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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을 감아도, 눈을 떠도 '지옥'(2021)

지옥은 망막에 맺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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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넷플릭스 2차 포스터/출처: 넷플릭스
▲넷플릭스 2차 포스터/출처: 넷플릭스

어느 날 갑자기 초자연적 존재가 나타나 죽음을예고한다. 우리가 신이라고 말하는 존재는 심판을 통해 지옥으로 가게 될 인간을 지목하고, 시간이 되면 어디에 있든 그들은 죽음을 맞이하게 된다. 이때, 지옥행을 선고받은 인간들은 알 수 없는 존재인 '지옥행 사자'들에 의해 아주 잔인하게 죽임을 당한다. 이때, 신의 뜻을 전한다는 단체 ‘새진리회’와 새진리회 의장 ‘정진수’가 등장한다. 새진리회는 이러한 처벌 과정을 ‘신의 심판’에서 비롯된 처형이자 ‘시연’이라 부르며, 모든 것은 ‘신의 의도’를 바탕으로 인간 사회를 더 정의롭게 만들고자 하는, 질서를 구축하기 위한 일이라 주장한다. 실제로 신은 인간 사회의 ‘범법자’들에게 지옥행을 선고했다. 사람들은 신이 인간 사회의 질서를 잡기 위해 ‘죄’를 저지른 인간을 처벌한다고 믿는다. 인간이 처벌하지 못한 죄인을 처벌해 세상을 바로잡는 신의 손길은 절대적이며 두렵지만 ‘정의’를 위한 것이었다. 지옥행 선고, 즉 ‘고지’를 받은 인간은, 그리고 그 가족은 사회적으로 낙인이 찍히며, 사람들은 자신이 ‘죄인’이 되지 않도록 주의한다. 기자는 이런 <지옥>(Netflix)속 장소를 따라가며 죄와 벌에 대해 생각해 보았다.

 

정진수: 지금 신께서는 너무나 직설적으로 여러분들에게 지옥의 모습을 보여주고 계십니다. 그런 신의 의도가 무엇일까요?

 

▲문정역 문정 엠스테이트 빌딩 앞 거리
▲문정역 문정 엠스테이트 빌딩 앞 거리

새진리회 1대 의장 정진수가 사람들에게 지옥행 사자와 지옥을 설명한 장소이다. 식당과 각종 편의 시설이 가득한 문정역 앞. 기자는 처음 가보는 거리였지만, 아주 익숙했다. 평범한 지하철 개찰구, 평범한 상가, 그리고 평범한 시민들. 이 평범한 곳에서 새진리회는 알 수 없는 존재로 인해 당황한 사람들의 혼란을 잠재우고 ‘신의 의도’를 전파해 세상에 새로운 질서를 구축하려 한다. 상식적으로 받아들이기 어려운 존재들과 경험으로 인해 혼란스러운 사람들은, 평범한 거리에서 익숙한 말로 차분하게 말을 전하는 새진리회를 보며 상황에 대한 해석과 해결책을 내놓는 그들에게 의지하게 되지 않았을까. 지옥이 펼쳐지는 현실에서 새진리회는 인간의 모습으로 사람들 앞에 선다. 그리고 자신들의 이념에 따라 잘 살고 있는 사람들의 모습을 보인다. 비현실적인 일이 일어나는 상황에서, 두려운 존재들을 등에 업고 자신들의 이념에 대한 신뢰를 얻을 수 있었다.

어느 날, 자녀들과 집에서 생일을 축하하던 여성 ‘박정자’가 고지를 받는다. 그런데 박정자는 범법자가 아니었다. 정확하게는 범법자인지 불분명했다. 박정자의 아이들의 몸에 난 상처 때문에 가정 폭력을 휘둘렀을 거라는 의심과, 이부형제들을 키우는 미혼모라는 이유로 처벌받아 마땅하다는 의견이 불거졌다. 박정자는 꼼짝없이 지옥행을 기다린다. 이때, 새진리회는 박정자에게 30억 원 지불을 댓가로 ‘시연’의 장면을 방송으로 송출한다. 이 일을 계기로 새진리회는 세력을 확장하게 되고, 사람들은 비단 범법자가 되지 않기 위한 것을 넘어, 부도덕한 일을 저지르는 ‘죄인’이 되지 않기 위해 살아간다.

박정자의 시연 이후, 새진리회는 공개적인 장소에서 고지를 받은 사람들의 시연 장면을 방송으로 중계한다. 서경대학교 북악관 문예홀에서 또 다른 죄인의 시연 장면이 촬영됐다. 서경대학교로 향하는 마을버스는 짧지 않은 시간 동안 오르막길을 올랐다. 종점에서 멈춰서자 북악관이 나타났고, 건물에 들어가서 문예홀을 향했다. 공교롭게도 중극장 규모의 본 공연장도 북악관 가장 꼭대기 층인 8층에 자리 잡고 있었다. 드라마에서는 방송된 공연장의 위치는 중요한 요소가 아니었지만, 직접 공연장으로 향할 때 기자는 시연을 앞두고 공연장을 찾아간 죄인들의 마음을 알 것만 같았다. 발걸음을 뗄수록 하늘과 가까워진다. ‘신’과 가까워진다. 죽음과 가까워진다. 죄인이 되어, 본보기가 되어 하늘도 땅도 아닌 곳에서 자기의 죽음이 중계된 사람들은 어떤 심정이었을까, 생각해 본다.

