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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벌 사례 0건, 유명무실 피의사실공표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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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약 투약 혐의로 경찰 수사를 받던 배우 이선균 씨가 얼마 전 사망한 일로 ‘피의사실 공표’가 화제로 떠올랐다. 확인되지 않은 의혹을 포함한 수사 내용이 생중계되듯 보도된 사실이 이선균 씨의 사망과 무관하지 않다는 것이다. 피의사실 공포죄의 적용 여부에 이목이 쏠리고 있는 지금, 해당 이슈를 시사파수꾼에서 다뤄보고자 한다.

 

【피의사실공표 논란】

피의사실공표죄란 검찰·경찰 등 수사기관이 범죄를 저질렀다고 의심되는 사실, 일명 피의사실을 재판이 열리기 전 널리 공표한 경우에 성립하는 죄를 말한다. 형법 제126조에 명시되어 있듯, 피의사실공표죄가 성립했을 경우 3년 이하의 징역 또는 5년 이하의자격정지에 처할 수 있다. 재판이 시작되기 전부터민감한 피의사실이 공개되면 ‘여론 재판’에선 이미유죄가 확정된 것처럼 다뤄지는데 이렇게 되면 헌법상 무죄추정의 원칙은 의미를 잃고, 공정한 재판을받을 권리가 상실된다. 1953년 형법이 만들어질 때부터 존재했던 개념인 피의사실 공표는 이러한 피의자의 인권 침해 방지를 목적으로 한다. 이와 관련해법무부는 2010년 1월, ‘인권보호를 위한 수사 공보준칙’을 제정했다. 이는 노무현 전 대통령이 검찰수사를 받던 도중 서거한 것을 계기로 현재는 ‘형사사건공보에 관한 규정’이란 명칭으로 운영되고 있다. 여기에는 △사건관계인의 명예 △사생활 등 인권 △무죄추정의 원칙 △공정한 재판을 받을 권리 △국민의알권리△수사의 효율성 및 공정성이 균형을 이루도록 적용돼야 한다는 운영 원칙이 명시돼 있다.

이처럼 피의자를 보호하기 위해 처벌하기 시작한 피의사실공표죄가 논란이 되는 이유는 먼저 알 권리와의 충돌이 있다. 기본적으로 피의사실공표죄에는 예외가 없다. 그러나 법무부와 경찰청은 내부 훈령을 통해 피의사실공표죄의 예외를 규정하고 공보 활동을 하고 있다. 실제로 검찰에서는 대검찰청 훈령인 ‘수사사건 공보에 관한 준칙’에 따라 예외적으로 피의사실을 공개해왔다. 피의사실에 대해 추측성 보도가 너무 많이 나오거나, 연쇄 살인 등 추가 피해가 일어날 수 있을 때 등을 예외 상황으로 둔 것이다. 또한 ‘공공기관의 정보공개에 관한 법률’에서는공개될 경우 수사·재판을 크게 방해한다고 인정할만한 경우에만 수사 정보 공개를 금지한다고 명시하고 있다. 그렇지 않으면 피의사실은 일종의 ‘공공정보’로서 알 권리의 대상이 된다.

처벌의 어려움도 그 이유 중 하나이다. 다시 말해, 죄를 입증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언론에 퍼진 정보가 오로지 수사기관을 통해서만 나왔다는 점을 밝히기도 쉽지 않으며, 수사기관이 “고의가 아니었다.” 거나 “공익을 위해서였다.”라고 주장하면 죄를 묻기에 더 어려워진다. 수사기관이 수사기관을 직접 수사하는 시스템이기에 수사와 처벌이 잘 이뤄지지 않는다는 근본적인 한계도 존재한다. 실제로 피의사실공표죄의 처벌 사례는 단 한 건도 없으며, 심지어는 기소로도 이어지지 않는 실정이다. 법무부 검찰 과거사위원회에서 2019년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2008~2018년 검찰에 피의사실 공표죄로 접수된 사건은 347건이었는데 이 중 1건도 기소되지 않았다.

