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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정서와 심신미약 규정 간의 간극 좁혀야 … 사법당국의 올바른 판단 요구돼

음주 후에 저지른 범죄, 나는 심신미약으로 무죄인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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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0월 14일(일) 강서구 소재 한 PC방에서 피의자 김모씨가 아르바이트생인 피해자의 머리, 얼굴 등을 수십 차례 찔러 사망하게 한 사건이 발생했다. 피의자는 범행 직후 경찰 측에 우울증 진단서를 제출했다. 이에 수사기관은 피의자가 형법 10조의 심신장애에 해당하는지 여부를 가리기 위해 공주 치료감호소로 이송시켰고 한 달 동안 전문기관의 정신감정을 받게 할 예정이다. 이 사건으로 인해 ‘심신미약(心神微弱)’이 도마 위에 올랐다. 청와대 청원 게시판에는 심신미약을 이유로 처벌이 약해져서는 안 된다는 글이 올라와 5일 만에 90만 명의 동의자가 청원에 참여하기도 했다. 대중은 지금껏 범죄자들이 극악무도한 범죄를 저질러 놓고는 음주, 우울증이라는 이유만으로 감경처분을 받아온 것이 부당하다고 지적하고 있다. 

 

심신미약=감형 or 무죄? 정확한  개념은

형법 제10조(심신장애인)는 ①심신장애로 인하여 사물을 변별할 능력이 없거나 의사를 결정할 능력이 없는 자의 행위는 벌하지 아니한다. ②심신장애로 인하여 전항의 능력이 미약한 자의 행위는 형을 감경한다. ③위험의 발생을 예견하고 자의로 심신장애를 야기한 자의 행위에는 전2항의 규정을 적용하지 아니한다. 라고 규정하고 있다. 즉 1항은 심신상실을, 2항은 심신미약을 의미하는데, 아예 사리분별이 불가능하다면 심신‘상실’, 그 정도는 아니지만 참작할 만한 문제가 있다고 인식되면 ‘미약’으로 판단된다. 형법 제10조의 취지는 형사법의 ‘책임주의’에 기반하고 있다. 즉 사리분별, 정상적 의사결정 능력이 부재한 사람은 고의를 가진 범죄자와 차별점이 있으며, 법 규범에 맞춰서 행동하는 것을 기대하기 어렵기 때문에 이러한 조항이 생겨난 것이다. 강남역 살인 사건 가해자 김씨가 심신미약을 인정받은 이유도 다음과 같다. 김씨는 1999년부터 조현병 증상을 보였으며 2009년부터 입원치료를 받았고 범행 직후 옷에 묻은 피를 지우지 않고 식칼을 가지고 출근한 것을 미루어보아, 가해자가 주장했던 것처럼 ‘악귀가 들렸다’는 것은 인정하기 어렵지만 사물변별력에 문제가 있다고 본 것이다. 

다만 우울증 등의 정신질환이 있다고 반드시 심신미약으로 이어져 감형을 받는 것은 아니다. 심신장애 여부를 가릴 때 피의자는 국립법무병원 등에서 실시하는 정신감정을 받게 된다. 이는 단순히 몇 시간으로 끝나는 조사에 그치지 않고 짧으면 몇 주, 길면 2달이 넘게 걸리는 관찰 및 추적 조사로 이루어진다. 이후에 재판부는 정신감정에서 나온 결과를 참조하지만, 이 뿐만 아니라 범행 당시의 상황, 당사자의 상태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형을 결정한다.

 

심신장애와 관련한 법원 판례

〈심신상실〉

2015년 법원은 두 살 배기 아기를 3층 난간에서 던져 살해한 이모씨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발달장애인인 이모군은 살인죄로 기소되었지만 법원은 범행 당시 이모씨가 사물 변별 능력과 의사결정 능력이 없었다며 심신상실을 이유로 무죄를 선고하고 치료감호 명령을 확정했다.

〈심신미약이 인정된 경우임에도 중형이 선고되는 경우〉

2015년 법원은 경기도 수원시의 한 PC방에서 흉기를 휘둘러 1명을 살해하고 3명을 크게 다치게한 이모씨에게 무기징역을 선고했다. 가해자는 범행 당시 조현병을 앓고 있었으나 재판부는 심신미약 상태였을지라도 피고인의 범행은 사회 전체가 범행 대상이 될 수 있기 때문에 죄질이 무겁고 다른 부상자들 역시 사건 이후 대인기피증에 시달리는 등 어려움을 겪고 있다며 선고 이유를 밝혔다.

〈피고 측이 주장한 심신미약이 인정되지 않은 경우〉

2018년 법원은 인천시 연수구의 한 공원에서 초등학교 2학년생을 유괴하고 살해한 후 시신을 훼손 및 유기한 김모씨와 박모씨에게 각각 징역 20년과 13년을 선고했다. 사건의 주범인 김모씨는 자폐성 장애인 아스퍼거 증후군을 앓아 심신미약 상태였음을 주장하였으나 재판부는 전문가 진단과 김모씨의 태도를 종합적으로 살펴보았을 때 범행 당시 가해자의 사물 변별 능력 및 의사결정 능력이 미약한 상태였다고 볼 수 없다고 판단했다. 이로써 만 19세 미만인 김모씨에게는 소년법 최고 형량인 20년이 선고되었다.

