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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어국문학과 정연주 교수가 추천하는 『언어변화』루디 켈러 지음, 서광학술자료사, 1994

광장에서 거리 예술가가 공연을 시작하면, 구경꾼들은 원을 그리고 서서 거리 예술가의 공연을 구경한다. 사실 꼭 원 모양으로 서서 구경해야 하는 것은 아니다. 가령 강의실에서처럼 거리 예술가를 정면에 둔 채 여러 줄을 만들어 구경하는 일도 가능하다. 하지만 대개는 자연스럽게 원 구조가 생겨나는데, 이때 주목할 만한 것은 구경꾼들 중 어느 누구도 원 구조를 만들겠다는 계획을 세워 행동한 것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구경꾼 개개인은 ‘가능한 한 공연이 잘 보이도록 서있으면서도 자신을 특별히 노출시키지 않도록 선다’, ‘가능하면 다른 사람들의 시야를 가리지 않도록 배려한다’ 등의 목적을 가지고 자신의 위치를 결정할 뿐인데도, 구경꾼 개개인의 행동이 모이면 결과적으로 원 구조가 생겨나는 것이다.

『언어변화』의 저자 루디 켈러는 위 사례를 들며, 개개인의 행위로 인해 생겨났으나 누구도 의도하지 않았던 구조가 사회적 현상의 본질임을 역설한다. 그리고 언어가 변화하는 현상 역시, 대개 사람들의 의사소통 행위가 모이고 계획하지 않았던 현상으로 등장하게 되는 것이라고 주장한다.

일례로 ‘선생님’과 ‘교수님’이라는 호칭어에 대해 생각해 보자. 필자가 대학생이던 시절에는 대학의 교수를 ‘선생님’이라고 불렀고 ‘교수님’이라고 부르는 일은 흔치 않았는데, 언제부터인가 ‘교수님’이라는 호칭을 자주 듣게 되었다. ‘선생님’이라는 호칭이 드물게 선택받게 된 이유 중 하나는 ‘존경심이 덜 표현되는 것 같다는 생각’인 것으로 보인다. 그렇다면 왜 ‘선생님’이라는 호칭에서 존경심이 덜 느껴지게 되었을까? 이 현상에 영향을 미쳤을 것으로 생각되는 상황 한 가지는 다음과 같다. 우리는 종종 어떤 호칭어로 불러야 할지를 모르거나 결정하기 어려운 사람을 대하는 상황에 놓이게 된다. 그럴 때 호칭어로 인해 상대의 기분이 상하지 않도록 하고 불필요한 갈등 상황을 만들지 않기 위해서는 충분히 존중의 태도를 표현할 수 있는 호칭어를 선택할 필요가 있다. ‘선생님’이라는 호칭이 상대를 부르는 한 대안으로 사용되는 것이 많은 사람들에 의해 반복되면 어느 순간 ‘선생님’이라는 호칭이 일반 사람을 부르는 호칭처럼 느껴지게 된다. 결국 대학 교수에게 조금 더 특별한 존경심을 표현하고자 할 때 ‘선생님’ 외의 다른 호칭어를 탐색하게 되고, ‘교수님’이라는 호칭어가 선택될 수 있다.

이렇게 보면 거리 예술가의 공연을 보려는 구경꾼들이 원 구조를 이루게 되는 현상과 ‘선생님’의 의미적 가치가 하락하게 되는 현상은 유사한 구조를 갖는다. 즉 사람들은 각자 자신의 이익과 부가적으로 타인의 이익을 고려하면서 행동하는데, 그런 개별적 행동들이 반복되면서 아무도 의도하지 않았던 현상이 결과로서 나타나게 되는 것이다.

루디 켈러의 『언어변화』를 읽으며 언어가 변화하는 현상을 관찰하면, 사람들이 어떻게 행동하는지에 대해 이해할 수 있게 된다. 나아가 개개인의 행동들이 모일 때 어떤 사회적 현상이 등장하게 되는지에 대한 통찰도 얻을 수 있다. 이러한 통찰을 역방향으로 이용하면, 어떠한 바람직한 사회 현상을 도출하기 위해 개개인이 어떤 행동을 해야 하는지, 그러한 개인의 행동을 유발하기 위해서는 어떤 ‘넛지(타인의 선택을 유도하는 부드러운 개입)’를 사용할 수 있는지에 대해서 고민해 보는 기회도 제공받게 될 것이다. 그런 점에서 이 책은 언어학도는 물론, 인간 행동에 관심이 있는 제 분야의 학도들에게 유용한 지식을 제공할 것이다.

정리 우시윤 기자  woosy081.@mail.hongik.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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