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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모두 ‘튀김’ 홀릭

치지지지…, 파사삭! 튀김을 튀기는 소리와 냄새, 잘 튀겨진 튀김의 먹음직스러운 색깔, 그리고 튀김을 입에 넣고 씹을 때의 식감과 고소함은 우리의 오감을 자극한다. ‘튀김은 신발을 튀겨도 맛있다’‚ ‘치느님(치킨)은 항상 옳다’ 등 우리는 튀김 요리에 대한 예찬을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다. 오늘날 튀김은 하나의 별미로서 많은 이들에게 사랑받는 요리가 되었다. 튀김의 뛰어난 맛 뒤에는 흥미로운 탄생 배경이 있다. 이렇게 맛있는 요리가 탄생한 배경은 무엇이고 튀김이 우리 사회에 어떤 영향을 끼쳤는지, 그리고 튀김과 관련된 재미있는 사실들을 파헤쳐 보도록 하자.

 

금욕적인 종교 아래 성장한 튀김 요리

튀김 요리가 발달한 국가를 살펴보면 주로 종교적으로 금욕을 중시하는 국가에서 튀김이 발달했음을 알 수 있다. 일본에서는 튀김을 ‘덴뿌라(天ぷら)’라고 부르는데, 이는 수도자들이 고기를 먹지 않는 날인 금육일(禁肉日)을 뜻하는 포르투갈어 ‘텡푸라(Tempora)’에서 온 말이다. 포르투갈에서는 금육일과 사순절(四旬節)*에 고기를 먹지 않는 대신 콩 꼬투리 따위를 튀겨 만든 ‘페이시뉴스 다 오르타(Peixinhos da horta, ‘밭에서 나온 생선’이라는 뜻)’라는 요리를 즐겨 먹었는데, 이것이 오늘날 튀김의 원조이다. 일본의 튀김 문화는 나가사키(長崎)가 개항했을 때 방문한 포르투갈인들이 페이시뉴스 다 오르타를 만드는 것을 보고 몇몇 요리사들이 따라하면서 퍼지기 시작했다는 설이 지배적이다.

한편 국내에서는 고려 시대에 불교가 국교로 지정되면서 그 영향으로 육식이 금지되었다. 이에 많은 사람들이 육류를 섭취하지 못하면서 부족해진 영양소인 지방을 섭취할 수 있는 식품을 찾게 되었는데, 이에 부합하는 음식이 바로 튀김이었다. 때문에 대표적인 불교 음식인 사찰요리(정진요리, 精進料理)를 유심히 살펴보면 채소 등의 재료를 기름에 튀기는 요리가 상당히 많음을 알 수 있다. 이는 한때 불교가 국교였던 일본에도 동일하게 적용되었다. 이 때문에 채식 위주라 여겨지는 사찰요리를 다이어트 목적으로 섭취한 사람들이 오히려 살이 더 찌는 웃지 못할 현상이 나타나기도 한다. 고려 시대에 성행했던 튀김 요리는 아쉽게도 조선 시대에 들어서며 비주류로 밀려나기 시작했다. 이는 국교가 불교에서 유교로 바뀌며 육식이 허용되었을 뿐만 아니라, 기름을 과다하게 사용하는 등의 사치를 금하는 풍조가 강해지며 튀김 요리의 설 자리가 좁아진 것으로 해석된다.

▲페이시뉴스 다 오르타(Peixinhos da horta)

튀김, 사회에 녹아 ‘근대화의 바삭함’을 전파하다

종교적인 이유로 탄생한 튀김은 기름을 쉽게 구할 수 있는 환경이 마련되면서 급속도로 대중에 퍼지기 시작했다. 일본의 경우, 에도 시대(17세기 전후) 이후 기름의 주 재료인 유채꽃의 대량 재배가 이루어지면서 기름 생산량이 큰 폭으로 증가해 튀김 요리가 발달하기 쉬워졌다. 이로 인해 도쿄 등의 대도시에서 튀김 요리를 판매하는 노점이 크게 늘어났다. 특히 튀김은 인구가 급증하기 시작한 도시 지역에서 패스트푸드 형식으로 유행했는데, 이는 조리의 신속성과 도시로 집중된 인구의 부양을 위한 지방의 중요성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과라 할 수 있다. 도시의 인구가 많다는 것은 그만큼 식품의 수요가 많다는 것이고, 이 수요를 감당하기 위해서는 높은 회전율이 필수로 요구된다. 이러한 점에서 기름을 이용해 단시간 내에 빠른 조리가 가능한 튀김 요리의 가치가 높아진 것은 당연한 결과라고 볼 수 있다. 또한 튀김의 주 영양소인 지방은 1g 당 9kcal의 열량을 내기 때문에 단백질, 탄수화물 등 1g 당 4kcal의 열량을 내는 다른 영양소들에 비해 압도적인 열량 효율을 자랑한다. 따라서 튀김은 도시 거주민들에게 적은 양으로도 많은 열량을 내는 훌륭한 열량 공급원으로 작용할 수 있었다. 일종의 워킹 퓨얼(Working Fuel), 즉 노동력의 원천이 된 셈이다. 또 지방에는 맛과 향을 내는 풍미 성분이 풍부하게 들어있기 때문에 인기를 끌었고, 이것이 곧 튀김 요리의 대유행으로 이어졌다.

