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UPDATE : 2020.9.11 금 15:50
상단여백
HOME 인터뷰 12면 인터뷰
북 디자이너 박연미즐거운 마음으로 소유하고 싶은 책을 만드는 디자이너

이른바 인터넷 시대라고 불리는 현대 사회, 많은 것들이 디지털 형태로 대체되고 있다. 책도 그 예외는 아니다. 사회의 변화에 맞춰 종이책이 아닌 전자책(e-book)이 등장한 것이다. 전자책의 등장과 함께 이른바 ‘종이의 몰락’이 예고되기도 했다. 그러나 종이가 주는 특유의 아날로그적 느낌 때문일까, 여전히 종이책은 우리 주변에 머물고 있다. 종이책이 제공하는 감각적 경험과 물성, 그리고 발전가능성은 결코 전자책이 완벽히 대체할 수 없기 때문이다. 특히, 종이책의 ‘소장가치’는 시간이 흐를수록 주목받고 있다. 그리고 여기 소유하고 싶어지는 책의 매력적인 인상을 만들어주는 사람이 있다. 북 디자이너 박연미는 현재 프리랜서로 활동하며 책의 표지부터 가름끈까지 수많은 요소의 디자인을 담당하고 있다. 무더위가 조금 가신 늦은 여름, 상담 후 독자에게 책을 처방해주는 ‘사적인 서점’과 아늑한 부엌 공간 그 옆에 위치한 작업실에서 박연미 북 디자이너를 만나보았다.

 Q. 시각디자인의 다양한 분야 중에서 북 디자인이라는 직업을 가지게 된 계기가 궁금하다. 다른 분야와 구별되는 특별한 북 디자인의 매력이 있다면 무엇인가?

A. 학교에 다닐 때부터 영화, 책과 같은 매체를 좋아했다. 영화 포스터 제작 회사 ‘꽃피는 봄이 오면’에서 인턴 활동을 하기도 했고 대학원 시절에는 안상수 교수님 연구실에서 일하며 타이포그라피와 관련된 연구와 작업을 병행했다. 졸업 후 출판사에 지원하고 근무하면서 자연스럽게 북 디자이너의 길을 걷게 되었다. ‘책’이라는 매체가 가지는 물성이 좋아 이 일을 시작하게 되었고, 그것이 지금까지 이어진 것 같다. 앞표지부터 본문을 넘어 참고문헌, 뒤표지, 심지어 가름끈까지 이어지는 책의 전체 구조가 지닌 그 완성형의 전체 스토리를 만지는 것이 재미있다.

Q. 평소 어떤 방식으로 작업을 진행하는가?

A. 책 디자인 작업은 편집자와의 긴밀한 대화와 토론을 통해 내용을 파악하고, 디자인 방향을 논의하기 때문에 혼자가 아닌 사람과의 관계와 소통이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는 작업이라고 생각한다. 작업 의뢰를 받을 때 담당 편집자로부터 예상 독자, 대략적인 방향 등이 기재된 편집 계획서나 간단한 의뢰서를 기본적으로 참고한다. 또한, 원고의 목차, 프롤로그 등을 살피고 필요에 따라 추가적으로 책의 내용과 관련해 자료를 조사한다. 본격적으로 디자인 작업을 시작할 때는 내용을 파악한 후 이와 관련된 키워드나 생각나는 단어를 메모한다. 일상생활이나 여행길에서 느꼈던 것, 이미 알고 있는 단어 하나 하나에서 힌트를 얻는다. 그 후에는 전체적으로 단단하게 조형해 가는 과정에 힘을 쏟는다.

 

Q. 지금까지의 작업을 살펴보면 화려한 이미지보다는 기본 조형 요소와 타이포그라피를 강조한 책표지들이 많다. 기본 조형 요소나 글자의 조형성을 사용할 때의 효과는 무엇이라고 생각하는가?

A. 개인적으로 이미지를 쓰는 것보다 점, 선, 면과 같은 기본 조형 요소와 글자로만 작업하는 것을 더 좋아한다. 또한, 타이포그라피는 소리를 담고 있는 이미지 같아서 선호하는 편이다. 작업할 때 제목이 주는 어감을 많이 신경 쓰는데 소리를 내어 많이 읽어보고 글자가 음성화되었다 다시 시각화되는 과정이 흥미로워 이를 좀 더 정확하게 표현하려고 한다. 작업의 큰 방향성에 따라 다르긴 하지만 레터링을 통해 작업하면 적어도 그 제목의 조형이 가지는 고유성이 생기고 어감 표현을 더 세밀하게 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Q. 마그리트 그림을 이용해 디자인한 밀란 쿤데라의 작업이 인상적이다. 이미 많이 알려진 명화를 사용하려면 그만큼 신경 쓸 부분이 많았을 것 같은데 작업 과정이 궁금하다.

