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영역

본문영역

안녕은 영원한 콩나물은 아니겠지요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필자에게 가장 기억에 남는 헤어짐은 초등학교 2학년이던 때에 필자가 직접 기르던 콩나물과의 헤어짐이다. 필자는 어릴 때부터 식물을 오래 살리지 못하는, 재배에는 재능이 없는 아이였다. 그런데도 그 콩나물은 신기하게도 꽤 오래 버텨주었다. 그 당시 그 콩나물을 정말 고마운 친구이자 필자가 낳은 아이처럼 애지중지 대했다. 빛을 보지 않도록 검은 비닐봉지를 잘 덮어주고, 때마다 물을 부어주었다. 잘 자라고 있는지 확인하고 싶은 마음을 꾹 참고 물을 줄 때만 콩나물을 조심히, 그리고 예쁘게 들여다보는 인내심도 갖췄었다. 그 콩나물이 자란다는 것에 엄청난 뿌듯함과 애틋함을 느꼈던 것 같다. 내 손에서 잘 자라준 식물이 처음이라 그랬을까? 이렇듯 어린 필자에게 큰 행복을 느끼게 해 준 콩나물은, 갑작스러운 헤어짐으로 큰 슬픔과 충격 또한 함께 안겨주게 된다. 그날은 여느 날과 똑같은 하루였다. 학교에서 내준 숙제가 있었는데, 이를 계속해서 미루고 있었다. 그때 집에 함께 있던 어머니가 숙제하라며 다그치기 시작했고, 필자는 숙제를 하기 싫은 마음에 그 말에 알겠다고 대답하며 건성으로 넘겼다. 어머니는 점점 화를 내시기 시작하셨고, 필자는 콩나물에 물을 주고 있었다. 그때, 눈 깜짝할 사이에 어머니가 콩나물 그릇을 모조리 싱크대에 엎어 버리셨다. 하라는 숙제는 하지 않고 콩나물에 물을 준 것이 그 이유였다. 필자는 애지중지 소중히 몇 주를 키워오던 콩나물이 한순간에 내 의지도, 콩나물의 문제도 아닌 타인의 손에 의해 사라지는 것을 보고 큰 충격을 받았다. 그 당시의 필자에겐 마음 한구석이 떨어져 나가는 듯한 절망이었다. 어머니는 울며 소리 지르기 시작한 필자의 뺨을 올려붙였다. 그러고는 본인도 울기 시작하셨다. 그 당시 뺨의 아픔보다 콩나물이 더는 살아있지 않다는 슬픔과 절망이 더욱 컸다. 10년도 더 넘었지만, 아직도 생생하게 기억나는 순간이다. 애정을 쏟은 존재를 한순간에 잃은 슬픔과 분노를 그날 처음으로 느꼈다. 이제는 어머니를 이해한다. 팍팍한 삶 속에서 그날이 유독 힘든 날이었겠거니 하고 만다. 그러나 필자에게서 그 콩나물을 그런 방식으로 빼앗은 것은 좋지 못한 교육이라고 생각한다. 스스로도 너무 신기한 것은, 그 콩나물을 어쩌다 키우게 됐는지는 전혀 기억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오로지 애정을 담아 키운 과정과, 강렬한 헤어짐만이 기억에 남아있다.

사람들과의 관계도 그렇다. 만남보다는 헤어짐이 기억에 더 남는다. 필자가 그런 사람인 건지, 아니면 모두가 그렇게 느끼는 것인지는 잘 모르겠다. 한 가지 확실한 것은 그 콩나물로 인해 필자는 한 존재에게 애정을 쏟는 법을 배움과 동시에, 사랑한 만큼 이별할 때 더 크게 아프다는 것을 배웠다. 하지만 우리는 어떤 존재이든 사랑하지 않고는 이 세상에 발을 딛고 살아갈 수 없으니, 아프지 않은 헤어짐이 있을까.

SNS 기사보내기

저작권자 © 홍대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최신기사

하단영역

모바일버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