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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리숙한 장난감과 부드러운 마음

백지원(조소15)동문을 만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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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지원(조소15) 동문
▲백지원(조소15) 동문

우리 가슴 속 깊은 곳 숨어있는 그 ‘마음’을 손으로 더듬어볼 수 있다면, 그것은 어떤 감촉을 내어줄까? 허술하고 어리숙한 모습 속에 어떤 세상을 꿈꾸고 있을지 상상하게 되는 사랑스러운 눈망울을 한 백지원 작가의 인형을 가만 보고 있자면, 작가의 마음은 왠지 부드럽고 사랑스러운 감촉일 것만 같은 느낌이 든다. 한적한 어느 동네 한쪽에 자리한 ‘띠로리 소프트’에 방문하여, 마음을 담아 마음을 움직이는 인형을 만드는 백지원(조소15) 작가의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Q. 본교 조소과에 진학한 이유는 무엇인지 궁금하다.

A. 입학하기 전부터 *스톱모션 애니메이션(stop motion animation)에 관심이 있었다. 서울캠퍼스 조소과와 세종캠퍼스 디자인 영상학부에서 이를 배울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해서 두 학과에 지원했다. 둘 다 합격한 후 고민 끝에 손으로 직접 만드는 것을 좋아해서 조소과로 진학하게 됐다.

 

Q. 본교 조소과는 작가적인 작업부터 상업적인 작업까지 넓은 범위를 다뤄볼 수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학부 시절 주로 어떤 작업을 했는지, 지금 하는 작업에 영향을 미친 것이 있다면 무엇인가?

A. 학부 시절, 특히 저학년 때는 지금과 사뭇 다른 작업을 했었다. 조소과에서 배우는 내용들이 낯설기도 했고, 인형을 만들고 싶었는데 학교에서 배우는 것은 결이 달라 이에 어려움을 느꼈다. 그래서 학부에서 배우는 것들과 느낌이 다른 작업을 했다. 시를 쓰는 등 글 작업도 많이 했고, 직접 카메라를 들고 다니면서 스토리가 있는 영상을 찍어보기도 했다. 부전공으로 판화과 수업을 들으며 색다른 기법을 배워보기도 하고, 영어영문학과에서 셰익스피어 수업을 들어보기도 했다. 대학의 장점은 다양한 분야를 비교적 쉽게 접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다양한 것들을 경험하고 탐색하려는 시도를 많이 했다.

고학년이 되면서 자유 작업을 할 기회가 많아져서 조소과에서 배운 것을 바탕으로 개인 작업을 했다. 원래 스톱모션 애니메이션을 하고 싶었기에 인형을 자주 만들었다. 이때 작업한 것들이 지금 도움이 된 것 같다.

 

Q. 어리숙한 듯 담백하고 아기자기한 모습을 한 인형들이 매력적이다. 어떤 계기로 이와 같은 인형들을 만들게 되었는가?

A. 개인적인 취향이기도 한데, 솔직하고 담백한 사람을 좋아한다. 뭔가 꾸며내고 있다고 생각하면 살짝 거부감이 느껴진다. 그래서 나 자신도 솔직해지려고 노력하는 편이다. 애써 멋있는 척하는 것도 어렵다. 어쩌면 나 자신부터 조금 어리숙한 느낌이 드는 것 같기도 하다. 이런 내 취향과 성향을 작업에 담았다. 그리고 인형이라고 하면 주로 곰 인형을 떠올리거나, 누가 봐도 예쁜 모습을 하는 등 정형화된 느낌이 있다. 이런 틀에서 벗어난 신선한 작품을 만들고 싶어서 이를 염두에 두고 작업하기 시작했다.

