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영역

본문영역

갈 곳을 잃은 이방인들의 이야기

막연한 두려움, 에이즈에 대하여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We are the champions, my friends!”

지난 해 국내를 휩쓸었던 ‘보헤미안 랩소디(Bohemian Rhapsody)’ 열풍을 기억하는가? 이 영화는 1990년대 영국 밴드 ‘퀸(Queen)’의 음악적 성장 과정과 더불어 보컬 프레디 머큐리(Freddie Mercury, 1946~1991)의 음악세계 및 그의 삶을 다루며, 국내에서 약 900만 명의 누적 관객 수를 기록했다. 프레디 머큐리는 1991년 사망하였는데 그의 사인은 다름 아닌 ‘에이즈(AIDS: Acquired Immune Deficiency Syndrome)’였다. ‘후천성면역결핍증’으로 정의되는 에이즈는 대중매체 속 다큐멘터리나 뉴스에서 종종 볼 수 있는 단어지만, 대다수의 사람들은 에이즈가 어떤 질병인지에 대해 어렴풋이 알고 있거나 잘 모르고 있다. 영화 <보헤미안 랩소디>의 프레디 머큐리 이야기를 통해 개봉 당시 국내에서는 에이즈라는 주제가 이슈화되기도 했었다. 이와 함께 에이즈에 대한 수많은 오해들도 수면 위로 떠올랐는데, 이러한 잘못된 인식과 편견은 감염인들의 성공적인 치료 및 사회 활동을 어렵게 만들기도 한다. 과연 에이즈의 진실은 무엇일까?

 

AIDS, 너는 누구냐

AIDS(에이즈)는 Acquired(후천성) Immune(면역) Deficiency(결핍) Syndrome(증후군)의 약어다. 후천성면역결핍증에서 ‘후천성(後天性)’이란 ‘선천성(先天性)’의 반대말로 유전(遺傳)에 의해 발병되는 유전병이 아니라는 뜻이며, ‘면역결핍증’은 인체 내 방어 기능을 담당하는 면역세포가 파괴되어 면역기능이 떨어진 상태를 말한다. 따라서 에이즈는 많은 사람들이 흔히 알고 있는 바와 같이 모든 성병을 이르는 하나의 총칭이 아닌, 수많은 성병 중 하나다.

에이즈는 HIV(Human Immunodeficiency Virus, 인체 면역결핍 바이러스)의 감염에 의한 결과로 나타나는 여러 가지 증상을 말한다. HIV는 흔히 에이즈바이러스라고도 불리며 혈액, 정액, 질 분비물, 모유 등 에이즈 감염인의 모든 체액에 존재한다. HIV에 감염되면 인체의 면역세포는 서서히 파괴되어 마지막에는 면역체계가 손상된다. 이로 인해 만약 면역체계의 손상도가 일정 수준을 넘는다면, 건강한 인체에서는 발현되지 못하던 바이러스, 세균, 곰팡이, 원충 또는 기생충 등이 병원체로 재활하거나 새로운 균이 외부로부터 침입, 증식하게 되어 그로 인한 여러 가지 감염증과 질환이 생기며 에이즈 환자가 되는 것이다.

에이즈의 가장 무서운 특징은 무(無)증상기가 매우 길다는 것이다. 무증상기는 개인차가 있지만, 최초 감염 후 짧은 급성 증후군(초기 증상)을 거친 후 평균 10년의 무증상기에 들어가게 된다. 감염자라고 하더라도 무증상기 동안은 아무런 증상 없이 건강한 사람과 똑같은 생활을 하지만, 바이러스에 의하여 면역기능은 계속적으로 감소하고 타인을 감염시킬 가능성도 존재한다. 만약 이 기간 동안 감염 사실을 인지하지 못한다면 계속된 면역저하로 합병증 발병은 물론 체액 교환 등으로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주변인에게 바이러스를 전염시키는 등의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

 

무지(無知)가 낳은 에이즈에 대한 오해, 진실은?

