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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세는 ‘AI’, 시대에 역행하는 R&D 예산 삭감 문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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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월 9일(화)부터 12일(금)까지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CES(국제전자제품박람회) 2024’가 개최됐다. 세계 최대 가전·정보기술(IT) 전시회인 CES는 전 세계 4,000개 이상의 기업이 참여해 최신 기술을 선보이는 자리로, 미래 가전제품과 기술 동향을 앞서 파악할 수 있는 행사이다. 올해 개최된 CES 2024의 화두는 ‘AI(인공지능)’로, 국내 핵심 참가 기업인 삼성전자와 LG전자 역시 AI를 중심으로 한 미래 전략을 발표했다. SK그룹의 최태원 회장은 이번 행사를 두고 “모든 영역에 인공지능 기능이 들어가면서 관련 제품이 시장을 만들어 나가고 있다고 생각한다. 좋든 싫든 우리가 이제 인공지능 시대에 살기 시작했다는 생각이 든다.”라고 밝히기도 했다. 이처럼 AI가 CES 2024를 관통하는 키워드가 된 만큼 AI 반도체, 로봇 등 관련 기술이 미래 먹거리가 될 것은 분명해 보인다. 한편, 최근 삭감된 국가 과학기술 연구개발(이하 R&D) 예산안이 발표되면서 시대 역행적인 행보라는 반발이 일기도 했다. 이번 기사에서는 논란의 중심에 놓인 R&D 예산 삭감과 그 여파에 대해 알아보고자 한다.

 

▲연도별 전체 R&D 예산/출처: 시사IN
▲연도별 전체 R&D 예산/출처: 시사IN

【R&D 예산 삭감 논란】

‘Research and Development’의 약자인 R&D는 국가 및 산업 경쟁력을 향상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수행하며, 경제학의 내생적 성장이론(endogenous growth theory)에서는 R&D에 의한 기술 진보를 경제성장의 원동력으로 설명하고 있다. 이러한 중요성을 증명하듯, 국가 전체 R&D 예산은 1991년 이후 꾸준히 증가해 왔다. 그러나 지난해 8월, 정부가 2024년 국가 R&D 예산을 예년 약 31.1조 원에서 약 5.2조 원(약 16.6%)이 삭감된 약 25.9조 원으로 편성한다는 예산안을 발표하면서 논란이 일기 시작했다. 이는 관련 부처가 소폭 증액을 요청한 이후, 같은 해 6월 28일(수) 국가재정전략회의를 통해 관련 예산에 대한 원점 재검토를 지시한 뒤 발표된 예산안이었다.

현재 주요 쟁점 중 하나는 R&D 예산 삭감의 근거에 대한 의문이다. 지난해 7월 4일(화) 열린 제18차 비상경제민생회의 당일 대통령실에서 공개한 보도자료에 따르면, R&D 예산 삭감의 근거는 ‘정부 보조금 나눠 먹기’ 등으로 대표되는 ‘R&D *카르텔 타파’였다. 반면, 제동국 한국전자통신연구원 노조위원장은 <PD수첩>(MBC)과의 인터뷰를 통해 “카르텔이라는 단어 자체가 연구자들의 자존심을 깎는 말이다. 이권에 개입하고 비리가 있다는 것은 인정하기 어렵다.”라고 밝혔다. 이처럼 과학계 내부에서는 R&D 카르텔 타파로 대표된 예산 삭감의 근거가 불명확하다고 반발하고 있으며, 문제 되는 부분에 대한 개선안이 아닌 일괄적 삭감에 대해서 지적하는 목소리가 나오기도 했다. 이후 0.6조 원이 증액된 약 26.5조 원의 R&D 예산 최종안이 발표되면서 결과적으로 전년도 대비 약 4.6조 원(약 -14.7%)이 삭감됐다.

 

【R&D 예산 삭감의 여파】

과학기술 분야 R&D 예산 삭감에 대한 영향은 연구 현장부터 중소기업까지 다양한 곳에서 나타나기 시작했다. MBC의 취재에 의하면 몇 년 전 정부 사업을 수주해 기술 개발에 참여한 4천여 곳의 중소기업들이 어려움을 겪게 됐다. 정부의 R&D 예산 삭감 발표 후, 중소벤처기업부가 각 업체에 보낸 협약 변경 매뉴얼에는 24개 주제별 사업 가운데 22개 사업 예산을 50% 삭감하겠다고 명시돼 있다. 일각에서는 내년도 예산이 증액된다고 하더라도 정부 지원이 대기업 위주의 반도체나 미래 차 분야에 편중될 것으로 예상돼, 중소기업 중심의 연구개발이 위기를 맞을 것이란 걱정 어린 시선을 보내고 있다.

