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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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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은 작은 나와 함께 롤러코스터를 몇 번이고 타 주었다. 당신에게 고소공포증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 것은 내가 조금 자라고 난 후였다.

어느 밤에는 문 너머에서 나를 향한 사랑 고백이 들려온다. 내가 잘되었으면 좋겠다. 나는 이미 잘하고 있고 나에게 해줄 수 있는 모든 것을 다 해주고 싶다고. 내 방문을 두드리고 조심스레 나의 안부를 묻는 당신에게 물기 어린 목소리로 나는 나의 다짐을 전한다. 잘 살겠노라고.

오랜 기숙사 생활로 잊고 있던 새벽 인사를 이제 안다. 자고 있으면 쓰다듬는 손길, 볼이나 이마에 가볍게 하는 입맞춤이 느껴지면 그것이 당신임을 이제는 안다. 당신 손을 잡을 때면 엄지와 검지 사이에 나의 네 손가락을 넣고 남은 하나의 약지는 꼭 당신의 검지와 중지 사이에 끼워 넣었다. 안정감이 드는 기분이었다. 안정적인 사람이 되고 싶다고 생각하는 요즘이다. 내가 누군가에게 기댈 수 있는 사람이 되었으면 좋겠고 도움이 되는 사람이기를 바란다. 그럴 때면 찾는 어른의 모습은 당신이다. 존경한다는 말로는 부족하다. 내가 이미 자신을 뛰어넘었다며 얘기해 주는 당신께 나는 어떻게 보답해야 할지 감조차 잡히지 않는다.

삶의 의미에 대해서 생각한다. 결국 산다는 것은 아무런 의미가 없어 보인다. 그래서 더 사람과 살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무의미한 삶에 의미를 부여해 주고, 같이 삶의 의미를 만들어 가고 싶은 사람들과 함께 살아가겠다. 부모님과 식사할 때면 나는 이런 추상적인 얘기를 했다. 미묘하게 인정을 바랐는지도 모른다. 그날도 그런 날 중에 하루였고, 당신은 사람이 중요하다는 것을 깨달았다고 얘기하는 나를 기특하다 하셨다. 당신께서는 나이가 좀 더 들고 사회를 겪어보고 깨달은 것을 내가 벌써 느낀 것이장하다고 하셨다.

주말 아침이면 기분 좋은 기름 냄새에 잠이 깬다. 우리가 언젠가 함께 장을 봐 온 것들로 만들어진 아침 식사는 늘 그렇듯 맛이 투명했다. 당신이 내려준 커피와 당신의 웃음소리 요일 개념이 없던 나는 어느새 주말이 기다려진다. 사랑이 많은 사람이라는 소리를 듣는다. 당신 덕분이다. 어렴풋이 사랑이 무엇인지 느껴가고 있는 22살 봄, 내 사랑은 전부 당신에게서 왔음을 이제는 안다. 나는 이제 사랑을 속삭일 때 이것이 응당 있어야 하는 자리에 그 단어를 놓아준 듯한 기분이 든다.

나는 어두운 방 안에 아침 햇빛이 들어오도록 블라인드를 걷는 일을 사랑한다. 고요한 집안에서 마시는 따뜻한 차 한 잔을 사랑한다. 파란 하늘 아래 미소를 띠며 걷는 등굣길을 사랑한다. 자기 전에 휴대전화를 들여다보며 놓쳤던 친구들의 소식을 따라잡는 시간을 사랑한다. 제 몸집보다 큰 교복을 입은 학생들을 사랑한다. 먼저 인사를 건네주시는 버스 기사님들을 사랑한다. 곧 내린다며 자신의 자리를 양보하는 대학생들을 사랑한다. 어색하지만 그럼에도 인사를 하며 지내는 아파트 주민들을 사랑한다. 큰 눈망울을 깜박이며 웃어주는 아기들을 사랑한다. 평생 느껴보지 못한 세계를 소개해 준 나의 연인을 사랑한다. 함께 웃고 떠들다가 때로는 울어준 나의 친구들을 사랑한다. 한없는 사랑으로 나를 길러준 나의 어머니를 사랑한다. 그리고 국수를 좋아하는 당신, 아침잠이 없는 당신, 레시피를 보고 척척 요리를 잘하는 당신, 내가 몇 년 전 만들어드린 가족 반지를 아직도 빼지 않고 끼고 다니는 당신을 사랑한다.

세상에 어떻게 이런 사랑이 존재할까. 나도 당신이 될 수 있을까. 나도 그런 사랑을 주는 존재가 될 수 있을까. 어렴풋이 알 것 같은 사랑을 즐기고, 행복을 노래하다가 당신이 되고 싶다. 나도 또 다른 '나'를 낳고 그 아이에게 당신의 사랑을 주고 싶다. 삶에 사랑이 가득한 사람이 되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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