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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방운, <輞川十景圖>, 조선 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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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방운, 《輞川十景圖》 중 <孟城&#22387;圖>, 조선후기, 지본담채, 27.3×30.5cm, 소장번호 2067.
이방운, 《輞川十景圖》 중 <孟城&#22387;圖>, 조선후기, 지본담채, 27.3×30.5cm, 소장번호 2067.

이방운(1761-1823 이후)은 조선 후기에 활약한 화가로 자는 명고(明考), 호는 기야(箕埜, 箕野)·심재(心齋)·사명(四明) 등이다. 생애와 관련된 기록은 적지만 그가 그렸다고 전해지는 작품은 많은 것으로 파악되며 심사정, 강세황 등 문인 화가의 남종화풍을 기반으로 개성적인 작품 세계를 형성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그는 산수화, 인물화, 화조화 등 다양한 화목의 작품을 제작하였으며, 현존하는 작품의 절반 이상이 산수화인데 특히 시의도(詩意圖)를 다작하였다. 시의도란 고시(古詩)가 화제로써 그려진 것으로 주로 중국 당대(唐代)에 활동한 왕유(王維), 이백(李白), 두보(杜甫)의 시가 인용되었다. 조선 후기 화단에서 당시의도가 유행했는데, 그 배경으로는 당시(唐詩)와 관련된 서적과 중국 화보(畫譜)의 활발한 유통으로 남종화풍의 그림이 화단의 주류로 자리 잡았고, 은거 사상과 시서화 일치론을 수준 높은 것으로 인식했던 문인들의 취향을 꼽을 수 있다.

홍익대학교 박물관 소장품 <輞川十景圖> 역시 시의도이며, 왕유의 『輞川集』을 주제로 제작되었다. 『망천집』은 왕유가 벼슬을 관둔 후 장안의 인근 지역인 남전의 계곡 망천에 지은 별장에 은거하면서, 시 벗인 배적(裵迪)과 함께 ‘망천 이십경’을 소재로 시와 그림을 제작하여 엮은 것이다. 그의 다른 작품을 비롯하여 『망천집』 역시 소실되었지만 후에 오대(五代) 곽충서(郭忠恕), 북송대(北宋代) 이공린(李公麟) 등이 모본하고, 원대(元代) 이후 많은 문인 화가들이 즐겨 그리며 산수화의 화제로 유행하였다. 더욱이 명대(明代) 동기창(董其昌)의 문인화론에서 남종화의 시조로 왕유를 꼽을 만큼 그의 작품은 후대에 더욱 가치를 인정받았다. 조선에도 이징(李澄), 윤덕희(尹德熙), 정선(鄭敾) 등이 그렸다는 기록이 있으며 정황(鄭榥), 이방운, 김홍도(金弘道) 등의 작품이 남아 있다.

이방운의 <망천십경도>는 맹성요(孟城坳), 망구장(輞口莊), 문행관(文杏館), 궁괴맥(宮槐陌), 녹시(鹿柴), 북타(北垞), 임호정(臨湖亭), 남타(南垞), 죽리관(竹里館), 초원(椒園) 등 10곳의 명승지가 차례로 그려진 그림이다. 10폭 그림에는 망천 이십경이 담겨있는데, 가령 제1폭인 <孟城坳圖>에서 이십경 중 한 곳인 화자강(華子岡)이 배경으로 등장한 것이다. 맹성요와 화자강이 함께 그려진 또 다른 작품이 전해지며 그가 이 도상을 즐겨 그렸음을 짐작할 수 있다. 이렇게 그는 원작을 단순히 베껴낸 것이 아니라, 충분히 이해하고 재해석하여 자신의 화풍으로 <망천십경도>를 제작한 것이라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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