린 서로 닿았잖아. 우리 안에서 뭔가 일어났어. 불가능한 뭔가가 말이야. 우린 서로의 성질을 바꿨어.”

 

성격도, 속성도 상극인 이들이 함께할 수 있었던 이유는 무엇일까? 웨이드는 수없이 많은 ‘안 되는 이유’보다 한 가지의 ‘되는 이유’에 집중한다. 서로 다른 개인이 모여 만들어진 사회이기에 서로 다른 부분이 더 많은 것은 당연하다. 하지만 그런 부분에 매몰되지 않고, 한가지만을 본 웨이드의 시선을 통해 단 한 가지만으로도 ‘우리’가 될 수 있음을 배운다. 또한, 상극의 속성이 만나 서로의 성질을 바꾸는 장면은 우리의 다름이 때로는 새로운 변화의 불씨가 되어 줄 것임을 보여준다. 

 

[어제의 적이 사실은 동료였다면?] 

영화 <라이프 오브 파이(Life of Pi)>(2013)는 주인공 ‘파이’의 가족들이 인도에서 캐나다로 이민 가는 배에 오르면서 시작된다. 이들을 태운 배는 순조롭게 나아가는 듯했으나, 항해 도중 거센 폭풍에 휩쓸리고 만다. 그리고 이 폭풍은 파이에게서 그의 가족 전부를 앗아가고, 파이는 구명보트 위에 올라 목숨을 건진다. 그렇게 보트 위에는 파이와 동물원에서 기르던 호랑이, ‘리처드 파커’ 단둘만 남게 됐다. 맹수 리처드 파커와의 항해는 긴장의 연속이었다. 파이는 굶주린 리처드 파커에게 잡아먹히지 않기 위해 물고기를 사냥해 바치고, 때로는 그를 위협하기도 했다. 그러나 “리처드 파커가 없었으면 난 지금쯤 죽었을 거다. 난 녀석을 보며 긴장했고, 녀석을 돌보는 일에 삶의 의미를 두었다.”라는 파이의 독백은, 그의 존재가 위협적이긴 했으나 삶의 의지를 이어 나갈 수 있었던 원동력이기도 했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위태롭게 이어지던 항해의 끝, 마침내 그들은 멕시코의 한 해안가에 도달한다. 기진맥진한 파이는 모래사장에 쓰러지고, 리처드 파커는 그런 그를 뒤로한 채 미련 없이 밀림으로 사라진다. 맹수와 인간이 공존할 수 있었던 이유는 무엇일까? 망망대해에 덩그러니 남겨진 파이와 리처드 파커는 그곳에서 살아남기 위해 서로를 끊임없이 견제한다. 그리고 그렇게 팽팽하게 이어진 긴장의 끈은 살아가고자 하는 의지를 다잡게 만든다. 목숨을 노릴 수 있는 관계였던 서로를 원동력으로 삼아 생존해 나가는 모습은 성가신 경쟁자로 생각했던 이들이 나를 성장시키고 있지는 않았는지 돌아보게 만든다. 

 

[오만과 편견은 화를 부르고···] 

<바람계곡의 나우시카(風の谷のナウシカ)>(2000)는 ‘불의 7일’이라는 전쟁으로 거대 산업 문명이 멸망한 뒤, 그로부터 천년이 지난 시대를 배경으로 한다. 거대한 곤충 ‘오무’가 지키는 숲 ‘부해’에서 유독성 포자가 날아와 마스크 없이는 숨을 쉴 수 없게 되고, 인류는 안전한 지대 곳곳에 흩어져 살게 된다. 그중 한 곳인 바람계곡에서 주인공 ‘나우시카’는 평화로운 나날을 보낸다. 그러던 어느 날, 나우시카의 앞에 한 비행선이 추락하고, 그 안에서 ‘불의 7일’ 당시 사용된 거신병이 든 고치가 발견된다. 얼마 지나지 않아, 고치를 되찾기 위해 토르메키아의 ‘황녀’가 군사들을 끌고 바람계곡에 쳐들어온다. 황녀는 나우시카를 인질로 삼아 바람계곡 사람들에게 숲을 불태우고 세상을 재건할 것을 강요한다. 그렇게 인질이 되어 끌려가던 나우시카는 페지테국의 ‘아스벨’이라는 소년의 습격에 격추돼 소년과 함께 모래 늪에 빠지고, 그곳에서 나우시카는 부해의 포자가 오염된 물과 흙을 정화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이 사실을 알리기 위해 급히 페지테국으로 향하지만, 그곳은 이미 오무 떼에 의해 초토화되어 있었다. 이는 페지테국에서 토르메키아 병사들을 몰아내기 위해 오무의 유충을 미끼로 오무 떼를 유인해 벌어진 일이었다. 바람계곡에 있는 토르메키아 병사들을 공격하기 위해 한 번 더 오무 떼를 유인하려는 계획을 들은 나우시카는 오무의 유충을 구해 오무 떼에게 돌려준다. 그 과정에서 나우시카는 큰 상처를 입게 되지만, 다친 나우시카를 오무의 유충들이 나서서 보호하자, 이를 보고 나우시카에 대한 적대감을 거둔 오무 떼는 상처 입은 나우시카를 치료해 준다. 

 

오무와 인간이 공존할 수 있었던 이유는 무엇일까? 우리는 때로 색안경을 끼고 누군가를 판단하곤 한다. 오무와 부해에 대한 인류의 적대적인 태도도 이러한 맥락에서 비롯됐다. 환경을 복구하고자 한 자연의 노력을 편견 어린 시선으로 판단한 인간의 행동은 오무의 화를 불렀고, 또 다른 오해를 낳는 악순환을 야기했다. 하지만 나우시카는 계속해서 오무와 교감을 시도하며 이들을 있는 그대로 바라보려 노력한다. 우리도 이처럼 색안경을 벗고 서로를 마주한다면 상대의 새로운 모습을 발견하게 될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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