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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각사각, 연필이 인류사에 그은 획을 따라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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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렸던 초등학교 1학년 시절, 우리는 모두 연필 한 자루를 잡은 손끝에 힘을 가득 담아 삐뚤빼뚤한 글자를 종이에 꾹꾹 써 내려갔다. 하지만 점차 필기에 익숙해지면 미리 깎아놓을 필요가 없어 편리한 샤프와 펜을 자연스럽게 즐겨 찾게 된다. 때문에 연필을 이용해 작업을 하거나 특수한 상관관계를 가진 사람이 아니라면, 우리에게 연필은 어린 시절의 향수를 불러일으키는 도구이다. 하지만 연필에는 과거를 상징할 뿐만 아니라, 사용자에게 내재된 잠재력과 행동을 불러일으키는 힘을 가지고 있다. 지금부터 여태 느껴보지 못했던, 연필이 인류사에 그은 획을 따라가 보자.

 

지워지는 펜을 발명하다

필기구를 사용해온 경험을 떠올려 보면, 왠지 연필은 펜으로 가기 위한 기초 단계처럼 느껴지지만 사실 연필은 펜과 붓의 단점을 극복한 대안으로 인기를 얻게 되었다. 1564년 영국에서 대량의 흑연이 발견되고 이를 나뭇조각 사이에 끼워 쓰기 시작한 것이 오늘날 보편적으로 알려진 ‘흑연 연필’의 시초이다. 연필의 고향이라고 할 수 있는 영국 컴브리아(Cumbria) 보로데일(Borrowdale)에서 발견된 흑연은 순도가 높아서 긴 막대 형태로 잘라 필기용으로 사용할 수 있었다. 이 물질은 순도가 덜한 흑연 혼합물에 비해 진한 자국을 남겼고 깨지기 쉬웠다. 또 사용자의 손을 더럽히기 때문에 일종의 보호막이 필요하다는 단점을 지녔으나 ‘지우기가 쉽다’는 장점 때문에 잉크의 대안으로 점차 인기를 얻게 되었다. 당시 발견된 흑연은 쉽게 추출이 가능해 1752년에는 영국 의회가 흑연의 절도에 구금형을 내릴 수 있는 법이 통과되기도 했다. 한편 많은 인기를 얻게 된 연필의 주재료 ‘흑연’이 처음부터 흑연이라는 이름을 가진 것은 아니었다. 과거 흑연(graphite)은 블랙리드(blacklead)나 플럼바고(plumbago, 흑연석이라는 뜻의 라틴어)라는 용어로 불리다가, 스웨덴의 화학자 K.W. 실레가 자신의 논문 「화석론」(1779)의 각주에 이를 흑연이라고 적으며 새로운 이름을 얻게 되었다. 

최초의 상업적 연필의 제작은 1761년 독일의 뉘른베르크에서 시작되었으나, 연필이 오늘날의 모양을 가지게 된 것은 프랑스의 화학자이자 화가였던 니콜라 자크 콩테(Nicola Jacques Conte, 1755~1805)에 의해서였다. 그는 1795년에 흑연과 진흙으로 만든 심을 고온에서 굽는 방법을 고안하며 쉽게 부러지지 않는 필기구를 만들어 냈다. 현대의 연필은 바로 이 콩테의 제조법을 개량한 것이다. 

서양에서 발전한 연필은 19세기 후반 국내로 들어왔으며, 국산 연필은 1946년 대전에서 처음 생산되었다. 당시의 연필은 지금과는 다르게 심이 약해서 잘 부러졌고 심을 둘러싼 나무도 결이 고르지 않아 깎기조차 어려운 낮은 품질이었다. 하지만 연필 산업은 점점 발달하여 1988년에는 연필의 연간 생산량은 약 1억 7천만 자루가 되었고, 수출액은 약 100만 달러에 이르게 되었다.

강력한 도구, 연필

주변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는 연필을 대단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별로 없을 것이다. 그러나 조그만 연필, 그 안에는 거대한 과학적 원리가 숨겨져 있다. 연필의 주원료인 ‘흑연’은 볼펜이나 만년필에 쓰이는 ‘잉크’와는 다르게 탄소(Carbon)로만 이루어진 가장 천연에 가까운 재료 중 하나로, 월등한 보존력을 지니고 있다. 또 연필이 종이에 흔적을 남기고 그것이 지우개로 지워지는 단순한 과정에도 세밀한 나노 과학이 숨겨져 있다고 할 수 있다.

연필은 학생들에게는 공부를 위한 필기구로, 예술가에게는 작업이나 그림을 위한 도구로 다양한 역할을 수행하며 오랫동안 우리의 곁을 지켜왔다. 작가들은 작품을 망치더라도 연필을 통해 다시 시작할 수 있기에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고 자유롭게 자신의 창의력을 표현했다. 동화 『찰리와 초콜릿 공장』과 『마틸다』의 원작자인 로알드 달(Roald Dahl, 1916~1990)은 연필을 깎느라 생각의 흐름이 깨지는 일이 없도록 매일 잘 깎은 연필을 많이 준비해뒀다고 한다. 

