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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녁이 있는 삶’, 워라밸의 시대를 만들 수 있을까

주 52시간 근무제, 선진 근로문화를 향한 첫 걸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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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장인 70%, ‘자기계발·가족 위한 시간 늘어날 것’

 

사회 초년생은 줄어든 임금 걱정스러워

 

인력난 증가, 임금 감소 등 부작용… 개선 필요

 

지난 7월 1일(일)부터 종업원 300명 이상을 보유한 사업장 및 공공기관을 대상으로 일명 ‘주 52시간 근무제’가 시행되었다. 대한민국의 근로시간은 OECD 국가 중 2위를 차지할 정도로 긴 상황이다. 이에 문재인 정부는 과도한 근로시간을 단축하고 ‘저녁이 있는 삶’, ‘워라밸’ 등의 표어를 제시하여 삶과 일의 균형을 찾을 수 있는 여건을 마련하고자 주 52시간 근무제를 시행한 것이다. 제도 시행 후 약 3개월이 지난 지금, 근로자들과 고용주들은 주 52시간 근무제를 어떻게 받아들이고 있을까?

 

달라진 직장 풍경과 저녁이 있는 삶 ‘좋아요’

근로자들 사이에서는 긍정적인 평가가 조금 더 우세하다. 지난 8월 3일(금)부터 10일(금) 문화체육관광부가 실시한 ‘노동시간 단축에 대한 인식 여론조사’(전국 성인 1515명, 표본 오차 95%±2.5%p)에 따르면 응답자의 53%는 노동시간 단축이 ‘경제에 긍정적 영향 줄 것’이라고 응답했다. 한편 ‘취미생활 및 자기계발을 위한 시간이 늘어날 것’(70.4%), ‘가족과 보내는 시간이 늘어날 것’(70.2%), ‘불필요한 야근 관행이 줄어들 것’(67.7%), ‘업무 시간에 더 집중해서 일할 것’(63.6%) 등 주 52시간 근무제가 가져올 긍정적인 요소들에 대한 응답률 역시 절반을 훌쩍 넘겼다.

직장 풍경도 조금씩 변해가고 있다. 롯데마트, 위메프 등의 일부 기업들은 ‘PC 온‧오프제’(하루에 정해진 업무시간(8시간)이 지나면 PC가 자동으로 꺼지는 시스템)를 도입하여 직원들의 빠른 퇴근을 장려하고 있고, 출‧퇴근 시간을 유동적으로 조정할 수 있도록 하는 ‘유연근무제’를 시행하는 등 정부 정책에 맞는 사내 시스템을 구축하고 있다.

이에 직장인들의 업무 후 활동 선택지 또한 많아지면서, 주 52시간 근무제 시행으로 반사이익을 톡톡히 보고 있는 업종들도 등장했다. 국세청 사업자현황에 따르면 시간적 여유가 생긴 직장인들을 주 고객층으로 하는 레저‧스포츠시설운영업의 비중이 지난해 대비 약 30.3% 증가했다. 파고다어학원, 시원스쿨 등 외국어 교육업체들도 직장인 전용반을 신설하는 등 직장인 특수를 누리기 위한 활동을 진행하고 있다. 편의점 브랜드 CU는 자사의 반찬류 제품 매출액이 지난 7월 이후 전년 동기 대비 약 120.1%로 크게 상승했다고 발표했는데, 이는 퇴근 후 집에서 저녁을 해결하게 된 직장인들이 늘면서 신규 수요가 창출된 것으로 분석되고 있다. 백화점 및 대형마트 문화센터에서도 평일 저녁 시간대(오후 6~7시 전후)에 직장인 맞춤 강좌를 개설하거나 직장인을 대상으로 한 특별전을 진행하여 신규 수요에 대응하고 있다. 이렇듯 주 52시간 근무제는 ‘직장인의 여가시간 증가→새로운 수요 창출→기업의 이익 증대’라는 선순환 구조를 통해 최종적으로 임금 상승 및 복지 향상이라는 목표를 두고 있다.

임금/초과 근무 문제와 인력 수급 ‘글쎄’

반면 초과 근무와 임금 감소, 인력난 등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도 만만치 않다. 오픈서베이에서 실시한 ‘주 52시간 근무제에 대한 직장인 인식’ 설문조사(전국 20~50대 남녀 500명, 표본 오차 95%, 일부 복수응답 가능) 결과, 제도 시행 이후 우려되는 부작용으로 ‘임금 감소’(63.2%), ‘회사의 꼼수 근무 지시’(55%)를 선택한 응답자가 많은 것으로 드러났다.