우리 사회는 성병을 혐오하는 경향이 크다. 명칭에서 드러나는 질병의 감염경로가 부적절하기 때문일 것이다. 특히 에이즈의 경우, 가장 잘 알려진 성병으로 사람들은 정확한 사실보다는 확인되지 않은 온갖 소문을 근거로 에이즈 감염인과 환자들에게 돌을 던진다. 이와 같은 편견은 그들로 하여금 질병을 극복하고자 하는 희망이 아닌 세상에 대한 원망과 절망감을 갖게 하며, 무지로 인한 부주의로 또 다른 감염자를 만드는 등의 악순환을 낳는다. 이 악순환의 고리를 끊기 위해서는 에이즈에 대한 ‘정확한’ 이해가 필요하다. 지금부터 에이즈를 둘러싼 몇 가지 오해들과 그에 따른 진실을 알아보자.

 

‘에이즈 감염인’과 ‘에이즈 환자’는 다르다?

많은 사람들이 에이즈 바이러스에 감염된다면 건강이 급속도로 나빠지고 합병증 등으로 인해 피부암 등 가시적인 질환이 드러나는 것으로 알고 있다. 그러나 단순한 에이즈 감염인, 즉 HIV 감염인과 에이즈 환자 사이에는 분명한 차이가 있다. 두 분류 모두 HIV에 감염된 것은 맞지만 질병의 진행 단계에 따라 단순한 감염인과 환자로 나누어 구분된다. HIV 감염인은 해당 바이러스가 인체 내에 침투하여 T림프구 내에 자리 잡고 있지만 일정한 면역 지수를 유지하여 신체상 뚜렷한 증상이 없거나 경미한 증상만 갖고 있는 상태에 있는 사람을 말한다. 즉 HIV에 감염되었어도 면역체계가 손상되지 않은 사람을 가리키는 것이다. 그러나 HIV 감염인 중 시간이 경과하며 면역체계가 심각하게 파괴되어 CD4세포수가 200cell/mm3 미만으로 감소되거나, 면역체계의 손상으로 인해 비감염인에게서는 잘 나타나지 않는 면역결핍 증상이 나타난다면 그들만을 가리켜 에이즈 환자라고 한다. 그러므로 HIV 감염인 중 일부만이 일상생활을 유지할 수 없을 만큼 쇠약해진 에이즈 환자이고, 나머지는 건강한 상태로 살아갈 수 있다는 것이다.

 

에이즈, 동성애가 원인이다?

개신교에서는 동성애를 금하고 있다. 이에 대해 여러 가지 이유가 있지만 그중 하나가 에이즈 발병 가능성이다. 이는 종교를 떠나 사회 전반에서 널리 퍼져있는 오해다. 에이즈가 1981년 미국 캘리포니아의 동성애 집단에서 처음 발견되었으며, 실제로도 동성애자가 에이즈 감염에 대해 취약한 것은 사실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에이즈는 동성애자만의 질병이 아니다. 동성애자가 감염에 취약한 이유는 성적으로 문란하거나 단지 동성끼리 성관계를 가졌기 때문이 아니라, 대부분의 동성 간 성행위가 항문성교로 이루어지기 때문이다. 감염인이 항문성교를 할 때 삽입 시 항문 주위의 혈관이 파열되어 상처가 생기면 그 상처를 통해 상대방에게 바이러스가 침투할 확률이 더 높아지게 된다. 그러므로 동성애자의 HIV 감염 확률이 이성애자보다 높게 나타나는 것이다. 즉, HIV 감염과 성 정체성 사이에 직접적 관계는 없으며 성별을 떠나 에이즈 감염인과 콘돔 등 피임기구의 사용 없이 성관계를 할 때 바이러스의 전파 위험이 높아진다는 것을 반드시 인지해야 한다.

 

에이즈에 걸렸다고? 가까이 오지 마!

에이즈를 둘러싼 가장 큰 오해 중 하나는 바로 그 감염경로에 있다. 일본 영화 <고백>(2011)에서는 주인공인 여교사가 자신의 남편이 에이즈 감염인이라는 사실을 학생들에게 밝히자 몇몇 학생들이 숨을 참거나 접촉을 피하는 모습을 보인다. 이는 우리 사회가 에이즈 감염인을 어떻게 대하고 있는지, 해당 바이러스에 대해 얼마나 무지한지를 여실히 보여주는 장면이다.

