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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의 생애를 들려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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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의 생애를 들려주세요.”라는 질문 하나로 모든 연구가 시작되는 학문이 있다. 이 마법의 질문은 한 인간이 자신을 둘러싼 세계를 어떻게 이해하고 재구성하는지 보여준다. 삶의 주체로서 한정된 기억에 규칙과 서사를 부여, 이를 언어로 재현하는 일련의 과정이 모두 연구에 포함된다. 구술되는 이야기를 통해 인간의 생애를 이해하는 학문, ‘구술생애담’이 그 주인공이다.

구술생애담은 보다 보편적인 구술사, 생애사와 달리 사적(史的) 층위가 아닌 담적(譚的) 층위로 접근한다. 개인의 기억을 역사적 사실과 비교, 문헌 밖의 사건에 주목하는 것이 구술사라면, 구술생애담은 발생한 사건뿐 아니라 그 사건의 서술 방식 자체에 집중한다. 연구자와의 면담에서 구술자는 자신의 생애를 처음과 끝을 갖춘 하나의 플롯으로 구상한다. 질문에 답하는 과정을 통해 자신이 겪어온 시련과 결핍을 유기적으로 이해하고, 삶에 자신의 역할을 부여한다. 이로서 기억은 언어를 통해 질서있게 재편성되며, 그 끝에 구술 주체는 자신만의 정체성을 확립한다.

동시에 우리는 그 유기성을 의심해 볼 수 있다. 이야기 전개가 시간순으로 이루어지지 않고 혼란스럽게 엉켜있다면? 구술자가 생애의 한 부분만을 반복적으로 언급한다면? 구술 중에 모순되거나 의도적으로 넘기는 부분이 있다면? 연구자는 사소한 의문에도 촉각을 세우고 이를 파헤친다. 그뿐만 아니라, 구술자의 말투, 습관, 몸짓, 방언, 레퍼토리 등 구연의 모든 내외적 요소를 통해 숨겨진 핵심을 발견한다. 개인이 그린 서사구조와 삶에 대한 해석 위에 새로운 의미를 쌓는 것. 그것이 연구자의 역할이며 비로소 구술생애담이 완성되는 지점이다.

수업에서 이 학문을 처음 접했을 때, 연구가 아닌 일상에서도 타인의 삶을 들여다볼 순 없을지 고민했다. 영화 ‘비포 선라이즈’의 두 주인공은 만난 지 몇 시간이 채 안 된 서로를 더 알아가기 위해 진실게임을 한다. 문득, 서로 번갈아 가며 질문을 하고 이에 충실히 답하는 싱거운 게임을 떠올렸다. 붙인 명칭은 이름도 싱거운 ‘묻고 답하기 게임’. 물론 진실게임과 다르게 모든 질문에 솔직할 필요는 없다. 흥미로운 점은, 일상적 대화에 형식만 입힌 것일 뿐인데도, 게임은 항상 순식간에 몰입을 불러왔다는 점이다. 우리는 언제든 대답을 들을 준비가 되어있는 한 사람을 마주한 채, 지금껏 알지 못했던 서로를 직면했다.

2023년 여름부터 겨울까지, 약 반년간 총 6명과 이 게임을 해왔다. 어떠한 사전 언급도 없이 적당한 순간에 게임은 막연히 시작됐고, 그런 우연성을 우리는 즐겼다. 6명과의 대화 속 질문들은 후에 다시 꺼내보기 위해 공책에 기록했다. '날씨나 온도 외에 가장 크게 계절감을 느끼는 순간은?', '인간은 전에 느꼈던 감각을 그대로 기억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가?', '지금 분위기에서 가장 듣고 싶은 노래는?' 등의 질문이 다양한 무게를 지닌 채 오갔다. 사랑, 걱정, 후회, 소망은 간절한 마음에 질문이 되었으나, 답을 얻고자 하는 우리에게 다시 물음을 안겨주기도 했다.

누군가의 삶에 다가갈 때마다, 인생을 다시 겪는다. 나의 삶은 겸허해지다가, 찬란해지다가, 부끄러워지다가, 유일해진다. 찰나의 생이 무한해진다. 이 글에도 수많은 생을 포개었다. 이 모든 유일한 생애들이 나에게로 왔다. 당신의 삶도 이곳에 포갤 수 있기를, 언젠가 그 생애를 묻고 답하는 날이 오기를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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