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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경리 지음, 마로니에북스, 2012

국어교육과 정호웅 교수가 추천하는 『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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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소설 한 권을 추천하라면 나는 박경리의 대하 장편 『토지』를 들겠다. 무엇보다도 국어 능력이 자연스럽게 길러지기 때문이다. 사람에 따라서는 국어 능력이 비약하는 행복한 경험을 하게 될 것이다. 600명 가까운 인물이 등장하는 이 대작은 인간 공부의 뛰어난 교과서이다. 『토지』를 통해 인간을 깊고 넓고 섬세하게 이해하는 능력도 키울 수 있다. 나아가, 우리가 잘 모르는 한민족의 역사와 문화를 구체적으로 경험할 수도 있으니 이 땅의 젊은이라면 한 번 읽어 볼 만한 책이다. 큰 작품이니만큼 전체를 다룰 수는 없는 것, 여기서는 그 한 측면만 살펴보기로 한다. 바로 음식이다. 

구한말에서 해방에 이르기까지 이 땅에 살다간 사람들의 삶을 엮은 소설 『토지』(1969-1994)에는 많은 음식이 나오는데 대구로 만든 음식이 대표적이다. 말린 통대구, 약대구, 생대구국, 대구 아가미 젓 등이 그 예이다. 바로 옆 남해바다에서 대구가 많이 나기 때문에 작품의 주요 공간 가운데 하나인 서남부 경남(하동, 진주, 통영)에서는 대구를 재료로 만든 음식이 발달하였다. 함흥 영생고보의 영어 교사 시절 이화여고보를 나온 통영 처자를 사랑하여 서울에서 멀리 떨어진 천리 길 통영을 다녀가기도 한 백석의 시에도 남해바다에서 건져 올린 대구가 나온다. 이 대구가 나오는 『토지』의 장면 하나만 보도록 하자.

반주 한잔을 마신 영팔 노인은 숟가락을 들어 간장부터 떠먹는다. 판술이는 홍이 술잔에 술을 붓고 홍이는 술병을 받아서 판술이 술잔에 술을 붓는다. 궁하지는 않지만 그렇다고 넉넉한 살림은 아니었는데 잘 차린 점심상이었다. 몸이 성해서 처음 찾아온 홍이를 위해 마음먹고 장을 보아오게 한 듯 노릿노릿하게 구워진 조기, 산뜻하게 무쳐 낸 고사리, 시금치, 콩나물, 마른 가자미는 실고추를 발라 쪄내었고, 대구 아가미 젓엔 반듯반듯한 무 조각, 굴젓 그리고 조갯살을 넣어 갈쭉하게 끓인 된장국, 그밖에 생선전, 햇김치, 계란 찐 것, 모두 먹음직스럽다.

『토지』의 중심인물 중 하나인 이홍은 정월 초하루에 일어난 살인사건 현장에서 낫에 찔려 입원했다가 퇴원 후 아버지의 평생 친구인 김영팔 노인의 집을 찾는다. 이홍은 만주 땅 독립운동 조직에 연이 닿아 곧 만주로 떠나야 하니 어쩌면 이들에게는 이승에서의 마지막 만남일지도 몰랐다. 정성을 다해 차린 점심상에 이 지역 산과 바다 논밭에서 난 재료로 요리한 토속 음식이 한가득 올랐다. 그 가운데는 반듯반듯하게 썬 무가 들어 보기 좋고 맛 좋은 대구 아가미 젓도 윤기를 흘리고 있다. 서로를 아끼고 좋아하는 마음, 함께 기뻐하고 서로 서로 염려하는 마음이 정성껏 차린 토속 음식상을 에워싸고 어우러져 그 분위기가 따뜻하고 환하다.

『토지』에는 다른 음식도 많이 나오는데, 작품의 중심 무대인 경남 서남부지역의 토속음식이 대부분이다. 그 음식들은, 때로는 인물의 성격을 드러내는 매개로 기능하기도 하고, 인물관계의 특성을 부각하는 매개로 기능하기도 하며, 또 그것을 에워싼 사회 역사적 맥락의 성격을 드러내는 매개의 역할을 하기도 한다. 그러나 이 같은 서사적 기능 이전에 그 음식들은 저마다의 재료, 모양, 냄새를 지닌 격조 높은 문화로서 제각각 놓여 마땅한 자리에 자연스럽게 자리 잡아. ‘토속음식의 잔치판’을 이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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