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영역

본문영역

박물관을 가다 – 이승조, 1978, Nucleus 78-99', 캔버스에 유화물감, 145.0×112.0cm

박물관을 가다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이승조(李承祚, 1941~ 1990)는 중·고등학교 재학 시절부터 그림을 그리기 시작하여 1960년 홍익대학교 서양화과에 입학하였다. 이승조가 미술대학에 다니던 1960년대 초 한국 미술계에는 국전 중심의 아카데미즘, 앵포르멜 경향이 팽배하였다. 앵포르멜 회화에 대한 획일적인 흐름을 극복하기 위해 이승조는 1962년 서승원, 최명영, 권영우 등의 홍익대학교 60학번 동급생 8명과 함께 그룹 ‘오리진(Origin)’을 결성하였다. ‘오리진’은 1967년 ‘무동인(ZERO GROUP)’, ‘신전동인(新展同人)’ 작가들과 함께 《한국청년작가연립전》을 개최하였으며, 이 전시는 당대의 한국 미술 경향이 기하학적 추상회화로 전환되는 시발점이 되었다. 이승조는 이 전시를 통해 자신의 대표적인 회화 연작이 되는 《핵(核, Nucleus)》을 처음 선보였다. ‘핵(核, Nucleus)’은 중심, 핵심과 같은 물질의 기본 요소이자 본질적인 것을 뜻하며, 흔히 ‘파이프 통의 회화’라고 불리는 이승조의 작품세계 전반을 상징한다.

연작 《핵》을 중심으로 변모된 이승조의 작품세계는 크게 세 시기로 구분할 수 있다. 1기로 구분되는 1968년에서 1973년까지는 ‘파이프 통의 회화’가 등장한 초기 시기이다. 1968년 회화에서 색띠에 명암효과를 넣은 입체적인 파이프 통이 처음 등장하여 평면에서의 입체적 조형 실험을 본격화하였다. 이러한 그의 전위적 예술 실험은 1969년 ‘AG(한국아방가르드협회)’의 창단 및 활동, 《앙뎅팡당》, 《에꼴 드 서울》, 《상파울루 비엔날레》 등의 전시 참여를 바탕으로 전개되었다. 이후 이승조의 작품세계는 다양한 색채를 사용했던 이전 시기와 달리 단색조의 회화 작업으로 변모되었다. 단색의 모노크롬(Mono-chrome) 회화의 특성이 두드러지는 1973년부터 1980년대 초반까지를 이승조의 작품세계 2기로 볼 수 있다. 이 시기 작가는 백색 혹은 무채색의 은은한 음영으로 파이프 통을 그려내어 다시 2차원적 회화의 본질을 추구하였다. 이후에는 1기와 2기의 집합체이자 검은 색채가 두드러지는 작업을 전개한 제3기가 등장한다. 제3기에서는 파이프 통의 이미지가 점차 사라지고 어두운 색조의 띠가 규칙적으로 구획되어 나타났다. 작가는 검은색과 같은 절제된 색의 사용과 불투명한 대비를 통해 추상회화의 본질을 표현하였다. 이렇듯 이승조는 여러 시기에 걸쳐 파이프 형상을 변주하여 그가 추구한 예술에서의 근원, 본질을 연작 《핵》을 통해 드러냈다.

홍익대학교박물관이 소장하고 있는 <Nucle-us 78-99>는 1978년에 제작된 작품으로 이승조가 어두운 색채의 회화를 전개하던 시기의 작업이다. 이 작품은 작가가 구축한 독자적인 방법론으로 제작되었다. 작가는 밑칠과 사포질을 반복하여 만들어낸 매끄러운 표면 위에 구상한 밑그림을 연필로 그려내고, 이 경계에 따라 평붓을 이용하여 원통형의 그라데이션을 만드는 방법론을 구축하였다. 이러한 반복적이고 수행적인 행위를 통해 작품은 질료적 완성도에 이를 뿐 아니라 캔버스와 물감의 본질적인 성격을 없앰으로써 근원으로의 환원에 대한 탐구를 확장하였다. 이 작품 또한 검은색의 불투명한 파이프 통을 반복적으로 배열하여 작가의 세계관을 대표하는 ‘핵’, 즉, 근원으로의 예술적 회귀를 제시하였다.

SNS 기사보내기

저작권자 © 홍대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최신기사

하단영역

모바일버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