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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영국, <산>(198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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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영국, <산>, 1982년, 지본판화, 34.0×43.0cm, 소장번호 2085&#160; &#160; &#160; &#160;
유영국, <산>, 1982년, 지본판화, 34.0×43.0cm, 소장번호 2085&#160; &#160; &#160; &#160;

붉은 색의 강렬함이 먼저 눈을 사로잡는다. 여기에 화면 중앙에서 상승하는 날카로운 산봉우리가 긴장감을 극대화 시키려는 찰나, 양쪽으로 부드럽게 뻗은 완만한 능선과 산그늘의 안정감 있는 색상이 긴장을 완화시킨다. 태양의 강렬한 빛을 받는 산의 단단함이 쌓여서 균형을 유지하고 있다. 삼각형, 원, 직선, 곡선을 바탕으로 하는 평면적 도식화와 형태의 반복은 극단적인 단순함을 드러내는 동시에 모자람 없는 대자연의 풍경을 보여준다.

  유영국은 김환기와 함께 한국 추상화의 선구적 인물로서, 일생에 걸쳐 추상의 길만을 걸어왔다. 그는 1935년 자유로운 분위기 속에서 창작 활동이 가능한 일본 동경 문화학원에 입학하면서 미술활동을 시작하였고, 일본에 머무르는 동안 전위미술운동에 참여하면서 추상미술의 세계에 들어섰다. 그러나 일제의 자유주의적 작가들에 대한 통제가 강화되자 1943년 귀국 후 한동안 예술 활동에서 멀어져 있었다. 1947년 김환기, 이중섭, 장욱진, 백영수, 이규상 등과 함께 창립한 신사실파는 해방 후 최초의 순수미술단체였으며, 최초의 추상미술그룹이기도 했다. 1957년에는 모던아트협회의 창립멤버로 참여하였는데, 이 역시 보수적인 관전을 견제하면서 순수한 현대회화를 추구하는 이들의 모임이었다. 1966년부터 홍익대학교 서양화가 교수로 재직하였으나 미술 작업을 병행하던 그는 4년 만에 교직을 떠났고, 이후로는 전업 작가로서의 길을 걸었다. 이러한 발자취에서 유영국의 일관된 순수미술을 지향하는 자유로운 이념을 발견할 수 있다.  

  그는 미술활동 초기부터 자연을 소재로 하는 작품을 제작하였는데, 본관 소장품의 제목이기도 한 ‘산’은 그 중에서도 일생의 테마였다. 그의 ‘산’은 1950년대에는 굵고 검은색의 선으로 분할되어 공간을 구성하다가 1960년대에 들어서는 구획선은 사라지고 원색의 색면 표현이 두드러졌다. 그리고 1970년대 이후에는 기하학적 형태와 원색의 단순한 패턴으로 변화하였다. 본관 소장 작품에서도 확인할 수 있듯이 그의 말년의 ‘산’은 자연 이미지를 기본적인 기하학 형태와 붉은색, 푸른색, 노란색 등 원색을 활용한 표현의 단순화를 통해서 자연의 본질로 돌아가고 있다는 느낌이 들게 한다.  

  그의 산에 대한 애착은 작품 활동 내내 이어졌는데, 1968년 제3회 작품전 개최 당시 경향신문 인터뷰에서 “왜 산만 그리냐?”는 질문에 “떠난 지 오래된 고향 울진에 대한 사랑 때문이다. 그리고 산에는 뭐든지 있다. 봉우리의 삼각형, 능선의 곡선, 원근의 면, 다채로운 색”이라고 대답했다. 기사 말미에 “계속 산만 그릴 예정인가?”에 대한 질문에 대해서는 “변함없는 생각이다.”라고 대답하였으며, 이후로도 <산> 연작만으로 구성된 개인전을 수회에 걸쳐 개최함으로써 이 대답을 증명했다. 작가의 고향에 대한 기억에서 나온 산 이미지는 다분히 감상적이며 한국적 정서가 투영되었다고 볼 수 있다. 더불어 그의 작품에서 많은 이들이 ‘서정성’을 읽어내는 것은 그의 추상화가 기하학적이고 평면적인 서구식 추상의 형태를 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자연에 대한 공감을 바탕으로 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일본 유학시절의 나무판자를 사용한 부조 작품에서부터 작가의 일생이 집약된 노년기의 본관 소장 작품 <산>까지 그의 추상세계는 자연과 맞닿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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