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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락모락 피어나는 우리의 부엌 이야기

어린 시절 시골 할머니 댁을 생각하면 밥을 짓는 따뜻하고 고소한 냄새와 맛있는 반찬 냄새가 풍기는 부엌 풍경이 자연스레 떠오른다. 반면 디즈니 애니메이션 〈신데렐라〉(1950)에서의 부엌은 신데렐라가 계모와 의붓언니들의 구박을 받으며 온갖 궂은일을 하는 배경으로 등장한다. 이렇듯 부엌은 어떤 이들에게는 맛있는 음식을 만들고 가족이 모이는 ‘따뜻한 공간’이지만, 누군가에겐 ‘노동의 공간’에 그치기도 한다. 이렇게 여러 의미를 지닌 부엌에 대해 우리가 몰랐던 이야기들을 들어보자.

 

부엌에 담긴 우리 이야기

▲고대 부엌의 풍경. /출처: 한국학중앙연구원

부엌이란 어떤 곳일까? 사전에 등재된 부엌은 ‘일정한 시설을 갖추어 놓고 음식을 만들고 설거지를 하는 등 식사에 관련된 일을 하는 곳’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다. 그렇다면 부엌은 언제부터 ‘부엌(Kitchen)’이라고 불렸을까? 부엌은 영어 고어인 ‘Cycene’와 라틴어인 ‘코쿠에레(Coquere)’에서 유래되었다. 그 중 라틴어 ‘코쿠에레(Coquere)’는 부엌이라는 명사 이외에 동사의 뜻으로 ‘요리하다’의 뜻을 동시에 가지고 있다. 미국의 많은 식당 간판에 적힌 ‘cusine’이라는 단어의 유래를 거슬러 올라가다 보면 ‘코쿠에레(coquere)’가 나온다. 이로 미루어보아, 부엌이란 고대부터 요리를 위한 곳이었던 셈이다. 어떤 목적을 수행하기 위한 공간을 뜻하는 ‘방(room)’이라는 단어의 관점에서 보면, 부엌은 기능적으로 분화된 가장 오래된 공간이다. 고대부터 시작된 의미가 오늘날까지 전혀 변하지 않은 채 이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구석기 시대의 인류는 보통 불을 피운 자리에 막집을 지어서 생활했다. 불이 음식물을 익히는 데에 사용되었음을 고려하면, 이때부터 부엌의 역사가 시작되었다고 할 수 있다. 불의 사용은 곧 집의 형성이었다. 불을 피워놓은 곳이 음식을 만들어 먹고 사람들이 잠도 자며 머물 수 있는 공간이 되었기 때문이다. 이처럼 부엌은 여러 사람이 함께 일하는 공동의 작업장이었으며 자연스럽게 집의 시작을 이끌어왔다. 고구려 시대의 고분벽화 <안악 3호분>에도 반 빗간(독립된 형태의 부엌) 형태의 부엌에서 음식을 한 뒤 작은 소반에 음식을 나르는 모습을 볼 수 있다.

그렇다면 한국에서 부엌은 어떤 역할을 해왔을까? 한국의 부엌은 ‘음식을 하는 곳’ 뿐만 아니라 토속적인 믿음을 현재까지 지켜오는 곳이었다. 과거 이사를 하면, 사람들은 제일 먼저 새집에 솥을 걸었다. 길일(吉日)을 택하여 부엌에 솥을 걸고 그날 밤에 새로운 집에서 자면 설사 살림살이를 옮겨오지 않아도 이사를 한 것이라는 생각이 널리 퍼져 있었다. 또한 우리 조상들은 솥에서 밥을 풀 때 그 방향이 대문 쪽을 향하면 밥을 ‘내 푸는 것’이고, 집 안쪽을 향하면 ‘들이 푼다’라고 하는데, 이때 밥을 ‘내 푸면’ 복이 나간다 하여 이를 꺼리는 관습이 있었다. 그리고 부엌에는 가신(家神) 중 최고 신으로 군림하며 안주인을 보호하는 조왕신(竈王神)이 존재한다고 믿었다. 이에 전통사회의 어머니들은 ‘이른 새벽에 길은 우물물’, 즉 정화수를 떠놓고 조왕신에게 가족의 평안을 기도했다. 

이처럼 부엌에 얽힌 여러 설화는 전통사회에서의 부엌의 의미를 보여준다. 부엌은 인류가 불을 사용하기 시작하면서 ‘요리(料理)’라는 특별한 문화 행위를 하는 곳으로, 다른 동물과 인간의 차이를 보여주는 공간이며 이러한 ‘부엌’의 변화는 인간 생활에 큰 영향을 미쳤다.

 

 

여성에게 주방이란?

삼국시대에 형성된 반 빗간 형태의 독립된 부엌은 17세기 이후 실내의 난방방식이 화로(火爐)에서 온돌로 급격하게 바뀌면서 큰 변화를 맞이하게 되었다. 잠을 자는 공간에 온돌이 깔리면서 난방을 위한 아궁이가 설치되었고, 열효율을 높이기 위해 아궁이 곁에 부엌이 자리하게 되었다. 사람들은 부엌 아궁이에서 취사와 난방을 동시에 해결할 수 있었지만, 이 때문에 부엌의 구조가 달라지게 되었다. 유교 사상이 유입되며 부엌은 여성 전용의 공간으로 대문에서 멀리 떨어져 외부와는 폐쇄된 공간의 성격을 갖게 된 것이다. 이에 부엌을 안방과 인접하도록 하여 부엌 내에서의 작업 관리가 원활하게 했다. 따라서 여성에게 주방이란 단순한 집의 일부분이 아닌, 음식을 조리하고 취사하는 것은 물론 가족생활까지 이루어지는 여성의 주된 노동공간으로 거듭나게 되었다. 

