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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남 강진 유배지에서 만난 『정약용의 여인들』(2017)

생을 관통한 불멸의 여인들, 흑단처럼 단단했던 그의 심장에 소리 없이 돌을 던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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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강진 한 명이요.”

자그마치 5시간을 달려 강진 터미널에 도착한 후, 배차 간격이 족히 50분이나 되는 ‘남창행’ 농어촌 버스에 몸을 실었다. 군내에 잠시 마실 나오신 듯한 할머니들 네 분과 푸른 눈이 인상적이었던 외국인 두 명, 그리고 밀짚모자를 눌러 쓴, 쉰 살 쯤 돼 보이는 한 남자가 헐레벌떡 탑승하자 버스는 한적한 도로를 달리기 시작했다. 20분도 채 지나지 않아 알아듣기 어려운 사투리로 만담을 나누시던 할머니들이 내리고, 이어 자그마한 공장이 전부인 듯한 어느 한적한 시골 마을에서 외국인들도 안녕을 고했다. 그리고 그렇게 한참을 기자와 밀짚모자를 쓴 남자는 왠지 모르게 긴장되는 기류 속에서 강진을 더욱 깊숙이 파고 들어갔다.

삑-. 하차 벨을 먼저 누른 건 밀짚모자 남자였다. 그러나 신기하게도 우리는 같은 정류장에서 하차했다. 심상치 않은 기운을 애써 무시한 채, 우리는 어색하게 서로를 힐끗 쳐다본 후 두 갈래 길에서 헤어졌다. 다산초당으로 이어지는 길에는 수많은 잠자리가 하늘을 수놓았고, 돌담 옆으로 아직은 푸른빛이 채 가시지 않은 감들이 대롱대롱 매달려 맛있는 변신을 꾀하고 있었다. 또 길을 따라 걸으면서 깊이를 헤아리기 어려운 마을의 큰 우물도 볼 수 있었다. 본격적으로 다산초당에 가기 위해 만덕산을 오르기 전, 다산기념관에 들렀다. 조선 당대 최고의 실학자라고 불리었던 정약용에 대해 다시 한 번 짚고 넘어가고 싶었다. 그리고 그 곳에서 필연을 가장한 우연처럼, 버스에서 만났던 밀짚모자 남자와 재회했다. 그는 다산기념관의 문화해설사로 일하는 사람이었다.

이번에는 서로 멋쩍은 웃음을 지어 보였다. 그리고는 정약용의 유배지 생활에 대한 이야기를 스스럼없이 나누기 시작했다. 그는 정약용이 본처와의 사이에 6남 3녀를 두었는데, 이중 4남 2녀가 3세 이전에 죽었다고 전했다. 다산이 막내를 잃은 것은 1802년, 포항 장기에서 유배 중이었다가 문초를 받고자 한양으로 압송된 후 다시 유배에 처해졌을 때였다. 와중에 정약용은 홀로 자식을 떠나보낸 아내 ‘혜완’을 염려하며 아들에게 아내를 부탁하는 편지를 보내기도 했다며 인간으로서의 따뜻한 면모 또한 뛰어났다고 전했다.

 

병든 아내가 낡은 치마를 보내 왔네

천리 먼 길 애틋한 정을 담았네

 

흘러간 세월에 붉은 빛 다 바래서

만년에 서글픔 가눌 수 없구나

 

마름질로 작은 서첩을 만들어

아들을 일깨우는 글을 적는다

 

부디, 어버이 마음을 잘 헤아려

평생토록 가슴에 새기려무나 

 

기록으로만 남아있던 다산 정약용의 ‘하피첩(霞帔帖)’은 그의 두 아들에게 교훈이 될 만한 글을 치맛단에 적은 것으로, 노을 ‘하(霞)’와 치마 ‘피(帔)’를 써 ‘노을빛 치마’라는 뜻을 담고 있다. 이처럼 당대 최고의 학자가 여인의 치맛단에 편지를 쓰게 된 이유는 무엇일까. 그리고 그 치마의 진정한 주인은 누구이며, 그 안의 숨은 의미는 과연 무엇일까.

밀짚모자를 쓴 문화해설사와의 아쉬운 만남을 뒤로 하고, 의문점을 풀기 위해 다산초당으로 걸음을 옮겼다. 가히 유배지답게 오르는 길의 경사는 가파르고, 엉성하게 뻗어있는 나뭇가지는 전혀 기자를 반기지 않는다는 듯 기자의 옷깃을 잡아챘다. 이렇게 험한 산길을 정약용은 매일같이 걸었을 것이다. 그가 유배지에서 보낸 나날들, 그가 겪은 고통의 깊이를 떠올리니 순간 아득해졌다. 올곧은 성품을 가졌던 그의 유배지라고 생각해서일까. 길옆으로 우뚝 솟은 나무들은 그의 강직하고 고귀한 풍모를 말해주는 것 같았다. 산을 오른 지 30분 정도가 지나자, 이윽고 정약용의 18년 유배 생활이 담겨있는 다산초당이 그 모습을 드러냈다.

