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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차 세계대전 종전 100주년미디어가 그려내는 전쟁의 참혹함. 그리고 휴머니즘.

100년 전의 11월, 기존과는 다른 양상의 전쟁이 막을 내렸다. ‘The Great War’라 불리던 그 전쟁은 르네상스 이후 18세기와 19세기를 거치며 우상화된 이성의 결과물이었다. 문명국을 자처하던 유럽에서는 벨 에포크(La Belle Epoque, 제1차 세계대전 이전 제국주의 전성기에 나타난 평화와 번영)의 낙관적인 분위기가 사라지고 염세주의와 파시즘이 대두되었다. 또한, 문명인으로서 야만을 계몽시켜야 한다는 사람들이 향유했던 이성에 대한 광신은 이성 자체를 비판하는 포스트모더니즘의 씨앗이 되었다. 전쟁에 대한 공포, 평화에 대한 갈망이 가득한 오늘날과는 달리, 벨 에포크와 전쟁 초기에는 전쟁에 대한 낭만이 가득했다. 이러한 낭만과 민족주의 아래, 수많은 청년들은 국가와 민족을 위한다는 명분으로 자원입대하였고, 사회는 이를 독려하였다. 반면 전쟁에 비판적인 의견을 내는 사람들은 겁쟁이와 매국노로 간주되어 옥살이를 하거나 벌금을 냈고, 반전(反戰)과 평화를 부르짖던 정치가는 많은 사람 앞에서 살해당하기도 했다. 제1차 세계대전을 다룬 두 작품을 통해 전쟁의 참혹함과 광기를 살펴보자.

미국의 징병 홍보 포스터

병사들의 평균 생존시간이 5일이라는 서부전선에 투입된 에리히 마리아 레마르크(Erich Maria Remarque, 1898~1970)는 전쟁이 어떻게 인간을 파탄내는지를 직시하였고, 이 경험을 바탕으로 반전소설 『서부전선 이상 없다』(1929)를 집필하였다. 출간 바로 다음 해, 루이스 마일스톤(Lewis Milestone, 1895-1980)에 의해 영상화된 이 작품은 전쟁 초의 광적인 상황과 전쟁의 참혹함을 그려냈다. 어느 학교의 교사는 교실에서 주인공과 반 친구들에게 자원입대를 독려한다. 학급의 학생들은 전쟁에 대한 두려움 대신 국가를 위한다는 낭만으로 가득 찼고, 이러한 광기는 입대를 주저하는 같은 반 친구를 겁쟁이로 몰며 반 전체를 전장으로 떠민다. 자의 혹은 타의로 전장에 도착한 학생들은 인격을 지닌 각 개인이 아니라 수많은 병사의 일원으로 하나둘씩 소모된다. 작가는 전장의 참혹함을 직시한 주인공이 고향에서 학생들을 선동하는 교사에 대해 분노를 표출하는 장면과 ‘전쟁에서의 희생은 당연하다’라며 전쟁이 이어지기를 바라는 마을의 어른들을 통해 전쟁의 광기를 보여준다. 또한 작가는 이러한 낭만적 광기에 질려버린 주인공이 오히려 전쟁터에서 편안함을 느끼며 하루하루 살아가는 장면과 주인공의 전사 후 독일군 사령부에 ‘서부전선 새 소식 없음’이라는 기록을 보여주며 작품의 주제의식을 직·간접적으로 드러내었고, 이 작품은 이후 등장한 수많은 반전문학에 영향을 주었다.

크리스찬 카리옹(Christian Carion, 1963~)의 작품 <메리 크리스마스(Joyeux Noel, 2005)> 역시 전쟁의 참혹함과 반전을 부르짖지만, 이를 보여주는 방식은 사뭇 다르다. 감독은 1914년 12월 25일에 일어난 크리스마스 휴전을 영상화하여 전쟁 도중 영국군과 프랑스군, 독일군 사이의 암묵적 휴전과 각 수뇌부의 대응을 통해 주제를 드러낸다. 크리스마스이브, 프랑스 북부의 독일 점령지역에서 영국군은 백파이프의 반주에 맞추어 노래를 부른다. 오페라 가수 출신인 독일군 장교는 이에 화답하며, 저격의 위험을 무릅쓰고 참호 위로 올라가기까지 한다. 서로의 의사를 확인한 각 군의 지휘관들은 상부로의 보고 없이 크리스마스 동안 휴전을 결정한다. 각국의 군인들은 함께 미사를 드렸고, 음식과 담소, 축구 등을 통해 휴식을 취하거나 전사자의 시신을 수습하기도 한다. 이처럼 총탄이 오고 가는 전쟁터에서 인간애가 꽃핀 것과 달리, 수뇌부는 이를 달가워하지 않는다. 프랑스와 영국, 독일군 수뇌부는 휴전을 맺은 각 군을 강하게 처벌하고, 이들을 처참한 전투가 벌어지던 베르됭 지역과 동부전선으로 보내는 장면을 마지막으로 영화는 끝이 난다. 감독은 작중에서 자신의 상관이자 아버지에게 “조국이요? 자기 집에서 칠면조나 뜯으면서 명령하는 자들보다 나는 저 독일군이 더 가깝게 느껴져요!”라며 울분을 토하는 프랑스군 장교와 아군을 사지로 보내는 각 군의 수뇌부를 교차시키며 작품의 주제의식을 직접적으로 드러낸다.

1914년 크리스마스 휴전을 다룬 영국 신문

혹자는 “미디어 속 전쟁이 미화됐으면 미화됐지, 미디어가 이를 과장했을 리 없다.”라며 전쟁은 각종 미디어에서 묘사된 그 이상으로 끔찍하다고 말한다. 영화의 모티브가 된 실제 전투에서도 애국심과 민족의식, 전쟁 영웅 등 전쟁의 낭만을 이야기하며 학생들을 사지로 모는 교사와 마을 사람들, 사람을 인격을 지닌 주체가 아니라 장기 말의 일부로 보는 각 군의 수뇌부는 약 7천만 명을 전쟁에 투입해 약 4천만 명의 사상자를 냈다. 한 국가의 인구와 맞먹는, 이처럼 참혹한 피해는 이성에 대한 광신과 문명인이라는 오만으로 가득 찬 당시 사람들에게 큰 충격을 주었다. 이로 인해 사상과 신념을 초월하여 반전주의가 확산되었지만, 전체주의의 등장에 대한 소극·유화적 대응으로 더욱 거대한 전쟁을 야기하기도 하였다. 한편 문화적으로는 인류 문명에 대한 비관적인 풍조가 확산되었고, 20세기를 거치며 근대문명과 이성에 대한 비판이라는 거대한 흐름을 형성하기도 하였다. 전쟁터에서 처절하게 죽어가는 등장인물들은 하나같이 전쟁은 절대 일어나서는 안 될 일이라고 주장하며 작가의 생각을 대변한다. 이들의 전쟁이 끝난 지 100년이 흐른 지금, 어딘가에 도사리고 있을 전쟁의 위협이 조금이라도 사그라들기를 바라본다.

이재환 기자  jhl0601@mail.hongik.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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