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영역

본문영역

소녀의 꿈과 욕망 사이, 아슬아슬한 줄타기

핑크빛 우상 바비 인형, 스스로를 욕망하다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세계 각국의 여자 아이들은 바비(Barbie) 인형에 대한 환상을 가지고 있을 것이다. 이들은 핑크색으로 둘러싸인 방에서 핑크색 드레스를 입고, 바비 인형의 옷을 갈아입히며 머리까지도 빗겨준다. 물론 인형과 둘만의 대화를 나누기도 한다. 때로는 친구처럼, 때로는 자신의 분신처럼 여기며 아이들은 바비 인형과 함께 핑크빛 성장기를 보낸다. 오랜 시간이 지난 지금까지도 매년 새롭게 출시되며 아이들의 곁을 지킬 뿐만 아니라, 인형이라는 한계를 넘어 각 사회 문화 전반에 영향력을 과시하고 있는 바비 인형에 대해 알아보도록 하자.

 

▲미녀 ‘바비’는 어떻게 탄생했을까

▲출처: 스포츠서울USA
▲출처: 스포츠서울USA

바비 인형은 1950년대 앨리엇 핸들러(Elliot Handler, 1916~2011)가 그의 부인 루스 핸들러(Ruth Handler, 1917~2002)와 공동 창업한 마텔사(社)에서 만든 인형이다. ‘바비(Barbie)’라는 이름은 부부의 어린 딸 이름 ‘바바라(Barbara)’에서 따온 것이다. 루스 핸들러는 바바라가 종이 인형을 가지고 노는 것을 유심히 관찰하곤 했다. 그녀가 관심 있게 지켜본 부분은 바바라가 어린 아이였음에도 불구하고 그녀의 놀이 안에서 어른이 행동하는 양식을 모방하고 있다는 점이었다. 당시의 인식은 아이들이 장난감을 그저 '가지고 논다'는 일차원적 수준에 머물러 있었다. 루스는 아이들이 장난감을 통해 어른의 생활을 흉내 내고 '학습'하고 있다는 새로운 사실을 발견했던 것이다. 이후 그녀는 이러한 인식을 뛰어 넘는 차별화된 장난감을 개발해야겠다고 결심하고 바바라의 놀이에 기초하여 성인 인형을 만들었다. 그리고 그녀는 1959년 3월 뉴욕에서 열린 세계 장난감 박람회에 ‘바비’라는 이름으로 자신이 만든 인형을 출시하는데, 이것이 바로 우리가 알고 있는 바비 인형의 시초다. 최초의 바비 인형은 황금색 또는 흑갈색 머리를 하고, 얼룩말 무늬의 수영복을 입고 수줍게 아래쪽을 힐끔 쳐다보는 표정을 하고 있었다. 당시 바비 인형은 이전의 장난감에는 볼 수 없었던 여성 신체에 대한 적나라한 묘사와 화려한 의상, 현대적인 머리 모양 등으로 ‘장난감 세계의 실수’라고 언론 보도가 될 만큼 대중에게 큰 충격을 주었다. 그러나 이렇듯 대중의 충격적 반응에도 불구하고, 바비 인형은 발매 첫 해 약 35만 개를 기록하며 성공적인 데뷔를 하게 되었다.

 

▲바비 인형, 시대를 담다

▲출처: 픽사베이
▲출처: 픽사베이

바비의 가장 큰 성공 비결은 ‘스토리텔링’이다. 즉, 마텔사는 바비 인형에 대한 갖가지 이야기를 만들어내고 변화를 주면서 바비가 마치 ‘이 세상에 존재하는 여성’인 것처럼 만든 것이다. 그리고 바비가 등장하는 소설을 출간하여 친구, 로맨스 등 다양한 일상적 요소를 이야기로 녹여내 꾸준히 대중들의 관심을 끌었다. 또한 바비의 인기 요소로 ‘패션’을 빼놓을 수가 없는데, 당시 유행하는 스타일들을 그대로 바비의 의상에 적용했다. 예를 들어, 당시 최고 여배우였던 마릴린 먼로(Marilyn Monroe, 1926~1962)의 세련되고 글래머러스한 외모를 반영하여 아치형으로 휘어진 눈썹에 빨간 립스틱을 바르는 등 성숙한 성적 매력을 강조했다. 이후 마텔사는 바비 인형을 다양한 계층으로 확대해 성인 여성에서 소녀를 모델로 하여 외양의 변화를 주었다. 웃는 얼굴을 강조하고 눈동자도 정면을 향하며 전체적인 화장을 연하게 바꾼 것이다. 더불어 바비 인형이 소녀들의 지지를 얻은 데는 ‘다채로운 직업’도 한몫 했다. 루스 핸들러는 “바비에 담긴 내 철학은, 인형을 통해서 어린 소녀들이 자신이 원하는 것은 무엇이든 할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닫는 것이다. 바비는 항상 여성이 선택할 수 있다는 걸 보여준다.”고 말했다. 즉, 의사, 우주비행사, 간호사, 학교 선생님 등 130가지 이상의 직업을 바비 인형에 고스란히 반영했다. 뿐만 아니라, 마텔사는 바비 탄생 50주년을 기념해 2010년에 처음으로 전 세계 소녀들에게 바비의 다음 직업을 고를 기회를 제공하기도 하였다. 이는 시대와 사람의 변화에 따라 바비도 같이 변화해간다는 의미를 내포했다.

