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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린 공간과 그 적들: 사무실은 어떻게 만들어지는가?
  • 유현준(건축학부 교수)
  • 승인 2018.09.11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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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로 공간의 탄생과 비밀

시인 라이너 마리아 릴케의 「상상의 전기」라는 시를 살펴보자. 

 

“처음에 아이는 한계도 모르고, 포기도 모르고, 목표도 없이,

그토록 생각 없이 즐거워한다. 

그러다가 돌연 교실이라는 경계와 감금과 공포에 맞닥트리고

유혹과 깊은 상실감에 빠진다.”

 

필자는 이 시를 읽을 때마다 무섭고 슬퍼진다. 라이너 마리아 릴케는 학교에 들어가는 것을 감옥에 들어가는 것에 비유했다. 생각해 보면 우리 세대만 하더라도 어렸을 적에는 빈 땅이 많았다. 그곳에서 물방개도 잡고, 잠자리도 잡고, 땅에 그림을 그리면서 놀았던 기억이 난다. 열린 공간에서 창의적으로 놀이도 생각해 내고, 새로운 친구도 쉽게 사귀면서 지내던 유년시절이 지나고 학교에 들어가면서 릴케의 시처럼 우리는 슬퍼지는 것 같다. 초등학교에 입학한 후 12년 동안을 교실에 갇혀 지내고, 대학교 4년에 남자의 경우 군대 2년까지 더한 18년 동안 집단시설에서 지낸 후에나 비로소 우리는 사무실이라는 수십 년짜리 시설에 들어가게 되는 것 같다. 건축가이기에 릴케의 시에서 “교실이라는 경계와 감금”이라는 구절이 맘에 걸린다. 건축이란 어찌 보면 계속해서 경계를 만들고 감금을 하는 장치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그중에서도 사무실 공간은 감옥을 제외한다면 가장 심한 경계와 감금의 장소가 아닐까? 지금은 구글 같은 기업들이 창의적인 사무공간을 만드는 등 새로운 시도를 하고 있지만 아직까지도 대부분의 사무공간은 근대 산업사회의 유물처럼 정형화되고 창의성보다는 생산성과 시간 관리를 강조하는 공간이다. 이 장에서는 사무공간에 대해서 살펴보자.

테헤란로는 20층이 넘는 고층빌딩으로 가득 차 있다. 고층빌딩은 도시의 상징인 듯하다. 도시에 고층빌딩이 들어서야 한다는 공식은 20세기에 들어서 시카고와 뉴욕을 중심으로 자리를 잡았다. 특히나 지반이 암석으로 되어있고 사방이 물로 둘러싸여있는 섬이라는 제한 때문에 땅이 부족한 맨해튼의 경우에는 초고층 빌딩이 많이 만들어지게 되었다. 그 시기는 산업화가 어느 정도 진척되고 강철, 콘크리트, 유리 등의 새로운 건축자재가 수급되는 시기와도 일치한다. 기술력과 경제적인 조건, 사회적 요구 등이 합쳐져 탄생한 것이 고층빌딩이란 새로운 건축양식이다. 그렇다면 현대인인 우리가 대부분의 시간을 보내고 있는 사무실 공간은 과연 어떻게 만들어지게 되었을까?

