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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차 산업혁명시대의 일하는 방식과 일·생활 균형

미국에 있을 때 옆집에 살았던 한국인 가정이 있었다. 어린 아이가 둘이었는데, 아이들 엄마가 새벽 6시에 출근하고 나면 아빠가 아이들을 챙겨서 유치원과 초등학교에 보낸 뒤 출근하고, 엄마는 3시 퇴근길에 아이들을 집으로 데려와 돌보고 아빠는 저녁때 퇴근하는 것을 볼 수 있었다. 주변 누구의 도움도 받지 않고 부부가 함께 직장생활, 육아, 가사업무를 척척 해 나가는 것을 보고 유연근무제 특히 시차출퇴근제(flextime)의 효과를 느낄 수 있었다. 

OECD가 발표한 2060년 세계경제 장기전망 보고서에 의하면, 우리나라의 생산가능 인구비율은 현재의 73%에서 2030년에는 63%, 그리고 2060년에는 52%로 급감할 것으로 예상되는데, 이는 다른 OECD 회원국들과 비교했을 때 상당히 큰 폭의 하락이다. 이처럼 생산가능 인구의 확보가 절실한 상황임에도 우리나라의 여성고용률은 56.2%(34개국 중 28위, OECD 평균 60.1%)에 그치고 있다. 여성 인력의 적극적인 노동시장 유입대책이 시급한 실정으로, 이를 가능하게 하는 핵심 전략중의 하나가 바로 앞서 예로 든 유연근무제를 비롯한 ‘일하는 방식의 변화’일 것이다. 더욱이 최근 주 52시간 근로제가 도입되면서 사회 전반에 걸쳐 ‘일·생활 균형’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는 현상을 볼 때, 일하는 방식의 변화는 여성 인력뿐만 아니라 남성 인력 관리 면에서도 중요한 이슈가 아닐 수 없다. 

우리 정부는 1995년 육아휴직제도의 도입을 시작으로 배우자 출산휴가, 육아기 근로시간 단축 및 가족돌봄휴직제도 등 다양한 일·가정 양립, 일·생활 균형 제도를 시행하여 왔다. 이러한 제도시행의 결과 일·생활 균형의 필요성에 대한 공감대는 점진적으로 확산되고 있으나, 이와 대조적으로 기업 현장의 일하는 방식 및 문화는 기존의 장시간 비효율적 근로 관행에 머물러 있어, 일·생활 균형 정책에 대해 국민이 체감하는 정책적 실효성은 저조한 실정이다. 향후 정책적 초점은 일·생활 균형 제도의 도입과 정착, 확산 등 실질적인 성과를 도출하는 전략에 맞춰져야 한다. 이에 이를 위한 몇 가지 아이디어를 제안하고자 한다. 

탄력근로, 집중근로 등 근로시간의 유연화 제도 및 재택근무 등 근로장소의 유연화 제도가 개인과 조직에 가져오는 긍정적인 효과에 대한 연구가 다수 진행되어 왔다. 이와 같은 일하는 방식의 변화는 일-가정 양립을 가능하게 하여 업무 효율과 몰입도를 높이고, 자율적인 업무수행을 통해 창의적이고 혁신적인 산출물이 증가하는 것으로 나타난다. 특히 자기결정성이론(self-determination theory)에 따르면 자율성은 인간의 본질적인 심리적 욕구로서, 선택의 기회가 자신에게 있고 주도권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할 때 자율성을 느끼며 개인은 더욱 동기부여 되고 의욕을 가지게 된다. 일하는 방식의 변화는 근로자들로 하여금 업무수행 방식이나 과정을 스스로 선택하고 결정할 수 있는 권한을 강화시킴으로써 이들의 직무의욕과 활력을 고취시키는 중요한 기제로서 작용할 수 있다.  

그간의 연구 결과들이 제시하는 또 하나의 중요한 시사점은, 일하는 방식이 변화되고 일·생활 균형을 되찾는 것이 업무효율, 몰입도, 성과 증진 등 조직의 목표 달성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미친다는 것이다. 이처럼 조직의 목표와 구성원의 목표는 동시에 달성될 수 있다는 접근법, 즉 조직효과성과 구성원의 일과 삶의 조화는 동시에 추구될 수 있다는 접근법을 듀얼 아젠다(Dual Agenda)라 일컫는다. 근로시간과 장소의 유연화, 일과 생활의 균형이 단순히 근로자에게만 일방적인 편익을 가져다주고 조직에게는 비용만 발생시킨다는 통념을 바꾸고 근로자와 조직 모두의 목표달성에 도움이 됨을 강조함으로써, 기업들의 더욱 적극적인 동참을 이끌어낼 수 있을 것이다.  

개인의 삶 없이 오로지 조직을 위해서 24시간 헌신하는, 과거 3차 산업혁명시대의 이상적인 근로자 이미지 또한 변화되어야 할 것이다. 유연근무제도를 활용하는 근로자는 조직에 대한 충성도가 낮고 좋은 성과를 달성할 수 없다는 편견으로 인해, 역량이 떨어진다는 평가를 받고 연봉이나 승진에서 불이익을 당한다는 연구결과도 있다. 4차 산업혁명시대의 이상적인 근로자 이미지는 효율성, 생산성, 창의성에 주목해야 하며, 결과 중심의 평가에 초점을 맞추는 방향으로 변화가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 

일·생활 균형 제도의 도입과 실행은 조직 내부의 임직원들을 대상으로 하는 사회적 책임(CSR) 활동과도 직결되어 있다. 최근 프록터 앤 갬블(P&G)이 발간한 CSR 보고서에도 ‘다양성과 포용성’ 면에서 회사 내부적으로 유연근무(Flex@Work) 프로그램을 강조하고 있고, ‘양성평등’ 면에서 일·가정 양립을 가능하게 하는 제도의 운용을 설명하고 있다. 특히 글로벌 기업들은 협력업체를 찾을 때 상대방의 CSR 활동내역을 점검하고 관련 보고서를 요구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사업협력에 앞서 파트너사가 경제적 가치 창출만 강조하는지, 사회적 가치를 소홀히 하지는 않는지 등을 파악하기 위해서이다. 이때 파트너사의 CSR 활동내용이 기준치를 만족시키지 못할 경우 사업연계에 어려움이 발생하기도 하고, 심각한 경우 사업이 중단되기도 한다.  근로자의 일·생활 균형을 위한 노력을 통해 글로벌 기업과의 사업협력 시 우위를 점하는 것은 물론 긍정적인 기업 이미지 구축에도 도움이 된다는 점에서 일·생활 균형 제도의 적극적인 도입과 실행이 요구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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