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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안대(遮眼帶)를 쓴 경주마『잠실동 사람들』(2015)에 등장한 서울특별시 잠실동

한낮의 잠실새내역은 사람으로 붐볐다. 지하철역에서 나와 곧게 뻗은 도로를 보니 멀리 새로운 잠실의 랜드마크인 롯데월드타워 가 하늘을 찌를 듯 서 있었다. 거대한 아파트 단지가 밀집한 이 지역은 한 채 당 시가 15억 원이 넘나드는 고액의 부동산이 1만 세대가 넘게 있는 곳이다.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감탄사를 내뱉게 만드는 이 지역은 소설 『잠실동 사람들』의 주 무대이다. 소설가 정아은이 2015년에 출판한 장편소설인 『잠실동 사람들』은 서울특별시 송파 구 잠실동을 배경으로 이곳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을 다룬 작품이다. 소설은 계급을 상승시키거나 유지하는 도구로 전락한 ‘교육’에 대하여 이야기한다. 작품 속에는 사교육을 맹목적으로 신뢰하며 그에 대한 지출에 대해 부담을 느끼면서도 아낌없이 재력을 쏟는 학부모들과 이를 이용해 돈을 버는 사교육계 인물이 주되게 등장한다. 그리고 이 들을 통해 사람들의 경쟁 심리나 질투심을 보여주어 우리의 일상이 얼마나 일그러져 있는지 일깨운다. 『잠실동 사람들』의 내용을 되짚어보며 8차선 대형 도로가 바로 앞에 깔려 있는, 끝이 보이지 않는 거대한 아파트 단지를 본격적으로 둘러보았다.

 

이 동네 여자들의 삶도 잘 살펴보면 다 행복하지만은 않을 것이다. 모두들 보이는 것만큼 여유 있게 살지도 않을 것이다.

잠실새내역 전경

고개를 들어 하늘을 바라보니 소설 속에 나오는 이름 그대로 각 아파트 단지에 외국어가 뒤섞인 특이한 이름이 크게 적혀 있었다. 다시 땅을 바라보니 커다란 아파트 사이로 주말을 맞은 주민들이 가족의 손을 잡고 평화롭게 산책을 하고 있었다. 일단 날이 좋아 햇볕이 뜨거웠기에 열을 식히고자 근처 카페에서 시원한 음료를 시켜 자리에 앉았다. 소설 속 대다수 인물은 이 아파트 단지에 살고 있다. 이야기 안에서 아이 엄마들은 카페에 모여 자주 대화를 했다. 그 내용은 별 것 아니었지만, 그러면서도 끊임없이 서로를 비교하고 자신의 단점을 걱정한다. 상대방이 자신을 무시할까봐 불안해하는 것이다. 그 누구도 대놓고 상대방을 깔보는 이야기는 하지 않지만, 스스로 끊임없이 열등감을 느끼는 장면이 자주 나온다. 최근 언론을 통해 들었던 SNS에서 친구나 동료의 사진을 보고 열등감이나 질투심을 느끼는 등, 현대사회에 만연해진 남과 비교하는 삶에 관한 이야기가 떠올랐다. 이 장면이 소설 속 유별난 사람들의 이야기가 아닌, 우리의 일상이었던 것을 깨닫자 마음이 복잡해졌다.

 

하지만 이쪽으로 건너오면 완전히 다른 세계가 펼쳐졌다. 널찍하게 뚫린 길, 깔끔한 상가 건물 내에 들어찬 모던한 가게들. 좌판 같은 건 눈을 씻고 봐도 없고, 먼지 쌓인 조악한 고무인형도 없으며, 차가 지나다니지 않아 안심하고 길을 걸어갈 수 있다. 꼭 소인국에서 거인국으로 건너온 것 같지 않은가.

새마을시장

카페에서 나와 발걸음을 살짝 돌려 상점이 옹기종기 모여 있는 새마을 시장 쪽으로 이동하였다. 주말을 맞아 이곳에도 사람이 북적거렸다. 시장 입구에서 간식거리를 하나 집어 시장을 둘러보았다. 두 손을 맞잡고 시장을 둘러보는 젊은 부부부터, 삼삼오오 모여 저녁 찬거리를 고르는 가족들의 모습까지 서울의 여타 다른 시장과 다르지 않은 모습이었다. 하지만 소설 속에서 이곳에 사는 등장인물들은 이 동네를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다. 인물들은 이 빌라촌을 그저 부유한 고층 아파트와 대비되는 공간으로 생각한다. 심지어 자신을 뒷바라지한 외교관 아내와 이혼하고 자격지심에 빠져있던 과외 교사 김승필은 이러한 삶에서 벗어나고자 자신의 학력과 경력을 위조하기까지 한다. 더 높은 곳으로 향하기 위해 자신을 채찍질하는 것이 미덕인 사회에서 김승필을 비롯한 이 사람들의 행동은 어쩌면 당연한 것일지도 모른다. 김승필은 결국 거짓말이 들통나 과외를 그만두지만, 그의 행동에는 어쩐지 서글픔이 담겨있다.