 

유배지 강진에서 홀연 나타난 진솔이라는 여인이 안겨준 평온, 나른한 휴지(休止)를 그는 탐욕스럽게 껴안았다. 깊고 따스하고 청결했다. (중략…) 그 안온을 줄줄이 꿰어 차면 열 가지도 넘을 것이다.

 

이러한 산중의 외롭고 고통스러운 유배의 나날을 함께 해준 이가 있었으니, 소리 없이 그를 다독이고 지탱해준 여인 ‘진솔’이다. 정약용이 유배 생활을 지내며 만나게 된 진솔은 그를 지극정성으로 보필한다. 직접 가서 보니, 다산초당은 유배지라는 억압된 공간의 의미를 떠나 지극히 인간적인 공간이었다. 서리처럼 희고 차가운 혜완과 활활 타오르는 불꽃같은 진솔, 두 개로 나뉘어져버린 사랑이 존재했다. 진솔은 신분에 대한 귀천의식 때문에 그에 대한 사랑을 몸을 쓰는 노동으로밖에 표현할 수 없었다. 진솔이 그를 대하는 태도가 너무나도 지극하여 한때 그녀가 실제의 인물이 아니라 허구의 인물이었길 바라기도 했다. 그러나 혜완은 이러한 진솔을 거두어주지 않았다. 어쩌면 혜완에게 진솔은 다른 이름으로 저장된 지옥의 이름이었을지도 모른다. 오로지 정약용만을 품고 싶었던 옹졸한 욕심 때문이었을 수도 있지만 그때는 그녀에게 진솔을 품어줄 만한 여백이 없었음은 분명했을 것이다.

 

비단치마 끌리는 소리, 사뿐 내려딛는 저 정결한 부드러움, 혜완! 소리가 혀 안에서 굳었다.

“혜완, 당신은 내 숨이었다오.”

그 말이 하고 싶은데, 그 말을 해야 하는데, 마른 혀가 소리를 삼켰다

 

정약용이 가족들을 그리워하며 자주 올랐다는 천일각으로 발길을 옮겼다. 저만치 내다보이는 강진의 모습과 함께 기자는 깊은 숨을 들이마셨다. 순간, 이 숲은 누군가 고뇌하며 갇혀있었다는 느낌보다 오히려 잠시 머물다가는 아늑한 쉼터 같은 곳이라는 느낌을 받기도 했다. 다른 의미로 ‘완벽한 감옥’ 같았다. 18년 동안의 유배 생활이 지옥같지만은 않았을 수도 있다는 생각을 했다. 소설의 끝부분으로 갈수록 이는 단순한 로맨스가 아닌, 역사적 고증 속 한 개인의 가장 내밀한 이야기를 펼친다는 느낌을 받기도 했다. 누울 자리를 보고 다리를 뻗는 성격을 가진 진솔과, 서슬이 퍼런 혜완, 그리고 정약용의 인생과 가치관을 그대로 따라가려는 두 딸들의 일대기가 복합적으로 펼쳐지며 무겁기도 한, 은유적인 정약용의 삶이 머릿속에 그려진다.

버스 시간에 맞춰 일찍 하산하여 정류장에 도착했다. 마지막으로 담은 다산초당의 모습은 노을이 지고 있었다. 초록의 벼는 노란색으로 물들었고, 고추잠자리가 하늘을 수놓았다. 초록의 감은 알맞게 익어 탐스러운 자태를 뽐내고 있었다. 그 순간만큼은 외로움과 쓸쓸함, 그리고 따스함이 뒤섞인 감정이 물씬 느껴져왔다. 저만치 다산기념관 밖에 나와 정류장 쪽을 바라보는 듯한 밀짚모자 남자의 모습도 보였다. 노을 진 하늘과 퍽 어울리는 그림이었다. 마치 정약용이 노을빛 치마에 새겼던 한마디 한마디가 전해지는 것 같았다. 그제야 알게 되었다. 일평생을 백성을 위해 살았던 그의 마음은 어쩌면 가족, 특히 두 여인을 생각하는 따스한 마음에서 온 것이 아닐까. 역사 속 위인들의 서사 안에는 위대한 업적이 기록되어 있지만, 그이를 물심양면 생각했던 주위 모든 사람들의 이야기도 함께 녹아있을 것이며 잊어서는 안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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