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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은 세계가 말하는 것

만화가 최재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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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화가 최재훈
▲만화가 최재훈

 

가장 내밀한 자신의 마음을, 가장 담백한 색상으로 표현한다.

그렇게 조용히 세상에 얼굴을 내민 작품은 이어 누군가의 가장 내밀한 마음속으로 향하고, 아주 선명한 울림을 준다. 흑과 백으로 자신의 세계를 만들어내는 최재훈 만화가를 만나 이야기를 나누어 보았다.

 

Q. 20대 초반에 다양한 예술 활동을 하다, 만화를 더 배우고자 24살에 한국예술종합학교(이하 한예종) 애니메이션학과에 진학한 것으로 알고 있다. 만화를 배울 수 있는 여러 선택지 중 한예종 진학을 결정한 특별한 이유가 있었다면 무엇인가?

A. 고등학교 때 대학 입시를 했는데, 실기는 손에 꼽을 정도로 뛰어난 편이었지만 성적이 낮아 대학에 떨어졌다. 그렇게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회사를 다니고, 사회생활을 하며 미술학원에서 학생들을 가르쳤다. 그러다가 한국 사회에서 자란 만큼 대학에 대한 갈증이 남아있기도 하고, 만화에 대해서 좀 더 배워보고 싶은 생각이 들어 가르쳤던 학생들과 같이 시험을 보고 대학에 들어갔다. 한예종은 학년별로 인원이 20명이 안 된다. 동기들의 작업, 그리고 동기들이 노력하는 것들이 고스란히 보여 자극되는 분위기가 좋았다. 그리고 건축, 패션 등 전공 외의 수업을 들으며 배운 것을 종합 예술인 만화에 녹일 수 있어 작업에 많은 도움이 됐다.

▲MONTBLANC ‘StarWalker’ 작업
▲MONTBLANC ‘StarWalker’ 작업

 

Q. 실제로 꾸준히 만화라는 매체를 통해 작품활동을 했고, 만화 외의 작품에서도 ‘만화’의 분위기가 느껴진다. 만화라는 매체를 선호하는 이유가 있다면 무엇인지 궁금하다.

A. 어렸을 적 만화를 많이 접한 것이 영향을 준 것 같다. 하교 후 혼자 시간을 많이 보냈다. 그때 다양한 매체들을 접했는데, 만화는 그 안의 세계를 모두 혼자서 만들어 낼 수 있다는 점이 끌렸다. 더불어 그 당시에는 누군가와 관계를 맺는 것을 쉬이 하지 못하는 성격이었다. 무언가를 보여주고 싶은데 사람들과 친해지는 게 어려워 혼자서 나를 자유롭게 표현할 수 있는 만화에 집중하게 됐다.

▲『친구의 부름』 표지
▲『친구의 부름』 표지

 

Q. 작품들이 대부분 어두운 분위기를 내는 것 같다. 비단 흑백이라서가 아니라 작품 속 인물들의 시선이나 배경 등에서도 공포, 두려움, 공허함 등이 느껴진다. 이러한 작품을 그리게 된 이유는 무엇인가?

A. 어린 시절부터 작업했던 것들을 보니, 공포, 두려움 같은 무거운 분위기를 담은 그림을 그리고 있었고, 이는 내 유년기 시절의 경험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생각한다. 솔직하게 말해 내 그림은 대중적인 주제와 분위기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다른 사람이 시키지 않았는데 자연스럽게 이런 그림을 그리고 있는 내 모습을 보니 내가 걸어온 길을 작업에 쏟아내고 있다고 인정하게 되었다. 그러다가 어느 순간 이런 작업을 원하는 사람이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런 작업을 내가 지속하고, 결국 인정받는 과정을 드러냄으로써 비슷한 고민을 하는 사람들이 용기를 얻길 바란다.

▲Project LC.RC 표지
▲Project LC.RC 표지

 

Q. 창작의 영감은 주로 어디서 얻는가?

A. 작가는 자기가 무슨 이야기를 할지 정하기도 하지만, 자기가 무슨 이야기를 해야만 하는지 알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렇기에 내가 하고자 하는 것과 내가 가지고 있는 것, 그리고 그것을 통해서 해야만 하는 것을 인식하고, 이것들이 점점 가까워지고 만나게 되는 과정에서 나온 것들로 작업을 한다. 최근 관심이 가는 주제는 관계이다. 어릴 적 관계에 대해 어려움을 겪고, 가정 환경에서 자연스럽게 느꼈던 것들에서 비롯된 작업을 한다.

 

Q. 여러 차례 진행한 만화워크샵 ‘표류만화교실’을 통해 많은 사람들을 만났을 것 같다. 학생들뿐 아니라 성인까지 다양한 연령대가 찾아올 것이라 생각한다. 실제로 만화워크샵에는 주로 어떤 사람들이 찾아오는지, 또 무엇을 배우고자 찾아오는지 소개해달라.