에이즈 검사에서 양성반응 판정을 받은 경우, 즉 HIV에 감염이 된 경우는 에이즈 증상이 나타나지 않은 경우라도 전염성을 가진다. HIV 전파 여부는 에이즈 증상 유무로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 혈중에 있는 HIV의 유무로 결정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HIV는 아주 약한 바이러스로 인체를 벗어나면 바로 비활성화되거나 사멸하게 된다. 이는 공기 중이나 수중에서 금방 활동성을 상실한다고 알려져 있다. 또한 열에도 약해 71℃ 정도의 열을 가하는 것만으로도 완전히 사멸한다. 즉 공기나 물을 통해 HIV가 감염되지는 않으므로 일상생활 내에서 혈액 접촉 또는 성관계를 하지 않는 한 전염될 가능성은 없다는 것이다.

일부는 수영장, 목욕탕 등의 공간에서는 무의식적으로 체액의 교환이 이루어질 수 있기 때문에 감염인의 이용을 금지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HIV는 염소계 소독제에 특히 약하므로 수돗물을 사용하는 공간에서는 감염 위험도가 현저히 낮다. 보통의 수돗물에는 소독을 위한 염소가 용해되어 있으며, 수돗물 정도의 염소 농도라면 HIV는 바로 감염력을 상실하기 때문이다. 또한 수영장이나 목욕탕 등에서는 바이러스가 다량의 물로 인해 희석되어 전파될 위험이 거의 없다.

한편 HIV는 대부분 △감염된 혈액 또는 혈액 제제의 사용 △성접촉 △수직감염(母子 감염) △오염된 주삿바늘의 공동사용 등의 경로로 감염된다고 알려져 있다. 그중 혈액에 의한 감염 확률은 90% 이상에 달할 정도로 감염률이 높다. 특히 직접 감염된 혈액을 수혈받거나, 감염인의 혈액에서 생산된 혈청, 혈액 제제를 투여받은 경우는 감염되기 더 쉽다. 그러나 최근에는 수혈에 사용되는 혈액에 대해 사전에 철저히 에이즈 감염 여부를 검사하고 있기 때문에, 혈액으로 인한 감염은 200만 명당 한 건 정도로 아주 미미하다. 반면 성접촉을 통한 감염은 그 감염 확률이 0.1%에서 1.0%로 매우 낮지만 감염 경로 중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한다. 에이즈의 감염경로가 다양함에도 불구하고 대표적인 ‘성병’으로 알려져 있는 이유가 바로 이것이다. HIV는 성행위 중 감염인에게서 비감염인의 몸 안으로 정액, 질 분비물, 혈액 등이 들어가 감염된다. 특히 정액과 자궁경부, 질 내에서 많이 발견되며 비감염인에게 성병에 의한 염증 소견이 있거나 생식기 점막에 궤양, 상처가 있는 경우 더욱 잘 전파된다. 성접촉에 의한 HIV 감염은 이성, 동성에 관계없이 모두 일어날 수 있다. 또한 정도의 차이는 있으나 질성교 뿐만 아니라 항문성교, 구강성교 등 체액이 교환되는 모든 성행위에서 감염 위험이 있다. 때문에 단 한 번의 관계로도 감염될 수 있는 만큼, 콘돔 등의 안전조치가 반드시 필요하다. 이외에도 어머니로부터 신생아에게 태반, 수유 등을 통해 HIV가 감염되는 경우인 수직감염(감염 확률 20~40%)과 마약사용자들이나 매혈(賣血) 집단에서의 오염된 주삿바늘 공동사용으로 인한 감염(감염 확률 0.5~1.0%) 등이 대표적인 감염경로이다. 이러한 경우를 제외하고 모기 등 곤충을 매개로 전파되거나 음식을 함께 먹는 등, 침으로 인해 바이러스가 전파될 확률은 없으므로 일상생활 내에서 위의 네 가지 경로만 주의한다면 HIV에 쉽게 감염되지 않는다.