 

▲바비 인형, 끊이지 않는 논쟁 속에서

▲출처: Flickr
▲출처: Flickr

바비 인형은 사랑받는 만큼 끊임없이 비판의 대상이 되기도 했다. 수많은 종류의 바비 인형이 있는 만큼 최악의 바비 인형이라는 타이틀을 가진 인형도 존재했다. 흑인을 비하했다는 ‘오레오 바비’, 화려한 메이크업에 망사 스타킹으로 기독교 측으로부터 비판을 받은 ‘창녀 바비’ 등이 그 예다. 이처럼 바비 인형은 출시와 함께 여러 논쟁을 불러일으켜 왔다. 논쟁이 된 대부분의 이유는 ‘외모’였다. 일반적인 바비 인형은 인체를 축소한 6분의 1 비율의 11.5인치 크기로, 175cm 키를 가진 성인을 기준으로 계산했을 때 50kg의 몸무게, 36-18-33(가슴-허리-엉덩이)이라는 비현실적인 외모를 형상화한 것이다. 어린 아이들에게 과장된 바비 인형의 모습은 여성의 몸에 대한 왜곡된 관념을 심어준다는 것이 주된 논점이었다. 이에 바비 인형에 자주 노출된 아이들에 대한 심리학적 연구가 수반되기도 하였다. 연구자들은 아이들이 바비 인형을 외모의 롤 모델(Role Model)로 삼고 모방하려 하며, 비현실적인 여성의 외모를 무의식적으로 추구하게 되어 훗날 거식증 환자와 같은 사회적 문제를 야기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또, 1963년 마텔사는 여성들의 다이어트를 권장하는 책과 바비 인형을 같이 판매해 소비자 단체와 학계의 비판을 사기도 하였다. 한편, 자녀를 둔 부모들은 인형의 뚜렷한 가슴라인 등에서 나타는 선정성 문제를 지적하며 바비 인형의 외모를 수정해달라는 의견을 표출하기도 하였다. 이처럼 과도하게 비정상적인 바비 인형의 날씬한 몸매는 주 대상층인 소녀들과 성인 여성들에게도 영향을 미쳤다. 소녀와 성인 여성들이 바비 인형과 같은 외모를 갖기 위해 다이어트를 하고 성형 수술도 마다하지 않는 ‘바비 신드롬(Barbie Syndrome)’ 현상이 생겨날 정도였다. 더불어, 바비 인형은 인종 차별 문제와 문화적 이해의 결여 문제로도 종종 도마에 올랐다. 1967년 흑인 바비 인형이 처음 생산되었을 때 흑인 고유의 특성이 배제된 것이 논란이 되었다. 이는 기존 백인 바비 인형의 금형에 얼굴을 만들어 검은 피부색만 입힌 것으로, 이러한 제작 방식은 1980년대까지 계속되었다. 백인우월주의라는 비판 속에서도 기존의 방식을 고수하던 마텔사는 결국 2009년 9월이 되서야 사실적으로 묘사된 흑인 바비 인형을 출시했다. 또한 문화적 차이에서 비롯된 문제도 있었다. 백인 여인의 외모를 한 바비 인형은 아직도 일부 중동 지역에서 정식 수입허가를 받지 못했다. 그들은 바비 인형의 선정적인 포즈와 노출이 심한 의상, 화려한 액세서리 등을 한 백인 여인의 모습을 타락의 상징으로 여기기 때문이다. 이에 중동의 일부 국가들은 바비인형의 대안으로 풀라(Fulla)라는 이름의 중동판 바비 인형 판매하기도 하였다.

 

▲출처: 픽사베이
▲출처: 픽사베이

‘너의 꿈을 이뤄봐!’라는 바비 인형의 속삭임은 반세기가 넘도록 소녀들의 마음을 훔치는 데 성공했다. 하지만 이는 마치 저주처럼 오랜 시간이 지나도 변하지 않은 채 그대로 머물러 있다. 바비 인형은 단순한 장난감이라고 보기 어렵다. 대중문화의 중심에서, 세계의 문화 현상을 흡수해 재생산해내는 문화적 포식자로 성장한 것이다. 우리는 바비 인형이 만들어내는 핑크빛 세계관에 열광하며 소비하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핑크빛 이면에 숨어 있는 어두운 욕망을 간과해서는 안 될 것이다. 이제 다시 한 번 바비 인형을 쳐다보자. 과연 바비 인형은 웃고 있는 것일까, 울고 있는 것일까.

 

SNS 기사보내기

저작권자 © 홍대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최신기사

하단영역

모바일버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