〈주취감형으로 인한 심신미약〉

2009년 법원이 2008년 8세 여자 아이를 유인해 강간 및 폭행으로 중상해를 입힌 조두순에게  징역 12년을 선고했다. 검찰은 "조씨가 술에 취하면 정상적 행동을 보이지 않는 자신의 성향을 알면서도 술을 마셨고, 범행을 저질렀다"라며 무기징역을 구형했지만 법원은 조두순이 알코올 의존증 환자이고 당시 술에 취해 있었기 때문에 심신미약 상태에서 범죄를 저질렀다고 판단했다.

위와 같이 조두순에 대해 소위 ‘주취감경’을 인정했다가 비난을 받은 후, 법원은 음주로 인한 심신장애 인정에 더 인색해졌고, 요즘 주취 범행은 오히려 가중 사유가 되기도 한다.

〈주취감형이 인정되지 않은 경우〉

2017년 법원은 부산의 한 모텔에서 술에 취해 자고 있던 여성의 방에 침입해 성폭행한 혐의로 기소된 피고인에게 징역 2년 6개월, 집행유예 3년을 선고하고 성폭력 치료강의 40시간 수강을 명령했다. 당시 피고인과 변호인은 “범행 당시 만취해 전혀 기억이 나지 않는다”라고 진술하며 술로 인한 심신장애 상태였음을 강조해 주취감형을 호소했지만, 재판부는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CCTV, 피해자의 증언 등을 종합적으로 판단했을 때 A씨가 심신 장애 상태라고 보기 어렵다고 판단한 것이다. 더불어 피고인이 주장하는 것은 단순한 블랙 아웃에 불과하다고 부연했다. 

 

여전히 법감정에 배치되는 심신미약, 그 방향성에 대해 논하다

앞서 언급했듯 심신상실 혹은 미약으로 인해 무죄, 감형을 받는 것은 결코 쉽지 않다. 그러나 중대한 사고를 저질렀어도 술을 마셨다고 일관되게 주장하거나, 우울증이라고 진술하면 최소 감형에서 최대 무죄까지도 받을 수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다. 특히 전 국민적 분노를  사게 했던 조두순 사건이 음주로 인해 징역 15년에서 12년형으로 감형된 이후, 음주를 변명 삼아 감형 받으려는 사례들을 종종 볼 수 있다. 조두순 사건 이후 주취감형이 받아들여지기 상당히 어려워졌음에도 불구하고 국민들은 여전히 형법 제10조에 대한 법의 취지를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 범죄를 저지른 후 이를 회피하고자 심신장애를 악용하는 사람들이 잦아짐에 따라 형법 제10조는 일명 ‘범죄의 면죄부’라고 불리기도 한다. 

독일의 괴팅겐(Gotingen) 대학 군나르 두트게(Gunnar Duttge)교수는 한국일보와 한 인터뷰에서 “독일 형법상으로는, 술을 마신 후 범죄 행위를 하면 술을 마신 행위가 이후 행위에 영향을 미쳤다고 판단되어 과실 범죄로 인정되기에 피고인이 형사책임을 벗어날 수 없다. 음주는 심신미약으로 인한 책임 무능력 상태가 아니라, 오히려 그의 책임을 인정하는 근거가 된다. 만에 하나 책임능력이 없는 만취상태가 인정되더라도, 만취에 따른 별도 처벌 조항으로 최고 징역 5년까지 받을 수 있다.”고 말한 바 있다. 술을 마신 것은 범죄에 대한 변명거리가 아니라 마땅히 책임져야 할 항목이여야 한다는 현 대중들의 주장과 일맥상통한다. 뿐만 아니라 일각에서는 강서구 PC방 사건, 강남역 살인사건, 인천 초등학생 살인 사건 등을 살펴보면 형법 제10조가 범죄자들의 정당화 요소로 악용되기 때문에 사라져야 한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그러나 형사법의 대원칙인 ‘책임주의’에 따라 보통사회인이 저지른 범죄와 정신적으로 문제가 있는 사람의 범죄는 반드시 다르게 보아야 한다. 즉 인간은 스스로 충동을 억제하며 자유의사를 가지는 주체적 존재이기 때문에 책임능력이 있는 자에게만 책임을 묻는 것이다. 따라서 심신장애 자체의 규정은 반드시 필요하다. 그러나 현재 흉악범들이 이를 면죄, 감형의 수단으로 삼는 사태가 빈번하듯, 현실과 법의 취지가 상당히 괴리되어 있는 점은 반드시 수정되어야 할 것이다. 국민정서와 사법부의 양형이 지나치게 괴리되어 사법 불신을 야기하지 않도록 사법 당국의 올바른 판단이 필요한 시점이다.

 

김나은 기자(smiles3124@mail.hongik.ac.kr)

권미양 기자(aldid5@mail.hongik.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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