에이즈, 무지(無知)로 부풀려진 공포

에이즈를 둘러싼 많은 오해들로 인해 사회는 에이즈 감염인과 환자들을 자신들로부터 격리시키고자 한다. 그러나 그들이 반드시 격리되어야 하는가? 이는 에이즈가 야기한 사회윤리적 문제 중 하나다. 세상에는 많은 질병이 있고 그것을 보유한 환자들이 있다. 어쩌면 모든 사람들은 하나 이상씩 질병을 보유한 경험이 있는 환자라고 할 수 있다. 그래서 대부분의 환자들은 자신의 질병에 고통받으면서도 동시에 타인과 사회적 관계를 맺으며 일상생활을 영위하고 있다. 에이즈 감염인, 에이즈 환자도 똑같은 환자 중 하나다. 그들 또한 헌법이 명시한 ‘인간으로서의 존엄’을 누릴 권리가 있다. 헌법뿐만 아니라 후천성면역결핍증 예방법 제3조 제4항에서도 ‘국가·지방단체 및 국민은 에이즈 감염인의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를 존중하고 기본적 권리를 보호하며 본 법에서 정한 이외의 불이익을 주거나 차별 대우를 하여서는 안된다’라며 그들의 권리를 보호하고 있다.

에이즈 완치 사례가 가끔 보도되기는 하나 아직까지 에이즈는 치료가 어려운 불치의 질병으로 인식되고 있으며, 해당 질병의 확산속도가 굉장히 빠른 점, 그리고 ‘성병’에 대한 사회적 인식이 매우 부정적이라는 점에서 에이즈 감염인들은 고통 속에서 살고 있다. 더불어 에이즈라는 병에 대해 정확히 알지 못하는 비감염인들이 감염인을 대하는 냉랭한 태도는 그들로 하여금 자신을 포기하게 만든다. 때문에 우리는 그들이 다른 환자들과 마찬가지로 지속적인 치료와 함께 정상적인 사회 활동을 할 수 있는 환경을 마련해야 한다. 따뜻한 배려와 포용은 또 다른 비극을 사전에 막을 수 있게 하기 때문이다.

 

에이즈 감염인들의 마녀 재판소, 한국 

감염인들의 ‘숙명’ 

국내에서는 에이즈에 대한 방지와 감염인들의 인권 보호가 어떻게 이뤄지고 있을까? 사회는 에이즈 감염인을 무조건적인 위험인물로 단정 짓는 경향이 있다. 언론 및 대중매체들은 에이즈 관련 사건들을 진위 여부에 무관하게 자극적으로 보도하곤 한다. 지난 2017년, 이른바 ‘부산 에이즈 사건’이 발생했다. 당시 A씨는 에이즈에 걸렸다는 사실을 알리지 않은 채 데이트 애플리케이션을 통해 돈을 받고 성관계를 가져 경찰에 체포됐다. 언론에서는 이를 ‘부산 에이즈 테러’로 규정했다. 하지만 실상은 달랐다. 당시 A씨는 26세임에도 초등학교 1학년 수준의 인지·사회적 적응력을 가진 지적장애 3급이었다. 그녀의 남자친구가 그녀에게 성매매를 강요했던 것이다. 이는 비장애인이 장애인인 A씨에게 행한 명백한 성적 착취였다. 하지만 해당 사실은 뒤늦게 언론을 통해 전해지게 됐고, 자극적인 보도 뒤에야 전말이 드러나는 에이즈 관련 보도 특유의 폐해로 기록되었다.

한편, 이러한 현실을 단편적으로 보여주는 영화도 존재했다. 바로 영화   <너는 내 운명>(2005)이다. 이 영화는 일명 ‘여수 에이즈 사건’이라 불리는 실화를 바탕으로 다방 여자와 시골 청년의 사랑 이야기를 담았다. 2002년 6월, 영화의 실제 인물인 B씨는 경찰에 체포됐다. 에이즈 감염 사실을 안 상태에서 성매매를 한 혐의로 체포된 B씨는 경찰 조사에서 1년 7개월간 수천 명의 남성과 관계를 맺었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각종 언론에서는 이 사건을 ‘에이즈 테러’, ‘에이즈 복수극’ 등의 수식어를 붙이며 보도했고, 한 매체에서는 B씨의 주소를 공개하기도 했다. 이에 B씨에 대한 여론 재판이 이어졌고, 국민들은 이 사건을 ‘여수 괴담’이라고 부르며 공포에 떨었다. 하지만 당시 실제 상황은 언론에서 보도한 것과는 달랐다. B씨는 남편인 C씨와 3년간 함께 살다가 2000년이 되어 자신의 에이즈 감염 사실을 알고 가출했다. 이후 일자리를 구하는 과정에서 한 남성에게 속아 성매매 업소에 가게 됐다. 그녀는 사창가에서 일하는 동안 아무런 대가도 받지 못하다가 1년 7개월 후에 그곳을 빠져나와 보건소 직원에게 이 사실을 알렸다. 하지만 해당 직원은 이를 곧바로 경찰에 신고하였고 B씨는 그 자리에서 체포되었다.

