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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을 숨 쉬어 내는 것만으로도 투쟁인 이들이 있다

'일하는 학교' 사무국장 이정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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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하는 학교’의 이정현 사무국장
▲‘일하는 학교’의 이정현 사무국장

우리에게 당연히 주어진 것들은 타인에게도 당연해야 한다. 여기, 당연한 것들을 하나하나 만들어가며 딛어보는 학교가 있다. ‘일하는 학교’다. 위기·고립 청소년, 청년의 성장을 믿음이란 어깨로 짊어진 곳이다. 그들의 온전한 자립이 완성되는 날까지 학교의 불은 꺼지지 않는다. 경기도 성남시에 위치한 이곳에서 이정현 사무국장을 만나 이야기를 나누어 봤다.

 

Q. ‘일하는 학교’는 어떤 연유로 설립되었는지 궁금하다.

A. ‘일하는 학교’는 말 그대로 일을 ‘하는’ 학교다. 이론을 배우기보다는 직접 체험하고 현장에서 배우자는 취지로 설립되었다. 이곳에 오기 전 7년 동안 비인가 대안학교에서 교사로 일하며 학교 밖 10대 청소년들과 함께 지냈다. 그곳에서 근무하며 알게 된 것은 학교를 나와 부모의 보살핌도, 안전한 가정도 없이 방황하는 아이들이 너무나 많다는 것이었다. 해당 학교에서는 교사들과 함께 아이들의 성장과 즐거움을 찾게 해주었으나, 졸업 후 사회로 나가면 평범하게라도 자리를 잡은 아이들이 드물었다. 마음의 병을 얻어 병원에 입원하는 아이, 스스로 생을 마감하는 아이들이 많았다. 20대가 되면 무방비로 학교를 졸업해서 너무도 어려운 하루를 다시 보내야 하는 것이었다. 그래서 2013년에 주변 교사들과 청년자립학교를 세웠다. 그런 아이들을 지켜보는 우리가 힘들어서 설립했다.

 

Q. 일을 배우는 것 외에 위기·고립 청소년, 청년들을 위해 다른 지원도 하고 있는지 궁금하다.

A. 기본적으로는 진로를 찾고 취업하는 게 가장 우선되는 목표다. 그래서 기존에는 진로 탐색이나 취업 프로그램 위주로 진행했다. 그런데 얼마 전부터는 학교에 고립․은둔 청소년과 청년이 많아졌다. 그런 친구들은 진로를 찾거나 취업 준비를 하는 프로그램에 오면 의미 있는 시간을 갖기 어렵다. 일을 할 만큼 마음의 준비가 되어있지 않은 것이다. 그래서 자립으로 나아가는 과정을 세 단계로 나누어 진행하게 되었다.

 

 

▲‘나 사용 설명서’. 이곳을 찾은 청소년과 청년은 먼저 나를 이해한 뒤 타인과 어울리는 연습을 한다.
▲‘나 사용 설명서’. 이곳을 찾은 청소년과 청년은 먼저 나를 이해한 뒤 타인과 어울리는 연습을 한다.

Q. 프로그램의 첫 단계는 무엇인지 소개 부탁한다.

A. 첫 단계는 ‘괜찮은 하루’라는 일상 회복 프로그램이다. 보통 6~7개월 정도 진행된다. 고립 은둔 상태에 있는 친구들을 일단 학교로 데리고 와서 우리와 관계를 형성하는 것이 목표이다. 해당 프로그램에는 ‘안 해본 것 해보기’ 미션이 있다. 원래부터 해보고 싶었는데 시도를 못 해본 작은 것들을 도전해본다. 주변 사람들과 인간관계가 형성되어 있지 않거나 가족이 없는 청년들은 보통 우리가 ‘당연히 해보지 않았나?’ 싶은 걸 못 해본 게 의외로 많다. ‘놀이 공원에 가보고 싶다.’, ‘화장품을 사러 가보고 싶다.’ 최근에는 ‘맛집에 가보고 싶다.’ 까지도 있다. 그런 활동에 비용도 지원해 주고, 혼자 가기 어려우면 교사가 동행한다. 그렇게 도움 속에서라도 오랫동안 원하던 것에 한 발짝 내디뎌보며 성취 경험을 시작한다.

 

 

▲‘일하는 학교’에서 커피를 배우는 공간이다.
▲‘일하는 학교’에서 커피를 배우는 공간이다.

