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UPDATE : 2019.10.8 화 17:19
상단여백
HOME 문화 오색찬란
미술관에서 벗어나 삶 속으로 한 발짝, 두 발짝 걸어들어온 공공미술과 참여미술미술, 세상을 바꾸는 혁명의 가능성을 선보이다

미술을 감상할 수 있는 곳은 어디일까? 이 질문에 대해 대부분은 미술관이라고 대답할 것이다. 그러나 이 질문의 답을 ‘길거리’라고 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미술 전시는 더 이상 한공간에 국한되지 않고 전달하고자 하는 메시지에 가장 적합한 장소를 찾아 돌아다니기 시작했다. 이에 미술은 도시 속 커다란 건축물 앞에 아름다운 조형물로, 때로는 지역 사회 전체를 참여시키는 프로젝트로 우리 삶에 다가오고 있다. 미술은 더 이상 하얀 벽에 유화로 칠해진 캔버스만을 가리키지 않는다. 하이 아트(high art)로만 존재한 미술이 이제 그 수직의 벽에서 내려와 수평적인 우리의 삶 속으로 들어오고 또 변화를 이끌어내려고 한다. 과연 미술이 어떻게 우리 삶에 참여해서 일부가 되었는지, 그리고 참여 그 이상으로 우리 삶과 사회에 미친 변화를 살펴보자.

 

▲<Culture in Action : New Public Art in Chicago> 중 <full circle>

대중의 삶 속에 ‘예술’이라는 이름을 덧댄 공공미술

도심에 나가 조금만 큰 거리를 걷다보면 심심치 않게 거리나 건물 앞에 세워진 조형물을 볼 수 있다. 이를 공공미술이라 하는데, 말 그대로 공공장소에 세워진 조각들을 의미한다. 이러한 공공장소 속의 예술은 제2차 세계대전 후 미국에 의해 적극적으로 받아들여졌다. 정부가 건축물을 일정 크기 이상으로 지으면 조각물을 포함한 미술품을 설치하도록 법으로 정하자 이를 통해 많은 조각가들이 혜택을 입었다. 하늘에 닿을 듯 높은 건물로만 구성되어있는 삭막한 도시를 예술로 가득 채워 도시의 환경을 아름답게 만들겠다는 취지에서 미국의 공공미술이 출발한 것이다. 처음에는 수많은 조각품이 설치되며 도시의 분위기를 바꾸고 대중의 심미안을 높여주는 듯 했지만, 실질적인 수혜를 누리는 쪽은 대중이 아닌 조각가뿐이었다. 주변 환경을 전혀 고려하지 않고 갑자기 맥락도 없이 나타난 예술이라는 비판을 받았던 그들의 작품은 하늘에서 ‘풍덩!’하고 떨어진 것 같다며 plop art라고 지칭되었다. 

급기야 공공미술에 변화를 꾀해 조각뿐만 아니라 다양한 매체로 환경과 공간에 어우러지게 하자는 움직임이 일어났다. 일반 관객에게 쉽게 다가가 참여와 소통을 시도하기 시작한 것이다. 그러나 이 역시 지나치게 기능주의적이고 미적 가치보다는 사용 가치를 더 따지게 되어 미술보다는 상업적 디자인으로 전락해버렸다는 비판을 받게 되었다.

그 이후 작가들은 공공미술의 본질을 고민하게 되었고, 1980년대 이후 공공미술은 ‘공동체의 참여’로 그 의미를 확장했다. 일방적으로 작가 혼자 설치하는 작품으로 끝나는 것보다는, 공동체의 협의 아래 대중과의 소통이 중요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대표적인 예시로 1993년에 나타난 <Culture in Action : New Public Art in Chicago>가 있다. 특히 이 프로젝트에서 나타난 여러 작품 중 시카고 출신 100명의 여성의 이름이 적힌 기념패를 거리에 전시한 <full circle>이 가장 주목을 받았다. 공공미술이 단순히 그 자리에 존재하는 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길을 오가는 사람들로 하여금 ‘아, 이 작가가 시카고 출신이구나!’라는 생각을 하게 만드는 것이다. <에이즈 환자의 음식 공급을 위해 만든 길거리 점포의 수경 재배 정원>이라는 프로젝트는 길거리에 작은 점포를 내고 수경 재배 정원을 만들어, 그들이 키운 식물을 팔아 그 돈으로 에이즈 환자에게 도움을 주었다. 즉 공공미술은 수동적인 관객을 직접 미술제작자로 변화시켰던 것이다. 관객 스스로 적극적으로 문화를 향유하고 제작자가 되게 만든 공공미술은 일시적이고 일방적인 공동체적 프로젝트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지역 사회 전체를 참여하도록 만드는 새로운 장르로 탈바꿈을 하고 있다.