B씨는 에이즈 감염 사실을 알면서도 윤락행위를 했다는 이유로 「후천성면역결핍증 예방법」(이하 에이즈 예방법)에 저촉되어 징역 8월을 선고받았다. 그러나 사법부의 재판 외에도 그녀에게는 또 하나의 재판이 기다리고 있었다. 바로 ‘여론 재판’이다. 당시 대중들은 B씨의 범법행위에 비판의 초점을 맞추기보다, ‘에이즈 감염인’이라는 B씨의 상태에만 집중하여 맹렬한 비난의 돌을 던졌다. 그야말로 ‘마녀사냥’이었다.  

당시 그녀의 감염 사실이 알려지자 여수 보건소에는 에이즈 검사를 하려는 사람들이 하루에 100명 씩 모여들었다. 6개월 간 5,600명의 사람들이 검사를 했지만, 양성 판정을 받은 사람은 한 명도 없었다. 심지어 그녀의 남편이었던 C씨 또한 음성 판정을 받았다. 그 이유는 그녀가 복용하던 에이즈 약에 있다. 약을 복용하면 바이러스 전파력이 거의 사라지기 때문이다. 지탄받은 가해자는 있지만 정작 피해자는 존재하지 않았던 것이다. 하지만 그녀를 향한 사회의 시선은 냉담했다. B씨와 그녀의 남편은 에이즈 감염인과 감염인의 남편이라는 족쇄를 달고 살아야 했다.

 

그들을 사회적 울타리 안으로 

에이즈 감염인들에 대한 마녀사냥과 ‘에이즈 테러’라는 용두사미(龍頭蛇尾) 보도가 나타나게 된 배경에는 국내에서 에이즈라는 질병이 등장한 시점과 관계있다. 국내에 처음 에이즈가 알려지게 된 것은 1982년이다. 당시 국내에선 ‘미국 불치 전염병’이라는 이름으로 에이즈가 처음 알려졌고, 사람들은 이에 대해 자세히 알지 못한 채 병에 대한 ‘공포심’부터 키웠다. 이후 1985년에 국내 첫 에이즈 감염인이 등장하며 국회는 발 빠르게 1987년 에이즈예방법을 제정하게 된다. 에이즈 확산을 막으려는 보건당국이 법을 시행한 초기에는 거주지 임의조사, 강제 격리 등 감염인의 인권을 훼손하는 조항이 많았다. 이후 수차례의 개정을 통해 감염인의 인권을 보호하는 방향으로 개선됐지만, 여전히 많은 문제점들이 지적되고 있다. 

가장 논란이 되는 조항은 제19조(전파매개행위의 금지)다. 제19조에서는 “감염인은 혈액 또는 체액을 통하여 다른 사람에게 전파매개행위를 하여서는 안 된다. 이를 위반한 경우 3년 이하의 징역에 처한다”라고 언급한다. 해당 조항의 골자는 에이즈 감염인이 타인에게 바이러스를 확산시키는 것을 예방하기 위함이다. 하지만 에이즈 감염인 인권 단체는 이것이 오히려 감염인들에 대한 편견을 강화하며, 제대로 된 예방이 이뤄질 수 없도록 만든다고 말한다. 이 조항의 첫 번째 문제점은 ‘전파매개행위’의 기준이 모호함에도 불구하고 행위 자체만으로 처벌한다는 것이다. 또한 감염 판정에 대한 공포심을 유발해 조기 검진을 막고 적절한 치료와 전염 예방을 막는다고 지적한다. 해당 조항은 비감염인인 국민의 건강과 안전 보호를 위해 필요한 내용을 담고 있으나, 앞서 언급한 문제점을 보완할 대안이 미비하다는 맹점이 있다. 에이즈 감염을 줄이기 위한 가장 근본적인 방법은 에이즈를 초기에 발견하여 적절한 치료가 이뤄질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것이다. 그러나 이와 같은 조항은 감염인에 대한 비감염인의 인식 개선에 큰 도움을 주지 못해, 실질적인 문제 해결을 늦춘다.  