▲일본 에도 시대의 튀김 노점을 그린 그림

너도나도 좋아하는 튀김에 얽힌 재밌는 이야기들, 즐겨 보시지요

이렇듯 튀김이 선풍적인 인기를 끌다 보니 다양한 형태의 튀김들이 등장했고, 튀김과 관련한 재미있는 이야기들도 속속 생겨났다. 앞서 언급된 ‘튀김은 신발을 튀겨도 맛있다’라는 명언(?) 아래 튀김 재료에 대한 이색적인 시도가 이어진 것도 그 중 하나다. 아이스크림 튀김, 튀김족발 등은 이미 SNS 등을 통해 널리 알려진 대표적인 이색 튀김의 사례다. 이외에 바나나 등 과일을 튀긴 것도 있는가 하면, 오레오, 치즈케이크, 햄버거 튀김 등 엄청난 칼로리를 자랑하는 튀김들도 미국에서 절찬리에 판매되고 있다. 심지어 우유나 콜라를 이용한 튀김 등 액체를 튀김으로 만드는 모습도 종종 보인다. 일본에서는 단풍잎 튀김도 등장했는데, 이는 알고 보면 약 700여 년 전부터 먹었던 일본 전통음식으로 교토 등의 관광지에서 인기가 높다.

튀김과 관련된 이야깃거리들도 많다. 에도 시대 일본에서는 튀김이 서민음식이라는 인식이 강해 사무라이 등 상류층은 겉으로는 튀김을 ‘천한 음식’이라며 무시하는 경우가 많았다. 하지만 실제로는 몰래 하인을 시켜 튀김을 조달해 먹거나 일부 상류층은 아예 얼굴을 가린 채 튀김 노점에 나타나 직접 튀김을 먹고 갔다는 이야기가 전해지는 등 신분에 관계없이 즐겼던 당시 튀김의 인기를 짐작할 수 있다. 또 일본의 쇼군이었던 도쿠가와 이에야스(德川家康, 1543-1616) 역시 생전에 도미 튀김을 매우 좋아했다는 기록이 남아있다. 이 때문에 그의 실제 사인이 위암이라고 밝혀지기 이전에는 그가 튀김을 과식한 나머지 식중독에 걸렸거나 튀김 속에 든 독 때문에 독살당했다는 낭설이 정설에 가깝게 받아들여지기도 했다. 

영국의 전설적인 영화감독이자 배우였던 찰리 채플린(Charlie Chaplin, 1889-1977)도 튀김에 관련된 일화가 전해지는데, 다름 아닌 튀김이 그의 생명의 은인이 되었기 때문이다. 1932년 채플린이 휴가차 일본에 방문했을 때 일본의 내각총리대신이었던 이누카이 쓰요시(犬養毅, 1855-1932)가 관저에 그를 초청하고자 했다. 문제는 일본 해군 장교들이 이누카이 총리를 암살할 계획을 세우고 있었고, 내친김에 서구권 인사인 채플린도 암살하여 미국과 전쟁을 일으킬 명분을 만들고자 혈안이 되어있었다는 것이다. 그러나 채플린은 영국인이었기 때문에 그로서는 다소 억울하게 표적이 된 셈이다. 그대로 만남이 성사되었다면 채플린의 목숨이 위태로워질 뻔했지만, 그 전날에 채플린이 스모 경기를 보고 튀김을 먹는 일정을 추가하면서 총리와 다음 날에 만나는 것으로 일정을 미뤄 운 좋게 암살 위기를 모면하게 된다. 그리고 그가 암살 위기를 모면한 뒤 제작한 작품들이 바로 <모던 타임즈>, <위대한 독재자> 등 찰리 채플린을 대표하는 작품들이다. 다소 억지스럽게 느껴질지도 모르겠지만 만일 튀김이 아니었다면 찰리 채플린은 영화계의 전설이 아니라 한때 무성영화 시대를 풍미했던 비운의 영화인 중 하나로만 남았을지도 모를 일이다. 여담으로 암살 모면 이후에도 채플린은 일본에 자주 방문하여 튀김 요리를 매우 즐겼다고 하니, 일본의 튀김 요리가 마음에 쏙 들었던 듯하다.

▲1932년 일본을 방문해 튀김 요리를 즐기는 찰리 채플린(우측에서 두 번째)

“튀겨진 것들은 잔치에서 매우 환영받는다. 그것들은 다채로움을 가져다줘서 사람들을 즐겁게 해준다.” 프랑스의 법관이자 미식가였던 브리야 사바랭(Jean Anthelme Brillat-Savarin, 1755-1826)의 말이다. 현재 사바랭이 이 말을 한지 약 200여 년이 지났지만 그때나 지금이나 이 말은 여전히 유효한 모습이다. 금욕적인 종교 아래 태어난 튀김은 마치 하나의 종교처럼 우리에게 찬사를 받고 있다. 하지만 종교와는 다소 거리가 있어 보이는 근대화 및 산업화가 튀김 인기의 기폭제가 되었다는 점은 한편으로는 모순적이기도 하다. 오늘 당신의 밥상은 어떠한가? 이 글을 읽고 튀김이 먹고 싶어졌다면, 고민할 것 없이 당신의 밥상에 튀김을 올려 감칠맛의 향연에 듬뿍 빠져보자. 아! 물론 너무 많이 먹어서 생기는 뱃살은 주의해야겠지만 말이다.

김주영 기자  B881029@mail.hongik.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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