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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순적인 도시사회 속 정(情)의 회복을 염원하다

작가 르 클레지오(Jean Marie Gustave Le Clezio,1940~) 의 작품 세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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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 르 클레지오(Jean Marie Gustave Le Clezio,1940~)의 모습/출처:연합 뉴스
▲작가 르 클레지오(Jean Marie Gustave Le Clezio,1940~)의 모습/출처:연합 뉴스

‘살아있는 프랑스 문학의 신화’ , ‘생존하는 프랑스 작가 중 가장 위대한 작가’로 인정받는 작가 르 클레지오(Jean Marie Gustave Le Clezio, 1940~)는 프랑스인임에도 한국을 배경으로 하는 작품을 발표하며 한국에서도 많은 사랑을 받고 있다. 그는 소설 『조서』(1963)를 시작으로 최근 『빛나 : 서울 하늘 아래』(2017)까지 총 158권의 소설을 발표하며 활발한 작품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그의 작품 속에서는 다양한 역사적 상황에 놓인 인물들이 등장한다. 또한 소설의 배경은 사막, 섬 등 낯선 장소일 때도 있고, 프랑스나 서울 등 우리에게 익숙한 도시일 때도 있다. 다양한 공간을 넘나들며 작품 속 인물의 삶을 생생하게 그려낸 르 클레지오. 그가 작품을 통해 전하고자 하는 바는 무엇일까. 지금부터 작가의 대표작 세 권을 통해 그만의 작품 세계를 들여다보자.

 

르 클레지오의 초기 대표작인 『홍수』(1966)는 주인공 ‘프랑수아 베송’이 도시와 대립하다 결국 파멸에 이르는 과정을 보여준다. 프랑스에 사는 스물일곱 살 청년 프랑수아 베송은 어느 날 자신이 곧 목숨을 잃게 될 것이라는 내용의 녹음테이프를 듣게 된다. 충격에 빠진 그는 그 후 12일 동안 도시를 배회하게 된다. 베송은 12일간 별다른 목적지를 정하지 않고 도시를 떠돌아다니며 사람들과 만나고 헤어지는 과정을 반복한다. 이러한 베송의 머릿속에는 자신의 삶에 대한 번뇌와 의심이 가득 차 있다. 그는 자신의 존재에 대해 고민하며 도시를 방황하지만 방대한 도시를 모두 돌아다니기에 그는 너무 왜소하고 작은 존재다. 이러한 설정은 작가가 도시와 개인의 관계를 바라보는 시각을 투영한다. 베송이 만나고 헤어진 사람들을 통해 인간 소외와 인간으로서의 감수성 상실이 드러나는 것이다. 또한 소설 속에서 도시와 문명은 개인이 상대하기에 너무 차가운 존재로 표현된다. 이는 작가의 문체를 통해 잘 드러나는데, 처음에는 다소 난해해 보일 수 있는 문장과 단어 선택이 도시 속에서 감정의 ‘홍수’를 겪고 있는 베송의 감정을 그대로 나타낸다고 볼 수 있다.

 

『홍수』(1966)에서는 르 클레지오의 도시와 문명에 대한 비판적인 시각을 엿볼 수 있었다. 이와 반대로 『사막』(1980)에선 삭막한 도시 속에서 잃어버린 감수성을 소수민족을 통해 찾으려했던 작가의 노력을 확인 할 수 있다. 『사막』(1980)은 넓은 사하라 사막 속에서 생활하는 소녀 ‘랄라’가 주인공이다. 랄라와 그녀의 이웃들은 가난하지만 ‘가진 것이 없으니 잃을 것도 없다’라는 생각을 하며 긍정적으로 살아간다. 그녀 역시 목동 ‘하르타니’와의 순수한 사랑을 꿈꾸며 행복한 나날을 보낸다. 하지만 ‘양복 입은 사람들’의 계속되는 결혼 강요에 랄라는 하르타니와 함께 도망을 가게 되고, 그의 아이를 갖게 된다. 하지만 하르타니는 그녀의 곁을 떠나고, 랄라는 적십자의 도움으로 프랑스로 거처를 옮긴다. 그녀는 구걸과 청소부 일을 하며 힘겨운 도시에서 꿋꿋이 생활을 이어나가지만, 사랑하는 가족과 이웃들이 사는 고향에 대한 그리움을 떨쳐내지 못한다. 이러한 그녀의 모습을 통해 문명화된 도시 속에서 사람 사이의 정을 되찾고자 하는 작가의 생각을 엿볼 수 있다. 『사막』(1980) 이전의 르 클레지오 소설에서는 도시 문명을 비판하는 강한 어조의 문체를 볼 수 있었다면, 이 소설은 이전과는 다른 부드러운 문체를 통해 잃어버린 감수성을 되찾으려는 작가의 심정이 드러났다고 볼 수 있다.

 

가장 최근 발표된 르 클레지오의 소설 『빛나:서울 하늘 아래』(2017)는 작가의 최근 관심사를 살펴볼 수 있는 작품이다. 특히 프랑스인인 작가가 서울을 배경으로 한 소설을 썼다는 점이 특이하다. 작가는 서울에 대해 ‘최선(最善)과 최악(最惡)이 공존하는 도시’라고 표현하였다. 이러한 작가의 생각은 작품 속에서 잘 드러난다. 소설은 전라도 어촌에서 서울로 상경한 ‘빛나’가 불치병 환자 ‘살로메’에게 서울의 이야기를 들려주는 방식으로 전개된다. 그는 빛나가 들려준 ‘북한에 사는 가족들을 그리워하며 비둘기를 키우는 조씨 아저씨 이야기’를 통해 분단의 아픔과 6·25전쟁을 그려냈고, ‘아이돌 이야기’를 통해 인간의 욕망을 말했다. 이 외에도 작가는 여러 이야기를 통해 자신이 생각하는 도시의 이미지를 보여준다. 다만 이전의 작품과는 다르게 도시를 마냥 ‘최악’으로 그리지는 않았다. 빛나가 들려주는 이야기는 어두운 도시의 모습으로 가득하지만, 막상 그녀의 주변에는 그녀에게 정(情)을 베푸는 사람들이 가득하기 때문이다. 빛나는 살로메와 이야기를 주고받으며 긍정적으로 변화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이러한 빛나의 모습을 통해 아직 도시에서도 ‘인간성’이라는 희망을 찾을 수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러한 대목에서 르 클레지오가 서울을 ‘최선’이라고 표현한 것은 아닐까.

르 클레지오는 수십 년간의 작품 활동을 통해 도시의 부조리함을 고발하고, 인간성의 회복을 염원하였다. 그의 초기 작품은 단지 도시와 인간성 상실에 대한 비판의 내용을 담고 있었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주인공이 인간성을 회복하려는 모습을 그리거나 실제로 인간 사이의 정(情)을 회복한 모습을 표현하려는 경향이 나타난다. 이러한 작가의 세계관 변화는 날이 갈수록 힘들어지는 도시 생활과 인간의 첨예한 대립 속에서 일말의 희망이라도 잡아보려는 시도가 아닐까 생각한다. 만약 당신이 빌딩 숲으로 가득한 이 ‘서울’이라는 도시 속에서 사람의 따듯한 온기를 느끼고 싶다면, 오늘 집에 돌아가는 길에 클레지오의 책을 사서 읽어보는 것은 어떨까. 책을 읽은 후에 당신이 사람들에게 베푸는 온정이 나비효과를 불러일으켜 서울을 ‘최악’의 도시에서 ‘최고(最高)’의 도시로 만들지도 모르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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