그렇다면 에이즈에 대한 국제 사회의 경향은 어떨까? 최근 들어 에이즈 감염인들에 대한 편견을 없애고자 하는 ‘U=U(Undetectable=Untransmittable)’캠페인이 등장했다. ‘U=U’는 “HIV가 검출되지 않은 감염인(Undetectable)은 에이즈를 전파하지 않는다(Untransmittable)”는 사실을 널리 알리려는 취지의 캠페인이다. 1998년 제네바에서 열린 국제에이즈학회 콘퍼런스 이후 20년간 계속된 실험과 연구들을 통해 해당 개념은 견고해졌다. 감염인이 3~6개월 이상 꾸준히 약을 먹어 감염 수준이 일정 수준 이하로 떨어지면 성관계 시에도 HIV를 감염시킬 수 없다는 것이다. 해당 캠페인 성명에는 97개국의 800개 단체들이 참여한 상황이다. 캐나다의 경우에는 국가적으로 U=U 캠페인에 동참해 법적기준을 만들기까지 했다. 

하지만 현재 우리나라는 HIV가 충분히 억제된 상태에서는 그 전파 위험이 0%에 가까울 정도로 낮아진다는 연구 결과를 인정하면서도, 이를 일반화하기에 한계가 있다고 판단한다. 실제로 작년 감염인의 ‘HIV RNA’농도가 ‘20 copies/ml’ 미만으로 매우 낮은 상태였다는 점이 인정됐음에도 불구하고 유죄를 선고한 판례가 있다. 과학적·의학적 증거를 반영한 현ㅉㅈ실적인 방향으로의 법 수정이 필요해 보이는 시점이다. 

 

KNP+(한국 에이즈 감염인연합회) 상임대표 손문수 인터뷰

“에이즈 환자랑 같이 있으면 안 돼. 호흡기로 감염되잖아!”, “우리 병원에선 에이즈 환자 받지 않습니다.” 우리나라에는 에이즈 감염인에 대한 잘못된 정보로 인해 ‘에이즈’라는 단어 자체를 부정적으로 바라보는 시각이 존재한다. 이러한 잘못된 정보와 막연한 공포 때문에 에이즈 감염인들은 오늘도 스스로를 사회로부터 고립시킨다. 본지는 이들의 권리를 지키기 위해 노력하고 있는 KNP+ 손문수 대표를 만나보았다.

 

Q. KNP+는 어떤 취지에서 설립하게 됐나?

A. 2011년 제10차 아시아·태평양에이즈대회에서 아시아·태평양 지역의 9개 국가를 다룬 보고서(방글라데시, 캄보디아, 중국, 피지, 미얀마, 파키스탄, 필리핀, 스리랑카, 태국)를 읽었다. 이 보고서를 보고, 한국에서 에이즈 감염인이 발생한 지 30년이 넘었지만 환자 간의 교류와 자조 모임이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진료 거부, 직장에서의 해고 등의 차별에 목소리를 내기 위해 KNP+를 만들게 됐다.  

 

Q. 현재까지 KNP+의 주요활동은 무엇이 있는가?

A. 매년 초기 감염인들을 위한 힐링캠프를 진행한다. 사람들은 에이즈가 어떤 질병인지 잘 몰라서, 자신이 에이즈에 걸렸다는 사실에 큰 충격을 받는다. 우리는 이들을 위해 에이즈가 정확히 어떤 질병인지, 어떻게 극복할 수 있는지 등 다양한 정보를 제공한다. 

