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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길웅, <상흔 A Scar No.2>(196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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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길웅, <상흔 A Scar No.2>, 1968, 유화, 130x130cm, 소장번호 1788
박길웅, <상흔 A Scar No.2>, 1968, 유화, 130x130cm, 소장번호 1788

이번 호에서는 37세의 젊은 나이에 스러져간 박길웅 작가의 작품에 대한 글을 실어보고자 한다. 1940년 황해도 사리원에서 출생한 작가는 1962년 <동심의 세계>라는 작품을 시작으로 정규 미술교육을 받기도 이전인 1963년에 개인전을 열만큼 일찍이 미술에 대한 열정을 보여 왔다. 그의 재능이 두각을 나타내기 시작한 시기는 서라벌예술대학에 입학하여 정식 미술교육을 받기 시작한 1964년으로, 당시 미술계 최고의 권위를 갖고 있던 ‘국전(國展)’에 출품한 <백운대 풍경>이 입선하게 된다. 그리고 그 이듬해인 1965년에는 홍익대학교 회화과 3학년에 편입하게 되면서 당시 한국화단에 활발하게 대두되었던 앵포르멜을 접하게 된다. 젊은 작가들 사이에서 유행하고 있던 비정형 추상회화의 흐름에 자신도 동질감을 느낀 듯, 전체적으로 짙은 갈색조의 어두운 색채와 두터운 마티에르, 유화와 뒤섞인 구리선과 같은 이질적 매체가 혼재된 화면은 강인한 생명력과 에너지를 보여주는 듯하다. 특히 당시 제작한 작품인 <토벽>(1966)은 마치 태초의 인간이 만들어낸 토벽과 그 흔적을 형상화한 것 같은 원시적인 정감을 담고 있다.

  이후 그는 대학을 졸업한 해인 1967년에 두 번째 개인전을 갖게 되는데, 이때 그가 새롭게 몰두하기 시작했던 <흔적(痕積)>연작들을 선보였다. 작가는 "우리의 전통문물 속에서 풍화되어 사라져가는 형태와 빛깔들을 쫓으며 의식의 집점들을 모으고 있었다."고 자신의 개인전 카탈로그에 쓴 바 있는데, 이러한 언급에서처럼 화면에는 오랜 세월이 흘러 부식되고 풍화된 듯한 형상들이 등장한다. 초기에는 바탕에 흔적의 형상만을 그려 넣었지만, 얼마 뒤에는 기하학적이고 현대적인 배경과 이를 조합시키는 방향으로 나아갔다. 이러한 그의 작품들은 마치 현대에 이르러서도 사라지지 않고 이어지는 과거의 흔적, 즉 역사의 영속성을 보여주는 듯하다. <상흔(傷痕)>연작 또한 <흔적>연작과 그 결을 같이하고 있다. 작품 <상흔 A Scar No.2>의 아이보리색 바탕 면은 우리 민족의 백색의 시간의 흐름, 혹은 전통건축에서 찾아볼 수 있는 창호지의 색을 연상케 하며, 붉은색, 갈색, 옥색 등의 다채로운 색은 하부의 층위를 드러내 보임으로써 우리의 지난 축적된 역사와 그 사이의 상처를 고스란히 드러내고 있다. 또한 작가는 이러한 상처의 흔적들을 각각 파란색의 기하학적 색면으로 구성하여 결합시킴으로써 비구상적 작품에 조형적 질서를 부여하여 안정감을 획득하도록 하였다.

  박길웅 작가는 위 시기들을 지나 1969년에 이르러 마침내 오늘날 그의 대표작이라 불리는 <흔적 白 F-75>를 제작, 제 18회 국전에 응모하게 됨으로써 그해 대통령상을 거머쥐게 된다. 화면의 중앙에는 무한히 팽창하며 반복되는 느낌의 동그란 형태의 오브제들로 구성되어 있다. 나무를 깎은 후 흰색을 칠해 만든 이 오브제는 바탕의 고색적 문양과 질감, 색채들과 어울려 우리의 전통적 정신세계와 조형문양에 대한 작가 특유의 예술 감각을 표현하고 있다. 지금까지 살펴본 바와 같이 박길웅 작가는 근원적으로는 조형요소의 본질을 강조하는 기하학적 패턴에 주목함으로써 상징적이면서도 밀도 있는 작품을 구축했다는 평을 받고 있다. 유화, 오브제 작품 등 그가 남긴 많은 유작들은 한국 추상미술, 특히 앵포르멜에서 기하학적 추상으로의 전이과정을 엿볼 수 있는 중요한 단초를 제공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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