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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씨 할머니 이야기
“옛날 옛날, 팔공산 산자락에서 석씨 성을 가진 어여쁜 소녀가 태어났어요.”
석씨 할머니 이야기는 이렇게 시작된다. 한때 새까만 머리칼을 하나로 가지런히 땋고 다녔던 석씨 소녀는 지금은 머리가 하얗게 새버린 82세의 호호 할머니가 되었다. 할머니가 된 지금도 틈만 나면 자신의 옛이야기를 조용히 풀어내는 그녀는 바로 기자의 외할머니이다. 
어릴 적 할머니 손에 자랐던 기자는 할머니의 무릎을 베고 누워 그녀의 옛이야기를 듣는 시간을 가장 좋아했다. 똑같은 이야기를 듣고 또 들어도 얼마나 재밌었는지. 그때부터일까, 기자는 ‘언젠가 꼭 우리 외할머니 이야기를 책으로 내야지’, ‘아침마다 나오는 TV 소설로 만들어도 정말 재밌을 거야’하며 그녀의 이야기를 다른 누군가에게 꼭, 전하고 싶었다. 그때의 나에게 그녀의 인생살이는 너무 파란만장하고 신기했기 때문이다. 
할머니의 이야기 중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그녀의 외증조 할아버지 이야기였다. 38년생인 할머니는 그 시절 많은 딸들이 그랬듯 배움의 기회와는 거리가 멀었다. 외증조 할아버지는 국민학교에 다니던 할머니의 보따리를 뺏어 안에 들어있던 모든 책들을 바닥에 내던지고 발로 밟으며 “계집이 글자를 알아서 뭐 한다는 거야!”라는 폭언을 내뱉었다. 그러나 할머니는 무서움에 떨면서도 늦은 밤 내던져진 책들을 주워 흙먼지를 털며 학교는 못 다니더라도 공부는 마쳐야지라는 생각을 했더란다. 그날 이후, 그녀는 밤이면 이불을 푹 뒤집어쓴 채 호롱불 하나에 의지해 글자를 배우려고 노력했다. 하지만 그도 얼마 못 가 아버지에게 들켜 이번엔 책이 다 찢기는 바람에 그녀는 배움의 꿈을 접어야 했다. 그래도 그녀의 가슴속엔 배움에 대한 열망이 남아있었다. 할머니는 기자가 태어나고 얼마 뒤 다니던 성당의 노인대학에서 글자를 배웠다. 늦은 밤까지도 성경에 있는 모든 구절을 하나하나 베끼며 글을 배우려고 노력한 그녀는 기어코 그 두꺼운 성경을 필사하는 것에 성공해 많은 이들의 박수를 받았다. 그리고 기자의 초등학교 졸업식, 생전 편지를 주신 적이 없었던 무뚝뚝함의 대명사였던 할머니는 용돈 봉투 위에 “성아, 조럽 축카해, 중학교 가면 공부 열시미 해야 한다”라는 짧은 문구를 적어 기자에게 건넸다. 삐뚤빼뚤한 글씨, 맞춤법 오류, 그리고 투박하기 이를 데 없는 흰 봉투였지만 할머니의 마음만큼은 그 무엇보다 아름다웠고, 올바르며 섬세했다. 아직도 기자의 책상 서랍 안에 고이 모셔진 그 봉투는 생각만 해도 기자의 눈시울을 뜨겁게 하는 어린 시절 소중한 추억이다.
이 밖에도 할머니는 6.25 전쟁을 겪으며 국군의 실수에 의해 눈앞에서 동생을 잃고, 동네 한량을 배우자로 맞이하는 바람에 5남매를 평생 홀로 키운 이야기들을 해주셨다. 안 해본 일 없이 억척같이 살아내 그 흔적이 손과 발에 고스란히 박혀있는 그녀이지만 이제는 10명의 손주들과 2명의 증손주가 때마다 찾아와 애교를 부리는 행복한 삶을 누리고 있다. 지금 생각해보면 이건 흔하디흔한 이야기다. 그 시절 여성에게 가해진 핍박은 시대극에 빠지지 않는 소재이며, 6.25전쟁의 비극과 억척같은 어머니 상은 모든 시대극의 클리셰다. 그래서 기자는 현실적으로, 출판과 드라마 제작은 포기했다. 너무 뻔한 이야기라며 퇴짜 맞을 게 분명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자에게 우리 할머니 이야기는 그 세상 누구의 이야기보다 특별하고 소중하다. 그래서 이 글을 썼다. 세월의 힘으로 기억을 점점 잃어가고 있는 우리 할머니가 나라는 존재를 잊기 전에 당신의 이야기는 나에게 큰 귀감이었으며 당신의 무릎을 베고 이야기를 듣던 그 순간이 내 어린 시절의 가장 소중한 시간이었음을 말하고 싶어서.

김성아 기자  becky0602@mail.hongik.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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