▲리크리트 티라바니자(Rirkrit Tiravanija)의 <soup/no soup>

참여미술, 개인, 공동체 그리고 사회를 변혁시키다

더 이상 작가는 미술관에 머무르지 않는다. 그들은 이제 바깥으로 나와 적극적으로 개인을, 공동체를, 또 사회를 변화시키고자 한다. 이에 작가는 마을로, 또 투쟁하는 현장으로 투입되어 그들과 협업하고 교류하기 시작한 것이다. 참여 미술을 제창한 이론가는 클레어 비숍(Claire Bishop, 1971~)이다. 그녀는 미술이 미적인 것보다도 공동체의 이름 아래 그들이 주장하고자 하는 바를 작업의 목표로 두어야 한다며 ‘사회적 전회(全會)’를 주장했다. 따라서 미술가는 단순한 오브제 생산자보다는 상황의 창출자이자 협업자로, 작업은 이동가능한 상업적 생산물이 아닌 장기적인 프로젝트로 보아야 한다고 전했다. 그리고 이러한 작업 속의 가장 중요한 관객은 관람에서 그 역할을 그치는 것이 아니라 공동 생산자이자 참여자로서 존재한다. 

참여미술 외에도 공동체와 관련된 개념으로 관계미술이 있는데, 관계미술은 사회적 변화를 이끌어낸다기보다는, 지금 당장의 일시적인 해결을 도모한다는 점에 차이점이 있다. 관계미술의 대표적인 작가로는 리크리트 티라바니자(Rirkrit Tiravanija, 1961~)가 있다. 그는 미술관에 커다란 식탁을 가져다두어 관람객이 앉아서 음식을 먹을 수 있도록 제공했다. 즉 단순히 작품만 보고 돌아가지 말고 평소에는 잘 먹기도 어려운 음식을 배치해 그들의 발걸음을 이끌어 사람들을 모으고 또 그들끼리 대화를 이끌어내는 것이다. 이는 당장의 사회 변혁과 행복한 미래를 위한 공동체의 협업보다는, 현재의 이웃과 맺을 현실적인 관계를 창안하는 것이 더 시급하다고 본 것이다. 