A. 대학생뿐 아니라 사회인들도 많이 찾아온다. 실제로 웹툰이나 만화업계에 종사하는 사람들, 만화와 일체 관련 없는 분야의 사람들이 오기도 한다. 평생 한 가지의 일을 해야 한다는 생각이 없어지고, 다양한 장르의 경계가 사라

지는 시대라 자신의 특별함을 살리기 위해 노력하는 사람들이 많다. 그 노력이 만화로 향하는 사람들은 많은데, 만화를 배울 수 있는 자리가 별로 없다. 대학이라는 시스템 밖에 있는 경우는 소외되기 쉽다. 이런 한계를 가진 사람들이 수업을 수강하는 것 같다.

 

Q. 현재 다른 작가들과 함께 만들고 있는 독립만화잡지 <쾅>은 대학에서 함께 하던 친구들과 같이 만든 잡지로 알고 있다. 어떤 계기로 작가들과 잡지를 기획하게 됐는가?

A. 웹툰이 성장하기 시작할 때쯤, 대학에서 여전히 수작업을 좋아하는 친구들끼리 모임을 만들기로 한 것에서 출발했다. 처음 시작은 남자 4명이었는데, 취미도 비슷하고 환경도 비슷하니 비슷한 이야기만 하게 되는 게 아쉬웠다. 점점 사람들이 들어오기 시작하면서 모임의 균형을 맞추기 위해 나이, 성별 등의 스펙트럼을 넓혔다. 다양한 사람들이 모이니 대화가 풍성해지고 배울 것이 많아졌다. 같이 활동하던 작가들 대부분은 일찌감치 주목받고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다.

 

Q. BTS RM, NCT와 같은 유명 아티스트들의 뮤직비디오 애니메이션 제작부터 소설책 표지, 삽화 작업 등 다방면에서 협업을 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다양한 분야에서 협업하며 있었던 가장 인상 깊은 경험은 무엇인지 궁금하다.

A. 가장 기억에 남는 에피소드가 몇 개 있다. 첫 번째는 노다 요지로(野田洋次郎)와의 협업이다. 같이 활동하는 작가 중 내가 제일 늦게 유명해졌다. 유명해지기 전, 내 작업에 의문을 던지며 작업 방향을 바꿔야 하나 고민할 때쯤 노다 요지로에게 자신의 솔로 앨범을 만화책으로 제작하고 싶다는 연락이 왔다. 이후 뮤직비디오도 함께 작업하게 되었는데,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이와이 슌지(岩井俊二) 감독이 함께했다. 그때 노다 요지로가 나에게 이와이 슌지 감독을 알고 있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며, “비슷한 감성을 가진 사람들은 언젠가 서로 만나게 된다.”라고 말했던 것이 기억난다.

두 번째는 BTS RM의 솔로 작업에 참여한 것이다. 아이돌이다 보니 원래 내 그림의 과감한 표현을 순화해야 한다고 생각해서 시안을 제출할 때 비교적 얌전한 작품들을 보여줬는데,  원래 하던 대로 과감하게 표현해달라는 요청을 받았을 때 아차 싶었다. 아이돌이라는 이유로 내 멋대로 대상화해서 판단했다는 것을 반성했고, 나에게 연락해 작업을 함께 하게 된 이유가 평소의 내 작업 스타일을 좋아하기 때문이라는 것을 느꼈다.

마지막은 만년필 회사 몽블랑(MONTBLANC) 독일 본사에서 연락이 온 것이다. 글로벌 캠페인에서 사용할 애니메이션 작업을 했다. 여기서도 평소 내 작업 분위기와 주제를 살렸다. 미국 나사(NASA)에서 진행한 캠페인이라 직접 나사로 방문하기도 했다. 세계 곳곳에서 내 애니메이션이 나오는 게 감회가 새로웠다.

여러 협업을 진행하며, 내가 하고 싶은 것과 갖고 있는 것을 인정하는 작업을 꾸준히 하다 보면 나와 비슷한 감성을 갖고 있는 예술가들과 만나게 되고, 그것을 필요로 하는 사람들을 만날 수 있다는 것을 다시금 느꼈다.

▲BTS RM 'forever rain' 작업
▲BTS RM 'forever rain' 작업

 

Q. 그림을 그리기 시작한 지 오랜 시간이 흐르며 그림에 대한 생각이 어떻게 바뀌었는지 궁금하다.

A. 나에게 그림이란, 어릴 적에는 욕망의 표출이자 목표를 갖고 이뤄내려고 했던 것이라면 지금은 최대한 솔직하게 표현하려고 하는 것, 그리고 생활로 자리잡은 것이다. 어릴 적에는 꿈과 사랑과 욕망이 중첩돼 엉켜있는 상태였던 것 같다. 지금은 그림을 그리는 것에 있어 잘하면 잘하는 대로, 못하면 못 하는 대로 솔직해지려 한다.

 

Q. 자신만의 무언가를 표현하는 일을 하고자 하는 학생들에게 한마디 부탁한다.

A. 고민과 망설임을 덜었으면 좋겠다. 내가 뭘 갖고 있는지 인정하고, 내가 하고 싶은 것만 고집하는 것에서 벗어나야 한다. 이상적인 나에게 너무 갇혀있으면 아무것도 시작할 수 없다. 이상적인 나와 현실의 나는 영원히 만날 수 없다. 지금 갖고 있는 것을 표현하고, 사람들 앞에 스스로를 드러내고, 부족한 점을 인정하고 나아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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