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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주하는 기억, 행복과 가까워지다

인생을 말하는 기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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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의 법칙은 견고하다. 앞으로만 흐르며 절대 되돌릴 수 없다. 그러나 시간을 역행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 그것은 기억이다.” 드라마 <그 남자의 기억법>(MBC)의 주인공 ‘이정훈’은 기억을, 시간을 역행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라 말했다. 이처럼 기억은 인생을 살아가는 데 없어서는 안 되는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 그렇다면 우리는 기억을 어떻게 인식하고 있을까? 이번 COS에서는 기억을 소재로 하는 작품들을 살펴보며, 나에게 기억이란 무엇인지 생각해 보자.

 

[기억을 왜곡하다]

▲영화 '예감은 틀리지 않는다' 포스터/출처: 네이버 영화정보
▲영화 '예감은 틀리지 않는다' 포스터/출처: 네이버 영화정보

 

​​​​영화 <예감은 틀리지 않는다(The Sense of an Ending)>(2017)는 주인공 ‘토니 웹스터’의 평범한 노년의 삶으로 시작한다. 카메라 상점을 운영하는 그는 여느 때와 같은 하루를 보내며 우편을 건네받는다. 내용은 전 여자 친구 ‘베로니카 포드’의 어머니, ‘사라 포드’가 사망하며 토니에게 500파운드와 '아드리안 핀'의 일기장을 남겼다는 것이다. 아드리안은 토니의 고등학교 친구로 케임브리지 대학에 진학하며 토니와는 가끔 연락하며 지내는 사이였다. 대학에 다니던 토니는 어느 날, 아드리안으로부터 편지 한 통을 전해 받았다. 편지의 내용은 자신이 토니의 전 여자 친구, 베로니카와 교제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편지를 읽은 토니는 엽서에 ‘별걱정을 다 한다. 난 괜찮아.’라고 적어 답장을 보냈다. 며칠 뒤, 토니에게 전해진 건 아드리안 자살 소식이었다. 갑작스러운 아드리안의 자살은 토니에게 큰 충격이었다. 이를 계기로 토니와 베로니카는 재회했다. 토니는 일기장을 가진 베로니카에게 일기장을 넘겨달라 말하지만, 베로니카는 이미 일기장을 태워버렸다고 말하며 흰 봉투를 두고 자리를 뜬다.

봉투 속에는 토니의 왜곡된 기억이 들어있었다. 사실 토니는 축하가 담긴 엽서를 찢어버리고 악담을 가득 담아 답장을 남겼다. 편지의 진실을 마주한 그는 혼란스러웠고, 베로니카의 아들로 추정되는 남성의 주위를 맴돌며 그에게 다가갔다. 계속되는 만남에서 토니는 그 남성이 아드리안과 베로니카의 아들이 아닌, 아드리안과 사라 포드의 자식이라는 사실을 알게 된다. 토니는 어쩌면 악담 가득한 편지가 이런 결과를 만든 것은 아닐지 생각했다.

왜곡했던 기억을 마주한 토니는 다른 사람처럼 변했다. 전처 ‘마가렛’에게 무감하고 재미없고, 자신밖에 몰랐던 지난날을 진심으로 사과했다. 매일 아침 마주하는 집배원에게 커피 한 잔을 건네고, 베로니카에게 진심이 담긴 사과를 전하고, 가게에 찾아온 딸을 웃는 얼굴로 맞이했다.

 

▲영화 '예감은 틀리지 않는다' 스틸컷/출처: 네이버 영화정보
▲영화 '예감은 틀리지 않는다' 스틸컷/출처: 네이버 영화정보

 

영화의 원작 소설 『예감은 틀리지 않는다』(2011)의 저자 줄리언 반스(Julian Barnes, 1946~)는 소설『웃으면서 죽음을 이야기하는 방법』에서 이같이 말했다. “우리는 살고, 우리는 죽고, 우리는 기억되고, 우리는 잊힌다.” 이 책은 매우 평범해 보이는 토니의 왜곡된 기억을 소재로 기억의 왜곡이 누구에게나 일어날 수 있다는 것을 알려준다. 평범한 인물로 묘사되는 토니를 통해 그의 기억 왜곡이 다른 나라 이야기가 아닌 당장 나의 이야기가 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자신에게 유리하게 기억을 왜곡한 토니를 관객은 한심하게 바라보게 된다. 하지만 영화의 후반부, 왜곡된 기억을 돌아본 토니는 마가렛에게 진심을 전할 수 있었고 주어진 삶을 충실히 살아감에 행복을 느낄 수 있었다. 책의 저자 줄리언 반스가 토니의 이야기를 통해 우리에게 남기고자 하는 이야기는 ‘왜곡된 기억을 가진 자들의 자책’이 아니라 ‘우리 모두 기억을 왜곡한다. 두렵겠지만 왜곡된 기억을 외면하지 말고 직면하자. 그 속에서 행복을 찾자’가 아닐까. ‘기억은 우리를 배반하고, 착각은 생을 행복으로 이끈다.’ 몇십 년을 왜곡된 기억으로 살아온 토니의 삶은 이전에는 알지 못했지만, 행복과 함께였고 앞으로는 더 행복할 것이다.

