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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수환 지음, 지식산업사, 2018

영어영문학과 채수환 교수가 추천하는 『비극문학: 서양문학에 나타난 비극적 비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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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한마디로 문학이 인간의 삶에 제공해줄 수 있는 ‘지혜’가 있다면 그것은 무엇인가의 화두를 붙잡고 쓴 것이다. 서양문학 전공자인 필자는 30여 년간 문학을 공부하고 가르치면서 서양문학이 우리에게 줄 수 있는 깨우침 혹은 혜택이 있다면, 그것이 지닌 ‘비극문학전통’에서 가장 뚜렷이 찾아볼 수 있다는 깨달음에서 이 책을 쓰게 되었다. 서양문학은 그의 시작인 고대 희랍의 호메로스의 『일리아스』부터 인간의 고통과 수난을 작품의 주요한 대상과 모티프로 삼았으며, 이는 후대 문학의 가장 중심적인 색조와 성격의 한 면을 규정하게 된다. 그것은 희랍인들의 근본적인 인본주의적 사유와 정념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말하자면 삶의 더할 나위 없는 소중함에 대한 인식 및 그것의 본질적 허망함이라는 상충하는 관념 사이에서 ‘비극적 사유’ 혹은 ‘비극적 감각’은 탄생하였다는 것이다. 이 비극적 사유(감각)는 서양문학이 남긴 가장 소중한 정신적 유산 중의 하나가 되었다. 이는 비극문학이 서양문화사에서 가장 중요하고 핵심적인 세 시기 - BCE 5세기 희랍 고전기, 16세기 르네상스기, 근대의 완성기인 19세기 - 에 대표적 서사 양식이었다는 것으로 입증된다.

이런 비극적 인식 혹은 감각은 오늘날 일반적으로 ‘비극적 비전’이라는 이름으로 불리며, 다음과 같은 서너 가지 구성요소를 지니고 있다. 첫째로 이 세상에는 ‘비극적 진실’이라는 것이 엄존하며, 이는 세상사가 맥락 없이 제멋대로 돌아가는 것이 아니라 어떤 엄격하고 가혹한 법칙 혹은 이치에 의해 움직여간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 자연계에 자연법칙이 존재하듯이 인간의 삶에는 심리적, 도덕적 법칙이 작동한다는 것이다. 다음으로 인간은 근본적인 한계와 약점으로 인해 고통과 불행의 낭떠러지로 떨어질 수 있으나 역시 본유적인 정신의 힘과 능력으로 인해 그 고통 및 수난과 맞붙잡고 싸울 수 있고, 궁극적으로 비록 육체적으로 파멸할지라도 정신적으로는 승리하는 ‘비극적 역설’을 구현할 수 있다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비극이 보여주는 이런 역설적 현상은 인간의 정신이 지니는 파괴될 수 없는 ‘존엄과 숭고’의 증거인 것이다. 이는 인본주의적 신념을 바탕으로 한 인간 예찬으로 나아가는 것이고, 이것이 궁극적으로 서양정신의 가장 깊은 본질이자 정체성의 한 자락의 구성이다.

‘비극적 비전’은 서양정신의 형성기인 희랍 로마 고전기의 문학에서 가장 중요한 역할과 위상을 누리고 있었으나 기독교의 출현 이후에는 천 년 이상 영향력이 약화되었다. 그러나 르네상스 이후 재발견되고 부활하였으며 근대 세계에 이르러서는 기독교의 전반적 쇠퇴와 함께 서구인이 의지할 수 있는 유일한 대안적 비전이 되었다고 할 수 있다. 20세기 이후 ‘비극적 비전’은 새로운 대중적 서사 양식인 영상매체, 특히 영화를 통해 면면히 그 생명력을 이어오고 있다. 아울러 20세기 서세동점 이후 서구인의 비극적 인간관과 세계관은 이른바 근대화 및 지구화 현상과 함께 동서양의 구별 없이 보편적인 호소력과 설득력을 갖게 되었다는 것은 20세기 이후에 생산된 비서구권 문화에서의 비극적 서사들이 증명하고 있다. 이는 서구중심주의의 득세라는 비판도 물론 가능하지만, 서구적 사유의 본질 가운데 하나인 ‘비극적 비전’이 지니는 본유적 매력과 보편적 타당성에서 우러나오는 탁월성에 크게 힘입고 있다는 것도 것을 부인하기 힘들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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