이에 대한 답을 찾기 위해서는 도시의 역사를 생각해 보아야 한다. 미래학자 앨빈 토플러는 그의 베스트셀러 ‘제3의 물결’에서 인류역사는 세 번의 물결에 의해서 형성되어 왔다고 말한다. 첫 번째 물결은 농업기술의 물결, 두 번째 물결은 산업화의 물결, 세 번째 물결은 정보통신의 물결이다. 핸드폰과 인터넷이 보급되기 전에 쓰인 책이라는 것을 고려하면 작가의 혜안에 놀라지 않을 수 없는 명저이다. 사무실 같은 근로공간의 탄생 또한 인류가 만들어낸 세 번의 물결과 무관하지 않다. 그 과정을 한번 살펴보자. 인류는 우선 수렵과 채집의 시기를 오랫동안 거쳐왔다. 한마디로 사냥을 하거나 나무나 들판에 있는 열매를 먹으면서 생활했다는 뜻이다. 이 단계에서는 사람들이 여기저기 음식이 있는 곳을 찾아서 항상 움직여야하기 때문에 건축이라는 것이 별로 의미가 없다. 지금도 유목생활을 하고 있는 민족들은 기초를 다진 건축물 보다는 텐트에서 생활한다. 아메리카 인디언이나 몽고의 유목민족이 티피와 파오 같은 동물가죽으로 만든 텐트에서 생활하는 것을 상상하면 된다. 필자는 농담처럼 우리나라도 어쩌면 이동하는 기마 민족이라 건축에는 약한 대신 휴대폰이나 자동차 같은 이동 관련 산업에는 강한 것이 아닐까 말하곤 한다. 실제로도 우리 고대 민족은 말을 타고 다니면서 활을 쏘는 민족이었기 때문에 다른 민족보다 손 근육의 종류가 몇 가지 더 있다고 한다. 반면에 뛰어다니지를 않고 대부분 말을 타고 다녔기에 서양 인종과 비교해서는 다리에 몇 가지 종류의 근육이 없다고 한다. 손을 많이 사용하는 양궁, 야구, 골프에서는 두각을 나타내지만 아무리 해도 축구가 안 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다시 건축 이야기로 돌아가 보자. 이렇게 여기저기 떠돌아다니던 사람들이 농사를 지으면서 한곳에 정착을 하게 되었다. 농사란 계절에 따라 파종과 수확, 휴지기가 나누어진다. 일 년에 3/4을 일하고 겨울철 1/4은 노는 것이 농업사회이다. 「뇌의 배신」이란 책에서 저자 앤드류 스마트는 빈둥거리며 노는 시간에 창의적인 생각이 나오게 된다는 연구결과를 소개하고 있다. 인류의 역사 중 별안간 획기적인 창의성을 보이는 때가 있는데, 그 시기가 농업이 시작된 시기와 비슷하다고 한다. 겨울철 농사를 짓지 못해 남는 시간에 사람들이 창의적 활동의 소산인 문자도 만들고 하늘도 연구하는 과정에서 비로소 문명이 탄생했던 것이다. 시간적으로는 많은 여유가 생겼고 수확을 위해 농경지를 떠날 수 없게 되자 지속가능한 건축물이 비로소 등장하기 시작한다. 이때 서로 다른 지역마다 그 지역의 기후에 맞추어서 농작물 분포가 자리잡게 된다. 사실 농작물이라는 것은 남자들이 사냥갔을 때 여자들이 주변 열매들을 이것저것 따먹고 실험을 하면서 먹을 수 있는 열매를 골라낸 것이다. 달리 실험대상도 없었을 테니 자신이 먹어보고 배도 아파보면서 축적된 노하우를 후대에 전수하며 발전시켜 왔을 것이다. 그리고 그 중에서 땅에 심어보고 수확이 많이 나는 것들이 지금 우리가 먹는 벼, 밀, 옥수수, 수수, 메밀 같은 식물들이다. 그중에서도 밀과 벼는 인류의 주식이 되는 농작물이다. 하지만 지역마다 주식으로 삼는 농작물이 다르다. 예를 들어서 유럽은 밀을, 동아시아는 벼를 주식으로 삼는다. 이는 그 지역의 강수량과 밀접한 관련을 가진다. 그리고 강수량은 그 지역의 건축양식에 큰 영향을 미친다. 다른 기후대마다 다른 건축양식이 자연적으로 발생하여 수천 년을 이어져 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단위 면적당 사는 사람의 숫자인 인구밀도는 농업기반의 사회에서는 일정 수준을 넘지 못했다. 농업을 기반으로 하는 사회에서 경제적인 재화를 만들기 위해서는 농작물이 자랄 땅과 더불어 비와 햇볕을 주는 하늘이 필요하다. 100명의 사람을 먹여 살릴 수 있는 식량이 생산되려면 일정량의 땅이 필요하다는 뜻이다. 게다가 이 시기에는 교통수단이 별로 발달하지 않았고 저장수단도 없었다. 당연히 재배한 음식이 운반되며 썩지 않을 정도까지의 반경에 일정 인구만이 모여서 살 수 있었던 시절이다. 구약성경 속에서 노아의 홍수 이후에 하나님은 노아에게 지면에 흩어져서 살라고 명령을 내리셨는데 농사를 짓던 시절에는 먹고살기 위해서 흩어질 수밖에 없었다.                                              

(다음 호로 이어집니다.)

유현준(건축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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