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앙드레 바쟁 지음, 박상규 옮김, 사문난적, 2013

<영상·영화사 세미나> 안상원 교수가 추천하는 『영화란 무엇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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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역사상 가장 유명한 평론가를 꼽으라면 누구나 주저 없이 앙드레 바쟁(Andre Bazin, 1918~1958)을 꼽을 것이다. “현재 가장 위대한 평론가...”. 바쟁의 사후 작성된 에릭 로메르(Eric Rohmer)의 추도문(<카이에 뒤 시네마(Cahiers du cinema)> 1959년 1월호)에 적힌 이 구절의 타당성을 의심하는 이는 아마 없었을 것이다. <카이에 뒤 시네마>의 창립자들 중 한 명이자 이 영화 잡지의 정신적 지주로서 누벨 바그(Nouvelle Vague) 세대의 아버지 노릇을 했던 바쟁만큼 거대한 족적을 남긴 평론가가 있었던가? 프랑스 시네마테크의 설립자들 중 한 명인 앙리 랑글루아(Henri Langlois)가 ‘한 세대의 의식’이라고까지 표현했던 바쟁의 업적은 그러나 단순히 사회적 맥락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40살에 너무 일찍 세상을 떠난 그는 평생 동안 2800편 가량의 글을 썼는데, 이 중 이론적 가치가 있는 글들을 모아 『영화란 무엇인가(Qu’est-ce que le cinema?)』라는 제목으로 1958년부터 출간하기 시작했고, 이는 4권까지 이어졌다. 지금 이 지면을 통해 소개하고자 하는 책은 그 글들 중에서도 핵심적인 27편을 골라 엮은 것이다. 다시 말하자면 평론가 바쟁의 이론적 사유를 담고 있는 책이라고 할 수 있다.

이론가로서 바쟁은 엡스테인(Jean Epstein)이나 에이젠슈테인(S. M. Eisenstein), 발라즈(Bela Balazs) 등등의 선배 이론가들과 입장을 달리한다. 그들이 대부분 영화의 예술성을 설명하기 위해 형식적 차원에서 영화 이미지의 비사실적 성격에 집중했다면, 바쟁은 동일한 목적을 위해 영화 이미지의 사실적 성격에 집중한다. 영화는 그대로의 현실을 그저 복제할 뿐이라는 가치폄하에 대해 형식주의적 접근이 영화 이미지와 현실간의 차이를 통해 영화의 가치를 입증하고자 했다면, 바쟁의 리얼리즘은 영화 이미지가 현실로부터 파생된다는 사실 자체에 의미를 부여한다. 즉, 영화의 가치는 현실을 보여주는 것에 있다. 

그런데 이러한 리얼리즘적 접근과 관련하여 바쟁은 종종 영화 매체의 기록적 능력에 대해 광적인 집착을 가졌던 것으로 이야기되곤 한다. 바쟁에 대한 이러한 오해는 일차적으로 그가 체계적인 이론서를 남기지 않았고, 그의 글 대부분이 비평문이라는 사실에 기인한다고 할 수 있다. 그의 글은 비평 언어가 갖게 되는 불명확함의 문제를 어느 정도 동반하며, 따라서 좀 더 이론적이라고 할 수 있는 그의 몇몇 글들이 상대적으로 더 큰 권위를 갖게 되는 것이다 (『사진 이미지의 존재론(Ontologie de l’image photographique)』, 『금지된 편집(Montage interdit)』, 『영화언어의 진화(L’Evolution du langage cinematographique)』 등). 

바쟁의 리얼리즘 이론에 가장 부합하는 실제 사례는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등장한 이탈리아 네오리얼리즘 영화들이었는데, 이 영화들에 대한 바쟁의 비평은 (당연히) 기록 자체의 차원이 아니라 스타일의 차원에서 전개되었다. 영화가 아무리 역사상 가장 뛰어난 재현매체라 할지라도, 영화 이미지는 결코 완전한 복제 이미지가 될 수 없기에, 우리는 시네아스트의 예술적 선택에 대해서 이야기해야 하는 것이다. 즉, 영화는 예술가의 의식에 의해 재구성된 현실을 보여줄 뿐, 결코 완벽한 기록으로서 ‘완전영화(cinema total)’의 꿈을 구현한 것이 아니다. 바쟁의 리얼리즘 이론은 대상의 기록이 아니라 대상에 대한 인식으로부터 출발하고, 영화의 형식은 이러한 인식을 드러내는 선택의 과정이다. 이런 의미에서만 영화는 현실과 ‘존재론적으로 동일’하다. 

바쟁의 사후 60년 동안 영화는 많이 바뀌었다. 그러나 영화가 무엇보다도 우리의 현실과 관련하여 이야기되어야 한다는 바쟁의 주장은 여전히 유효하다. 바쟁에게 영화의 리얼리즘은 특정 스타일과 동일시되는 것이 아니라, 끝없이 전진하는 하나의 과정이었다. 생각할 틈을 주지 않고 현실을 잊게 만드는 영상물들이 판을 치고 있는 오늘날, 바쟁의 글은 영상물의 문화적 가치와 관련하여 많은 고민거리를 던져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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