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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화의 중심에서 사랑과 영화의 낭만 속으로 빠져들다, 『변사기담』(2016)

개항의 중심, 그 시절 인천의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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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독 바람이 따뜻하게 불어오던 날, 기자는 따사로운 햇살을 온몸으로 느끼며 덜컹거리는 인천행 지하철에 올랐다. 따뜻한 공기와 도란거리는 사람들의 말소리, 간간하게 들려오는 덜컹-소리가 한데 섞여 기자를 나른하게 만들었다. 종점인 인천역으로 향하는 길에서, 요즘 기자를 지독히도 괴롭히는 고민거리에 대해 떠올렸다. ‘꿈’. 이 간단한 한 글자가 계속해서 기자의 마음을 불안하게 만들고 있다. 여느 20대 청춘에게 그러하듯, 기자에게도 꿈이라는 단어는 낯설고 어렵기만 하다. 그런 기자에게 『변사기담』(2016)의 주인공, 기담은 선망의 대상이다. 기담이 처음 영화를 접한 순간부터, 그에게 영화는 삶의 이유이자 꿈이었다. 당시 소리가 없었던 영화를 관중들에게 해설하는 역할을 하는 변사, 기담이 자신의 꿈인 변사가 되기 위해 쏟았던 열정, 이 일을 하며 만나게 된 ‘묘화’라는 기생과의 애틋하고도 아름다운 사랑 이야기를 인천에서 더욱 생생하게 느끼고 싶었다. 어느새 기자를 실은 지하철은 인천역에 도착해있었다. 기자는 떨리는 마음을 붙잡고 변화와 역사의 중심지, 인천으로 떠나는 과거 여행에 첫발을 내디뎠다.

 

인력거가 큰길로 나서고 골목으로 사라진 것을 본 뒤에야 기담은 몇 번이고 침을 끌어모아 뱉은 다음, 응봉산 공원으로 내달렸다. 가슴이 터질 것만 같았다. 기필코 변사가 되리라. (중략) 기담은 터덜터덜 산을 내려가다가 인천각 앞에서 걸음을 멈추었다. 이를 꽉 물고 있었던지 잇몸이 아팠다. 기담은 혀끝으로 잇몸과 이를 찬찬히 하나하나 문지르며 4층 높이의 인천각을 아래에서부터 위로, 다시 옆으로 찬찬히 훑어보았다. 보는 것만으로 호사였다.

 

인천에 도착한 기자가 처음으로 향한 곳은 자유공원이었다. 책 속에 등장하는 응봉산 공원은 자유공원의 옛 이름으로, 차이나타운과 인천 바다가 한눈에 보이는 아름다운 경치를 자랑한다. 기자는 자유공원 내에 위치한 인천각으로 향했다. 인천각은 ‘존스톤 별장’의 옛 이름으로, 현재는 그 터만이 남아있다. 이곳에서 기자는 기담의 변사를 향한 각오와 열정을 그대로 느낄 수 있었다. 기담은 이 자리에 우뚝 서 인천을 내려다보았다. 당대 최고 변사인 김익호에게 변사로서의 재능이 있다는 칭찬을 받고 들뜬 그는 자유공원의 인천각에 올라 최고의 변사가 되겠다고 결심한다. 지금은 별장이 사라지고 조형물이 들어섰지만, 아름다운 풍경과 자연만큼은 변함없는 인천각에 오르니, 기담의 열정 또한 고스란히 전해지는 것만 같았다. 

월미도 둑길로 벚꽃 놀이를 가자고 할 줄 알았는데 사람 많은 곳은 불편하다고 응봉산으로 가자고 했다. 기담은 응봉산까지 산책하는 동안 발이 땅에 닿지 않는 것 같았다. 같이 길을 가는 동안 지나가는 치들이 묘화를 힐끗거리는 것조차 신경이 쓰였다. 닳아 없어질 것만 같았다. 혼자만 몰래 아껴가며 보고 싶었다.

기자는 인천각에서 자리를 옮겨 자유공원을 천천히 돌아보았다. 산책을 즐기는 기자의 눈에 데이트를 즐기는 많은 연인들이 보였다. 기담과 묘화도 여느 연인들과 다를 바 없이 이 산책로에서 아름다운 벚꽃을 구경하며 행복한 시간을 보냈을 것이다. 변사로서의 성공을 거둔 기담, 기담에게 조금씩 마음을 열고 있던 묘화. 그 둘의 사랑이 시작되는 설렘과 떨림이 기자에게도 그대로 전해지는 것만 같았다. 새로운 사랑이 시작되는 두근거림을 뒤로 한 채, 기자는 개항누리길로 발길을 옮겼다.