병원에서 에이즈 감염인에 대한 진료를 거부하기도 한다. 사실 에이즈는 약을 먹으면 바이러스가 검출되지 않을 뿐만 아니라 호흡기로 감염되는 질병도 아니기에 비감염자와 일상생활을 할 수 있다. 그러나 동네병원에선 단순한 공포심 때문에 환자들의 내원을 거부하는 경우가 많다. 우리는 이런 상황에 문제의식을 느껴 국가인권위원회에 진정서를 넣고 기자회견을 여는 등의 방법으로 문제를 해결해 나가고 있다.  

 

Q. 지난 2016년 UNAIDS(유엔에이즈)의 지원을 받아 ‘한국 HIV 낙인지표조사’를 한 바 있다. 이를 조사하게 된 계기와 과정이 궁금하다.

A. ‘한국 HIV 낙인지표조사’는 유엔에이즈의 지원을 통해 진행된 조사다. 해당 조사는 KNP+를 중심으로 4개의 시민사회 단체가 참여했다. 조사를 위해 9인의 전문가를 자문위원으로 위촉했으며 자료 수집은 총 15명의 감염인 현장 조사원들에 의해 수행됐다. 현장 조사원들은 면접 조사를 수행하기 전 총 6주간 30시간의 교육 훈련 프로그램을 이수해 HIV 낙인 지표 조사 사업의 의미와 조사 방법을 숙지했다. 연구 참여자는 에이즈 양성 확진을 확인한 후 3개월 이상 경과자를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실시했으며 총 104명이 대면 설문조사에 참여했다. 

 

Q. ‘한국 HIV 낙인지표조사’를 통해 어떤 사실들이 드러났는가?

A. 연구를 통해 드러난 사실은 크게 3가지다. 첫 번째는 한국의 에이즈 감염인들이 매우 높은 수준의 ‘내적 낙인’을 경험하고 있다는 것이다. 내적 낙인이란 에이즈 감염인이 자신의 감염 사실에 대해 느끼는 부정적 평가와 감정을 뜻한다. 본인 스스로 수치심, 죄책감, 자기혐오 등의 감정을 느끼고 한국 사회에서 형성된 에이즈에 대한 부정적 낙인을 내면화하는 것이다. 이러한 내적 낙인은 감염인의 권리 감각을 위축시키기에 기본권을 적극적으로 추구하지 못하도록 한다. 두 번째는 내적 낙인이 차별 횟수가 아니라 차별 경험의 질적 측면과 밀접하게 연관된다는 것이다. 가족, 직장, 의료 기관, 국가 기관, 보도 등을 통해 직간접적으로 들은 차별과 혐오의 표현은 그들을 위축되게 만든다. 세 번째는 감염인의 사생활 침해와 차별 경험이 이들의 삶을 위축시킴에도 이에 대한 규제와 처벌이 부족하다는 것이다. 에이즈 감염인은 타인에게 바이러스를 옮길 수 있는 존재라는 지식 부족과 막연한 두려움 때문에 취업 제한과 해고 등 노동권 침해를 겪는다. 

 

Q. 해외와 비교했을 때, 감염인들에 대한 한국 내 사회 인식은 어떠한가?

A. 사람들은 에이즈 감염에 대한 정확한 지식이 부족해 이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을 갖고 있다. 에이즈에 대한 언론의 보도는 굉장히 자극적이다. 감염인은 비감염인과 접촉해서도 안되는 비정상적인 존재로 표현된다. 그러나 감염인이 약을 복용하지 않으면 바이러스가 억제돼 전파력을 잃는다. 문제는 감염인에 대한 부정적인 낙인이 감염인의 사회 복귀를 막고 에이즈 검사를 꺼리게 한다는 것이다. 에이즈 검사를 받았을 때 받게 되는 사회의 부정적 시선을 감당할 자신이 없는 사람들은 에이즈 검사와 치료를 받지 않는다. 에이즈 감염은 약을 먹으면 미검출되고 공기 중으로 퍼지지 않는데, 사회의 부정적 시선 때문에 사람들은 검사를 받지 않고 바이러스를 보유하게 된다. 악순환이 반복되는 것이다. 에이즈 감염인에 대한 적극적인 지원과 사회로의 복귀를 긍정하는 인식이 형성돼야 한다.