Q. 일상 속 자그마한 성취 경험에서 시작해, 점점 더 큰 일도 해낼 수 있도록 돕겠다는 취지가 마음에 닿는다. 다음 단계도 소개 부탁한다.

A. 첫 단계를 마치면, 조금이라도 ‘나에게 맞는 일을 찾아야겠다’는 동기가 생긴다. 그리고 이때 ‘길 찾기 학교’ 프로그램을 진행한다. 약 3개월 동안 최소 3개 분야를 정해서 한 분야를 배웠으면 또 다른 분야로 넘어가는 식으로 단기간 여러 업무를 경험한다. 바리스타, 디자인, 사무, 영상 제작을 포함해 총 6개 분야가 있다. 이처럼 여러 분야를 경험하는 이유는 ‘일하는 학교’에 오는 청소년과 청년들이 의사결정을 어려워하기 때문이다. ‘대학에서 관련 전공을 한 것도 아니고, 또 무언가를 잘해본 경험도 없는데 낯선 곳에서 잘 적응할 수 있을까?’ 와 같은 걱정으로 시작을 못하고 있다. 그래서 우리는 시작점을 만들기로 했다. ‘일단 못해도 되니까 한번 해보자. 남들에게 보일 것도 아니니까 이 안에서 3개월 동안 마음 놓고 배워보고, 직업 체험까지 해보자.’하는 식으로 일단 첫발을 뗄 수 있도록 지지하고 있다.

 

Q. 마지막 단계는 어떻게 진행되는가.

A. 최종적으로는 ‘꽃길 프로젝트’가 있다. 1년 동안 하나의 분야를 정해서 자격증도 따고 취업 전선에 한번 진입해 보는 것까지의 과정이다. 사실 취업을 1년 안에 성공하기란 어렵다. 시간 자체가 정말 금방 가기도 할 뿐만 아니라 준비하다보면 힘들고, 자신이 없어질 땐 숨게 되기도 한다. 그래서 ‘무언가를 해야지.’ 하고 배우기 시작하면 1년이 거의 끝나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공식적으로는 프로그램 진행 기간을 1년으로 두고 있지만, 보통은 2년 정도를 들인다. 마지막 단계 프로그램에 참여한 청소년과 청년들은 특정 분야 자격증을 취득하고 구직을 한다. 이력서, 자기소개서를 쓰는 연습도 해보고 취업처에 입사해 약 3개월을 다녀보는 과정이다. 이 단계에서 학교는 회사 적응을 최대한 돕고 있다.

 

Q. 프로그램이 끝난 후에도 학교 출신 청소년과 청년을 돕는가.

A. 각 프로그램의 기간은 짧으면 3개월, 길면 1년이다. 그리고 프로그램을 마치면 그들이 무엇이든 알아서 해야 하는 상황이 닥친다. 그 상황이 됐을 때 마음을 터놓을 수 있는 관계가 없으면 혼자 힘들어하다가 포기하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청년 소모임 활동을 진행하며 청년들이 계속 교류할 수 있는 장을 만들고, 더불어 그들에게 어려움이 있는지 지속적으로 확인하고 있다.

 

 

▲행정안전부 주관·주최의 2022년 청년공동체 활성화 사업에서 ‘일하는 학교’의 ‘글다방’팀이 장려상을 받았다.
▲행정안전부 주관·주최의 2022년 청년공동체 활성화 사업에서 ‘일하는 학교’의 ‘글다방’팀이 장려상을 받았다.

Q. 단지 사회로 진출시키는 것에서 그치지 않고 취업 이후에도, 혹은 기관에 나오지 않는 청년들에게도 지속해서 관심을 두고 있다. 이 점에서 교육기관인 ‘학교’보다는 한 아이의 독립을 함께 준비하는 ‘가정’에 가깝다고 느꼈다. 실제로도 가정과 같은 역할을 추구하는가.

