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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 없는 삶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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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는 날까지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이 없기를’. 시인 윤동주의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詩)』 (1948)에 수록된 서시(序詩)의 한 구절이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유명한 시구라 해도 과언이 아닐 이 구절은 오늘날까지도 꾸준히 인용되며 수많은 이들의 공감을 사고 있다. 그러나 기자는 이 구절을 볼 때마다 한 가지 의문이 든다. 어떻게 사람이 죽는날까지 한 점의 부끄럼조차 없을 수 있다는 것일까?

물론 기자를 비롯한 대부분 사람들은 부끄럼을 한 점이라도 덜기 위해 노력한다. 우리의 학창 시절을 돌아보자. 수업 시간에 아는 문제가 나왔을 때, 당신은 손을 번쩍 들고 나가 칠판에 자신이 생각한 답을 쓸 수 있는 학생이었는가? 반대로 모르는 내용이 나왔을 때, 그냥 아는 척하며 넘어간 적은 없었는가? 기자의 학창 시절을 돌아보면 늘 연기를 하며 지냈던 것 같다. 모두가 보는 앞에서 내가 쓴 답이 틀릴까, 모두가 아는 내용인데 나만 모를까 매번 전전긍긍하며 지냈더랬다.

그리고 여기, 부끄럼 한 점 덜어보려다 한 보따리 짊어지게 된 여자가 있다. 기자는 본지 보따리 기사를 위해 <나의 해방일지>(JTBC)를 다시 시청 했다. 이야기는 경기도 촌구석에 사는 삼 남매를 중심으로 흘러간다. 이 삼 남매 중 첫째인 ‘기정’은 이번 겨울에는 기필코 사랑을 하겠노라 다짐한다. 그리고 최근, 짝사랑을 시작했다. 상대를 좋아하는 감정은 이미 주체할 수 없을 만큼 커져버렸으나, 이 마음을 고백하기엔 자신이 없었다. 거절을 예감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감정을 고백하 지 않고서는 견딜 수 없었던 기정은 결국 동생 ‘창희’와 그의 친구 ‘두환’에게 한 가지 부탁하게 된다. 만약 짝사랑 상대에게 고백을 거절당할 경우, 오토바이를 타고 지나가며 자신의 어깨를 살짝 밀쳐달라는 것.

기정의 계획은 다음과 같았다. 창희와 두환이 자신의 어깨를 살짝 밀치고 지나가면 그대로 쓰러져 기절하는 것이다. 이후 눈을 떴을 때, 자신이 고백했던 일을 기억하지 못하는 척. 단기기억상실증을연기하면 앞으로도 그를 마주할 때 얼굴 붉힐 일이 없을 것이라는 논리였다. 그리고 결전의 날이 다가왔다. 고백을 망설이는 기정. 그런 그녀의 시야에 오토바이를 타고 뒤편에서 대기하고 있는 창희와 두환이 들어왔다. 지원군까지 확인했겠다, 기정은 어렵게 용기내어 자신의 마음을 전한다.

결과는 역시나 예상대로였다. 정중하지만 단호한 거절. 당장이라도 눈물을 쏟아내고 싶었지만, 그녀에겐 해야 할 일이 있었다. 기정은 울음을 꾹 참으며 대기 중이던 동생에게 신호를 보냈다. 그러나 몇 가지 문제가 생겼다. 하나는 창희가 생각보다 기정을 세게 밀쳤다는 것이고, 또 다른 하나는 기정의 반사신경이 생각보다 좋았다는 것이 다. 그리고 위험하게 넘어질 뻔한 기정은 자신도 몰랐던 뛰어난 반사신경을 발휘해 바닥에 손을 턱 짚어버렸다. 기절하기엔 너무나도 완벽했던 착지, 그리고 늦어버린 타이밍. 크게 넘어진 그녀가 걱정됐던 상대가 달려와 그녀의 상태를 확인한다. 이 상황이 견딜 수 없이 부끄러웠던 기정은 금이 간 손목을 부여잡고 다리를 절뚝거리며 그 자리를 부리나케 벗어난다.

손목뼈에도, 마지막 자존심에도 금이 간 기정은 한동안 눈물로 밤을 지새워 눈이 빨갛게 부어 있었 다. 그런 그녀에게 동생 창희는 이런 말을 한다.

“인간사가 원래 쪽팔림의 역사야. 태어나는 순간 부터 쪽팔려. 빨가벗고 태어나.”

그 사건 이후 기정은 핸드폰 전원을 꺼두었다. 그날 이후 그의 연락이 끊겼을까봐 두려웠기 때문이다. 그러나 며칠 뒤, 조심스레 전원을 켜본 핸드폰에는 그녀를 걱정하고, 그녀의 마음을 알아채지 못한 스스로의 지난날을 반성하는 진심어린 그의 연락이 쌓여있었다. 기정은 이날을 기점으로, 이번 겨울에는 정말 사랑을 할 수 있겠다며 한결 편한 얼굴을 하며 웃는다.

그렇다. 모든 인간은 날 때부터 부끄러운 순간을 마주한다. 다시말해, 한 점 부끄럼이 없는 삶을 살기엔 진작 글러 먹었다는 것이다. 어차피 부끄럼 많은 생애를 살게 되는 것이라면, 그냥 도전해 보자. 기정은 해당 사건으로 부끄럼을 한 보따리 짊어지게 되었지만 동시에 이번 겨울이 가기 전, 그녀가 세웠던 목표를 이뤘다. 물론 실패했을 때 쥐구멍에 숨고 싶어질 수도 있다. 그러나 이를 딛고 일어섰을 때, 우리가 바라보는 세상은 더 넓어져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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