 

▲summer vacancy series, 2021
▲summer vacancy series, 2021

Q. 인형들 저마다 이름이 있다. ‘돼지팡’ , ‘ 맹귄 ,’ ‘히스테릭 펭귄’ 등의 이름들은 인형들이 어떤 성격일지, 어떤 삶을 살았을지 상상하게 하곤 하는데 인형을 만들 때마다 스토리를 떠올리는 것인가?

A. 인형의 분위기나 이야기를 미리 구상하고 만들기도 하지만, 손 가는 대로 만들고 나서 어떻게 생겼나 확인하고 이름을 짓기도 한다. 영화 보는 것을 좋아해서 영화에서 영감을 받아 인형을 구상한 적도 있다. 실제로 소설 <네루다의 우편 배달부>(2004)를 원작으로 한 영화 <일 포스티노>(1996)를 보고 ‘마을을 돌아다니며 편지를 배달하는 돼지가 있으면 웃기겠다.’ 라는 생각을 하고 우체부 돼지 인형을 만들었다. 최근에는 주로 이야기를 떠올리고, 그 등장인물로서의 인형들을 만들어보려고 한다. 최근 작품인 인형극 <탤런트 쇼>가 그 예다. <탤런트 쇼>는 놀 줄 모르는 아이들이 멋져 보이고 싶어서 밴드를 만들었고, 데뷔 무대를 하는데 완전히 망쳐버린 이야기를 영상으로 만든 작품이다.

 

 

▲'Talent show' series, 2023
▲'Talent show' series, 2023

Q. 개인 브랜드를 만들어 사이트를 운영하면서 느낀 만족감이나 고충이 있다면 듣고싶다.

A. 많은 프리랜서들이 공감할 만한 만족과 고충을 느끼고 있는 것 같다. 흩뿌려져 있는 여러 작업을 내 이름과 ‘띠로리 소프트’라는 이름으로 묶어 정리할 수 있는 것, 그리고 내가 사람들에게 보여주고 싶은 것을 의도한 대로 자유롭게 보여줄 수 있는 것이 가장 큰 장점이다. 단점은 아무래도 작가 활동을 하는 게 아니라 판매를 염두에 두고 작업하기 때문에 작품의 방향성을 잡을 때 이런저런 의견이 들어가 내 의도가 좀 가벼워지는 면이 있는 것이다. 여러 의견을 반영했기에 다양한 사람들과 닿을 수 있는 것이지만 여전히 아쉬움이 남는다. 그런 점에서 타협점을 찾으려고 노력하고 있다. 개인적으로 브랜드를 운영하고 있는 분들은 공감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방앗간의 넙떡이들 series, 2023
▲방앗간의 넙떡이들 series, 2023

Q. 브랜드 대표로 활동하며 특별히 기억에 남는 일화를 말해준다면?

A. 처음 자사 몰을 만들고 주문이 들어오는 것을 봤을 때, 내가 드디어 판매를 하게 됐다는 것을 실감해 신기했던 기억이 난다. 이 일을 시작하고 4년이 흐른 지금은 아무래도 초반에 느꼈던 희열과 설렘을 느끼기 어려워진 것 같다. 업으로 삼고 있기 때문에 힘들다는 생각이 들 때도 있다. 그런 내게 큰 감동을 준 일화를 하나 더 꼽자면, 작년 크리스마스에 TWL(Things We Love)에서 주관한 성탄절 마켓에서의 일을 꼽을 수 있을 것 같다. 당시 ‘비밀의 성탄역’이라는 이름으로 마켓을 열고 인형들을 진열해 두고 있었는데, 마켓을 찾아주던 사람들, 그리고 마켓을 보고 지나가던 사람들의 표정이 기억에 남는다. 내 작품을 보는 사람들의 표정이 모두 행복해 보였기 때문이다. 별 생각 없이 앉아있었는데, 친구가 나에게 “너무 기분 좋지 않아? 네가 만든 걸 보고 누군가 이렇게 웃어줄 수 있다는 게.”라고 말했다. 그 얘기를 듣고, 잊고 있던 감각들이 다시 살아났다. 누군가를 웃게 해주고 싶어 작업을 시작했던 초심을 되새기며, ‘내가 하고 싶었던 대로 이제는 누군가를 웃게 해줄 수 있다. 그리고 그게 참 좋은 일이다.’라고 느낄 수 있었다. 너무 감사한 경험이었다.