근로시간은 근로자가 사용자의 지휘·감독 하에 종속되어 있는 시간을 의미하지만 실상 이를 명확하게 정의한 가이드라인은 존재하지 않는다. 초과 근무 시에는 통상 임금의 1.5~2배에 해당하는 추가 수당을 받을 수 있지만, 불명확한 가이드라인 때문에 퇴근 이후 SNS 메신저로 이루어지는 업무 등 간접적으로 구속되는 시간은 초과 근무에 포함되지 않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 이 때문에 일부 직장인들 사이에서는 ‘차라리 돈이라도 제대로 받고 야근하던 예전이 나을 정도다’라는 불만의 목소리가 이어지고 있다.

한편 상대적으로 자산이 많지 않은 사회 초년생들 사이에서는 근로시간이 줄어들면서 실수령 임금도 같이 줄어들어 실효성을 느끼지 못한다는 우려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국회 예산정책처 조사 결과, 근무제 시행 이전 주 52시간을 초과하여 근무하던 근로자의 월 임금수령액이 시행 이후 평균 37만 7000원 정도 감소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로 인해 상대적으로 복지가 좋고 급여가 많은 타 사업체로 이직하는 경우도 늘고 있다. 특히 운수업계가 이직률 증가로 인한 직접적인 피해를 입었다. 실제로 경기도 고양시 A운수의 경우 지난 4~6월 사이 주 52시간 근무제 실시로 임금 감소를 우려한 운행사원 100여 명이 수도권의 타 운수업체로 이직하였다. 이로 인해 비수익 노선의 배차간격이 크게 증가하여 해당 노선을 이용하는 시민들이 출‧퇴근에 불편을 겪는 등의 2차 피해가 발생했다. 더불어 제조업계도 인력 부족에 허덕이고 있다. 중소기업의 경우 근로시간이 줄어들면서 인력 충원이 필요한데도 대기업 선호 풍조 때문에 중소기업으로 입사하려는 수요가 적어 물량 조절 및 숙련직 고용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일각에서는 주 52시간 근무제가 오히려 ‘인력난→매출 감소→임금 감소 및 구조조정’으로 이어지는 이른바 ‘죽음의 트라이앵글’을 만드는 것이 아니냐는 주장이 제기되기도 했다. 이외에도 보건업, 각종 운송업 등의 21개 업종은 주 52시간 근무제 준수 의무가 없는 특례업종으로 분류되기 위해서 각 근로시간 사이에 11시간 이상의 휴게시간을 보장해야 하지만 업종 특성상 휴게시간을 마련할 수 있는 시간대가 마땅치 않아 골머리를 앓고 있다.

첫 술에 배부르기는 힘든 법, 시행착오 겪으며 고쳐나가야

이렇듯 주 52시간 근무제 시행을 통해 얻은 순기능도 있었지만, 기존 체제와의 마찰과 제도의 허점으로 인한 문제 역시 뚜렷하게 드러났다. 현재, 세계적으로 근로시간은 점점 줄어들고 있는 추세다. 미국, 일본, 독일, 영국 등 선진국의 주 근로시간은 40~48시간, 프랑스의 경우 주 35시간으로 한국보다 현격히 짧은 편이다. 그러나 추세에 반드시 따르기보다는 국내의 사정에 맞추어 근로시간을 조정하는 등 융통성 있는 정책을 펼쳐야 할 것이다.

오는 2020년 1월 1일부터는 종업원이 50∼299명인 사업장, 2021년 7월 1일부터는 종업원이 5∼49명인 사업장에도 주 52시간 근무제가 확대 적용된다. 해당 시기까지는 아직 1~2년이 더 남았지만, 정부는 이번 제도를 시행하면서 발견한 문제점을 검토하여 이를 보완하고 기업 및 근로자의 의견이 최대한 반영될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할 것이다. 기업 역시 근로자의 권리를 침해하지 않을 수 있는 선에서 업무 효율성을 높일 수 있는 방안을 제고하고 정부 및 근로자와의 적극적인 소통으로 정책의 효력을 발휘할 수 있는 환경을 마련해야 한다. 양 측의 개선 노력이 결실을 맺게 된다면 비로소 ‘저녁이 있는 삶’, ‘워라밸’이 특별한 것이 아닌 당연한 것으로 여겨질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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