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덕후, 특유의 집중력과 전문성으로 세상을 뒤엎다음지에서 무한 가능성의 능력자로 다시 태어나기까지

“너, 내 동료가 돼라.” 일본 유명 애니메이션 ‘원피스’의 가슴 끓는 명대사 중 하나이다. 현 시대를 살고 있는, 일본 애니메이션 중 가장 인기 있는 원피스, 나루토, 블리츠를 보고 자라 ‘원나블 세대’라고 불리는 20~30대층은 누구나 한 번쯤 애니메이션 주인공들과 모험을 떠나는 상상을 한 적이 있을 것이다. 이처럼 위에서 언급한 일본 유명 애니메이션이 한국으로 넘어오면서 넓게는 1980년대에서 2000년대까지 본격적으로 ‘덕후’라는 단어가 수면으로 떠오르기 시작한다. 이후, 덕후는 여러 차례 의미 변화를 통해 현재 우리에게 친숙한 의미를 갖게 되었다. 

  우선, 덕후는 1970년대 일본에서 ‘오타쿠(オタク)’라는 단어로 처음 사용되었다. 본래 의미는 ‘당신’, ‘댁’과 같은 높임말이었다. 초기에는 만화나 애니메이션, 게임, 퍼스널 컴퓨터, 비디오 등 특정 대중문화에 취미를 가진 사람들이 서로를 존중하는 의미에서 ‘오타쿠’라는 말을 사용했으나, 1989년 미야자키 츠토무의 여아 성범죄 사건 이후 ‘애니메이션, 게임에 파묻혀 사는 인간들’, ‘집에서 틀어박혀 사는 어둡고 사교성 없는 녀석들’이라는 뜻으로 변질되어 인식되기 시작했다. 그리고 1990년대 이후부터 점차 의미가 확대되어, 한 분야에 열중하는 마니아보다 더욱 심취해 있는 사람을 이르는 말로 불리기 시작했다. 특정 분야에 대한 전문가라는 긍정적인 의미로 발전하게 된 것이다. 자, 지금부터 우여곡절 끝에 비로소 빛을 보게 된, 생소하지만 생소하지 않은 ‘덕후’의 세계로 빠져보자.

 

▲일본 유명 애니메이션 '원피스'

덕후의 유래: 시선의 변화

현재 덕후에 대해 좋아하는 분야를 심도 있게 탐구하는 사람으로 보는 긍정적인 시선도 있지만, 여전히 타인에게 지나치거나 현실과 동떨어져 일상생활에 지장을 줄 정도의 ‘덕질하는 사람’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기도 하다. 덕후(오타쿠) 문화가 처음 시작된 일본에서도 덕후는 한동안 부정적으로 인식되기도 했다. 실제로, 1997년까지 ‘오타쿠’라는 용어를 방송에서 금지시켰을 정도였다. 우리나라 역시 과거에는 덕후를 부정적으로 바라보는 시선이 많았다. ‘사회성이 떨어지고 혼자만의 세계에 빠진 괴짜’라는 부정적인 이미지를 갖고 본 것이다. 실질적인 대가가 없는 일에 몰두하는 것이 일반인의 눈에는 ‘쓸데없는 짓’으로 보이기도 했다. 만화, 장난감 같은 대상에 몰입하는 것을 두고 유아적 취향으로 깎아내리는 시선도 존재했다. 또한, 외로움을 느끼는 현대인이 특정 대상에 대해 애정과 사랑을 느끼는 행동이라고 평가하기도 했다. 이처럼, 덕후들의 특정 대상에 대한 사랑은 그저 일방향적인 ‘짝사랑’으로 치부되었다.

 한편, 프랑스 저널리스트이자 일본을 전문적으로 분석하는 에티엔 바랄(Etienne Barral, 1964~)은 덕후가 생기게 된 배경을 다른 관점에서 관찰했다. 그는 오타쿠란 낱말 그 자체가 젊은 사람끼리 사용하는 일종의 비인칭 존칭으로서, 다른 사람들과의 소통에 대한 어려움을 단적으로 상징한다고 주장했다. 소통의 어려움이 덕후로 하여금 일종의 ‘도피 사회’로 도망치게 만들었다는 것이다. 이로 인해, 덕후는 도피 사회에서 자신의 인격을 확립하기 위해 자신에게 가까운 영역, 즉 만화, 영화, 아이돌, 컴퓨터에 몰두하게 된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처럼 덕후에 대한 부정적인 시선은 오랫동안 지속되어 왔다.

  그러나 덕후는 현대에 이르러 오랫동안 지속되어 오던 부정적인 이미지를 탈피하기 시작했다. 일본 애니메이션이 세계적으로 인정받게 되면서, 덕후 문화는 전 세계로 퍼져나가 세계 각 도시의 일본 대중문화 마니아들을 상대로 한 만화 및 캐릭터 판매점이 들어서기 시작했다. 점점 덕후라는 존재에 대한 접근성이 높아지고, 일반 사람들에게 친숙한 이미지로 작용하게 된 것이다. 그 이후로, 오늘날의 덕후는 무엇에 깊이 몰두하는 모든 사람들에게 적용되는 만능의 접미어로 사용되고 있다. 덕후 간의 교류가 확대되고 그들이 세상 밖으로 하나둘씩 나오게 되면서 그들의 관심사를 ‘개인의 취향’이나 ‘개성’ 정도로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지기 시작했다. 특히, MBC 예능 프로그램 <능력자들(2015)>은 성공한 덕후들의 모습을 소개하는 대표적인 프로그램 중 하나이다. 앵무새 덕후, 소방서 덕후, 매운맛 덕후, 롤러코스터 덕후 등 다양한 분야의 ‘전문가’들이 출연해 자신의 ‘덕력’을 공개한다. 몇 년 전만 해도 취미와 개성보다는 시간 낭비로만 여겨졌을 법한 일들이 지금은 사람들의 부러움을 사고 전문가로서 인정받고 있는 것이다. 지난 2009년 tvN에서 방영했던 프로그램 <화성인바이러스(2013)> 또한 덕후가 세상으로 나올 수 있게 일조한 프로그램 중에 하나이다. 이는 보통 사람들과는 전혀 다른 생활습관을 갖고 있는 사람들과 대화하며, 다양한 덕후들을 소개하는 프로그램이었다. 이처럼, 그동안의 편견을 깨고 덕후에게 좋은 인식을 심어 줄 수 있는 다양한 미디어 장치가 뒷받침되면서 화려한 ‘제2의 인생’이 시작된 셈이다.