 

Q. 본 저서 ‘허술하면 좀 어때’에서, 만우절에 사업자 등록을 한 후 매년 만우절마다 사람들에게 본인의 사업자 등록 여부에 대한 장난을 쳐야 한다는 내용이 기억에 남는다. 작업물처럼 장난스러운 매력이 느껴지는 것 같은데 작가님과 본인의 작업물이 닮았다고 생각하는지, 본인을 작업물과 많이 연결 짓는 편인지 궁금하다.

A. 크게 의도한 것은 아닌데 내 작업과 내가 닮게 되는 것 같다. 어시스턴트 분도 처음에 인형을 보고 내가 낳은 자식 같다고 얘기할 정도로 닮았다는 얘기를 많이 듣기도 한다. 아무래도 뭔가를 하면 자신의 성격이 묻어날 수밖에 없다고 생각하는데, 내 작업도 그런 것 같다.

예전에 조소과 교수님께서 해주신 말씀이 기억난다. 모든 조각은 창조주인 ‘나’로부터 나오는 것이기에 그 안에 마음이 담기고 깃든다는 말이었다. 내 인형들도 내가 만들었고, 내가 창조주인 입장이기 때문에 나를 자연스럽게 닮는 것 같다.

 

 

▲'할로윈 특선' 호호 호박요정, 2023
▲'할로윈 특선' 호호 호박요정, 2023

Q. 개인 브랜드를 만들고자 하는 학우들에게 조언 한 말씀 부탁드린다.

A. 정체성이라는 것은 외부에서 굳이 찾지 않아도 본인이 이미 갖고 있는 것 같다. 레퍼런스를 찾고 이런저런 요소를 뽑아내 창작을 하고, 그렇게 대중을 노릴 수도 있다. 하지만 그런 방식으로 답을 찾기 시작하면 결국에는 동이 나기 마련이다. 어떻게 보면 목마른 인생이 되는 것이다. 본인도 답답하고 힘들 것이다. 나는 내가 좋아하는 것에 대해 많이 탐구했다. 내가 어떤 순간에 무엇을 좋아하는지 알기 위해 돈과 시간을 썼고, 많이 느끼고, 그런 것들을 기록해 보는 과정에서 나의 정체성을 찾을 수 있었다.

그리고 정체성은 유동적이다. 학부 시절의 나와 지금의 나는 너무 다른 사람인 것처럼. 그때는 너무 중요했던 것들이 이제는 별로 중요치 않게 되기도 한다. 그렇기에 더욱 매 순간 내가 가장 이끌리는 것이 무엇인지 찾는 과정이 필요하다.

내가 좋다고 생각하는 것의 이유를 찾는 과정에서 차별성을 갖게 될 수도 있다. 똑같은 인형을 좋아하더라도 어떤 부분, 어떤 요소가 좋아서 좋아하게 되는 건지는 다를 수 있다.

혼자 사업을 이끌어가는 것이라고 해서 뭔가 특별한 것은 없다. 어차피 다 똑같은 일이고 노동이다. 다만 내가 하는 것에 많은 것이 달려있기 때문에 조금 더 책임감을 가져야 한다. 그렇지만 그것이 너무 무겁고 어려운 것이 아니라, 내가 또 뭔가를 만들어 나갈 수 있다는 점에서 재미를 느낄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졸업 후에 ‘뭔가를 해야 하니 도전해 볼까’ 하는 가벼운 마음으로 시작해 보는 것도 좋은 것 같다.

 

 

*스톱모션 애니메이션(stop motion animation): 애니메이션 촬영 시 물체가 살아 움직이는 듯한 효과를 주기 위해 물체를 조금씩 움직여 놓고 촬영하는 과정을 반복적으로 하는 촬영 기법. 또는 그런 기법으로 만든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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