R&D 예산 삭감으로 인해 정부에서 연구비를 받아 연구를 진행하는 정부출연연구기관(이하 출연연)을 비롯한 연구 현장의 우려도 크다. 국회예산정책처에 따르면, 한국전자통신연구원의 경우 전체 R&D 예산이 2023년 1,099억 원에서 2024년 968억 원으로 약 12% 삭감됐고, 홀로그램 핵심 기술 개발은 2023년 231억 원에서 2024년 13억 원으로 약 94%가량 삭감돼 폐지 위기를 맞이했다. 한 출연연 관계자는『동아일보』와의 인터뷰를 통해 “**출연금이 줄어들어 신규 과제 기획은 꿈도 못 꾸고, 대형 연구 장비 운용에도 차질이 생길 것이다. 줄어든 주요 R&D 사업비는 크게 연구비와 장비 운용비로 나뉘는데 대형 연구 장비는 출연금이 아니면 운용이 어렵다.”라고 밝히기도 했다. 연구 현장의 경우, 대부분의 출연연 예산이 삭감되면서 축소되거나 중단되는 연구 과제가 많을 것으로 예상되는 분위기다.

대학 연구 현장에서의 분위기도 마찬가지이다. 지난해 삭감된 R&D 예산안이 발표된 이후 같은 해 9월 28일(목), 한국과학기술원(KAIST)을 필두로 한 전국의 7개 대학 학생회가 ‘과학기술 분야 R&D 예산 전면 삭감 정책에 대한 성명문’을 내며 반발했다. 공학 계열의 대학원은 대부분 연구실마다 정부 기관 등에서 연구 과제를 받아 수행하면서 받는 비용을 통해 연구자들에게 임금이 지급되는 구조로 운영되고 있다. 이러한 구조 탓에 국가 R&D 예산 삭감은 대학 연구 현장에 더욱 민감한 사안으로 다가올 수밖에 없다. 김범준 성균관대학교 물리학과 교수는 <PD수첩>과의 인터뷰를 통해 “연구비가 없다면 가장 큰 걱정이 대학원생들에게 지급할 인건비를 연구 과제에서 지급받지 못하게 되는 문제다. 그런 상황을 두려워하는 연구자들은 대학원생을 뽑지 않게 될 것이다.”라며 R&D 예산 삭감의 여파를 우려했다. 실제로 다수의 언론에 따르면 임금이 줄어든 학생들이 증가했으며, 인건비 절감은 학생들의 대학원 진학 포기와 해외 유출로 이어질 확률이 있다.

 

【학생 연구자의 목소리】

그렇다면 실제 학생들이 느끼고 있는 R&D 예산 삭감의 여파는 어떠할까. 올해 광주과학기술원(GIST)에 진학한 대학생 A씨(18)는 “실제로 예산 삭감의 여파가 학사 과정까지 내려오고 있으며, 교환학생 프로그램의 지원이 줄어 인원 확대가 힘들어질 것이라는 이야기가 들려오고 있다. 이는 해외 연구까지 바라보던 학사 과정의 학우들에게 큰 고민거리를 안겨줄 요소라고 생각한다.”라고 전했다. 이어 “학교 특성상 대학원 진학률이 높은 만큼 주위 학우들 역시 대부분 현 상황을 심각하게 바라보고 있다.”라며 대학원 진학에 대한 걱정을 내비쳤다.

본지는 이에 대해 더 자세한 이야기를 들어보고자 현재 대학원에서 석·박사 과정을 밟고 있는 이공계 학생 연구자와의 인터뷰를 진행했다.

 

Q1. 삭감된 예산안이 발표된 후 연구실 혹은 주위 반응은 어떠한가?

Q2. 이전과 비교해 연구 환경 면에서 달라진 점이 있는가?

Q3. R&D 예산 삭감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 궁금하다.

 

B씨(26·공학계열 석사 과정 재학 중)

A1. 처음 삭감된 예산안이 발표된 이후 우리 연구실도 예산이 삭감될지 걱정했다. 우려했던 대로 국가 과제의 예산이 일괄 삭감됐다. 건국 이래 R&D 예산이 삭감된 적이 없는 것을 알았기에 더욱 의아한 마음이다. 주위 반응도 비슷하며, 미국에서 대학원을 나온 모 교수님의 경우 다시 미국으로 돌아가는 것을 고려 중이라는 소문을 들었다.