피의사실공표죄의 부작용 또한 무시할 수 없다. 윤석민 서울대 언론정보학과 교수 등은 학내 연구소의 학술지 ‘언론정보연구’에 ‘피의사실을 둘러싼 경찰과 언론의 상호작용’이란 논문을 실었다. 해당 논문에서 연구진은 지난 2019년 검찰이 울산지방경찰청의 ‘기소 전 보도자료 배포’를 피의사실 공표라며 담당 경찰관을 수사한 것이 피의사실 공개 관행에 변화를 불러왔다고 분석했다. 연구진은 이 사건 이후 언론과 경찰의 상호 관계가 변화하며 몇 가지 부작용이 발생했다고 지적했다. 우선 수사기관이 국민적 관심이 높은 사안에서도 ‘피의사실 공표’를 명분으로 소극적 언론 대응을 하면서, 오히려 비공식적인 정보 제공 루트를 활성화하는 부작용이 발생했다고 봤다. 해당 논문은 피의사실공표죄가 권력자들의 방어 수단으로 쓰인다는 점도 짚었다. 연구에 참여한 한 기자는 “피의사실공표죄로 누가 가장 이득을 봤는지 생각해보면 정치권 사람들”이라며 “경찰들이 자신의 승진과 관계있다고 생각하는 정치인이나 그들의 자녀 사건에선 절대 정보를 안 알려준다.” 라고 증언하기도 했다.

 

【연예인 마약 수사 과정과 문제점】

연예인이 처음으로 직접 공개적인 자리에서 연예인 수사 문제를 공론화한 것은 2009년 가수 K 씨가 연 기자회견 자리였다. 마약 수사에서 연예인이라는 이유로 부당한 대우를 받아 수치심과 모멸감을 느꼈고, 인권을 보호받고 싶다는 취지에서 마련한 자리였다. 압수 수색 영장에 근거하기는 했지만, 경찰과 검찰의 불시 단속으로 그는 지하 주차장에서 소변과 체모 채취를 강요받았다. 마약 검사 결과는 모두 음성이 나와 혐의를 벗을 수 있었다. 하지만 그 후에도 수사기관은 단순히 제삼자의 제보만으로 재차 영장을 받아와 그를 괴롭혔다.

이어 인플루언서 L씨 또한 수사 과정에서 겪은 부당함을 토로했다. “수사 과정이 변호인은 물론 당사자 L씨보다 언론에 먼저 알려졌다.”라는 것이다. 당시 해당 사건의 변호를 담당했던 안준형 마약 전문 변호사는 “L씨의 소변과 모발의 국과수 감정결과는 보통 수사 중이라는 이유로 당사자와 변호인에게도 알려주지 않는 정보인데 나는 이에 대해 인터넷 뉴스를 통해 실시간으로 볼 수 있었다.”라며 당시 상황을 설명했다.

최근 발생한 배우 유아인, 이선균, 그리고 가수 권지용 씨의 마약 수사 과정 역시 마찬가지였다. 거의 모든 연예인 마약 수사에서는 투약 공범이 몇 명인지, 국과수 감정결과가 어떻게 나왔는지, 검사를 위해 채취한 소변에 마약 물질이 몇 가지 나왔는지 등 경찰이 아니면 알 수 없는 민감한 정보가 언론에 보도된다. 경찰의 의도든 아니든 정보가 흘러나온 것이다.

 

▲연예인 마약 수사를 취재하기 위해 몰려든 기자들
▲연예인 마약 수사를 취재하기 위해 몰려든 기자들

연예인 마약 수사 과정에서 드러난 문제점은 다음과 같다. 첫 번째는 공개 소환이다. 연예인은 범죄 수사 시 공개 소환되는 게 관행처럼 여겨진다. 실제로배우 이선균 씨 측은 경찰 측에 계속해서 비공개 조사를 요청했지만, 경찰은 이를 모두 거부했다. 그러나 수사 대상을 ‘포토라인’에 세우는 것도 원칙적으로는 금지돼 있다. 두 번째는 연예인 마약 수사와 수사기관의 실적 경쟁이 긴밀한 관계가 있다는 점이다. “잔챙이 마약 사범 100명 잡는 것보다 연예인 한명 잡는 것이 낫다.”라는 한 경찰의 발언은 이를 잘보여준다. 언론은 수사 정보를 원하고 경찰은 언론을실적 홍보 수단으로 삼는다. 그리고 언론 보도가 성과로 인정되어 승진에 도움이 된다. 언론의 자유는헌법상 기본권이고, 기자가 수집한 정보를 기사화하는 것은 아무 문제가 없다. 이런 부분들이 하나둘 맞물려 악순환의 고리가 형성된 것이다.

