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꼬이고 꼬여 얽혀버린 실쌓여가는 고민과 불안 속에서, 『혼불』(1996)

‘집채덩이 같은 불안을 속에다 삼키고 있으니 무엇에도 마음을 붙일 수가 없습니다. 아버지, 벗어나게 해주십시오’

 

남원으로 떠나기 전, 기자의 불안감은 밖으로 드러나지는 않았으나 안에서는 이미 곪아있었다. KTX를 타고 남원으로 향하면서 드는 고민의 범위는 넓고 깊었다. 바로 눈앞에 보이는 군 문제와 취업 문제 등에 대한 선택의 길목에 들어섰기 때문이다. 『혼불』(1996)의 ‘강모’도 고통스러운 심정으로 삶 속 문제를 고민한다는 것에서 기자와 비슷하다. 그는 얼굴도 모르고 혼인한 ‘효원’을 아내로 두고 있으면서 사촌 동생 ‘강실’을 애틋하게 생각한다. 나아가 종손(宗孫)으로서 가문의 기대와 올바른 생활을 해야 한다는 의무감이 일종의 강박처럼 그의 안에 자리했다. 기자도 고통스러웠다. 이전부터 누군가는 기자가 고민하는 문제에 ‘청춘이면 겪어야 할 일이야’라고 툭 던지고 지나갔다. 그때마다 기자는 ‘그렇죠’라고 대답은 하지만 고민의 불구덩이 속에 빠졌다. 그리고 다른 생각을 하려고 애쓰며 불구덩이에서 도망가려고 애썼다. 방학 숙제를 미처 끝내지 못하고 온 아이의 심정으로, 내면의 불을 미처 끄지 못한 채 기자가 탑승한 KTX는 그렇게 남원으로 향했다. 

 

방랑과 자유.

 

그 말은 사무친 음향으로 강모의 가슴에 울려왔다. 그것은 어쩌면 신음 소리와도 같았다. 아니면 반란의 음모처럼 숨막히게 그리고 음험하게 숙덕이는 것도 같았다.

 

강모는 유유한 구름을 하염없이 올려다보았다.

 

그의 커다란 눈에 구름은 그림자를 드리우며 불안하게 흔들렸다. 그 불안은, 강모의 내부에서 두꺼운 각질을 뚫고 터져 나오려는 욕망이 거세게 소용돌이치는 만큼, 질기고 끈끈하게 내리누르는 어떤 힘과 부딪치면서 뒤흔들리는 파문이었다.

 

강모가 본 ‘유유한 구름’ 중 ‘유유하다’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인지 몰라 국어사전을 찾아보았다. 깊고 그윽하다는 뜻의 형용사라고 한다. 어쩌면 강모가 본 것은 구름을 넘어 가문에서 정해준 효원과의 사랑과 종손(宗孫)이란 질서 속의 억압에서 벗어나고픈 그의 욕망이 아닐까 싶다. 기자도 내심 질서에서 벗어나고 싶었다. 일반적인 남성이면 군대를 가야 하고 취업을 하려면 어떠한 스펙을 갖추어야 한다는 식의 한국사회의 질서가 기자에게 강요될 때마다 기자는 그 자리를 피해 이상사회를 꿈꿔보았다. 이런 고뇌 속에서 내비게이션에 ‘혼불 종가’를 검색해보니 남원 시내에서 무척 벗어나 있었다. 배배 꼬인 로터리를 지나 논길을 거쳐 산 초입에 자리한 종가는 혼불 문학관과도 뚝 떨어져 안내원이나 관광객도 없이 조용히 폐쇄되어 있었다. 강모의 자유와 사랑에서 비롯되는 고통도 기자의 미래에 대한 불안감도 종가처럼 조용하게 하지만 안에서는 거세게 소용돌이치고 있었다.

‘내일 아침 새벽녘에 통학차를 타고 가 버려야지. 아무와도 마주치기 싫다. 도대체 이 어두움이 지나고 동이 트면 무슨 일이 벌어질까. 나는 모르겠다. 사람의 심정이란 것이 이대도록 하잘것없는 검불 같다면, 심정을 따르는 육신은 또 얼마나 부질없는 것이리오.’