▲서경대학교 북악관 810호 문예홀/출처:쉐어잇
▲서경대학교 북악관 810호 문예홀/출처:쉐어잇

우리는 ‘죄’를 ‘법’을 통해 규정한다. 인간과 인간 사이, 사회에서 용인할 수 없는 행위를 죄로 규정하고, 죄를 저지른 사람들을 처벌한다. 동시에 우리는 경험적으로 ‘죄’를 판가름한다. 법에 따라 규정된 죄목이 아니더라도 사회에서 불합리한, 부도덕한 일을 죄라고 부른다. 하지만 우리는     <지옥>에서 신이 선고한 죄와 처벌을 보고 우리의 상식에 의문을 던지게 된다. 죽음만이 온당한 처벌이라고 생각되는 죄목 외의 잘못을 저지른 인간이 죽음에 이르게 된 것. 신이 말하는 ‘죄’는 무엇인가? 다시 말하자면 신이 말하는 ‘죽을죄’는 무엇인가?

인간은 완벽할 수 없다. 인간은 실수하고, 잘못을 하고, 죄를 저지르며 살아간다. 하지만 평범한 잘못과 죄에는 선이 있다. 경계가 있다는 것이다. 우리는 완벽한 선(善)이 될 수 없지만 최소한의 선을 지키며 살아간다. 그러나 신이 개입하기 시작하고, 모호한 죄목과 그로 인한 처벌로 인해 인간은 인간이기에 당연할 수밖에 없는 삶에서 죄를 읽어낸다. 죄인이 되지 않기 위해 살아가는데, 죄를 만들어 내는 아이러니한 굴레에 갇히게 되는 것이다.

 

정진수: 선택권이란 이름만 근사한 형벌일 뿐입니다. 이제 우리에게 악을 방치할 권리는 사라졌고, 선을 행할 의무만 남았습니다. 그것이 새 시대에 우리 인간이 해야 할 일입니다.

 

▲마포구 상암동 가온문화공원 앞 커피빈. 시민들의 평온한 일상을 담당하는 공간에서 지옥이 포문을 열었다
▲마포구 상암동 가온문화공원 앞 커피빈. 시민들의 평온한 일상을 담당하는 공간에서 지옥이 포문을 열었다

마포구 가온문화공원 앞 카페는, 첫 시연이 이루어진 장소이다. 도시 한복판에서 그들은 지옥을 경험했다. 지옥이 그들의 삶을 비집고 들어간 것이다. 모든 것이 활발하게 움직이는 대낮 시간, 높은 사옥들이 즐비한 동네의 어느 카페에 그 누구도 본 적 없는 무언가가 나타난다. 매일 눈에 들어오는 장면을, 굳이 생각하지 않고 흘려보내며 시간을 보냈을 사람들. 그때 굉음을 내며 카페 통유리를 깨고 들어온 것들은 사람들의 눈에 박히며 자신의 존재를 드러낸다. 알 수 없는 것은 본능적으로 공포로 이어진다. 이 장소에서의 사건 이후, 사람들은 자신에게 물리적으로 죽임을 행사할지도 모르는 알 수 없는 존재, 아주 평범한 일상에서 언제 어떻게 그들이 나올지 모른다는 불안감, 그리고 죽임을 당하는 것을 스스로 마땅하게 받아들일지도 모른다는 자신의 무의식과, 자신도 모르게 죄를 저질렀을지도 모르는 과거를 두려워하며 살게 되었을 것이다.

 

정진수: 근데 그 공포 때문에 나는 더 바르게 살 수 있었어요. 그리고 그 공포는 세상을 전보다 훨씬 더 정의롭게 만들 거예요. 그 공포가 세상 사람들을 죄에서부터 해방할 거예요.

 

이러한 불확실한 존재와 그들의 불분명한 처벌 행위에도 인간들은 그것에 힘없이 휩쓸린다. 그들은 지옥을 만났기 때문이다. 알 수 없다. 의심스럽기도 하다. 그렇지만 그들의 눈에 보이고 귀에 들린다. 그렇게 경험한 지옥은 사람들에게 도달한 것이며, 그들의 세상을 구성하는 요소가 되고, 흐릿했던 죽음과 죽음의 공포는 현실이 되어 그들의 감각으로 전해진다. 질문을 던지고 해석하기에 앞서 경험한 것, 그리고 바로 뒤따르는 공포는 다음으로 나아가 사고할 수 없도록 인간을 마비시킨다. 자신이 죄를 저지를 수 있다는 것, 자기 삶이 죄가 될 수 있다는 것, ‘알지 못하는 사이에 죽어 마땅한 행동을 하는 것은 아닌가’라는 불안감이 스스로를 옭아맨다. 그들은 살아남기 위한 최소한이자 최대한의 방어가 되는 삶을 살게 되어버린다.

 

택시 기사: 저는 신이 어떤 놈인지도 잘 모르고, 관심도 없어요. 제가 확실히 아는 건, 여긴 인간들의 세상이라는 겁니다. 인간들의 세상은 인간들이 알아서 해야죠.

 

신이 무엇인지, 지옥행 사자는 무엇이며 이들의 목적은 무엇인지 알 수 없는 상황이다. 하지만 확실한 것은, 불확실한 이 존재들에게서 남겨진 것은 결국 인간이라는 것이다. 정의라 울부짖으며, 정의라 속삭이는 신에게서 한 걸음 멀어져, 무엇이 정의인가 의미를 되돌아보아야 한다. 신의 판단에 휩쓸려 누군가를 지워버리는 것도, 자신의 삶을 옥죄는 것도 모두, 그것들이야말로 인간 세상에서 인간들이 저지를 수 있는 진짜 ‘죄’가 될 수 있는 것이 아니겠는가. 하지만 그들에게 죽음의 문제는 너무나 가까운 미래이다. 사람들은 그저 눈을 감아도, 눈을 떠도 보이는 지옥에서 가만히 흔들리고 있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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