 

▲덕후들을 소개하는 MBC 예능 프로그램 '능력자들(2015)'

 

덕후의 능력과 가능성: 콘텐츠로서의 변화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를 기리는 마리몬드 굿즈

앞서 보았듯, 덕후의 취향이 관련 제품의 생산과 소비에까지 영향을 끼친다는 사실이 증명됨에 따라 덕후를 콘텐츠 시장을 떠받드는 중요한 존재로 인식하는 관점이 생겨났다. 이에 대해 기업은 덕후의 소비 심리에 초점을 맞추게 되었는데, 이 심리를 이용한 ‘굿즈(Goods)’가 대표적인 예이다. 굿즈란, 아이돌, 영화, 드라마, 소설, 애니메이션 등 문화 장르 팬덤계 전반에서 사용되는 단어로, 해당 장르 및 인물의 아이덴티티를 나타낼 수 있는 모든 요소를 주제로 제작된 상품을 뜻한다. 소비자들은 이에 의미를 부여하고 그것을 기념해줄 굿즈를 찾게 되는 것이다. 굿즈에는 구매를 통해 본인이 부여한 의미에 부합하는 표식과 상징을 찾아 ‘동참’이라는 행위를 거쳐 만족감을 극대화하는 심리가 반영되어 있다.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인 할머니의 존귀함을 재조명하기 위해 진행한 마리몬드 굿즈, 품절 대란까지 이어진 평창 동계올림픽 굿즈와 같이 기능 혹은 가격보다 그 안에 담긴 의미와 감성을 중시하는 소비가 늘어난 것이다. 하지만 과도한 ‘덕질’이 잘못된 소비문화를 확산시킬 가능성이 있다는 주장도 제기되었다. 소비 쏠림 현상이 기업의 과도한 마케팅과 결합하면 과소비, 충동구매로 이어질 수 있다는 것이다. 이처럼, 현대의 덕후는 소비 패턴에도 영향을 끼칠 수 있을 만큼의 파급력을 갖게 되었다.

▲키덜트 문화의 대표적인 예: 레고

  덕후의 파급력은 소비뿐만 아니라 사회의 전반적인 문화에도 영향을 끼쳤다. 일례로, ‘어린이 같은 감성과 취향을 가진 어른’을 뜻하는 키덜트(Kid + Adult) 문화가 생겨나기 시작했다. 현대 성인들이 추구하는 재미, 유치함, 판타지 등의 가치가 대중문화의 하나로 발현된 것이다. 어린 아이들의 취미로 여겨졌던 프라모델과 레고 조립에 몰두하고 테디베어 곰 인형을 수집하는 것이 그 예이다. 이와 같이, 어린이들로만 한정지어졌던 문화가 향수를 느끼는 감정과 결합되어 문화를 수용하는 사람들의 스펙트럼을 넓히는 효과를 불러 일으켰다, 키덜트는 나이에 비례해서 취미도 성숙하게 바뀌어야 한다는 사회적 관습과 고정관념에서 벗어나, 인생을 스스로 재미있게 즐기려는 성인을 의미하기도 하는데, 현대 성인들이 각박한 일상생활에서의 일탈을 느끼며 어린 시절의 환상을 통해 정서적 안정을 얻고 스트레스를 해소하려는 사회 현상으로도 볼 수 있다. 그로 인해, 키덜트 문화의 콘셉트는 현대 성인들에게 새로운 라이프스타일(Lifestyle)을 지향하도록 하는 매개체 역할을 담당하게 된 것이다. 더불어, 다양한 커뮤니케이션 매체의 발달로 키덜트 문화가 일상 속에 보편화되면서 영화, 음악, 예술, 패션 등 여러 분야의 콘셉트로도 응용되고 있다. 더불어, 직장과 개인 생활의 양립을 중시하는 워라밸(Work Life Balance) 세대라는 신조어가 등장하면서 직장이 무조건적인 우선순위가 아니라, 자신의 행복을 중요시 한다는 점에서 ‘덕업일치’가 해답이라는 사회 풍조도 일고 있다.

 

누구에게나 뜨거운 열정을 가진 특정 분야가 존재할 것이다. 설사 그것이 주류 문화가 아니라 할지라도, 그 분야가 누군가에게 의미 있고 몰두하는 대상이라면 그 자체만으로 충분히 존중받아 마땅한 일이다. 음지에서 그들만의 세계를 만들었던 지난날은 뒤로하고, 특정 분야에 대해 깊게 탐구하며 마침내 새로운 가능성을 찾아낸 그들에게 찬사를 보내지 않을 이유가 있을까. 마지막으로, 아직도 사회적 시선이 두려워 음지에 머물러 있는 소중한 덕후들에게 전한다. “세상은 당신을 기다리고 있다. 아직까지도 잔재하는 사회의 편견과 고정관념을 보란 듯이 깨주길 바란다. 소중한 당신을 진심으로 환영한다.”

 

김승혁 기자  (adprkims45@mail.hongik.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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