부엌이 여성만의 공간으로 여겨지는 사회적 현상은 1900년대로 접어들며 더욱 강화되었다. 결혼한 여성은 시집온 지 사흘째부터 부엌에 나가 일을 하는 부엌데기가 되어야 했으나, 오히려 조선 시대 여성에게 가장 중요시되었던 덕목은 직접적인 가사노동에 대한 책임이 아니었다. 그들에게 요구되었던 덕목은 가문을 유지하기 위한 며느리로서의 책임, 즉 ‘효’와 관계된 항목을 성실히 수행하는 것이었다. 시집가는 딸에게 보내는 아버지의 충고를 담은 송시열의 『계녀서』에서도 시부모를 섬기는 며느리로서 해야 할 도리를 가장 강조하였음을 알아볼 수 있다. 그런데 1900년대로 접어들면서 여성의 책임이 부엌일과 같은 직접적인 가사노동으로 집약되는 경향이 나타났다. 이는 당시 확산되던 ‘가정 담론’의 영향으로 볼 수 있다. ‘가정 담론’은 소가족의 구성을 이상적인 가족 유형으로 상정하고, 전통적 가족제도나 생활방식을 강요하는 사회적 현상이다. 이러한 현상이 보편화됨에 따라 여성에게 며느리의 도리보다 어머니와 아내의 책임을 강조하는 풍조가 사회에 만연하게 된 것이다. 또한 1960~70년대의 급격한 산업화와 함께 부상한 중산층은 ‘생계를 책임지는 남편’과 ‘육아와 가사노동을 책임지는 아내’로 남녀의 성 역할을 구분하게 되었다. 이처럼 부엌의 변화는 여성이 하는 가사노동을 포함한 일상생활과 주방 구조의 변화를 수반했다. 그 예로 산업화 시기에 탄생한 신흥 주택에는 요리하는 동안은 서서 일을 할 수 있는 입식 조리대가 설치되었고, 찬장이 등장했다. 또 기름기 많은 그릇을 씻기에 편리한 주방용 세제, 겨울철 더운물이 나오지 않는 가정의 주부들을 위한 방한용 고무장갑도 함께 출시되었다.

 

새 옷으로 갈아입는 주방

옛 한국 사회 유교적 관습의 영향으로 주부의 독자적인 영역이었던 부엌은 오늘날 사회활동에 참여하는 주부들의 일손을 덜어주는 남편과 그 외 식구들의 공유공간이 되어가고 있다. 입식 부엌이 본격화된 1990년대부터 지금까지 주방은 진화를 거듭하고 있다. 1980년대 한국 사회에서는 점차 식모(食母)가 사라지는 추세였으며, 주부가 가정경제를 알뜰히 경영하는 이른바 전업주부 담론이 팽배하였다. 주택의 구조는 LDK형으로 바뀌었다. LDK형 부엌은 Living(거실), Dining(식당), Kitchen(부엌)이 혼합된 형태로 집 내 공간의 경계를 허문 형태이다. 주방의 경계가 허물어지며 주방은 점차 가족과 친구들이 모여 함께 시간을 보내는 공간으로 변화했고, 기업들은 높아진 고객의 눈높이를 충족하기 위해 고급화 전략을 사용하기 시작했다. 이제 부엌은 식재료를 준비하고 조리하며, 그릇을 씻는 공간을 넘어, 첨단 시설과 기술력이 집약된 하나의 문화 공간이라 불러도 손색없는 장소가 된 것이다. 

최근에는 생활패턴의 변화로 인해 부엌에 또 다른 재미있는 변화가 생기고 있다. 서로 대여해주고 차용하는 개념의 공유경제가 확산되고, 1인 가구가 증가함에 따라 부엌에도 공유경제가 스며들며 ‘공유주방’이 탄생했다. 쉽게 말해 주방을 나눠쓰기로 한 것이다. 미국의 한 회사는 2015년 시카고에 주방 하나를 함께 사용하는 레스토랑 9개를 동시에 열었다. 메뉴도 제각기 다르며 주방만 공유하는 배달 전문 ‘공유주방’ 레스토랑이 첫 발을 내딛은 것이다. 또한 최근 바쁜 일정에 쫓겨 가족과 함께 식사하지 못하고 혼자 인스턴트 음식으로 끼니를 때우던 사람들이 건강한 식생활이라는 관심사를 공유하며 뭉치고 있는 ‘소셜 다이닝(social dining)’ 현상이 급부상 하고 있다. 소셜미디어 시대에 등장한 이 새로운 소통방식은 함께 식사하는 밥상 문화의 즐거움을 선사하며 홀로 살아가는 이들에게 위로가 되어주고 있다.

 

근대 이전 여성의 전유 공간으로만 여겨졌던 주방은 현재 다양한 형태로 탈바꿈하고, 새로운 변신을 준비하고 있다. 한 개인으로서의 삶을 중요시하는 현대 주부의 생활양식과, 가공식품과 인스턴트 식품이 등장하면서 변화한 우리의 시대상이 부엌이라는 공간 안에 담기고 있는 것이다. 부엌의 변화는 여성의 생활환경뿐만 아니라 여성들의 삶 자체에 혁명을 가져왔다. 다시금 부엌이 여성들만의 공간이 아니라, 본래의 자리인 가족생활의 중심으로 되돌아온 것이다. 앞으로도 우리의 주방은 지금까지 그랬듯 세상을 반영하며 천천히 진화해 나갈 것이다.

김채원 기자  won6232@mail.hongik.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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