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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풍이 오던 밤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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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8월이 끝나갈 무렵, 기자는 친구들과 함께 제주행 비행기에 탑승했다. 머무를 게스트하우스에 짐을 맡기고 우리의 첫 행선지인 한담해변으로 출발했다. 제주에 올 때마다 들르는 한담해변은 여전히 아름다웠다. 기자에게는 그 바다가 다른 바다들보다도 특별한 의미를 지닌 곳이다. 작년 7월 첫 제주여행 때 기자는 한담해변에서 일몰을 지켜본 기억이 있다. 한참 새내기 생활을 즐기고 있었지만, 한편으론 인간관계에 지쳐 있었다. 지칠 대로 지친 기자에게 광대하게 펼쳐진 하늘과, 해가 저물며 만들어낸 갖가지 빛깔들이 ‘괜찮아, 별거 아니야’라며 위로해주었다. 갖고 있던 고민들을 마치 하찮은 것처럼 느껴지도록 했다. 그렇게 21살의 기자를 위로해 주었듯이, 제주의 노을은 22살의 기자도 변함없이 위로해 주었다. 해가 지고난 후 달리 걱정할 것은 없었다. 만약 있다면, 아마 태풍이 아닐까. 기자는 전국을 떠들썩하게 만든 태풍 ‘솔릭’이 제주를 강타하기 전날 제주도에 도착했다. 비는 아직 오지 않았지만, 바람은 심상치 않았다. 둘째 날 오후가 되니 마침내 걸어 다니기 힘들 정도의 바람이 불며 태풍을 온몸으로 겪게 되었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기자는 무섭지도 우울하지도 않았다. 22년 인생에서 태풍을 직격타로 맞은 적은 처음이기에 모든 것이 신기하고 재미있었다. 남들은 심히 걱정하던 태풍을 재밌게만 여긴 걸 보아하니 기자도 아직은 철이 덜 들었나 보다. 바람이 더욱 거세진 후 도착한 숙소는 제주에 오기 전부터 가장 기대하던 곳이었다. 서점 형태로 설계된 일층에는 여러 종류의 책이 배치되어 있었고 그 책을 천천히 음미하기 위한 공간들이 곳곳에 마련되어 있었다. 평소에도 책을 읽고 종종 깊은 생각에 빠지는 기자에게 그만한 천국은 따로 없었다. 숙소에는 21살의 남자 동생 두 명과 20살의 여자 동생 두 명, 그리고 남매 사장님 두 분이 계셨다. 셋째 날 아침이 되니 태풍은 더 심해졌고, 숙소 사람들은 비행기가 결항되어 울며 겨자먹기로 숙박을 유지하게 되었다. 식당도 영업을 하지 않았기 때문에 모두와 차를 타고 근처 마트로 향했다. 각자 팀을 꾸려 먹고 싶은 메뉴를 선정했고 요리를 시작했다. 모르는 사람들과의 낯설지만 설레는 여행이 시작되는 순간이었다. 그렇게 함께 요리를 해 먹고 게임을 하고, 낮잠을 자다 일어나 또다시 저녁을 해 먹고 분위기 좋은 노래와 함께 막걸리를 곁들여 서로의 이야기에 귀 기울이는 시간을 가졌다. 모든 것이 완벽했다. 태풍이 몰아치던 밤, 기자는 태풍으로부터 소중한 밤과 추억을 선물받았다. 사실 그 밤이 끝나지 않기를 간절히 바랐다. 방에 들어와 약간의 취기와 함께 책을 읽으며 기자는 이대로 시간이 멈췄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언제나 그렇듯 아침은 찾아오기 마련이다. 함께했던 이들과의 아쉬운 작별인사를 마치고 기자는 그곳에 짧은 편지와 글을 남겼다. 또다시 올 미래의 기자를 위해 한편의 체취를 남겨놓은 것이다. 그리운 곳이기에, 다시 돌아올 곳이기에 잊지 말라고 남겨놓았다. 언제나 서울 생활을 막막해하고 답답해하는 기자이기에 그 미래가 멀지 않았다는 걸 안다. 만남이 있다면 헤어짐이 뒤따른다는 점과, 아쉬울 때 소중히 간직하는 법을 알기에 지금 현재 이곳에서 최선을 다하려 한다. 혹시나 기자와 마찬가지로 일상에 지쳐있다면, 언젠가 자신의 내면과 만나는 시간을 갖기를 바란다. 그러다 다시 일상으로 돌아오더라도 힘들어하지 않기를, 우린 언제나 다시 돌아갈 수 있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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