 

사회 테두리 밖, 외로운 이방인이 된 그들 

국내 에이즈 예방 당국의 정책적 노력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많은 에이즈 감염자들은 꾸준한 의학적 조치를 통해 호전될 가능성이 있음에도 절망 상태에 빠져 스스로 치료를 포기하거나 거부한다. 실제로 에이즈 감염자들은 우리나라 사람들이 에이즈에 대해 이해할 수 없는 것이 아니라, 알려고 하지 않는다고 말하며 에이즈에 대한 우리나라의 인식이 90년대에 머물러 있다고 전한다. 에이즈 환자에게 적절한 의료적 지원을 제공하는 제도적 장치가 없다는 점 또한 사회적 문제가 되기도 한다. 지난 4월 포항에서 에이즈 신규 감염자가 사망하며, 신규 감염자가 발생하거나 기존의 치료를 받던 환자들이 잠적할 경우 감염자를 찾을 방법이 없어 감염자 관리에 공백이 생기고 있다는 지적이 잇따랐다. 환자 본인의 동의 또는 일정 부분의 승낙이 없는 한 의료 행위일지라도 강제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의료윤리에 따르면 환자에 대한 모든 의료행위는 신체에 대한 침습을 의미하므로, 원칙적으로 환자 자신의 동의에 의해서만 정당화될 수 있다. 사회의 이방인이 되어 편견 어린 시선을 감당해야 하는 에이즈 환자들이 자기 자신을 방치해 적절한 치료 지원을 받지 못하며 호전 가능성을 기대할 수 없게 되고, 결국 우리 사회는 소수자와 더불어 사는 사회로부터 점차 멀어지게 된다. 

한편 에이즈에 대한 편견을 완화하려는 운동도 세계적으로 꾸준히 일어나고 있다. 세계보건기구(WHO)는 12월 1일을 ‘세계 에이즈의 날(world AIDS day)’로 정해 에이즈로 사망한 에이즈 환자를 추모하고 에이즈를 예방하며 감염인의 인권을 증진하기 위한 기념행사를 개최한다. 유엔에이즈는 세계 각국의 에이즈관리 및 에이즈 예방을 위해 창설된 국제연합 산하의 에이즈 전담기구다. 유엔에이즈는 1991년 뉴욕 에이즈 영상예술제에서 출품된 ‘빨간 리본(Red Ribbon, 레드리본)’을 에이즈운동의 대표 상징물로 채택하여  빨간 리본이 에이즈 예방 및 인식개선 운동의 상징이 되기도 했다. 리본의 빨간 색은 에이즈가 피의 교환에 의한 전염병임을 알리는 동시에 사랑과 정열을 뜻하는데, 에이즈 감염인들의 인권을 보호하고 지지하며 이해하고자 하는 노력의 표식으로 쓰인다.

 

에이즈 감염인의 의료적 지원과 사회 복귀를 위해서는 국민들의 인식 개선이 선행되어야 한다. 그러나 국내 에이즈 감염인에 대한 대중의 인식은 여전히 편견의 프레임에 갇혀있는 실정이다. 에이즈는 개인의 문제를 넘어 사회적 소수자인 감염인들의 인권 보호 문제와 연결된다. 따라서 에이즈 예방 및 인식 개선의 노력이 개인 또는 사회에 국한되어서는 안 된다. 감염인들의 사회복귀를 위해 에이즈에 대한 개인적 인식이 제고되고 제도적 지원이 뒷받침될 때, 사회적 소수자와 더불어 살아가는 사회로 한 발짝 다가갈 수 있을 것이다.  

 

 

김성아 기자(becky0602@mail.hongik.ac.kr)

이산희 기자(ddhh1215@mail.hongik.ac.kr)

이소현 기자(sohyun0911@mail.hongik.ac.kr)

우시윤 기자(woosy0810@mail.hongik.ac.kr)

 

 

참고문헌

 

김민중, 『에이즈의 법률학』, 신론사, 2013.

양춘모 외 3인, 「에이즈 예방법상 감염인의 인권침해요인과 인권 개선방안에 관한 연구」, 한국의료법학회, 007.

『한겨레21』, HIV/AIDS 인권활동가 네트워크, HIV 혐오만 키우는 ‘콘돔 없는 성관계 처벌’ , 2018.

 

SNS 기사보내기

저작권자 © 홍대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최신기사

하단영역

모바일버전