A. 처음에는 색감이 있는 가벼운 그래픽으로 디자인을 했는데 출판사에서 생각하는 방향성과 맞지 않아 다시 작업을 진행했다. 밀란 쿤데라의 전집이 인간사에 대한 이야기이기 때문에 ‘인물’을 중심으로 명화를 찾아보다가 마그리트 작품이 갖는 이미지와 은유가 쿤데라 작품과 맞아 이를 활용해 15권 전집을 디자인하기로 했다. 이를 위해 한국미술저작권관리협회(SACK)를 통해 마그리트 재단과 연락해 저작권 문제를 해결했다. 또, 마그리트 그림은 저작권 문제 외에도 원작의 편집이 금지되어 책 표지 하단에 두르는 띠지를 높은 띠지 형식으로 하여 이미지를 자른 한 단면을 재킷에 크게 사용하고, 안쪽 표지에 원작을 보여주는 방식을 통해 주어진 제약을 오히려 디자인 형식에 적극적으로 활용했다. 쿤데라 측에서 디자인에 대한 매우 좋은 평을 보내왔고 독자의 반응도 좋아 출판사나 디자이너로서도 만족스러운 작업이었다.

 

Q. 지금까지 진행한 작업 중에서 가장 기억에 남거나 재미있었던 작업이 있다면 무엇인가.

A. 지나고 보니 모두 재미있게 작업한 것 같아 고민이 된다. 최근에 했던 작업 중 기억에 남는 것은 『감옥의 몽상』이라는 책이다. 양심적 병역 거부를 한 저자가 기록한 사회학책으로 글이 매우 섬세하다. 중간에 제목이 바뀌는 등 우여곡절이 많아 진행 과정이 힘들었는데 담당 편집자, 저자, 출판사 사장 등 모두가 이 책 한 권을 잘 만들어 보려는 진심의 노력이 느껴졌다. 작업과정은 힘들었지만, 마음은 즐거웠고 디자인 결과물도 좋아 기억에 남는다. 작년에 출간이 시작되어 계속 작업 중인 레닌 전집도 생각난다. 전집이지만 최소한으로 시리즈명 디자인만 같게 하고 권마다 다른 그래픽을 입히고 있다. 100권이 넘는 전집이라 출판사에서도 힘든 결정을 내리고 진행 중인 작업이기 때문에 개인적으로 이 전집이 많은 독자를 만났으면 하는 바람이다.

 

Q. 출판사에 속해 있다가 프리랜서로 전향했는데 많은 점이 달라졌을 것 같다. 둘의 차이점은 무엇인가?

A. 회사에 있다 1인 출판 프리랜서로 전향한 지 3년이 흘렀다. 그동안 신생 출판사나 1인 출판사와도 작업해 왔다. 출판사의 규모와 상관없이 출판사의 운영 방침에 따라 달라지기도 하지만, 출판사 내부에 본문 디자인이나 조판을 담당하는 디자이너의 여부에 따라 작업의 분량이 결정된다. 출판사에서 근무했을 때에는 본문 조판을 담당하는 부서가 따로 있었기에 표지만 디자인하는 경우가 많았다. 요즘 의뢰받는 작업의 경우엔 각각의 비율이 비슷한 것 같다. 아무래도 한 권 전체를 면밀하게 작업하고 관리하는 쪽이 만족도가 더 높은 것 같다.

조직에 소속되어 있으면 프리랜서에 비해 안정적이지만, 인간관계를 비롯해 신경써야 할 요소가 많아진다. 반면 프리랜서는 자유롭게 활동할 수 있지만 상대적으로 안정적이지 않다는 단점이 있다. 또한 요즘 깨달은 것은 스케줄 관리를 철저히 하지 않으면 스스로에게 혹사당할 수도 있다는 것이다. 모든 일에 장단점이 있기에 본인이 어떤 스타일로 일하는 사람인지 알고 선택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Q. 마지막으로 북 디자이너를 꿈꾸는 본교 학우들에게 한마디 부탁한다.

A. 출판 시장은 점차 좁아지고 있다. 그런데도 여전히 그와 관련된 일을 하는 사람들이 있고 심지어 새롭게 발을 들이는 출판인도 있다. 취업이 어려운 시대고, 출판계는 더욱 어려운 시기여서 직업군의 개체 수는 당연히 줄어들 것이다. 하지만 책 자체의 물성에 대한 소유욕은 여전할 것이며 책은 사라지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또, 전자책의 등장과 종이책의 수요 하락 등 종이 매체의 위기는 종이책의 물성을 더 극대화하는 결과를 낳았다. 이는 디자이너 입장에서는 또 다른 기회라고 생각한다. 세상에 무슨 일이든 쉬운 일은 없지만, 사람을 버티게 하는 희망과도 같은 것은 ‘무언가를 좋아하는 마음’이다. 여전히 책과 관련된 일을 하는 사람들의 공통점은 결국 책이 좋아서 한다는 것이다. 북 디자이너를 꿈꾸는 후배들과 몇 년 안에 같은 시장 안에서 살아남아 만나면 좋겠다. 

조수연 기자  suyeon98@mail.hongik.ac.kr

<저작권자 © 홍대신문,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icon인기기사
기사 댓글 0
전체보기
첫번째 댓글을 남겨주세요.
여백
여백
여백
Back to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