 

[모든 것을 기억하는, 살기 위해 기억을 잊는]

 

▲드라마 '그 남자의 기억법' 포스터/출처: genie 매거진
▲드라마 '그 남자의 기억법' 포스터/출처: genie 매거진

 

“불행히도 난 너무 많은 것을 기억한다.” 시청률 1위 뉴스를 진행하는 이정훈 앵커는 과잉 기억 증후군을 앓고 있다. 과잉 기억 증후군이란 1년 365일 8,760시간을 전부 기억하는 증상을 말한다. 그는 첫사랑 ‘정서연’의 죽음 이후 감정이 없는 사람처럼 살아가고 있었다. “첫사랑 기억 안 난다고 했던 말, 거짓말이었어요. 아직도 못 잊고 있거든요. 아직도 사랑하고.” 그런 그에게 라이징 스타 배우 ‘여하진’이 찾아왔다. 정훈이 진행하는 뉴스 게스트로 출연한 하진은 과거 서연이 했던 말과 똑같은 말을 했고 이에 서연이 떠오른 정훈은 방송 사고를 낸다. 하지만 하진은 자신이 한 말에 관한 기억도, 서연에 대한 기억도 떠올리지 못한다. 사실 학창 시절 하진과 서연은 절친한 사이였다. 정훈과 마찬가지로 서연의 죽음은 하진에게도 큰 충격으로 남았고, 하진은 끝내 극단적 선택을 시도하기도 했다. 동생 덕에 목숨은 구할 수 있었지만, 그 아픔을 견딜 수 없었던 하진은 서연과 관련된 모든 기억을 잊었다. 하지만 하진의 삶 속에 남은 서연의 흔적은 하진이 서연의 친구였다는 것을 정훈에게 일깨워줬다. 정훈은 서연의 친구인 하진을 멀리하려 하지만 다가오는 하진을 밀어내지 못한다.

“어떤 기분일지 상상도 안 가, 나는. 소중한 기억을 잊고 살아야 한다는 거. 어느 쪽이 더 가여운 걸까. 영원히 잊지 못하는 내가, 아니면 살기 위해 잊어야 했던 여하진 씨가.” 그렇게 모든 것을 기억하는 정훈과 살기 위해 기억을 잊은 하진은 다른 서로를 마주하며 사랑하게 된다. 하지만 서연을 죽인 범인 ‘문성호’의 말로 하진은 기억을 되찾게 된다. 하진은 범인이 서연에게 접근할 수 있도록 자신이 서연의 연습실 비밀번호를 알려줬다는 것을 기억하게 된다. 자신을 자책하는 하진에게 하진의 잘못이 아니라며 정훈은 그녀의 곁을 지켜주고 그 덕분에 하진은 다시 일어선다.

 

▲드라마 '그 남자의 기억법' 스틸컷/출처: MBC 홈페이지
▲드라마 '그 남자의 기억법' 스틸컷/출처: MBC 홈페이지

 

“시도 때도 없이 기억들이 떠올라요. 그럴 때마다 그때 느꼈던 감정들도 느껴져요.” 과잉 기억 증후군을 설명하는 정훈의 말이다. 그는 잊고 싶은 기억조차 잊지 못해 고통을 느낀다. 반대로 하진은 살기 위해 기억을 잊었다. 기억의 공백을 느끼는 그녀는 또다시 기억을 잃을까 봐 불안까지 느낀다. 기억에 대한 정반대의 증상을 가진 둘은 똑같이 기억으로 고통받았다. 그런 둘은 어쩌면 서로를 만나기 전, 서로의 상태를 갈망했을 것이다. 기억을 대하는 서로의 방법을 마주한 둘은 서로를 이해하고 보듬어준다. 때론 자신 때문에 노력하는 상대의 모습에 부담을 느끼기도 하지만, 서로를 위하는 마음으로 각자의 아픔을 극복할 수 있도록 도와준다.

 

“난 여전히 너무 많은 것들을 기억한다. 아마도 그것들은 평생 옅어지지도, 무뎌지지도 않고 내 안에 나이테처럼 남아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제 난 그 기억들을 마음에 새긴 채 앞으로 나아가는 방법을 안다. 내 안에 남을 기억들이 흉터가 아니 추억이 될 수 있게. 지금 이순간을 아름답게 살아내면 된다는 걸 말이다.” 아픔을 극복한 둘은 입을 모아 말한다. 지금, 이 순간을 아름답게 살아내자고. 아픈 기억으로 주저앉은 우리 모두에게 아픔을 극복한 그들이 전하는 말은 지금을 행복하게 살아내자며 일으켜준다. 영화의 마지막, 일상으로 돌아가 숨겨진 행복을 마주한 토니처럼 우리 모두 기억을 마주하고, 이겨내고, 행복해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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