 

다음으로 향한 곳은 구(舊) 서도역. 강모가 기차를 타고 전주로 출발한 역이다. 지금은 구(舊) 서도역과 서도역 모두 폐역이 되었다. 기자는 길을 찾다 착오로 코레일(KORAIL) 팻말이 박힌 서도역을 먼저 찾게 되었다. 이곳도 구(舊) 서도역처럼 기차가 다니지 않고 겨울 낙엽은 곳곳에 쌓여있어 테마파크에 온 것처럼 예뻤다. 하지만 구(舊) 서도역이 아니기에 기자는 발을 돌렸다. 구(舊) 서도역에 오니 역사책 속 증기 기관차가 올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특히 기차 레일도 목재로 만들어져 개화기에 온 것 같다는 생각도 했다. 그러나 강모에게 서도역은 썩 아름다운 곳은 아니다. 그에게 서도역은 통학차를 타고 빨리 벗어나고 싶은 족쇄 그 자체였다. 강모에게 서도역은 남원 매안 이씨 집안의 종손인 그를 통제하려는 억압적 분위기가 있던 곳이었다. 기자에게는 서울이 강모의 구(舊) 서도역과 같다. 기자에게 주어진 질서는 기자를 끈질기게 괴롭혔다. 이런 기자에게 남원은 고민에서 잠시 벗어날 수 있는 일종의 피난처였다.

 

그럴수록 나의 머릿속은 실꾸러미 얽힌 것처럼 어수선하고, 철사를 이빨로 물어뜯으려는 사람처럼 괴롭다. 

 

아아, 끊어 버리고 싶다. 이 질긴 줄. 철사의 올가미.

그러나 철사가 이빨로 끊어지랴. 오히려 이빨의 사기질이 떨어져 나갔다. 치수(齒髓)의 신경이 철사의 금속성에 갈리면서, 온몸을 소스라치게 하던 그 감각이라니.

 

살 속으로 파고드는 가느다란 철사의 줄을 자기가 끊지 못하면, 그 줄이 자기를 베어 버릴 것만 같은 속박감에 그는 자다가도 일어나 소름이 끼치곤 했다. 

 

기자는 차가운 겨울바람 속 혼불의 배경지를 뒤로 한 채 남원 시내로 이동했다. 시간이 꽤 남아 남원의 명물인 추어탕을 먹고 가기로 했다. 바깥 날씨와 반대로 뜨뜻한 추어탕은 기자의 속을 충분히 데웠다. 남도 특유의 아삭한 김치와 함께 먹으니 더 일품이었다. 추어탕을 먹으니 그 안에 있었을 미꾸라지가 자꾸 머릿속에 떠올랐다. ‘미꾸라지처럼 마구 꼬인 철사 속에서 벗어날 수 있으면 좋겠다’라는 생각을 했다. 그러나 기자는 미꾸라지가 될 수 없기에 질서의 올가미는 강모처럼 기자를 끝내 옭아맬 것이라는 생각에 다다랐다. 기자는 추어탕을 맛있게 먹고 나오며 스스로 질문을 던졌다. ‘강모처럼 내 삶 속 올가미를 끊어야 할까?’ 그리고 ‘그것을 끊어낼 순 있는가?’

 

평소와는 다르게 한마디 말도 하지 않고 방으로 들어선 강모는, 두려움에 미리 질려 있는 듯한 그네에게 짤막하고 단호하게 말했다.

 

“나는 봉천으로 간다.”

오유끼는 놀란 눈으로 그를 바라보았다. 입술이 보랏빛이다.

“나는 떠난다.”

 

“어디로든지……가거라.”

 

그것은 오유끼한테 한 말이 아니라, 그 자신에게 다짐하는 말과도 같았다.

 

강모는 그에게 주어진 종손으로서의 책임과 ‘강실’과의 사랑으로 인한 내적 혼란을 버티지 못하고 방랑 끝에 봉천(만주)으로 향한다. 고통을 이겨내지 못하고 그는 ‘도망’을 택한 것이다. 그러나 기자는 선택했다. 강모와는 다른 길을 걷기로. 기자 삶에 있을 올가미에 버텨보기로. 누군가는 강태(강모의 사촌형)처럼 기자에게 말할 수 있다.

 

“무슨 각오도, 결심도, 야망도 없이, 그렇게 살고 있어? 정신을 차려라, 정신을.”

 

기자의 생각이 야망이나 결심 없이 질서에 순응한다고 비판받을 수도 있다. 그러나 기자의 결심은 다른 의미로 버티기였다. 이 결심에 영향을 준 것은 강모의 도피 이후 삶의 벼랑 끝에 내몰리는 효원과 강실을 보면서였다. 이들을 보면서 기자는 ‘내가 삶의 고민에서 도망친다면 나의 소중한 사람들이 결국 힘들어지겠다’라고 생각했다. 오후 4시, 기자는 서울로 가는 KTX 열차에 탑승했다. 서울로 오면서 기자의 고민은 다시 시작됐다. ‘이번 기사는 어떻게 쓰지?’, ‘전공 과제는 어떻게 하지?’ 등등…. 아마도 기자가 삶을 살아가면서 고민의 폭은 더 깊어지고 넓어질 것이다. 그때마다 기자는 삶 속 꼬이고 꼬인 고민이란 실을 버티며 풀어볼 생각이다.

박주형 기자  timpark0912@mail.hongik.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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