그러나 비숍은 역동적이고 지속적인 관계가 반드시 요구되어야 한다고 보았고 미적 고려보다는 미학적이고 정치적인 참여미술을 강조했다. 그는 제레미 딜러(Jeremy Deller, 1966~)의 <오그리브 전투>가 참여미술에 가장 적합한 예시라고 생각했다. <오그리브 전투>는 실제로 일어난 1984년 파업 사태에 기인해서 만들어진 다큐멘터리다. 오그리브라는 작은 마을의 광부들이 파업을 하고 시위를 하자 경찰이 출동해 이들과 마찰을 빚게 된 것이다. 제레미는 훗날 실제로 마을에 살고 있는 광부들과 동네 주민들, 경찰, 그리고 시위로 인해 다쳤던 사람들 등을 모두 모아 인터뷰를 진행했다. 그리고 그들에게 제안을 한다. 다시 한 번 이 사태를 재현해보자고 말이다. 그러나 재미있는 점은 1984년 당시 그들의 지위와 상관없이 무작위로 역할을 분담해서 퍼포먼스를 진행한 것이다. 이에 제비뽑기를 통해 당시에는 광부였었던 사람이 경찰 역을 맡기도 하고, 경찰들 역시 무작위로 뽑아 그대로 경찰 역을 하기도, 반대로 광부 역을 맡기도 하며 다큐멘터리 촬영이 진행되었다. 분명 처음에는 실제 사건에 기반을 두었기 때문에 연출된 리얼리티로 시작했지만, 상당히 많은 사람들이 관여했기 때문에 그들이 만들어내는 재현에는 예측할 수 없는 실현이 나타났다. 예를 들어 당시 오그리브 사건은 상당히 민감한 사건으로, 여론에서는 광부들의 억울함과 경찰의 폭력을 이분법적으로 조명했었다. 그러나 비숍은 이 다큐멘터리가 이분법에서 벗어났기 때문에 미학적이며 참여적이고 사회를 변혁시킬 수 있는 좋은 예시가 될 것으로 기대했다. 실제로 영상을 촬영하며 출연자들끼리 춤을 추고 축제를 여는 일이 벌어지기도 했다. 이 프로젝트를 담은 다큐멘터리라는 형식 역시 완전한 허구의 성격을 가지는 것도 아니기에 예술성 역시 충분히 부여되었다. 또한 대부분의 다큐멘터리는 계급 투쟁 속 죽은 열사와 노동자를 영웅을 상투적으로 다루는 것이 대부분이지만, <오그리브 전투>는 무작위로 역할을 나누었기 때문에 더 이상 이분법적인 역할에 얽매이지 않고 중간적인 위치의 사람들을 새롭게 등장시켰다. 더불어 이 작품은 반드시 다큐멘터리로 제작된 작품이 영상 형식에 국한되지 않고, 다양한 형태로도 변용될 수 있음을 시사했다. 즉 퍼포먼스, 사진 및 텍스트의 아카이브 등으로 많은 매개 장치를 활용해 단일 매체의 이용에서 벗어난 것이다. 비숍은 이렇듯 윤리적 전회에서 벗어난 참여미술을 통해 사회적인 변혁과 사회적 전회를 불러일으킬 수 있다고 믿었다.

▲제레미 딜러(Jeremy Delle)의 <오그리브 전투>

미술은 결국 세상을 바꿀 수 있을까?

미술작품을 보면서 우리는 감동을 느끼곤 한다. 그러나 질 들뢰즈(Gilles Deleuze. 1925~1995)는 이러한 정서 작용이자 주관적인 것은 예술이 아니고, 개인적인 것에서 머물지 않고 우리가 지금까지 갖고 있지 못했던 새로운 감각, 정동, 지각을 열어주어 사람들에게 지각 변동을 일으키는 것이야 말로 진정한 예술이라고 생각했다. 앞서 언급했던 확장된 공공미술과 참여미술은 예술의 역할을 확장했다. 아름다움, 미(美)에만 머무는 1차원적인 목적에서 벗어나 결국 우리의 삶을 뒤흔들고, 정치·사회적으로 변화를 이끄는 미술이야 말로 진정한 미술이라고 말이다. 

 

미술은 수백, 수천 년 전부터 조각으로, 캔버스로, 퍼포먼스로, 영상으로, 사진으로 사람들 곁에 머물러 왔다. 그리고 확장된 공공미술과 참여 미술, 그리고 들뢰즈에 의해서도 증명되었듯 분명 미술은 작품에 공동체를 참여시키고 사람으로 하여금 새로운 지각을 느끼도록 만든다.  즉 세계를 완벽히 변화시킬 순 없어도 미술이 가진 가능성으로 한 사람을, 공동체를, 마지막으로 그들이 합쳐진 사회에 영향을 주어 그들로 하여금 경이의 순간을 경험하게 한다면 어떨까? ‘미술이 세상을 완벽히 전복시킨다’라고 말하긴 어려울 수 있겠지만, 세상을 구성하는 가장 작은 구성체들에게 변화의 기회를 제공할 지도 모른다. 미술의 가능성을 낮게 보고 있었던 사람이 있는가? 오늘, 매너리즘에 빠져있었던 생각과 관점에 변화의 손길을 건네줄 미술을 찾아 주변을 살펴보는 게 어떨까?

김나은  smiles3124@mail.hongik.ac.kr

<저작권자 © 홍대신문,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icon인기기사
기사 댓글 0
전체보기
첫번째 댓글을 남겨주세요.
여백
여백
여백
Back to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