 

“우리는 그동안 일제의 수탈을 견디며 살아왔습니다. 우리 땅, 내 논에서 나는 곡식들이 먹어보기도 전에 일본으로 건너갔습니다. 응봉산 안에 좋은 땅들은 모두 일본 쪽발이들이 차지하고 있습니다. 우리 모두 죽었습니까. 매일매일 배에 가득 실려 도둑맞은 우리 쌀을 보면서도 우리는 왜 침묵하고 있어야만 합니까. 일어서십시오. 일어서서 한민족의 자존심, 우리의 본때를 보여줍시다.”

개항누리길은 일본풍으로 꾸며져 있었다. 소설의 배경인 일제강점기 당시의 인천에는, 많은 일본인이 살고 있었다. 사실 묘화는 일본 제국주의(이하 일제)에 맞서 독립을 위해 투쟁하는 조직에 가담하고 있었다. 그랬던 묘화에게 일본풍의 개항누리길은 큰 상처이자 아픔이었을 것이다. 이 길을 걸으며 기자는 묘화가 기담에게 건넨 제의에 대해 생각해보았다. 묘화는 일제에 맞서 관중들을 움직이기 위해 영화를 이용한다. 무료 영화를 상영해준다며 사람들을 모으고, 모인 사람들의 힘을 이용하여 일제에 맞서려는 계획이었다. 그러기 위해서는 영화를 해설하는 기담의 역할이 중요하지만, 묘화는 기담에게 위험한 일을 권하기 망설인다. 기담 또한 제의를 받고 망설이지만 결국 묘화를 돕기로 결심한다. 영화 상영회를 통해 사람들의 행동을 이끌었다는 점은 성공이라 볼 수 있지만, 결국 영화를 연행한 기담은 주동자로 몰려 혀가 잘리게 된다. 이로 인해 기담의 삶의 이유이자 열정을 다했던 꿈이 한순간에 물거품이 되어 버렸다. 이 장면이 생각나 개화기의 일본풍 거리에 서 있는 기자는 마음 한구석이 저릿했다. 사랑과 조선의 해방을 위한 기담의 영화 연행의 결말은 결국 꿈을 잃는 것이었다. 

 

영화가 끝나고 기담은 제물포 구락부 안을 천천히 둘러보았다. 걸을 때마다 나무 바닥이 울려 조심스러웠다. 그렇다고 그 울림이 싫은 것은 아니었다. 나무 바닥을 울리는 발소리는 오래된 과거로 자신을 데려다주는 것 같았다. 기담은 한쪽 편에 전시된 유리 장식장 안을 들여다보았다. 대불호텔, 인천각, 홈링거 양행, 알렌 별장. (중략) 그 건축물이 다 사라지고 이제는 종이 모형으로 재현되어 유리 상자 안에 자리잡고 있다니. 기담은 살아 있는 자신이 오히려 생경했다.

기자의 마지막 행선지는 제물포 구락부였다. 유명 드라마의 촬영지이기도 했던 제물포 구락부는 역시 아름다웠다. 흰 배경의 작은 건물이 나무 사이에 자리하고 있는 모습이 그 신비로운 분위기를 더했다. 시간이 흘러 기담의 증손자 정환은 기담에게 영화 연행을 배우게 된다. 그의 가르침을 받은 정환은 제물포 구락부에서 영화 연행을 재현한다. 제물포 구락부는 일본에 의해, 전쟁에 의해 그 용도와 외관은 많이 바뀌었지만 본래 개화 당시 사교의 장으로 활용되었다. 기담에게 그 장소는 묘화를 연상시키는 곳이기도 했다. 기담은 제물포 구락부 천장에서 반짝이는 샹들리에의 유리 조각이 묘화를 닮았다고 생각한다. 기자는 햇빛에 반짝이는 샹들리에를 한참이나 올려다보았다. 그러자 반짝이는 유리가 기자의 눈을 찌르는 것만 같은 기분이 들었다. 기담도 그러했을까. 기담에게 묘화는 유리처럼 반짝이지만 금방 깨질 듯 불안하고, 눈을 찌르는 듯한 아픔을 가지고 있는 존재였던 것일까. 묘화와의 추억이 깃든 이 장소에서 자신의 젊음을 다 바친 영화를 다시 상영하는 기담의 마음은 어떠했을까. 그 마음을 다 알 수는 없지만 기자는 아쉽고 반가운 마음이 교차하는 그 심정을 샹들리에 아래에 서서 조금이나마 헤아려 보았다.

제물포 구락부에서 인천역으로 돌아오는 길, 기자는 마치 개화 당시의 인천 거리를 걷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책에 너무 몰입해서일까, 기담과 묘화의 슬픈 사랑 이야기에 감동해서일까. 기자는 서울로 돌아오는 지하철 문에 기대 멀어지는 인천의 모습을 한참 바라보았다. 이번 인천 여행은 마치 한 편의 영화를 보고 온 것 같았다. 기자를 실은 열차의 덜컹거리는 소리가 마치 영화가 끝난 제물포 구락부에서 기담을 과거 속으로 빠지게 했던 그 나무 바닥의 삐걱대는 소리를 연상시켰다. 아마 조만간 기자는 다시 인천으로 향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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