연필은 문학뿐만 아니라 미술 분야에도 지대한 영향을 끼쳤다. 연필은 드로잉(Drawing)에 많이 사용되는 보편적인 재료이며, 조각의 주재료로 사용되기도 한다. 연필심 조각가 달튼 게티(Dalton Ghetti, 1985~)는 연필심으로 교회, 체인 등을 표현한 작고 세밀한 조각을 만든다. 그는 SBS 다큐멘터리 <연필, 세상을 다시 쓰다!>(2015)를 연출한 박지현 감독의 저서 『그래, 나는 연필이다』에서 자신은 명상을 하기 위해 연필을 조각한다고 전했다. 또 그는 다른 조각 재료인 나무들과 다르게 찰흙처럼 아무 방향에서나 조각이 가능한 것이 ‘흑연’의 매력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아날로그의 상징 연필, 불편함을 즐기다

연필은 사용을 위해 거쳐야 하는 일련의 과정 때문에 귀찮은 물건으로 취급되기도 한다. 또 디지털 기술이 널리 보급되면서 연필을 비롯한 여러 아날로그 제품들의 자리가 위협받고 있다. 수업시간에도 패드나 탭을 이용해 필기를 하는 학생들을 심심치 않게 찾아볼 수 있듯이 말이다. 결국, 아날로그 종말의 시대가 오고 만 것일까? 

그러나 재미있게도, 2010년대 초반부터 디지털 기술의 확산과 함께 이전의 아날로그 시대로 돌아가려는 이른바 ‘아날로그 열풍’이 불기 시작했다. 특이한 점은 오히려 디지털과 친숙하다고 여겨지는 ‘밀레니엄 세대’(80년대 초반부터 00년대 초반 출생한 세대)가 아날로그를 더 찾고 있다는 것이다. 아날로그는 가장 큰 경쟁력인 ‘경험의 즐거움’을 바탕으로 단순히 과거에 대한 향수나 감성에 의존하는 일회성 마케팅이 아닌, ‘충성고객’을 바탕에 둔 시장적 가치로 새로운 시대를 열었다. 아날로그 콘텐츠에 대한 사람들의 관심은 감성과 공감, 그리고 질감과 체험이라는 인간의 본질적인 추구와 이전 문화를 복구하기 위한 현상으로 볼 수 있다.

아날로그 열풍은 연필에 대한 새로운 시각을 심어주었다. 연필을 깎거나 사용할 때 들리는 사각사각 소리, 나무향 등 오감을 자극하는 연필이 아날로그적 가치를 인정받기 시작한 것이다. 심지어 연필을 깎는 일을 직업으로 삼은 사람도 있다. 연필깎이 전문가 ‘데이비드 리스(David Rees, 1972~)’는 1년에 약 500개의 연필을 깎는다. 정치 풍자 만화가였던 그는 일을 그만두고 인구조사 일을 하면서 조사 양식을 채우기 위한 연필을 깎다가 연필이 심상치 않은 물건이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이후 연필과 관련된 직업을 생각하다 연필깎이 전문가가 된 그는 『연필 깎기의 정석』(2013)이라는 책을 내기도 했다. 영화 <her>(2013)의 감독 스파이크 존즈(Spike Jonze, 1969~)도 그의 고객 중 한 명이며 그의 고객들은 깎은 연필뿐만 아니라 연필을 깎는 과정에서 나온 부스러기, 연필깎이 ‘증명서’도 같이 받는다. 그의 직업은 사소하게 여기지는 일을 유머와 함께 진지한 전문 직종으로 확장시킨 경우라고 볼 수 있다.

 

어떤 이에게 연필은 그저 추억 속의 필기구이다. 그러나 과거 연필은 금과도 값어치가 맞먹는 귀한 제품이었다. 또 세상을 바꿀 수도 있는 새로운 아이디어가 떠오를 때, 그 시도는 바로 연필 끝에서 시작된다. 그렇기에 연필은 우리가 쌓아온 위대한 유산의 조용한 공로자라고 볼 수 있다. 또한 연필은 우리에게 주변의 작고 사소한 것들에 대한 가치를 다시금 생각해보게 한다. 앞으로의 방향이나 해야할 일이 막연하게만 느껴질 때, 프로젝트의 결론을 내리기 힘들 때, 생각만 하기보다 오랜만에 흰 종이를 펼치고 연필을 깎아보는 것은 어떨까? 당신이 연필로 그을 한 획은 어쩌면 세상을 바꿀, 예상치 못한 엄청난 결과물을 가져올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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