A2. 학생 입장에서 가장 와닿은 변화는 인건비 삭감이다. 인건비가 삭감돼 학생 모집 규모가 축소됐고, 장비 구매에 있어서 운용할 수 있는 예산이 줄어들어 연구 규모가 줄어들기도 했다. 타 연구실에서 학부 연구생으로 있던 지인이 인건비 삭감 소식을 들은 뒤 석사 과정 진학을 포기하고 취업 준비를 하는 경우도 봤다.

A3. 예산 삭감에 대한 타당한 근거가 제시되지 않았다는 아쉬움이 든다. 충분한 논의에 앞서 이루어진 일이기에 연구자 입장에서 연구 의지를 잃는 것이 당연하다는 생각이 든다.

 

C씨(29·전기전자전공 박사 과정 재학 중)

A1. 주위에서는 대부분 연구실 예산이 삭감되거나 과제가 축소되는 것을 걱정하는 등 하나로 수렴되는 반응을 보였다. 다행히도 내가 속한 연구실의 경우 석사 과정 이하의 연구원들이 직접적인 금전적 손실을 볼 일은 없지만, 교수님 등 연구 책임자는 대부분 불만을 토로하는 상황이다.

A2. 올해 연구실에 실험 장비 1세트를 추가로 마련할 예정이었는데, 예산 삭감으로 인해 계획이 틀어졌다. 실험 장비가 추가된다면 연구실 전체 과제의 진행 일정을 모두 앞당길 수 있고, 추가적인 연구 수주도 가능하다. 연구 환경은 물론 과제 수주 측면에서도 아쉬움이 남는다.

A3. 연구실의 손익 관점에서만 보더라도 좋은 일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작은 규모의 연구실을 운영하는 교수님의 경우 연구 지원비를 줄이거나, 연구원을 내보내거나 연구 재료비를 줄이는 등의 조처를 할 수밖에 없다. 만약 여기서 연구원과 지원비를 그대로 유지한다면 재료비 등의 비용을 굉장히 보수적으로 운용해야 하는데, 이는 연구 일정에 차질을 빚고 연구 진행과 성과 도출에 정말 많은 어려움을 초래한다. 지방에 위치한 대학들이 대부분 이러한 처지에 놓여 있다. 이 때문에 지방 대학의 경쟁력 약화는 물론이며 수도권 집중 현상도 개선하지 못한다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R&D 예산 삭감 논란이 큰 파장을 낳은 데에는 ‘소통 부재’라는 배경이 있었다. 이에 따라 윤 대통령은 지난 1월 5일(금) 신년 인사회를 통해 임기 중 R&D 예산을 대폭 확대하겠다고 발표했다. 이후 지난 5일(화), 대통령실이 혁신 선도형 R&D 사업의 협의체를 출범하겠다고 공언하기도 했다. 이날 박상욱 대통령실 과학기술수석은 “R&D 예산 감액은 R&D 예산 시스템의 개혁 과정이며, 과기수석실은 중장기적 계획과 내년도 연구개발 투자 방향을 과학기술혁신본부, 재정당국과 협의하면서 수립 중이다.”라고 밝혔다. 이처럼 정부가 본격적으로 R&D 예산 복구 작업에 착수한 만큼, 연구 현장과의 활발한 소통을 통해 예산 삭감의 여파가 더는 커지지 않게끔 하는 것이 중요해 보인다.

 

▲지난해(2023년) 주요 정부출연연구기관 R&D예산 현황/출처: 동아일보
▲지난해(2023년) 주요 정부출연연구기관 R&D예산 현황/출처: 동아일보
▲정부 R&D 예산 삭감에 반대하는 대학(원)생들의 기자회견/출처: 경향신문
▲정부 R&D 예산 삭감에 반대하는 대학(원)생들의 기자회견/출처: 경향신문

 

 

*카르텔(Cartel): 동일 업종의 기업이 경쟁의 제한 또는 완화를 목적으로 가격, 생산량, 판로 따위에 대하여 협정을 맺는 것으로 형성하는 독점 형태

**출연금: 국가가 재정상 원조를 할 목적으로 법령에 근거해 민간에게 반대급부 없이 금전적으로 행하는 출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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