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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자미상, <계회도>,1632 
  • 학예연구사 이하나
  • 승인 2018.11.27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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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자미상, <계회도>,1632

문인들이 풍류를 즐기고 친목을 다지며 학문 교류를 위한 목적으로 결성한 계회(契會)는 주로 70세 이상의 덕망이 높고 관직 품계가 2품 이상인 원로 문인들로 구성된 기로회(耆老會) 및 기영회(耆英會)와 동료 혹은 동년배끼리 조직한 일반 계회의 두 가지로 구분된다. 전자는 일정한 자격을 갖추어야 모임에 참석할 수 있기에 폐쇄적이며, 후자는 이보다 덜했다고 할 수 있다. 이처럼 ‘계’는 단체를 의미하나, 단순한 공동체라기보다 이익 집단의 성격이 강하다. 계회는 조선 이후 기로소(耆老所)라는 관청이 설치되면서 나라에서 주관하는 공식 행사가 되었다.

계회의 기록과 이 모습이 그림으로 표현된 계회도는 현존하는 것이 많지 않으며 제작 시기는 17세기를 전후한 것이 대부분인데, 18세기 이후에는 개인적 성향이 강한 시사(詩社)가 계회를 대체하여 유행했기 때문인 것으로 추정된다. 계회도는 일종의 기록화이며 주로 화원에 의해 제작되었고, 이 그림을 참석자들이 기념품으로 나눠가지는 것이 관례였다. 대개 조선 초에 제작된 그림은 산수의 비중이 크고 상대적으로 계회 장면과 인물이 작게 묘사되고, 중기 작에는 산수와 계회 장면 비율이 거의 같아지게 된다.

홍익대학교 박물관 소장 <계회도>에는 소상팔경도(瀟湘八景圖) 병풍을 배경으로 중앙에 1명, 오른쪽 4명, 왼쪽 4명, 아래쪽에 뒷모습을 보인 4명 등 상급 관료 총 13명이 둘러앉았고 2명의 하급 관료가 시중을 드는 장면이 묘사되었다. 분홍색 관복을 입은 관료들은 각기 앞에 놓인 필사 도구를 두고 종이나 부채, 붓, 잔 등을 들고 자유로운 자세를 취하였다. 병풍 좌우에는 탁자가 놓여 있는데 왼쪽에는 표피, 중호피, 말안장, 호초 등이, 오른쪽에는 술병이 놓여 있다. 건물 지붕 위쪽은 구름으로 살짝 가려졌고 건물 뒤쪽에 나무 몇 그루가 있음을 병풍 양 쪽 빈 공간을 통해 확인되며, 괴석과 소나무 분재가 계단 아래에 자리하였다. 종합해보면 이 그림 역시 모임 장면에 중점을 둔 조선 중기 계회도 형식을 따른 것을 알 수 있다.

그림 하단에 배치된 명단에는 승정원(承政院)과 홍문관(弘文館), 세자시강원(世子侍講院)에서 재직 중이던 13명의 관료들이 품계와 관직 순으로 기록되었다. 『효종실록』과  『승정원일기』  등의 문헌 사료를 보면 이 모임은 효종(孝宗, 재위 1649-1659)이 내린 어제에 따라 희우시(喜雨詩)를 짓기 위한 것이었다. 따라서 이 계회도는 오랜 가뭄 끝에 내린 비를 관료들과 함께 축하하고자 한 효종의 은혜를 후대에도 전하고자 제작된 것이며, 앞서 설명한 병풍 왼쪽 탁상 위의 물건들이 임금의 하사품인 것으로 추정된다. 또한 그림 속 관료들이 단순히 즐기는 것이 아닌 시상에 골몰한 문인의 모습으로 묘사됨으로써 그들의 자부심을 더욱 강조하려는 의도가 내포되어 있다고 하겠다.

학예연구사 이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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