 

“거긴 수학 잘하는 애들이 가는 데가 아니야.”

유미가 다연의 말을 단호하게 끊었다.

“그럼?”

다연이 의외라는 듯 눈을 동그랗게 떴다.

“수학이 ‘부른’ 애들이 가는 데지.”

유미가 고개를 끄덕이며 또박또박 힘주어 말했다. 얼굴엔 자랑스러운 기색이 역력했다.

대치동 학원가

시내버스를 타고 창밖 풍경을 바라보며 20분 넘게 이동하니 상가 건물에 ‘학원’이란 이름을 단 간판이 늘어서기 시작했다. 대치동이었다. 소설 속 초등학생을 양육하는 엄마들은 하나 같이 아이들의 교육에 열을 올리며, 만나면 어느 학원이 우수한지, 어느 과외 교사가 괜찮은지 끊임없이 비교한다. 자녀가 명문대학을 통해 자신들이 누리는 사회지위를 그들도 누릴 수 있도록 모든 노력을 기울이는 것이다. 유명 연예인의 매니저처럼 아이들의 ‘스케줄’을 직접 관리하는 것은 기본이고, 아이의 일정에 맞춰 자신의 삶도 돌아가고 있었다. 명문고교와 유명대학에 보낸다는 좋은 학원에 들어가기 위해 다른 학원을 보내고, 또 그 학원을 위해 다른 학원을 보내는 끝이 보이지 않는 꼬리 물기도 그들에게는 당연한 것이었다. 소설을 읽는 내내 이러한 방식이 무언가 크게 잘못되었다고 생각했지만 기자의 생각에 동조하는 소설 속 등장인물은 몇 없었다. 도착한 학원가 앞 길거리에는 수많은 자동차가 서로의 꽁무니를 물고 길거리에 정차하여 있었다. 그리고는 기자의 생각을 비웃듯이 소설에 나온 모습 그대로 학원에서 쏟아져 나온 앳된 아이들이 서로 손을 흔들며 작별을 고하고는 종종걸음으로 걸어가 차 안으로 쏙 들어갔다. 공장처럼 빠르고 효율적으로 차가 빠지고, 다른 차가 서면 다시 아이들이 들어갔다. 어둑어둑해지기 시작했지만 이 동네는 지금부터가 시작이었다. 소설의 배경은 잠실동에 머물러 있지만, 이 소설이 다루는 세태는 잠실동에만 머물지 않는다. 끊임없이 다른 사람과 자신을 비교하고, 또 그 속에서 얻은 미묘한 승리감이나 좌절감 속에서 시작된 위기의식은 자신을 포함한 누군가를 채찍질하는 비정상적인 일상을 만들었다. 그리고 지금 우리가 살아가는 대한민국에서 이러한 악순환은 너무나 당연하게 벌어지고 있다. 계층을 따지지 않고, 사람을 따지지 않고 쓰인 차안대(遮眼 帶)는 우리를 경주마처럼 똑같은 일상에서 벗어나지 못하게 만들었다. 그래도 빌라촌에 사는 학습지 교사 차현진이 아파트에 대한 자격지심을 씻어버리고 가족이 있는 집으로 향하는 모습에서, 카페 주인 박수진이 열등감에 살아가는 아파트 주민들을 비웃는 그 모습에서, 조금 다른 삶의 방향을 찾을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우리는 경주마가 아니다. 차안대를 벗어버리고 우리의 목표가 아닌, 우리의 삶을 직시해보자.

대치동 학원가 정차 차량

 

* 본 기사에 등장하는 인물 및 사건은 모두 소설 속 허구이며, 등장하는 지명은 실제의 공간을 작가가 재구성한 것으로 현실과는 무관함을 알립니다.

정재림 명예기자  bigheadjerry96@mail.hongik.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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