A. 그렇다. 사회적 가족 역할을 하려고 한다. 다만 가진 게 많지는 않아서 가족으로서 할 수 있는 모든 걸 다 해줄 수는 없다. 그럼에도 없는 것보다 나은 정도의 역할은 하려고 한다. 청년들이 사회로 나간 이후에도 어른의 도움이 필요할 때면 스스럼없이 연락을 주고받는다. 정서적인 지지는 기본이며 실질적으로도 마찬가지다. 만약 아이를 낳고 양육하면 필요한 물건을 보내주고 육아 방법도 알려준다. ‘일하는 학교’를 오가는 청년들도 끊임없이 지켜봐야한다. 현재는 프로그램에 잘 나오더라도 계속 차질 없이 활동을 이어가리라는 보장은 없다. 그래서 끊임없이 활동에 참여할 수 있도록 꾸준히 지켜봐야 한다. 활동에 나오지 않고 숨어버린 청년들에게도 필요한 정보나 프로그램을 이야기하면서 같이 해보자고 연락한다. 그러면 답장 없는 경우가 대부분이긴 하다. 그런데 나중에는 활동에 나와서 말하길, 계속 확인했다고 한다. 그때 누군가 한 명이라도 자신을 지켜봐 주는 사람이 있다면, 삶 하나를 유지하는 데에 커다란 지지가 된다는 것을 체감했다.

 

 

▲단지 교육기관을 넘어, 안식할 사람과 공간이 되고 싶은 ‘일하는 학교’다.
▲단지 교육기관을 넘어, 안식할 사람과 공간이 되고 싶은 ‘일하는 학교’다.

Q. 우리 사회가 청소년 위기·고립 청소년과 청년을 돕기 위해서 어떤 태도를 갖춰야 한다고 생각하는지 궁금하다.

A. 어떤 사람들에게는 당연하지 않은 것들이 우리에게는 숨쉬듯 당연하다는 생각을 해야한다. 집, 친구, 부모, 기회 무엇 하나 당연하지 않다. 처음부터 하나씩 만들어가야 하는 사람도 있다. 그래서 우리 사회가 겸허해질 필요가 있다는 생각을 한다. 더불어 어른들은 어려움을 겪는 청년과 청소년에게 노력해 보라는 이야기부터 멈춰야 한다. 사회가 생각하는 평균치를 달성하지 못했다고 해서 정말 노력하지 않은 것인가. 집이 없고 가족이 없는 빈곤 상황에서는 그저 살아내는 것조차 무척 소모적인 일이다. 그렇다면 단지 버티는 것도 노력이 아닌가 묻고 싶다. 하루를 견디는 것부터가 엄청난 노력인 사람도 있다. 그렇게 생각하면 노력해야 하는 건 어느 쪽인지 보이는 것이다.

 

Q. 우리에게 당연하다면 그들에게도 당연할 수 있도록 갖춰야 한다는 말로 들린다.

A. 그렇다. 최소한 4가지 정도는 당연히 갖춰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가족 △집 △학교 △친구는 사람이 사는 데 정말 필수다. 그러니 당연하게도 보통의 사람은 이를 다 갖추고 있다. 친구가 한 명도 없는 경우는 드물고, 집이 없는 경우도 많지는 않을 것이다. 그런데 이 지역에는 그런 사람들이 되게 많다. 그러니 누군가는 없을 수도 있겠다고 생각을 한 번이라도 더 했으면 한다. 특히 청년 지원 정책 프로그램은 그 네가지가 있다는 전제하에 진행되는 경우가 대다수다. 컴퓨터로 신청하라고 말하면, 컴퓨터가 없는 사람이 있다. 프로그램에서 그룹을 짜주고 조별로 활동을 하라고 하면, 어떤 친구는 그 자체로 무서울 수 있다. 주변에 생각지 못한 어려움을 가진 사람이 언제든 있다고 생각하며 세심하게 볼 수 있는 시선을 잊지 않아야 한다.

 

▲교사들은 학생들이 앞으로의 먼 여정에서도 이곳에서의 사랑을 기억하길 바란다.
▲교사들은 학생들이 앞으로의 먼 여정에서도 이곳에서의 사랑을 기억하길 바란다.

Q. 마지막으로 교육 소외계층을 돕는 일에 관심이 있는 독자에게 한마디 부탁한다.

A. 만약 재능기부나 교육 관련 봉사를 하게 된다면 오랫동안 꾸준히 하길 바란다. 혹시 내가 가볍게 생각하는 건 아닌지 생각해 보아야 하며, 하나의 스펙이나 커리어 수단으로만 생각하고 있는 건 아닌지 돌아봤으면 좋겠다. 누군가의 앞날, 심지어는 당장의 하루를 바꿔놓는 역할이니 말이다. 교육이라는 것은 그저 무언가를 제공하는 서비스가 아니라 사람을 만나서 관계 맺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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