 

【피의사실공표죄 논란을 둘러싼 논의】

피의사실 공표가 무조건 처벌 대상으로 금지될 게 아니라, 피의자의 인권 보호 및 알 권리·언론의 자유 등을 따져 적절하게 이뤄져야 한다는 얘기가 나오고 있다. 1991년 대법원에서 제시한 피의사실 공표의 기준을 살펴보면 “대상은 국민들의 정당한 관심의 대상이 되는 사항이어야 하고 발표는 객관적이고 충분한 증거·자료를 바탕으로 한 사실에 한정해야 한다. 또한, 방식은 수사결과를 발표할 권한이 있는 사람이 정당한 목적과 공식적인 절차에 따라야 하며 표현은 무죄추정 원칙에 반해 유죄라고 생각하게 할 수 있는 말은 피해야 한다.”라고 명시하고 있다. 하지만 실제로 피의사실공표죄를 적용하기란 쉽지 않다. 알 권리에 대한 개념 정의가 추상적이고 알 권리와 피의사실 공표 금지 원칙 중 무엇이 우선인지도 명확하게 규정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이에 문화예술 관련 29개 단체를 중심으로 결성된 ‘문화예술인 연대회의’(이하 연대회의)는 1월 12일(금), ‘故 이선균 배우의 죽음을 마주하는 문화예술인의 요구’ 성명을 발표했다. 이날 봉준호 감독은 연대회의는 문화예술인의 인권 보호를 위해 관련 법안 제정을 촉구하며, 일명 ‘이선균 방지법’을 제정하기 위해 “뜻을 같이하는 모든 단체와 함께 적극적으로 협력해 나갈 것”이라고 밝혔다.

 

▲‘이선균 방지법’의 제정을 요구 영화계 동료들/출처: 문화예술인 연대회의
▲‘이선균 방지법’의 제정을 요구 영화계 동료들/출처: 문화예술인 연대회의

이와 관련해 논의되고 있는 내용으로는 먼저 피의사실공표죄를 법적으로 명예훼손죄·공무상 비밀 누설죄 등에 합치자는 의견이 있다. 알 권리와 피의자의 인권 등을 다퉈 죄를 적용하기는 어려우니 개인의 권리를 침해했는지, 새어나가면 안 되는 비밀을 누설했는지에 집중하자는 것이다. 더해 공정하고 일관성 있게 정보를 제공할 수 있도록 발표할 수 있는 △사실의 범위 △구체적인 언론 대응 기준 △언론의취재 범위와 방법 등을 특별법규로 규정하자는 논의도 진행 중이다. 피의사실 공표에 대해 피해자가 법원에 요청하면 법원이 공표 금지 명령을 내릴 수 있도록 하며 이를 어길 경우 기존보다 가중처벌 하는내용의 법안이 나오기도 했다.

그렇다면 해외에서는 어떻게 대처하고 있을까? 먼저 미국은 관련 법률은 없지만, 검사의 업무 지침에 언론 브리핑 원칙이 명시돼 있으며 피의자의 범죄 전력, 유무죄에 대한 의견 등 편견을 야기할 수 있는 정보는 공개할 수 없다. 보도자료에도 “단순한 혐의에 불과하며 재판이 확정될 때까지 무죄로 추정된다.”라고 작성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영국의 경우 언론 보도가 사건에 대해 편견을 만드는 등 재판에 영향을 미치는 것을 엄격하게 금지해 실질적으로 편견을 만들 수 있다고 판단되면 법정모욕법에 따라 처벌한다. 독일에서는 공소장 등 재판에 관련된 공적 문서를 소송절차가 끝나기 전에 원문 그대로 공개하는 걸 금지하는 법이 있는데, 이를 어기면 1년 이하의 징역형 또는 벌금형에 처한다.

한국에서 마약 사건은 늘 뜨거운 감자다. 온갖 자극적인 제목을 달고 대서특필된 연예인 마약 수사는 결과가 나오기도 전에 대중으로 하여금 판사 봉을 휘두르게 한다.『나는 왜 마약 변호사를 하는가』의 저자 안준형 마약 변호사는 “‘연예인’과 ‘마약’ 이라는 키워드가 합쳐졌을 때 그 파급력은 가늠할 수 없다.”라며 수사당국의 자료 유출 문제, 언론 보도 행태를 강하게 비판했다. 이와 관련해 이어지고 있는 논의가 하나의 결실을 보기 위해서는 대중의 꾸준한 관심이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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